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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사람과 술, 그리고 고향...모월양조장 김원호 대표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한 사람의 소망이 담긴 공간이자,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켜가는 터전이다. 대기업 엔지니어에서 사업가로, 그리고 전통주 양조인으로 삶을 전환한 김원호 대표의 철학은 ‘우리 땅의 재료와 정직한 손길로 술을 빚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상 수상으로 인정받은 그의 술은 이제 원주의 이름을 새롭게 알리고 있다. ◈친구와의 약속에서 시작된 귀향의 꿈 “우리 나중에 늙으면 다 같이 원주로 돌아와 모여 살자.” 김원호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나눈 농담 같은 약속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20년 넘게 대기업 기계·전자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서울에서 성공적인 사업가로 자리매김했지만, 결국 그는 고향 원주로 향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늘 관심 있던 우리술을 현실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과 양조장을 병행하면서 처음에는 사업에 쏟는 비중이 8이었다. 그러나 점차 양조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지면서 지금은 양조장 9, 서울 1의 삶이 되었다. “서울의 일은 이미 직원들이 알아서 굴러갈 정도로 안정돼 있어요. 이제 제 중심은 원주 모월양조장에 있습니다.”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협동조합 같은 양조장 2010년, 김 대표는 원주에 양조장을 열었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인지도가 부족해 술을 빚어도 팔리지 않았고, 2020년까지만 해도 접을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그 상은 제 개인의 성취라기보다 고향 사람들과 함께해 온 노력의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술을 빚는 길은 언제나 순탄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양조장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였습니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해 금전적으로도 큰 손해를 입었죠. 물질적인 어려움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지지해 준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끝까지 믿어주고 함께해 준 고향 친구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의 모월양조장이 있습니다.” ◈원주의 쌀, 그리고 집요한 연구 양조장의 자부심은 원주에서 직접 재배한 토토미 쌀이다. 김 대표는 자신이 직접 소량의 쌀농사를 지어 보태기도 한다. “우리 땅의 재료로 술을 빚는다는 게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그는 기술자 출신답게 효모 연구에도 몰두한다. 다양한 효모를 증식시켜 가장 적합한 균주를 찾아내고, 증류 과정에서는 초류와 후류 각각 2~3%를 제거해 숙취를 줄인다. 또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에 술을 담아 6개월 이상 숙성해 곡물 본연의 맛을 살린다. “좋은 술은 기술과 정성이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술의 이름에 담긴 의미 모월양조장은 ‘모월 연’, ‘모월 미’, ‘모월 로’, ‘모월 인’ 등 네 가지 술을 내놓고 있다. 모월 연은 원주 쌀 100%로 빚어 산미가 입맛을 돋우고, 모월 미는 군고구마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모월 로(25%)는 부드럽고 깔끔한 목넘김을 자랑하며, 모월 인(41%)은 쌀로만 만든 증류주의 정석으로 깊은 감칠맛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모월(某月)’은 달처럼 시간이 흐르며 술이 익어간다는 뜻입니다. 술은 기다림과 인내의 산물이죠.”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철학은 단순하다. “우리 땅, 우리 사람들과 함께 술을 빚는다.” 그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원주만의 색깔을 담고, 공동체 운영을 통해 상생의 가치를 실현한다. 나아가 꾸준한 연구로 한국 전통주가 해외에서도 인정받기를 꿈꾼다. “고향 원주에서 시작했지만, 목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전통주가 세계에서도 사랑받는 날까지 도전하겠습니다.”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술 공방이 아니라, 사람과 땅,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공동체의 양조장이다. 때론 배신과 손해라는 아픔도 있었지만, 끝내 이를 이겨낸 것은 믿음으로 함께해 준 친구들이었다. 김원호 대표의 술 한 잔에는 고향의 온기, 우정의 힘, 그리고 장인의 집념이 담겨 있다. 모월의 술을 마시는 일은 단순한 음주가 아니라, 원주의 이야기와 한국 전통주의 미래를 함께 나누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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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우보주책...“소걸음의 지혜로 담아낸 우리 술 한 모금”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우보주책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이름의 양조장을 운영하는 김희철 대표를 만나기 위해 5일장이 한창인 용문역 앞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커다란 회의용 탁자와 의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안쪽으로는 주방과 장식장에 가지런히 진열된 술들이 차분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양평의 숲과 들녘 사이, ‘소걸음으로 천천히 전통주의 비책을 찾겠다’는 뜻을 담은 이름의 술 공방 우보주책(牛步酒策). 그 중심엔 김희철 대표가 있다. 그는 50년 음주, 10년 향음, 4년 양조 경력을 자랑하지만, 그보다 더욱 빛나는 건 그의 나눔과 사람을 향한 진심이다. 은행 부행장까지 지냈던 그가 퇴직 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경제 상담, ‘부자강의’라는 이름의 강의를 이어가며 삶의 지혜를 나누는 모습은 술 빚기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은행원에서 양조인으로 “저는 음주 50년, 향음 10년, 양조 4년 경력의 술 전문가입니다.” 김 대표의 첫 인사말은 농담 같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함축한다. 금융권에서 수십 년간 사람들의 돈과 고민을 함께 나누었던 그는 퇴직 후에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상담을 이어갔다. 이제는 술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양조장을 사람과 사람이 만나 교류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밀로 빚은 ‘진짜 술’ 국내 밀 자급률이 1%에도 못 미치는 현실. 그는 양평에서 열린 밀 축제에서 수입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가 등장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 끝에 우리밀로 술을 빚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양평 밀 막걸리와 소주다. 금강, 백강, 토종 앉은뱅이 등 다양한 품종에 양평 쌀 ‘참드림’을 더해 맛을 완성했다. 김 대표는 “밀로 빚은 술은 쌀과 달리 고소하고 담백하다”며 우리밀 술이 가진 차별성을 강조했다. ◈53도 밀소주의 탄생 우보주책의 또 다른 대표작은 양평밀소주다. 증류 과정에서 도수를 조절하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던 53도에 맞췄다. 의외로 도수의 무게감보다 맑고 부드러운 향이 먼저 다가온다. 그는 “실온에서 마시면 향이 더욱 풍부하고, 온더락이나 하이볼로 즐겨도 좋다”고 소개했다. 현재 ‘양평밀소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며 지역 대표 기념품으로도 자리 잡았다. ◈양조장의 현실과 철학 하지만 김 대표는 양조장의 현실을 냉정히 짚는다. “요즘 청년들이 양조장 사업에 뛰어들지만 대부분 1년을 못 버티고 나갑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연 3000만 원의 수익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그는 “양조는 마음을 비우고, 소걸음처럼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나만의 술을 찾고, 시설 확장보다 작지만 알차게 운영하며 단골을 늘리는 게 길이다”라고 조언한다. “술은 결국 사람이 찾는 것이고, 그 관계가 양조장의 힘이 된다”는 말은 우보주책의 운영 철학을 대변한다. ◈예술과 술, 또 하나의 교감 김희철 대표는 술만 빚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섹소폰 연주자이자, 얼마 전까지 악단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음악인으로서의 감수성은 술의 풍미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양평에서 활동하는 시인, 화가, 음악가 등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과 자신이 만든 술을 교환하기도 한다. 술과 예술이 만나는 교류의 장은 우보주책만의 독특한 문화적 향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좋은 술은 좋은 음악처럼 오래 기억된다”며, 술과 예술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개체라고 말한다. 우보주책에서의 한 잔은 단순한 술맛을 넘어 예술과 교감하는 경험이 된다. ◈청년과 함께하는 술자리 우보주책은 열린 사랑방이기도 하다. 청년들이 안주를 들고 오면 2만 원만 내고 무제한으로 술을 즐기도록 개방한다. 그는 이를 “내가 감사한 자리”라고 표현한다. 젊은 세대와 함께 술을 나누며 세대 간 거리를 좁히고, 술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보주책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금융인의 경험, 멘토로서의 따뜻한 마음,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이 술잔 속에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김희철 대표가 빚은 술은 ‘맛’만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양평의 들녘에서 태어난 막걸리 한 사발, 53도 소주 한 잔, 그리고 섹소폰 선율 같은 그의 미소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술은 나눔이고, 사귐이며, 결국 예술이다.” 소걸음처럼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가는 그의 길 위에서, 우보주책은 한국 전통주의 또 다른 미래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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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시철 박사 “AI로 생애 건강 리스크 예측하는 시대 열린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제노시스 AI헬스케어(주) 부회장으로 7월 1일 공식 취임한 강시철 박사는 “AI의 힘으로 수명, 사망 원인, 때를 미리 알고 예방과 치료까지 가능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의료기술을 넘어 인류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그의 메시지는 강렬했다. 제노시스가 개발 중인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은 이제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로 다가서고 있다. ◆“앞으로는 건강의 흐름과 생애 리스크까지 예측 가능하다” “앞으로는 자신의 건강 상태는 물론, 생애 전반의 리스크까지 미리 알 수 있는 시대가 열립니다.” 강 박사는 “그동안 우리는 질병이 발현된 후에야 치료를 시작하는 방식에 익숙했지만, 앞으로는 개인의 유전체와 생체 데이터, 생활습관, 환경 요인 등을 AI가 통합 분석해 미래 건강 흐름과 위험 요인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컨대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 언제쯤 건강상 이상이 나타날지 등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치료뿐 아니라 예방 중심의 의료로 전환이 가능해진다”며 AI 기반 예측 의료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제노시스의 핵심,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개발 중인 핵심 기술은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HDT)’이다. 이 기술은 단순한 디지털 건강 기록이 아닌, 사람의 실제 생체 리듬과 유전 정보를 해석하고 반영해 ‘가상의 나’를 실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강 박사는 이를 ‘인체 해독기’라 부른다. “우리는 인체가 보내는 신호의 90% 이상을 해석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 아니라, 병이 생기기 전에 잡아내는 기술입니다.” 그는 이 기술이 실제 임상에 적용되면, 지금까지 일부 VIP만이 누리던 맞춤형 정밀의료가 누구에게나 제공될 수 있는 ‘보편적 고품질 의료 서비스’로 전환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AI 의료, 5차 산업혁명의 중심축이 되다 강 박사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단순한 산업 영역을 넘어, “5차 산업혁명”의 완성 지점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우리는 이제 인체를 디지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미생물, 생활습관, 환경 등 복합 데이터를 분석해 건강을 예측하고, 치료 방향을 설계하는 일이 인간이 아닌 AI에 의해 가능해지는 시대입니다.” 그는 이어 “인체 번역과 해독이 실현되면, 그것이 바로 5차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이 기술 흐름의 선두에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서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의료 AI 분야에서 세계 일등을 차지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제노시스의 AI 의료진이 이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제가 부회장으로서 그 흐름을 총괄하고 이끌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AI 집단지성이 인류의 삶을 바꾼다” 강 박사는 인터뷰 말미, AI 기술에 대한 신념을 다시금 강조했다. “AI는 더 이상 계산기 수준의 도구가 아닙니다. 인간보다 더 빠르게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치료 방안을 설계하는 새로운 지성입니다. 이 AI 집단지성은 이제 인류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노시스의 기술은 개인을 넘어서 공공의료까지 확장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보편적 의료복지의 실현 또한 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영학 박사인 강시철 부회장은, 20년 이상 기술인문학과 AI 융합 연구를 이어온 인물이다. 저서로는 《AI의료의 미래》,《디스럽션》, 《인공지능과 슈퍼비즈니스》, 《핸디캡 마케팅》 등이 있으며, AI 인문학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상장사 휴센텍 대표이사와 고려대 문과대 교우회장을 역임했다. 강시철 박사의 짧지만 강렬했던 인터뷰는, AI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생명과 죽음을 관리하는 미래 의료의 주체가 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만들어가는 길 위에는, 지금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생명 연장의 기술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의료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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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시흥에 위치한 대한주조의 김미영 대표는 전통주에 대한 깊은 열정과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어왔다. 2009년에 대한주조를 설립한 그는 일본에서의 유학생활과 사업 확장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주를 세계에 알리는 꿈을 키우고 있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생 역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김 대표가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한국식품 도매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술이 가장 큰 이윤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류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특히 한국식품을 일본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주류의 매력을 더욱 느꼈다고 전했다. 일본 유학 중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자,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작은 회사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하며 영업과 납품을 통해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보람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한국식품 도매업체를 창업하며 일본에서의 경험을 활용했다. 대한주조는 2009년 설립되었으며, 최근에는 월 7만 병의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으로 성장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영업과 홍보를 했고, 주류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죠."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자, 그는 다시 주류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있는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공부한 경험도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대한주조는 과일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딸기와 바나나 등을 활용하여 맛과 향을 모두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연막걸리는 탄산이 적고 첫맛이 묵직한 편이지만 목넘길 때는 신맛이 약간 나면서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음자들은 연막걸리에 대해 "부드러운 식감과 적당한 신맛이 조화를 이루어 음용하기 좋다"고 평가하며, 전통주로서의 매력을 느낀다고 전했다. "앞으로 연예인과 협업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싶어요. 연예인 시그니처 막걸리를 기획 중입니다."라며 자신감 있는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지금도 일본에 한국 막걸리와 소주를 판매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제 꿈은 한국의 전통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열정과 비전은 단순한 주류 생산을 넘어 한국 전통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는 전통주가 가진 매력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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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사임당양조장은 권오길 명인의 열정과 노력이 깃든 곳이다. 권 명인은 5년간의 주류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막걸리 제조에 뛰어들었으며, 강릉 출신으로서 고향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여정은 안흥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에 설립된 안흥양조장에서 김성영 선생으로부터 1년간 막걸리 제조법을 전수받았고, 이후 2대 대표인 윤한중 선생으로부터 2년간 추가로 배움을 이어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막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그는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와 사임당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권오길 명인은 강릉 지역의 전통 축제인 단오제에서 단오신주를 제조할 때, 강릉 시민들이 모아 준 쌀을 사용한다. 강릉소주를 만들 때는 풍미를 더욱 좋게 하기 위해 생쌀(강릉황금물쌀)을 이용한다. 그러나 생쌀은 발효가 매우 어려운 재료이므로, 저온 숙성 발효 기간을 10~15일로 설정하고 발효 온도를 섭씨 25~26도로 유지하며 정성을 다해 빚고 있다. 사임당양조장은 이렇게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독특한 제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전통 누룩 대신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여 발효를 진행하는데, 이는 잡균으로 인한 유통 문제를 줄이고 쾌적한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전통 누룩은 고유의 맛과 향을 제공하지만, 잡균으로 인해 술맛이 변하거나 유통 기간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면 품질이 안정적이며 유통 기간도 늘어나는 장점이 있다. 권 명인은 이러한 제조 방식을 통해 월 평균 20만 병 이상의 사임당 강릉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인의 입맛과 유통 환경에 맞는 술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급 재료와 최신 설비를 활용하여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사임당 강릉 소주도 생산하고 있으며, 다양한 곡류를 사용하여 풍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현재 권 명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조장의 운영과 제조법, 유통 등을 배우며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권 명인은 "아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더 발전된 양조장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올해에는 옥수수와 감자를 사용한 약주를 생산하기 위해 설비 시스템을 갖추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맛과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권오길 대표는 지금까지 사임당 막걸리가 자리를 잡기까지 약 1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전통 누룩도 사용해서 만들어봤지만 유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게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맛과 유통기간을 모두 잡은 사임당 막걸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권오길 명인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창의적인 접근으로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도 지역의 자부심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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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 위치한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막걸리로 지역의 주류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 양조장의 이름인 '소두방'은 '솥뚜껑'의 방언으로, 정관읍의 중심인 덕산에서 매남산을 바라보면 솥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김준영 대표는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담아내고 싶어 이 이름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김준영 대표는 약 10년간 통신업에 종사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지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만들어주시던 막걸리를 사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이어받아 진정한 전통주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소두방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현재 소두방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는 '소두방막걸리'와 '퍼플스파클링'이라는 자색고구마 막걸리 두 종류이다. 각각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살려 만들어지며,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는 자색고구마를 50% 사용하고 찹쌀과 누룩을 함께 사용하여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도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자색고구마를 직접 재배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다른 농가와의 협업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막걸리는 탄산이 강하고 색이 아름다워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김 대표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판로 확보이다. 초기에는 마케팅과 홍보가 부족했지만,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으며, 2024년 7월에 첫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그는 향후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길 원하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전통누룩과 개량누룩의 차이도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누룩은 자연 발효로 다양한 미생물이 함께 작용하여 풍미가 깊고 복합적이지만, 개량누룩은 인공 배양된 미생물만 사용하여 일관된 맛을 낸다. 김 대표는 막걸리 종류에 따라 적절히 두 가지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준영 대표는 올해 통신판매에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를 리조트의 PB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예정이며,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그는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소두방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찹쌀과 남평쌀을 50%씩 사용하여 부드럽고 깊은 맛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특히 어머니께서 직접 양조장을 찾아와 쌀을 찌고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을 도와주시는 점이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그대로 담긴 막걸리라고 자부하며, 그 특별한 맛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김준영 대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가족의 사랑과 정성을 담아내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의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부산 정관읍의 역사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담긴 특별한 이야기다. 앞으로 그의 막걸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이처럼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부산의 주류 문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김준영 대표의 열정과 가족의 사랑이 담긴 막걸리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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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여행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는 이를 실현하며 공정여행과 지속 가능한 관광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변 대표는 대안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행을 통한 교육의 시작: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 서울 상수동 카페거리에서 변형석 대표를 만났다. 그는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를 통해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는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왔다. 변 대표는 하자센터에서 7년간 청소년들과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 트래블러스맵을 설립했다. 그의 교육 방식은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방식을 실현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변 대표는 말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며 깨닫게 됩니다. 교과서 속 이론에서 벗어나 세상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몇 배 더 큰 가르침을 줍니다." 공정여행의 철학과 성공 트래블러스맵은 2010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후, 다양한 사회적 기여로 주목받았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고 친환경적 이동 수단을 활용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여행자가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첫해 매출 9억 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연 매출 6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행 상품은 전 세계 31개국에 걸쳐 있으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대표적인 공정여행 상품과 도전 변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의 대표 상품으로 ‘땍때구르르 겨울캠프’(강원도 곰배령)와 캄보디아 반띠아이치마 1박 2일 프로그램을 꼽았다. 이들 상품은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를 중시하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남미 27일 탐방과 북유럽 4개국 여행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환경과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소그룹 여행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빠르게 달리는 여행을 지양합니다. 대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그 지역의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의 철학을 설명하며 깊이 있는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드스꼴라: 여행을 통한 대안교육 트래블러스맵의 부설 여행학교인 로드스꼴라는 15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3년제 대안학교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다. 변 대표는 “로드스꼴라는 교과서 밖에서 세상을 배우는 공간”이라며, "여행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목표를 이루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로드스꼴라는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해왔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진안에서 마을 주민들과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하거나, 백제의 역사를 탐구하며 일본 교토와 오사카를 답사하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 코로나19 팬데믹은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로드스꼴라는 10기 졸업생 배출 후 문을 닫았고, 트래블러스맵은 직원 수를 2명으로 줄여야 했다. 하지만 변 대표는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는 "여행업계는 결국 회복될 것"이라고 믿으며, 특히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돈보다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실버 세대가 늘고 있다"며, 은퇴한 이들에게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남미 여행 프로그램은 완판되었으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여행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공정여행의 미래와 사회적 기여 변형석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을 통해 공정여행의 가치를 계속 확산시키고자 한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현지 회사를 설립해 지역 주민들이 관광 사업을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변 대표는 "여행자는 환경과 지역사회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장기적인 변화를 목표로 윤리적 여행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을 얻고, 타인과 교류하며 성장한다는 변 대표의 철학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위기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공정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움과 교감을 선사하는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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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이승재 대표를 만났다. 밝은 미소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한 이 대표는 지난 수년간 암 유전자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박사들과 협력해왔다. 그는 항노화와 암 예방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승재 대표는 인터뷰에서 회사의 비전과 미래 계획, 그리고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전국으로 확장 중인 제노시스DNA클리닉의 항노화 프로그램과 암 예방 연구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승재 대표는 이러한 혁신적인 연구의 중심에 서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비전과 성과 이승재 대표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주요 목표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항노화 신약 개발입니다.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유니스트의 박종화 교수, 김유미 박사, 서울대 김정용 박사, 임규성 원장 등이 참여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항노화 건강기능식품을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 제품은 현재 임상 중이며, 그 성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라고 밝혔다. 전국 확장과 글로벌 도입 제노시스DNA클리닉은 부산, 서울 압구정, 역삼, 동서울, 병점 등 주요 도시에 이미 오픈했거나 오픈 예정이며, 항노화 프로그램은 두바이와 베트남에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두바이 국립병원과 협력하여 현지에서도 우리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두바이는 사막 지역 특성상 50대 사망률이 높아 우리의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베트남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많은 의사들이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항암 연구와 치료의 새로운 접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 중이다. 이승재 대표는 “우리의 프로토콜은 암 발생 전이나 초기 암 환자들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대학병원에서 포기한 말기 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환자들이 회복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암은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방, 치료, 관리를 통해 암을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건강 비결과 항노화 프로그램의 효과 이승재 대표는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항노화 프로그램을 통해 피가 맑아지고 염증이 사라졌습니다. 면역력이 강화되면서 피부와 머리카락이 재생되고 질환도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에게 ‘회춘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규칙적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운동도 속병이 없고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죠.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 프로토콜을 통해 지금은 40대보다 더 젊고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승재 대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행지로 이탈리아 밀라노와 하와이를 추천했다. 그는 “밀라노는 역사적인 건물과 오래된 명품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큽니다. 수대를 이어온 가업과 전통을 통해 세계적인 명품으로 성장한 회사들이 밀라노에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수세기를 이어오는 전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하와이에 대해서는 “날씨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힐링에 최고 장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재 대표와의 인터뷰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혁신적인 연구와 그의 개인적인 건강 비결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연구와 개발에 열정을 쏟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승재 대표와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와 암 예방 연구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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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6월 5일 여행사 트래블빌더의 이우석(우석몬) 대표와 역삼역 커피빈에서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반바지와 끈 없는 런닝을 입고 헬멧을 든 채 나타난 그는 팔과 다리, 어깨에 멋진 타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이크를 타는군요?"라고 묻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이크와 여행의 시작 '저도 대학 졸업 후 사고가 나기 전까지 잠깐 바이크를 탔었어요.' 대학 시절 잠깐 바이크를 탔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이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이크를 타는 자유로운 그의 모습이 MZ세대의 대표적인 모습 같았다. 인터뷰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시작되었다. 그의 본명은 이우석, '우석몬'이라는 별명은 중학교 때 몬스터를 닮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 별명이 좋아서 지금까지 애칭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첫 여행의 기억 우석몬이 처음 여행을 떠난 것은 9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 중국 여행이었다. "만리장성의 일부만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그는 어린 시절 여행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경험이 여행에 대한 첫 번째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최초의 해외여행은 2015년, 삽자루 선생님께서 공짜로 보내준 유럽 여행이었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꿔놨어요. 14일 동안 유럽 6개국을 다녀왔는데 전부 기억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고, 문화 충격도 받았어요." 그는 그 여행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왜 사람들이 그렇게 큰 돈을 들여 여행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여행 전에는 300만원이면 옷이 몇 벌이고 밥이 몇 끼고,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행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어요." 네덜란드 유학과 목표의 변화 그 후 그는 3수 끝에 9등급에서 3등급, 다시 2등급으로 그리고 마침내 1등급을 달성하고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 "네덜란드가 5년 후 이민 자격을 주기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어요. 대학 3년을 마치고 2년만 버티면 이민이 가능하니까요." 그러나 그의 목표는 1년이 지나지 않아 바뀌게 되었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향수병이 생기고 한국인이 적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도 생기고 정서적으로 불편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이민을 포기하자 그는 네덜란드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수학 강사를 목표로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입학했어요. 거기서 수학을 전공했고, 대학 내내 방학 때는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아르바이트 강의를 했어요." 이우석 대표는 방학 동안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며 하루에 5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세계 일주와 여행사 설립 대학 졸업 후, 그는 세계 일주를 결심했다. "계약서를 쓰려는데 고민이 되더라구요. 내 꿈이 세계 일주인데 강사를 하면 10년 동안 여행을 못할 텐데 그러면 40이 넘게 되고 체력이 지금 같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는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2월부터 시작된 그의 세계 일주는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태국, 두바이, 터키,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 미국, 캐나다, 남미 등 총 58개국을 10개월 동안 여행했다. 귀국 후 그는 강사가 될 계획이었으나, 여행사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4년 2월, 트래블빌더라는 이름의 자유여행사를 설립했어요. 모든 상품이 완판됐고, 여행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여행을 통한 교육과 선한 영향력 이우석 대표는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한다. 그는 여행이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믿는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여행을 통한 깨달음을 전파하고 싶어요. 여행은 살아있는 교육이니까요."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거의 놀다시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9등급이었어요. 하지만 여행에 눈뜬 후 목표가 생겼어요. 이제는 저도 선생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이 대표는 여행을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자신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행의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제가 경험한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자신감과 계획 우석몬의 자신감은 치밀한 계획과 빠른 실행력에서 나왔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바로 실천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행동이 빠른 편이고,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 빠르게 이루죠. 지금까지 제가 조언한 지인들은 대부분 성공했어요." 그는 앞으로 1년 후 강사로서 돈을 벌고, 여행사의 규모도 키울 계획이다. "시기는 2025년이 되겠죠. 강남의 잘 나가는 수학 강사들은 거의 기업 수준이에요. 수백억을 벌어요. 저도 그런 강사가 되고 싶어요." 우석몬 대표와의 2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유롭고 도전적인 삶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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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서울시 풍납2동에 위치한 풍납새마을금고는 변현숙 이사장의 리더십 아래 고객과 직원을 위한 새로운 힐링공간을 마련해 주목받고 있다. 이 공간은 고객과 직원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무료나눔공간으로 회의실과 문화센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변현숙 이사장을 직접 만나,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된 동기와 운영에 대해 들어보았다. "풍납새마을금고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변현숙 이사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고객라운지를 비롯해 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까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는 단순히 금융 업무를 보러 온 고객들뿐만 아니라 풍납동 지역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나눔공간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변 이사장은 고객라운지에 걸린 다양한 작품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현재는 최석운 작가의 유쾌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방문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최 작가의 작품 전시 후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직원들을 위한 공간도 신경을 많이 썼다. 3층에 위치한 직원라운지와 문화센터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강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업무 외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변현숙 이사장은 이번 공간 조성을 통해 고객과 직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풍요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현숙 이사장은 문화센터 뿐 아니라 4층 회의실도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 놓았다. 이러한 공간 조성을 통해 풍납새마을금고가 단순한 금융 기관을 넘어 지역 사회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객과 직원, 그리고 지역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그녀의 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아 힐링과 문화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 이용시간 : 오전 9시~오후 4시 *회의실 이용문의(무료): 풍납새마을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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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수와 노화의 비밀, 박상철 교수에게 듣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대표 이승재)는 3월 18일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 병원에서 노화와 장수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박상철 교수로부터 최근의 연구 성과와 메트포민에 대해 들어 보았다. 교수님, 노화와 장수 연구로 암 예방 프로토콜을 개발 중이신가요? 최근의 연구 성과와 메트포민에 대해 알려주세요. 박상철 교수: 네, 저는 노화와 장수를 연구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요인을 찾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최근에는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과 국민건강 자료를 활용하여 개인 맞춤형 건강식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암 예방을 위한 프로토콜 개발과 제노시스 암 예측 클리닉과의 협력을 통해 국민의 건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메트포민에 대해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 건가요? 박상철 교수: 메트포민은 알려진 비용 효율적인 약물로 알려져 있지만, 연구는 여전히 제한적인 상태입니다. 특허 확보가 어려워 대기업이나 제약회사들이 투자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메트포민과 같은 저렴하고 효과적인 약물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특허가 보장되지 않는 약물에 대한 연구 환경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박상철 교수님은 암 예방 프로토콜 개발을 위해 제노시스 암예측 클리닉과 협력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알려주세요. 박상철 교수: 맞습니다. 저는 김정용 원장님과 제노시스 암예측 클리닉과의 협력을 통해 암 예방 프로토콜을 개발 중입니다. 이는 암 예방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 협력을 통해 환자들의 건강한 노년과 암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교수님의 연구와 노력은 어떻게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기여하고 있을까요? 박상철 교수: 제 연구는 노화와 장수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는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발견된 건강 유지의 비결을 일반 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진행 중인 메트포민 연구는 이 약물의 잠재력을 탐색하여, 기존의 치료 방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노화 관련 질병의 예방 및 관리를 위한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제공하며,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을 연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진행하는 개인 맞춤형 건강식품 개발 프로젝트는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여 최적의 건강식품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건강 관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건강 관리 방식에 혁신을 가져오며,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의 김정용 원장님과 암예방프로토콜을 위해 어떤 협업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상철 교수: 제노시스 암 예측 클리닉과의 협력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협력을 통해 개발된 암 예방 프로토콜은 암 발병의 위험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암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질병의 예방과 건강한 생활 습관의 증진에 중점을 두고 있어, 한국 사회의 건강한 노년을 위한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연구와 노력은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건강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방법과 접근을 모색하며 한국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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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종화 교수와의 대화, 암 진단의 새로운 지평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게놈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종화 교수는 최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와 협업으로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한 암 진단 방법의 혁신적 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조직 생검에 비해 부담이 적고, 암의 정확한 진단 및 치료 과정 모니터링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특히, 이 기술은 암의 조기 발견을 가능하게 하여 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으며, 환자의 삶의 질 유지에도 기여할 것이 예상된다. 박종화 교수는 현재 연구 단계에 있으며,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한 정확도와 안정성의 입증, 의료계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상철 교수와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 김정용 원장 그리고 박종화 교수와 연구팀은 암 진단과 치료의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박종화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교수님,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암 진단과 관련된 혁신적인 연구에 대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우선, 교수님께서는 이 분야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박종화 교수: 네, 저의 연구는 모두 과학자들과 현대 생물학의 기초가 되는 과학적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암 진단과 관련하여, 우리는 환자가 암에 걸렸는지, 걸렸다면 어떤 단계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합니다. 이는 치료의 효과를 측정하고, 필요한 경우 치료 방법을 조정하는 데 중요합니다. 이 연구에 있어서 에피제네틱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에피제네틱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박종화 교수: 물론입니다. 에피제네틱스는 DNA의 변화 없이 유전자의 활성화 상태를 조절하는 연구 분야입니다. 쌍둥이 쥐의 연구를 예로 들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외형이나 건강 상태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는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의 표현을 조절하는 메틸기 같은 요소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구가 암 진단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종화 교수: 우리의 연구는 혈액 속의 종양 DNA를 분석하여 암을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암 세포는 특정한 메틸화 패턴을 가지고 있어, 이를 통해 암의 존재 여부와 종류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개발된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해, 혈액만으로도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액체 생검 기술은 어떤 기술인가요? 박종화 교수: 이 기술은 혈액 샘플을 통해 종양 DNA의 메틸화 패턴을 분석합니다. 과거에는 특정 메틸화 패턴을 검출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지만, 최신 기술을 통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비침습적 방법으로 암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 방식이 암 치료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나요? 박종화 교수: 이러한 기술의 진보는 암 치료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암 진단 방법은 대부분 조직 생검에 의존해 왔습니다. 이는 환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조직 샘플링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욱 정확하고 신속하게 암을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술은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암의 발전 상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교수님의 연구가 앞으로 암 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박종화 교수: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의 박상철 교수님과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의 김정용 원장님 그리고 저희 연구팀은 암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치료 과정을 개선하여 환자의 생존율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단 기술의 발전은 암의 조기 발견을 가능하게 하며, 조기 발견은 암의 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비침습적인 진단 방법은 환자의 부담을 줄이고,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연구가 실제 임상에 적용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박종화 교수: 현재는 이 기술이 연구 단계에 있으며,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검증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해 이 기술의 정확도와 안정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실제 임상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의료계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와 저희 팀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암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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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사람과 술, 그리고 고향...모월양조장 김원호 대표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한 사람의 소망이 담긴 공간이자,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켜가는 터전이다. 대기업 엔지니어에서 사업가로, 그리고 전통주 양조인으로 삶을 전환한 김원호 대표의 철학은 ‘우리 땅의 재료와 정직한 손길로 술을 빚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상 수상으로 인정받은 그의 술은 이제 원주의 이름을 새롭게 알리고 있다. ◈친구와의 약속에서 시작된 귀향의 꿈 “우리 나중에 늙으면 다 같이 원주로 돌아와 모여 살자.” 김원호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나눈 농담 같은 약속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20년 넘게 대기업 기계·전자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서울에서 성공적인 사업가로 자리매김했지만, 결국 그는 고향 원주로 향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늘 관심 있던 우리술을 현실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과 양조장을 병행하면서 처음에는 사업에 쏟는 비중이 8이었다. 그러나 점차 양조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지면서 지금은 양조장 9, 서울 1의 삶이 되었다. “서울의 일은 이미 직원들이 알아서 굴러갈 정도로 안정돼 있어요. 이제 제 중심은 원주 모월양조장에 있습니다.”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협동조합 같은 양조장 2010년, 김 대표는 원주에 양조장을 열었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인지도가 부족해 술을 빚어도 팔리지 않았고, 2020년까지만 해도 접을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그 상은 제 개인의 성취라기보다 고향 사람들과 함께해 온 노력의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술을 빚는 길은 언제나 순탄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양조장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였습니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해 금전적으로도 큰 손해를 입었죠. 물질적인 어려움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지지해 준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끝까지 믿어주고 함께해 준 고향 친구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의 모월양조장이 있습니다.” ◈원주의 쌀, 그리고 집요한 연구 양조장의 자부심은 원주에서 직접 재배한 토토미 쌀이다. 김 대표는 자신이 직접 소량의 쌀농사를 지어 보태기도 한다. “우리 땅의 재료로 술을 빚는다는 게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그는 기술자 출신답게 효모 연구에도 몰두한다. 다양한 효모를 증식시켜 가장 적합한 균주를 찾아내고, 증류 과정에서는 초류와 후류 각각 2~3%를 제거해 숙취를 줄인다. 또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에 술을 담아 6개월 이상 숙성해 곡물 본연의 맛을 살린다. “좋은 술은 기술과 정성이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술의 이름에 담긴 의미 모월양조장은 ‘모월 연’, ‘모월 미’, ‘모월 로’, ‘모월 인’ 등 네 가지 술을 내놓고 있다. 모월 연은 원주 쌀 100%로 빚어 산미가 입맛을 돋우고, 모월 미는 군고구마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모월 로(25%)는 부드럽고 깔끔한 목넘김을 자랑하며, 모월 인(41%)은 쌀로만 만든 증류주의 정석으로 깊은 감칠맛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모월(某月)’은 달처럼 시간이 흐르며 술이 익어간다는 뜻입니다. 술은 기다림과 인내의 산물이죠.”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철학은 단순하다. “우리 땅, 우리 사람들과 함께 술을 빚는다.” 그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원주만의 색깔을 담고, 공동체 운영을 통해 상생의 가치를 실현한다. 나아가 꾸준한 연구로 한국 전통주가 해외에서도 인정받기를 꿈꾼다. “고향 원주에서 시작했지만, 목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전통주가 세계에서도 사랑받는 날까지 도전하겠습니다.”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술 공방이 아니라, 사람과 땅,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공동체의 양조장이다. 때론 배신과 손해라는 아픔도 있었지만, 끝내 이를 이겨낸 것은 믿음으로 함께해 준 친구들이었다. 김원호 대표의 술 한 잔에는 고향의 온기, 우정의 힘, 그리고 장인의 집념이 담겨 있다. 모월의 술을 마시는 일은 단순한 음주가 아니라, 원주의 이야기와 한국 전통주의 미래를 함께 나누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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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사람과 술, 그리고 고향...모월양조장 김원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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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우보주책...“소걸음의 지혜로 담아낸 우리 술 한 모금”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우보주책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이름의 양조장을 운영하는 김희철 대표를 만나기 위해 5일장이 한창인 용문역 앞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커다란 회의용 탁자와 의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안쪽으로는 주방과 장식장에 가지런히 진열된 술들이 차분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양평의 숲과 들녘 사이, ‘소걸음으로 천천히 전통주의 비책을 찾겠다’는 뜻을 담은 이름의 술 공방 우보주책(牛步酒策). 그 중심엔 김희철 대표가 있다. 그는 50년 음주, 10년 향음, 4년 양조 경력을 자랑하지만, 그보다 더욱 빛나는 건 그의 나눔과 사람을 향한 진심이다. 은행 부행장까지 지냈던 그가 퇴직 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경제 상담, ‘부자강의’라는 이름의 강의를 이어가며 삶의 지혜를 나누는 모습은 술 빚기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은행원에서 양조인으로 “저는 음주 50년, 향음 10년, 양조 4년 경력의 술 전문가입니다.” 김 대표의 첫 인사말은 농담 같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함축한다. 금융권에서 수십 년간 사람들의 돈과 고민을 함께 나누었던 그는 퇴직 후에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상담을 이어갔다. 이제는 술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양조장을 사람과 사람이 만나 교류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밀로 빚은 ‘진짜 술’ 국내 밀 자급률이 1%에도 못 미치는 현실. 그는 양평에서 열린 밀 축제에서 수입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가 등장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 끝에 우리밀로 술을 빚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양평 밀 막걸리와 소주다. 금강, 백강, 토종 앉은뱅이 등 다양한 품종에 양평 쌀 ‘참드림’을 더해 맛을 완성했다. 김 대표는 “밀로 빚은 술은 쌀과 달리 고소하고 담백하다”며 우리밀 술이 가진 차별성을 강조했다. ◈53도 밀소주의 탄생 우보주책의 또 다른 대표작은 양평밀소주다. 증류 과정에서 도수를 조절하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던 53도에 맞췄다. 의외로 도수의 무게감보다 맑고 부드러운 향이 먼저 다가온다. 그는 “실온에서 마시면 향이 더욱 풍부하고, 온더락이나 하이볼로 즐겨도 좋다”고 소개했다. 현재 ‘양평밀소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며 지역 대표 기념품으로도 자리 잡았다. ◈양조장의 현실과 철학 하지만 김 대표는 양조장의 현실을 냉정히 짚는다. “요즘 청년들이 양조장 사업에 뛰어들지만 대부분 1년을 못 버티고 나갑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연 3000만 원의 수익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그는 “양조는 마음을 비우고, 소걸음처럼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나만의 술을 찾고, 시설 확장보다 작지만 알차게 운영하며 단골을 늘리는 게 길이다”라고 조언한다. “술은 결국 사람이 찾는 것이고, 그 관계가 양조장의 힘이 된다”는 말은 우보주책의 운영 철학을 대변한다. ◈예술과 술, 또 하나의 교감 김희철 대표는 술만 빚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섹소폰 연주자이자, 얼마 전까지 악단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음악인으로서의 감수성은 술의 풍미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양평에서 활동하는 시인, 화가, 음악가 등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과 자신이 만든 술을 교환하기도 한다. 술과 예술이 만나는 교류의 장은 우보주책만의 독특한 문화적 향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좋은 술은 좋은 음악처럼 오래 기억된다”며, 술과 예술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개체라고 말한다. 우보주책에서의 한 잔은 단순한 술맛을 넘어 예술과 교감하는 경험이 된다. ◈청년과 함께하는 술자리 우보주책은 열린 사랑방이기도 하다. 청년들이 안주를 들고 오면 2만 원만 내고 무제한으로 술을 즐기도록 개방한다. 그는 이를 “내가 감사한 자리”라고 표현한다. 젊은 세대와 함께 술을 나누며 세대 간 거리를 좁히고, 술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보주책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금융인의 경험, 멘토로서의 따뜻한 마음,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이 술잔 속에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김희철 대표가 빚은 술은 ‘맛’만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양평의 들녘에서 태어난 막걸리 한 사발, 53도 소주 한 잔, 그리고 섹소폰 선율 같은 그의 미소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술은 나눔이고, 사귐이며, 결국 예술이다.” 소걸음처럼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가는 그의 길 위에서, 우보주책은 한국 전통주의 또 다른 미래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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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우보주책...“소걸음의 지혜로 담아낸 우리 술 한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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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시철 박사 “AI로 생애 건강 리스크 예측하는 시대 열린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제노시스 AI헬스케어(주) 부회장으로 7월 1일 공식 취임한 강시철 박사는 “AI의 힘으로 수명, 사망 원인, 때를 미리 알고 예방과 치료까지 가능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의료기술을 넘어 인류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그의 메시지는 강렬했다. 제노시스가 개발 중인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은 이제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로 다가서고 있다. ◆“앞으로는 건강의 흐름과 생애 리스크까지 예측 가능하다” “앞으로는 자신의 건강 상태는 물론, 생애 전반의 리스크까지 미리 알 수 있는 시대가 열립니다.” 강 박사는 “그동안 우리는 질병이 발현된 후에야 치료를 시작하는 방식에 익숙했지만, 앞으로는 개인의 유전체와 생체 데이터, 생활습관, 환경 요인 등을 AI가 통합 분석해 미래 건강 흐름과 위험 요인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컨대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 언제쯤 건강상 이상이 나타날지 등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치료뿐 아니라 예방 중심의 의료로 전환이 가능해진다”며 AI 기반 예측 의료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제노시스의 핵심,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개발 중인 핵심 기술은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HDT)’이다. 이 기술은 단순한 디지털 건강 기록이 아닌, 사람의 실제 생체 리듬과 유전 정보를 해석하고 반영해 ‘가상의 나’를 실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강 박사는 이를 ‘인체 해독기’라 부른다. “우리는 인체가 보내는 신호의 90% 이상을 해석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 아니라, 병이 생기기 전에 잡아내는 기술입니다.” 그는 이 기술이 실제 임상에 적용되면, 지금까지 일부 VIP만이 누리던 맞춤형 정밀의료가 누구에게나 제공될 수 있는 ‘보편적 고품질 의료 서비스’로 전환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AI 의료, 5차 산업혁명의 중심축이 되다 강 박사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단순한 산업 영역을 넘어, “5차 산업혁명”의 완성 지점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우리는 이제 인체를 디지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미생물, 생활습관, 환경 등 복합 데이터를 분석해 건강을 예측하고, 치료 방향을 설계하는 일이 인간이 아닌 AI에 의해 가능해지는 시대입니다.” 그는 이어 “인체 번역과 해독이 실현되면, 그것이 바로 5차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이 기술 흐름의 선두에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서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의료 AI 분야에서 세계 일등을 차지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제노시스의 AI 의료진이 이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제가 부회장으로서 그 흐름을 총괄하고 이끌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AI 집단지성이 인류의 삶을 바꾼다” 강 박사는 인터뷰 말미, AI 기술에 대한 신념을 다시금 강조했다. “AI는 더 이상 계산기 수준의 도구가 아닙니다. 인간보다 더 빠르게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치료 방안을 설계하는 새로운 지성입니다. 이 AI 집단지성은 이제 인류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노시스의 기술은 개인을 넘어서 공공의료까지 확장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보편적 의료복지의 실현 또한 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영학 박사인 강시철 부회장은, 20년 이상 기술인문학과 AI 융합 연구를 이어온 인물이다. 저서로는 《AI의료의 미래》,《디스럽션》, 《인공지능과 슈퍼비즈니스》, 《핸디캡 마케팅》 등이 있으며, AI 인문학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상장사 휴센텍 대표이사와 고려대 문과대 교우회장을 역임했다. 강시철 박사의 짧지만 강렬했던 인터뷰는, AI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생명과 죽음을 관리하는 미래 의료의 주체가 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만들어가는 길 위에는, 지금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생명 연장의 기술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의료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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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시철 박사 “AI로 생애 건강 리스크 예측하는 시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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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시흥에 위치한 대한주조의 김미영 대표는 전통주에 대한 깊은 열정과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어왔다. 2009년에 대한주조를 설립한 그는 일본에서의 유학생활과 사업 확장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주를 세계에 알리는 꿈을 키우고 있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생 역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김 대표가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한국식품 도매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술이 가장 큰 이윤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류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특히 한국식품을 일본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주류의 매력을 더욱 느꼈다고 전했다. 일본 유학 중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자,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작은 회사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하며 영업과 납품을 통해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보람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한국식품 도매업체를 창업하며 일본에서의 경험을 활용했다. 대한주조는 2009년 설립되었으며, 최근에는 월 7만 병의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으로 성장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영업과 홍보를 했고, 주류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죠."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자, 그는 다시 주류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있는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공부한 경험도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대한주조는 과일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딸기와 바나나 등을 활용하여 맛과 향을 모두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연막걸리는 탄산이 적고 첫맛이 묵직한 편이지만 목넘길 때는 신맛이 약간 나면서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음자들은 연막걸리에 대해 "부드러운 식감과 적당한 신맛이 조화를 이루어 음용하기 좋다"고 평가하며, 전통주로서의 매력을 느낀다고 전했다. "앞으로 연예인과 협업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싶어요. 연예인 시그니처 막걸리를 기획 중입니다."라며 자신감 있는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지금도 일본에 한국 막걸리와 소주를 판매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제 꿈은 한국의 전통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열정과 비전은 단순한 주류 생산을 넘어 한국 전통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는 전통주가 가진 매력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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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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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사임당양조장은 권오길 명인의 열정과 노력이 깃든 곳이다. 권 명인은 5년간의 주류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막걸리 제조에 뛰어들었으며, 강릉 출신으로서 고향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여정은 안흥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에 설립된 안흥양조장에서 김성영 선생으로부터 1년간 막걸리 제조법을 전수받았고, 이후 2대 대표인 윤한중 선생으로부터 2년간 추가로 배움을 이어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막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그는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와 사임당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권오길 명인은 강릉 지역의 전통 축제인 단오제에서 단오신주를 제조할 때, 강릉 시민들이 모아 준 쌀을 사용한다. 강릉소주를 만들 때는 풍미를 더욱 좋게 하기 위해 생쌀(강릉황금물쌀)을 이용한다. 그러나 생쌀은 발효가 매우 어려운 재료이므로, 저온 숙성 발효 기간을 10~15일로 설정하고 발효 온도를 섭씨 25~26도로 유지하며 정성을 다해 빚고 있다. 사임당양조장은 이렇게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독특한 제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전통 누룩 대신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여 발효를 진행하는데, 이는 잡균으로 인한 유통 문제를 줄이고 쾌적한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전통 누룩은 고유의 맛과 향을 제공하지만, 잡균으로 인해 술맛이 변하거나 유통 기간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면 품질이 안정적이며 유통 기간도 늘어나는 장점이 있다. 권 명인은 이러한 제조 방식을 통해 월 평균 20만 병 이상의 사임당 강릉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인의 입맛과 유통 환경에 맞는 술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급 재료와 최신 설비를 활용하여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사임당 강릉 소주도 생산하고 있으며, 다양한 곡류를 사용하여 풍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현재 권 명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조장의 운영과 제조법, 유통 등을 배우며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권 명인은 "아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더 발전된 양조장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올해에는 옥수수와 감자를 사용한 약주를 생산하기 위해 설비 시스템을 갖추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맛과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권오길 대표는 지금까지 사임당 막걸리가 자리를 잡기까지 약 1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전통 누룩도 사용해서 만들어봤지만 유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게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맛과 유통기간을 모두 잡은 사임당 막걸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권오길 명인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창의적인 접근으로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도 지역의 자부심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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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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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 위치한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막걸리로 지역의 주류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 양조장의 이름인 '소두방'은 '솥뚜껑'의 방언으로, 정관읍의 중심인 덕산에서 매남산을 바라보면 솥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김준영 대표는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담아내고 싶어 이 이름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김준영 대표는 약 10년간 통신업에 종사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지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만들어주시던 막걸리를 사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이어받아 진정한 전통주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소두방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현재 소두방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는 '소두방막걸리'와 '퍼플스파클링'이라는 자색고구마 막걸리 두 종류이다. 각각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살려 만들어지며,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는 자색고구마를 50% 사용하고 찹쌀과 누룩을 함께 사용하여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도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자색고구마를 직접 재배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다른 농가와의 협업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막걸리는 탄산이 강하고 색이 아름다워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김 대표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판로 확보이다. 초기에는 마케팅과 홍보가 부족했지만,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으며, 2024년 7월에 첫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그는 향후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길 원하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전통누룩과 개량누룩의 차이도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누룩은 자연 발효로 다양한 미생물이 함께 작용하여 풍미가 깊고 복합적이지만, 개량누룩은 인공 배양된 미생물만 사용하여 일관된 맛을 낸다. 김 대표는 막걸리 종류에 따라 적절히 두 가지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준영 대표는 올해 통신판매에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를 리조트의 PB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예정이며,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그는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소두방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찹쌀과 남평쌀을 50%씩 사용하여 부드럽고 깊은 맛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특히 어머니께서 직접 양조장을 찾아와 쌀을 찌고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을 도와주시는 점이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그대로 담긴 막걸리라고 자부하며, 그 특별한 맛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김준영 대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가족의 사랑과 정성을 담아내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의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부산 정관읍의 역사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담긴 특별한 이야기다. 앞으로 그의 막걸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이처럼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부산의 주류 문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김준영 대표의 열정과 가족의 사랑이 담긴 막걸리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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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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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여행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는 이를 실현하며 공정여행과 지속 가능한 관광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변 대표는 대안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행을 통한 교육의 시작: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 서울 상수동 카페거리에서 변형석 대표를 만났다. 그는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를 통해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는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왔다. 변 대표는 하자센터에서 7년간 청소년들과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 트래블러스맵을 설립했다. 그의 교육 방식은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방식을 실현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변 대표는 말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며 깨닫게 됩니다. 교과서 속 이론에서 벗어나 세상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몇 배 더 큰 가르침을 줍니다." 공정여행의 철학과 성공 트래블러스맵은 2010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후, 다양한 사회적 기여로 주목받았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고 친환경적 이동 수단을 활용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여행자가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첫해 매출 9억 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연 매출 6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행 상품은 전 세계 31개국에 걸쳐 있으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대표적인 공정여행 상품과 도전 변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의 대표 상품으로 ‘땍때구르르 겨울캠프’(강원도 곰배령)와 캄보디아 반띠아이치마 1박 2일 프로그램을 꼽았다. 이들 상품은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를 중시하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남미 27일 탐방과 북유럽 4개국 여행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환경과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소그룹 여행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빠르게 달리는 여행을 지양합니다. 대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그 지역의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의 철학을 설명하며 깊이 있는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드스꼴라: 여행을 통한 대안교육 트래블러스맵의 부설 여행학교인 로드스꼴라는 15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3년제 대안학교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다. 변 대표는 “로드스꼴라는 교과서 밖에서 세상을 배우는 공간”이라며, "여행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목표를 이루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로드스꼴라는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해왔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진안에서 마을 주민들과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하거나, 백제의 역사를 탐구하며 일본 교토와 오사카를 답사하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 코로나19 팬데믹은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로드스꼴라는 10기 졸업생 배출 후 문을 닫았고, 트래블러스맵은 직원 수를 2명으로 줄여야 했다. 하지만 변 대표는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는 "여행업계는 결국 회복될 것"이라고 믿으며, 특히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돈보다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실버 세대가 늘고 있다"며, 은퇴한 이들에게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남미 여행 프로그램은 완판되었으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여행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공정여행의 미래와 사회적 기여 변형석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을 통해 공정여행의 가치를 계속 확산시키고자 한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현지 회사를 설립해 지역 주민들이 관광 사업을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변 대표는 "여행자는 환경과 지역사회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장기적인 변화를 목표로 윤리적 여행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을 얻고, 타인과 교류하며 성장한다는 변 대표의 철학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위기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공정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움과 교감을 선사하는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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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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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이승재 대표를 만났다. 밝은 미소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한 이 대표는 지난 수년간 암 유전자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박사들과 협력해왔다. 그는 항노화와 암 예방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승재 대표는 인터뷰에서 회사의 비전과 미래 계획, 그리고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전국으로 확장 중인 제노시스DNA클리닉의 항노화 프로그램과 암 예방 연구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승재 대표는 이러한 혁신적인 연구의 중심에 서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비전과 성과 이승재 대표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주요 목표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항노화 신약 개발입니다.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유니스트의 박종화 교수, 김유미 박사, 서울대 김정용 박사, 임규성 원장 등이 참여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항노화 건강기능식품을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 제품은 현재 임상 중이며, 그 성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라고 밝혔다. 전국 확장과 글로벌 도입 제노시스DNA클리닉은 부산, 서울 압구정, 역삼, 동서울, 병점 등 주요 도시에 이미 오픈했거나 오픈 예정이며, 항노화 프로그램은 두바이와 베트남에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두바이 국립병원과 협력하여 현지에서도 우리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두바이는 사막 지역 특성상 50대 사망률이 높아 우리의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베트남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많은 의사들이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항암 연구와 치료의 새로운 접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 중이다. 이승재 대표는 “우리의 프로토콜은 암 발생 전이나 초기 암 환자들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대학병원에서 포기한 말기 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환자들이 회복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암은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방, 치료, 관리를 통해 암을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건강 비결과 항노화 프로그램의 효과 이승재 대표는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항노화 프로그램을 통해 피가 맑아지고 염증이 사라졌습니다. 면역력이 강화되면서 피부와 머리카락이 재생되고 질환도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에게 ‘회춘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규칙적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운동도 속병이 없고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죠.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 프로토콜을 통해 지금은 40대보다 더 젊고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승재 대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행지로 이탈리아 밀라노와 하와이를 추천했다. 그는 “밀라노는 역사적인 건물과 오래된 명품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큽니다. 수대를 이어온 가업과 전통을 통해 세계적인 명품으로 성장한 회사들이 밀라노에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수세기를 이어오는 전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하와이에 대해서는 “날씨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힐링에 최고 장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재 대표와의 인터뷰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혁신적인 연구와 그의 개인적인 건강 비결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연구와 개발에 열정을 쏟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승재 대표와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와 암 예방 연구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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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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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6월 5일 여행사 트래블빌더의 이우석(우석몬) 대표와 역삼역 커피빈에서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반바지와 끈 없는 런닝을 입고 헬멧을 든 채 나타난 그는 팔과 다리, 어깨에 멋진 타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이크를 타는군요?"라고 묻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이크와 여행의 시작 '저도 대학 졸업 후 사고가 나기 전까지 잠깐 바이크를 탔었어요.' 대학 시절 잠깐 바이크를 탔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이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이크를 타는 자유로운 그의 모습이 MZ세대의 대표적인 모습 같았다. 인터뷰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시작되었다. 그의 본명은 이우석, '우석몬'이라는 별명은 중학교 때 몬스터를 닮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 별명이 좋아서 지금까지 애칭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첫 여행의 기억 우석몬이 처음 여행을 떠난 것은 9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 중국 여행이었다. "만리장성의 일부만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그는 어린 시절 여행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경험이 여행에 대한 첫 번째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최초의 해외여행은 2015년, 삽자루 선생님께서 공짜로 보내준 유럽 여행이었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꿔놨어요. 14일 동안 유럽 6개국을 다녀왔는데 전부 기억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고, 문화 충격도 받았어요." 그는 그 여행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왜 사람들이 그렇게 큰 돈을 들여 여행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여행 전에는 300만원이면 옷이 몇 벌이고 밥이 몇 끼고,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행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어요." 네덜란드 유학과 목표의 변화 그 후 그는 3수 끝에 9등급에서 3등급, 다시 2등급으로 그리고 마침내 1등급을 달성하고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 "네덜란드가 5년 후 이민 자격을 주기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어요. 대학 3년을 마치고 2년만 버티면 이민이 가능하니까요." 그러나 그의 목표는 1년이 지나지 않아 바뀌게 되었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향수병이 생기고 한국인이 적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도 생기고 정서적으로 불편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이민을 포기하자 그는 네덜란드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수학 강사를 목표로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입학했어요. 거기서 수학을 전공했고, 대학 내내 방학 때는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아르바이트 강의를 했어요." 이우석 대표는 방학 동안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며 하루에 5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세계 일주와 여행사 설립 대학 졸업 후, 그는 세계 일주를 결심했다. "계약서를 쓰려는데 고민이 되더라구요. 내 꿈이 세계 일주인데 강사를 하면 10년 동안 여행을 못할 텐데 그러면 40이 넘게 되고 체력이 지금 같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는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2월부터 시작된 그의 세계 일주는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태국, 두바이, 터키,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 미국, 캐나다, 남미 등 총 58개국을 10개월 동안 여행했다. 귀국 후 그는 강사가 될 계획이었으나, 여행사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4년 2월, 트래블빌더라는 이름의 자유여행사를 설립했어요. 모든 상품이 완판됐고, 여행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여행을 통한 교육과 선한 영향력 이우석 대표는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한다. 그는 여행이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믿는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여행을 통한 깨달음을 전파하고 싶어요. 여행은 살아있는 교육이니까요."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거의 놀다시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9등급이었어요. 하지만 여행에 눈뜬 후 목표가 생겼어요. 이제는 저도 선생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이 대표는 여행을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자신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행의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제가 경험한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자신감과 계획 우석몬의 자신감은 치밀한 계획과 빠른 실행력에서 나왔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바로 실천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행동이 빠른 편이고,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 빠르게 이루죠. 지금까지 제가 조언한 지인들은 대부분 성공했어요." 그는 앞으로 1년 후 강사로서 돈을 벌고, 여행사의 규모도 키울 계획이다. "시기는 2025년이 되겠죠. 강남의 잘 나가는 수학 강사들은 거의 기업 수준이에요. 수백억을 벌어요. 저도 그런 강사가 되고 싶어요." 우석몬 대표와의 2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유롭고 도전적인 삶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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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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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서울시 풍납2동에 위치한 풍납새마을금고는 변현숙 이사장의 리더십 아래 고객과 직원을 위한 새로운 힐링공간을 마련해 주목받고 있다. 이 공간은 고객과 직원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무료나눔공간으로 회의실과 문화센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변현숙 이사장을 직접 만나,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된 동기와 운영에 대해 들어보았다. "풍납새마을금고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변현숙 이사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고객라운지를 비롯해 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까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는 단순히 금융 업무를 보러 온 고객들뿐만 아니라 풍납동 지역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나눔공간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변 이사장은 고객라운지에 걸린 다양한 작품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현재는 최석운 작가의 유쾌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방문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최 작가의 작품 전시 후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직원들을 위한 공간도 신경을 많이 썼다. 3층에 위치한 직원라운지와 문화센터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강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업무 외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변현숙 이사장은 이번 공간 조성을 통해 고객과 직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풍요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현숙 이사장은 문화센터 뿐 아니라 4층 회의실도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 놓았다. 이러한 공간 조성을 통해 풍납새마을금고가 단순한 금융 기관을 넘어 지역 사회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객과 직원, 그리고 지역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그녀의 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아 힐링과 문화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 이용시간 : 오전 9시~오후 4시 *회의실 이용문의(무료): 풍납새마을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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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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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요 조태권 회장...“한 나라의 도자기와 음식 그리고 술은 운명공동체 입니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광주요 조태권 회장은 우리의 술과 음식 그리고 도자기에서 한국인의 정신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광주요 조태권 회장 조태권 회장은 한마디로 멋진 남자다.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와 독특한 스타일만이 아니다. 일단 조 회장과 대화를 시작하면 그가 멋진 남자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988년부터 광주요를 우리의 전통 도자기 전문 회사로 발전시켜 온 조 회장은 2000년 이후 우리의 식문화를 새로 쓰기 시작한다. ‘화요’와 ‘가온’이란 브랜드로 탄생한 소주와 한정식 전문 레스토랑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무려 15년이란 긴 산통 끝에 세상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말 '멋진 남자‘ 조태권 회장의 집무실에서 식문화에 대한 그의 철학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직접 들어 보았다. 싸구려는 절대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없어조 회장은 생활 속에서 우리 것을 찾기가 힘들다고 안타까워한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담는 그릇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패스트푸드와 국적불명의 음식들이 우리 식탁을 휩쓸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식문화를 잊고 사는 것이 더 큰 시행착오입니다.” 그러면서 조 회장은 우리의 식문화가 일본이나 외국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유도 음식과 그릇 그리고 술의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에 의해서 우리의 전통자기가 사라지고 전통 술이 사라지고 대신 서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주가 일반화 되었고 특색 없이 대량생산된 그릇들이 나오게 되자 우리의식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는 점차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시작된 인터뷰는 뜨거운 불가마처럼 활활 타올랐다. 조 회장의 에너지는 생각했던 것 보다 강했다. 그가 품고 있는 식문화에 대한 철학을 다 듣기엔 시간이 부족할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사라져 가는 식문화를 되살릴만한 해답을 갖고 있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세계화 시킬 수 있는 우리의 문화입니다. 그중 식문화가 가장 세계화 시킬 수 있는 문화죠. 그것은 세계인의 눈높이에 맞게 창조해야 할 무한의 자산입니다.” 조 회장은 전통자기인 광주요에서 출발해 전통주 ‘화요’와 전통한정식 ‘가온’을 세계화시키기 위해 직접 나섰다. 이미 광주요를 통해 장식장에 있던 도자기를 생활 속의 도자기로 개념을 바꾸는데 성공시킨 조 회장이었다. 그가 이번엔 소주 ‘화요’를 통해 대기업들이 장악한 국내 소주 시장에서 조용한 돌풍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도수가 41도인 ‘화요’는 시판가 2만 2,000원. 영업점에서는 5만 원대에 팔린다. 조 회장은 ‘화요’ 이야기가 나오자 특유의 ‘식문화론’으로 말을 풀어나간다. “절대 ‘싸구려’는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없습니다.” 백발의 노신사의 입에서는 파격적이고 단호한 철학이 쏟아져 나왔다. “술과 음식 그리고 이들을 담는 그릇은 실과 바늘의 관계입니다. 한식이 세계화에 실패한 이유는 포장을 잘하지 못해서죠. 고급 한정식을 바라보는 사람들 대부분 옆에 앉는 여자가 예쁘면 됐지, 음식 내용이나 그릇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음식 문화라는 게 없어요. 음식 장사도 상놈이 하는 거지 양반이 하는 장사가 아니란 거죠. 돈 있는 사람은 결코 음식 문화라는 거 안 합니다. 그런데 나는 20년 동안 약 500억을 털어 넣고 ‘식(食)문화’를 세계화 시키려고 노력했어요.”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시장이 형성되려면 시간과 돈이 더 필요한데 자신의 능력으로는 한계에 온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는 정부나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세계에서 자동차 시장은 1320조원, IT 산업 시장은 2700조원인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식품 산업 시장은 4800조원이며, 이중 외식 산업이 2300조원입니다. 이런 큰 음식 시장에서 우리 몫이 없어요. 우리 것이라고 아직 보여준 게 없었으니까요.” 그에게 식문화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음식이란 한번 각인되면 계속 갑니다. 음식의 생명은 포장이지요. 그릇과 테이블과 세팅과 꽃과 거기에 모든 소품들과 그 분위기와 거기 온 손님, 음악, 술, 모든 게 음식을 위해 포장하고 있는 거죠. 이런 음식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식문화는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을 하루아침에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공하면 그건 영원히 보장되는 사업입니다.” 세계시장을 보고 시작한 우리의 식문화 만들기 조 회장은 광주요(窯: 도자기) 창업자인 조소수 선생의 아들이다. 그는 경기고를 나와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 미주리산업대 공업경영학과를 다닌 후 대우에서 해외근무를 했다. 거기서 독립해 중동에서 무기·중장비 장사를 했고, 그의 말대로라면 엄청난 성공을 했다. 그러던 중 부친이 타계하자 1988년 광주요를 이어받았다. “저는 급하고 돌진하는 스타일이었지요. 중동에서 무기 장사를 하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도 발생하니까요. 그런데 도자기는 제게 기다리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인내를 키워주는 겁니다. 한 번 불가마에 들어가면 3개월이란 시간이 걸립니다. 원하는 것이 안 나오면 또다시 해야 합니다. 3개월에서 또 3개월. 도자기 사업을 안 했다면 나는 인내심도 없고,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지 않았을 겁니다.”그는 한국에 돌아와 부친의 사업을 이어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문화였다. 처음엔 도자기를 어떻게 하면 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만들까 고민했는데 곧 방향을 바꾸었다. 이미 서민들을 위한 그릇은 도자기가 아니라 공장에서 막 찍어 낸 유리와 사기 그리고 플라스틱 그릇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조 회장은 상류층을 겨냥해 광주요를 고급화 시켰다. 장식용 도자기가 아닌 생활 도자기로 작품과 같은 특별한 생활자기들을 선보였다. 그의 마케팅 전략은 성공했다. 그렇게 광주요의 성공으로 그는 식문화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가 다음 단계로 시작한 것은 ‘가온’이란 전통 한정식 레스토랑이었다. “처음에 도자기에 음식을 담고 음식재료를 고급화하니까, ‘한식은 이렇게 비싸면 안 돼’ 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지요. 그 말씀을 하시는 많은 사람들은 뒤에서 발렌타인 30년산을 마시고, 10만~20만원짜리 와인을 먹죠. 우리 한식은 10만원만 돼도 비싸다고 합니다. 우리 것을 낮게 보기 때문에 우리 것은 비싸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가온’은 생각보다 힘에 부쳤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정말 어려운 시간을 많이 보냈지요. 아내가 ‘그만 접고 해외에 나가서 살자’고 했습니다. 사실은 7년 전쯤 그만둘까 했지요. 그런데 식문화라면 도자기와 음식, 그리고 술이 있어야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술도 만들기 전에 중단하면 지금까지 해온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술까지 만들어보고 그만두겠다’고 마음먹고, ‘화요(火堯)’라는 술을 만든 겁니다. 술을 만들고 보니 이제는 갈 데까지 너무 가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어요. 내 모든 걸 넣어야 하겠더라고요. 집사람에게는 ‘어느 누가 할 수 없는 걸 내가 만들어 놓으면 내가 성공하든 안 하든 누군가가 이어간다. 그것만으로도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실천한 셈이 되니까요. 사람이 스스로 자기 최면에 걸리는 것처럼, 이제 이렇게 생각이 굳어져 버렸어요.”광주요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들 그의 세계관은 한마디로 확고하다. 국내만을 보고 시작한 게 아니란 뜻이다. 그는 세계의 모든 나라에 우리의 고급 식문화를 보급하고 그들의 식탁에 우리의 음식과 술 그리고 그것들을 담은 그릇을 올려놓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5000만명을 보면 안됩니다. 우리끼리만 얘기하면 언젠가 고립되고 맙니다. 앞으로 전세계 중산층은 20억 명쯤 늘어나는데, 이들을 상대로 시장을 개척해야지요. 일례로 제가 홍계탕(홍삼과 오골계를 넣고 끓인 육수에 쌀을 넣고 쑨 죽)이란 걸 만들었어요. 제일 비싼 게 30만원입니다. 얼마 전 미국판 시사주간지 타임에 한국에 가서 즐길만한 요리로 소개된 것이지요. 이를 누구나 먹자는 게 아닙니다. 최고의 음식을 먹는 사람이 왔을 때 그 사람에게 대접하자는 거죠. 국내 대기업 초청으로 두바이의 왕자들이 왔을 때 우리 식당에서 저녁 만찬이 있었지요. 그때 홍계탕을 내놓았습니다. 다음날 이 왕자들이 ‘또 먹고 싶다’며 호텔 숙소로 다섯 그릇을 주문해 갔습니다. 슈퍼스타가 있어야 주연이 만들어지고, 조연도 만들어 집니다. 또 그 조연 속에서 주연이 나오는 거죠. 식문화도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경쟁 속에서 우리 전체 식문화가 발전된다는 거죠.” 조 회장은 모든 음식이 세계화 되려면 우리의 눈높이가 아닌 세계인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고급 호텔처럼 세련되게 꾸며진 ‘가온’의 공간 안에는 민화 벽지와 ‘시가’ 장식품 등 국내외 문화가 공존한다. 게다가 음식은 코스식으로 나온다. “전통의 복원은 옛 것을 그대로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에 맞게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가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려면, 어떤 문화와도 잘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내려면, 그렇게 최고급 문화를 공략해야 하는 것이죠” 식문화 사업은 정부와 대기업이 적극 동참해야 그의 고집스러운 식문화 철학이 세계에서도 통한 것일까? 증류식 소주 ‘화요’가 2008 몽드 셀렉션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조 회장은 “2년간 묵혀뒀던 화요를 출품해 놓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 기쁘다”며 “출시된 지 3년 됐지만 술은 계속 익어가고 있으니까 매년 새롭게 내놓을수록 품질은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8 몽드 셀렉션은 4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주류 심사 이벤트로 매년 1400여가지 품목에 대해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친다. 비엔나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을 준비 중인 조 회장은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해외 거래처에서도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며 “특히 프랑스 파리 등 유럽 지역의 반응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화요’는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07 IWSC 국제주류 박람회(International Wine &Spirit Competition)에서 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조 회장은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력, 조직력, 자본력이 있어야 한다”며 “가온을 세계시장에서 성공시키기 위해서 정부의 지원과 대기업의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지난 20년 동안 노력 해 온 결과를 국민과 함께 나눌 것이라며 무형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밝혔다. “고려청자와 이조백자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문화입니다. 그런데 일제치하에서 완전히 말살당한 것이죠. 대한민국에서 어느 누구도 백자와 청자를 재현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도자기 만이 아닙니다. 일제 36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중 우리의 식문화도 바꿔놓았죠.” 조태권 회장은 50년 후 세계시장을 내다보면서 지금의 식문화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그의 희망대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길은 하루속히 우리의 우수한 식문화를 육성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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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서울 강남에 에너지가 충만한 도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믿지 않았다. 적어도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도인은 도시가 아닌 지리산이나 계룡산 등에서 도를 닦고 있어야 했다. 따라서 강남 한복판 오피스텔에 사는 도인이라면 틀림없이 도인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수많은 국내외 명사들을 치료하고 효과를 봤다는 얘기가 나와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렇게 반신반의 하면서 도인을 찾아갔다.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자 도인은 보이차를 내주면서 말문을 열었다. 도인이 사는 곳이 궁금했기에 보이차를 받으면서 빠르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차가 있는 거실에는 물을 끓이는 전기포트 외에 전자제품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도자기에 관심이 많은 듯 색이 예쁜 다기와 도자기 몇 점이 반듯하게 놓여진 모습이 시선을 편하게 해 주었다. 도인은 명함을 건네며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명함에는 고산 대선사라 적혀 있었다. 직함은 대한민국문화예술총연합회 체육분과위원장으로 되어 있었다. ▲ 고산 대선사 (본명:이태렬) 어떤 일을 하시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은 간단명료했다. “기와 명상으로 사람들이 건강한 심신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고산 선생의 본명은 이태렬이다. 그는 자신을 선사라 불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오랫동안 경상도 마산 무악산에서 도를 닦고 내려와 수년간 누구나 알만한 정치인과 국악인, 연예인들의 주치의를 했었다고 한다. 왜 명상과 기치료가 필요하냐고 묻자 이번엔 한 참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국가 중 최고입니다. 현대인의 질병 중 우울증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불면이나 고독, 우울증이 개선되지 않고 심화되면 정신은 황폐화됩니다. 육체 또한 건강을 잃기 쉽습니다. 마음의 병은 명상을 통해 빠르고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기치료를 통해서는 육체의 건강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명상과 기치료를 병행하면 충분히 우울증이나 외로움 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선사는 잠시 얘기를 멈추더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의 강론은 이어졌다. “기와 명상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어렸을 때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어린아이 였을때부터 악몽에 시달리고 가위눌림이 심해 잠을 자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소위 영화에서 나오는 수련 비슷한 것을 혼자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20대초반까지 계속해서 수련에 몰두 했습니다. 마산의 무악산에서 수련을 마치고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하숙집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매일아침 시간을 정해놓고 명상과 복식호흡을 꾸준히 했고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했습니다.“ 선사는 어린시절 자신이 겪었던 고통의 시간과 그것을 극복하기위해 자연스럽게 기수련과 명상법을 익히게 된 연유를 설명했다. 기와 명상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악몽도 사라졌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기는 무엇이고 올바른 명상법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선사가 풀어놓은 자신의 수련법과 지식은 다음과 같다. “기(氣)수련은 仙수련이며, 元心수련이고 仙-요가(힐링요가)를 말합니다. 仙은 지금으로부터 6000년전 배달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인 3000여명이 수행하던 신선수련법으로 풍류도. 국선도. 화랑도등으로 전해져 온 전통 민족 신선수련법입니다. 仙의 시조는 원시천존으로 중국 고서에 보면 최고신입니다. 仙의 최고의 경지는 살아서 육신이 사라지는 100일 승천, 다음이 죽어서 시체가 사라지는 시해선입니다. 仙道는 양신이나 출신. 즉문즉답. 자발공. 천신과의 대화 등의 능력이 발휘 되는 것이 아니고 무념무삼의 삼매를 체득하게 됩니다. 선도 초기에는 한두 번쯤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으나 84000기공과 백회를 열어 우주의 마음자리에서 생성되는 생명의 원기를 우주(하늘. 천존)의 화현체 '진리의 상'을 통하여 축기. 운기하는 仙法입니다. 仙法은 하늘(대우주. 자연)의 기운을, 마음을 집중시켜 주로 손끝과 장심으로 축기. 운기 시켜 부족한 기는 보충시키고 막힌 기는 뚫으며 탁한 기는 청정시킵니다. 그리하여. 면역력이 강화되고 자연성(자연 치유력)이 활성화 되어, 어떠한 질병에도 잘 걸리지 않는 건강 체질로 바꿔. 우울증, 치매. 중풍. 암. 각종 성인병으로부터 해방되며, 활력과 지혜와 총명이 넘치는 훌륭한 인격자로 변모해 가는 수행법입니다. 기수련의 차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천기통문으로 대우주원기축기로 기혈을 활성화 시킵니다. 두 번째는 내면교감으로 운기에 해당하며 머리가 총명해지고 집중력이 강화 됩니다. 세 번째는 제사정화로 사기를 배출하고 오장육부를 활성화 시킵니다. 네 번째는 장심강화로 약손능력배양을 하고 어깨근육을 강화시켜 줍니다. 다섯 번째는 단전강화로 생명원기강화를 하고 변비와 비만을 해결해 줍니다. 여섯 번 째는 전신개혈로 대주천 호흡이고 면역력을 강화시킵니다. 일곱 번째는 원기유통으로 생명력을 극대화시키고 건강과 피로회복에 좋습니다. 여덟 번째는 지기상통으로 지기보충이고 음과 양의 기운을 조화롭게 유지합니다. 아홉 번째는 천안개명으로 마음을 밝혀주고 건전한 정신을 함양시켜 줍니다. 열 번째는 생식력강화로 하초를 강하게 하고 출산력을 증가시킵니다. 열 한번째는 전신운기로 입체적기운용을 하여 치유능력을 갖게 합니다. 기(氣)란 무엇일까요? 기는 고대 동양에서는 우주 만물을 이루는 근본을 氣(진동․파장으로서 보고. 듣고, 냄새의 모든 것)라고 보았습니다. 기는 음(-)기와 양(+)기로 되어 있으며, 이 두 종류의 기가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만물의 근간을 이루는 오행인 木(목)․ 火(화)․ 土(토)․ 金(금)․ 水(수)가 생기고 그것들이 조화되어 만물이 생겨나고 변화에 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몸에는 기가 흐르는 12경락과 기경 팔 맥이 있습니다. 경락은 오장 육부 와 관련을 가지며, 기혈과 영양 물질의 운행 통로가 됩니다. 이 경락의 기능을 보조하는 기경 팔 맥은 12경락의 균형을 조절하며 각 경락이 지닌 특수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통제하여 생명을 유지 하게 합니다, 경락에는 외부의 기를 흡수하고 체내의 탁한 기운인 사기를 내 보내는 등 기를 상호 교류 하는 곳이 있는데 이를 血(혈)이라합니다. 인체에는 360곳의 혈이 있으며 우리 피부에는 84000기공이 있는데 이를 통하여 기가 방출되고 흡수되는 기의 호흡이 이뤄집니다. 기의 호흡이 파동의 형태를 취하므로 전기가 흐르는 주위에 전자파가 발생하듯 이 기가 흐르는 몸 주위에도 일종의 기의 파동인 오라가 발생합니다. 전기가 세게 흐르면 전파도 강해지듯이 우리가 건강하고 기가 넘치면 오오라가 강해져 얼굴빛이 밝아집니다. 이것을 보고 안색이 좋고 얼굴빛이 훤하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겁고 사랑스러우면 생기를, 마음이 악하고 증오스러우면 살기를 내 품게 됩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이 근거 없는 말이 아닙니다. 항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사에 담담한 마음을 가지고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감사와 겸손, 근면과 성실한 자세로 임할 때 항상 생기 넘치는 건강 인이 될 것입니다. 21C는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 한만큼 환경은 파괴되고 오염되어 무한한 우주의 기운(에너지)를 활용하는 분들이 건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기의 종류는 천기, 지기, 영기로 나눈다 氣의 종류에는 天氣(천기). 地氣(지기). 靈氣(영기)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하늘이라는 창공을 비롯하여 해와 달. 바다. 땅. 산. 강. 나무 등은 모두 지기이며 환경오염으로 하늘 과 땅의 自然(자연)의 기가 오염 되었으며 靈(영)의 기운은 고급에서 저급까지 여러 계층의 기운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성인들의 기운. 영웅들의 기운. 각 분야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고급기운에서 각종질병을 일으키는 기운. 살인 등 흉악범의 기운. 자살을 유도하는 기운. 시기. 질투. 탐욕 등을 일으키는 삿된 기운의 저급기운이 있습니다. 정신계 수련에 임하시는 분은 피라밋 원리 또는 히랏야 원리를 이용하거나 深山幽谷(심산유곡) 명당을 찾아 기수련을 함으로서 수련효과를 높이는 것 입니다. 天氣(천기)는 태어 날 때 받는 기운으로(갓난아이는 천기를 숨골(전두엽)로 받음) 우주의 마음자리에서 발현되는 元心(원심)의 기로 우주에서 가장 맑고 밝은 기운입니다. 天氣는 우주의 마음자리에서 발현되는 氣로써 이를 받기 위해서는 TV를 시청하는데 안테나가 필요하듯 우주의 안테나가 필요합니다. 大宇宙(대우주)의 몸체(肉身.육신)인 地水火風(지수화풍) 과 대우주의 마음 心이 각인된 眞理(진리)의 象(상)이 바로 대우주의 마음자리에서 발현되는 천기를 수신 할 수 있는 우주의 안테나입니다. 이러한 천기를 받을 수 있는 여건 속에서 수행할 때 깨달음과 건강이 자연스레 옵니다. 그렇다면 천기를 통해 어떻게 기치유를 할 수 있을까요? 먼저 기치유란 경락마사지 교정과는 차이가 있으며 天氣(천기). 地氣(지기). 靈氣 (영기)를 활용하여 환자의 탁한 기운을 청정하고 부족한 기운을 보충시켜 환자의 회복력 증진 과 치유에 도움을 주는 태고 적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간의술로의 약손 요법이며 도인들이 체득한 手氣(수기)입니다. 대부분 영기에 의한 기치유를 하고 있으나 고급영에서 저급영까지 다양한 부류가 있으며 저급영에 의한 기치유는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가 있으므로 수행의 과정 및 성격 습관 품격 등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치유 및 기수련은 약해진 선천의 기 생명의 원기를 고도의 정신수련을 통하여 얻어진 생명의 원기를 전수하여 환자의 원기를 강화시켜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히 하여 생명력증진. 면역력증진. 소화력증진을 도모하여 환자의 탁한 기운을 몰아내고 긍정적인 사고와 감사하는 마음을 이끌어 내어 회복기간을 단축시키고 치유력을 극대화 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현대는 고층빌딩. 아스팔트 길. 시멘트 바닥. 매연과 부유먼지. 오존층 파괴 등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의 삶으로 생체리듬이 약해져 불면. 불안. 우울증. 공황장애. 정신분열증 등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탁한 기운. 약한 기운으로 발병됨으로 강한 생명의 원기인 기치유를 받으면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오염되고 산천이 오염된 현대에 사는 분들은 특히 만성피로에 지친 현대인에게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분에게 대체의술로서의 기치유는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며 각종성인병. 항암치료 후유증 해소와 간질. 신경성 등 이름 모를 病魔(병마)에 큰 효과가 나타납니다. 생명체는 대우주의 마음자리에서 발현되는 생명의 元氣(원기)를 받고 살다가 원기가 소멸되면 생애를 마감하게 됩니다. 인간도 先天(선천)의 氣(기)인 생명의 원기를 받고 태어나서 後天(후천)의 氣공기. 수기. 곡기등과 조화를 이루면서 활기찬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양질의 섭생을 통하여 장수와 튼튼한 몸매를 가꾸었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근심. 걱정. 스트레스는 증가되어 원기소모 또한 증가하여 키와 체중은 증가하였으나 인내심. 끈기력. 체력은 저하되고 있습니다. 또한 수명은 많이 연장되었으나 삶의 질은 그렇지 못할 뿐 아니라 이름 모를 각종 질병과 암 비만 관절염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살율 OECD국가 중 1위의 불명예를 갖게 되었습니다. 피라미드 원리. 히란야 원리. 자연물 등을 이용하여 대우주의 기운을 모으고 치환하여 축기 운기를 통한 기 치유는 자신을 위한 것으로 중환자에게 전해줄 때 다량의 氣소모로 회복이 늦거나 탈진되면 오히려 내가 병에 걸릴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하며, 하루에 중환자 10명 이상 기 치유를 해도 이상이 없는 분들은 천기를 활용하는 분들로 부작용이 없고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는 맑고 밝아짐을 느낍니다. 고도의 수련을 통한 천기의 기 치유는 생명력을 극대화시켜 불치 난치의 환자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활력 넘치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허리가 삐끗하여 오는 통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분. 가벼운 질병 등은 즉석에서 통증을 死(사)하여 주며, 성인병을 비롯한 난치병 등은 기혈순환이 원활치 못해 하단전 (아랫배)이 냉해지면서 면역력이 떨어져 생기는 병들로 생명력인 元氣(원기)를 받으면 기혈순환이 원활해지면서 배와 손발이 따뜻해지고 면역력이 강해져 성인병 및 난치병에 탁월한 효과는 물론 항암치료 중인 암환자에게도 탁한 기운 등을 신속히 제거하여 치료 효과를 극대화 시켜주는 21c 최고의 의통입니다. 반성하는 시간부터 가져라 다음은 명상과 명상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악한 마음을 비우고 싶다면 마음에 어떤 걸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타인을 아프게 한 일이 있다면 반성을 합니다. 혹시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 반응하는 똑같은 부정적인 나의 마음을 반성합니다 자기반성 다음에는 생활인으로써 스스로의 방향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가다듬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문제를 오늘까지 끌고 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이 순간 새롭게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모든 행동을 설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살펴 남에게 부정적인 사람으로 기피 인물은 아니었는가, 항상 두려움으로 자신감 없는 행동으로 일관하지 않았는가. 조금이라도 그런 점이 있다면 긍정적인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당장 이 순간부터 스스로를 그런 모습으로 바꾸어 갑니다. 이렇게 일체의 부정적인 것에 대한 반성과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방향이 설정된 다음에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 안칩니다.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면 쉼 없이 생각이 떠오름을 압니다. 생각을 끊으려 해도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있습니다. 이런 잡념이 떠오르면 애써 떨쳐 버리려 말고 그 잡념을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아 그 원인을 분석하고 윤리와 도덕의 잣대에 맞추어 하나씩 반성하고 올바른 것으로 설정하며 정리해갑니다. 명상하면 분별력이 생기고 원기가 회복된다 명상을 하게 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참선 즉 명상을 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몸과 정신의 변화가 옵니다. 자신의 언행과 생각을 객관적으로 비판하는 분별심을 통한, 분별을 넘는 자기성찰을 통해 수정처럼 맑고 옥같이 고운 본래의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며 행으로 옮기려 애쓰는 가운데 흐트러진 마음이 하나씩 갈고 다듬어져 차츰 맑고 밝아져 착한 심성을 갖게 되며 이때 생명의 원기가 가득 채워져 중단전이 열리고 상단전이 밝아져 彼岸(피안)의 경지 三昧境(삼매경)에 들게 됩니다. 삼매경에 진입하면 기혈순환이 활성화되어 손발이 따뜻해지고 중단전이 열려 가슴이 확 트이며 척추는 곧 바로 펴지며 상단전이 밝아져 머리가 맑아지며 몸이 가벼워지고 기공이 열려 피부호흡이 이루어져 몸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며 온몸이 모닥불을 피운 것처럼 기화됩니다. 입안은 상쾌하고 옥침이 나와 위와 장기를 튼튼하게 합니다. 피로가 가시고 기력이 되 살아나며 총명한 지혜, 깨달음이 옵니다. 깨달은 자는 만물의 靈長(영장)이요 主人(주인)으로써 대자유인이 되어 어떤 것에도 치우침이 없는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로 生老死(생노사)의 攝理(섭리)와 忠孝禮(충효예)의 理致(이치)를 터득하여 더불어 地上仙境(지상선경)의 主役(주역)으로써 役割(역할)을 묵묵히 펼쳐갑니다. 삼매경에 몰입하면 마음의 작용이 완전히 멈춰 대우주와 하나가 된 無念無想(무념무상)의 경지에서 나도 없고 너도 없는 無我(무아)의 경지에 듭니다.(하늘(대우주)과 하나 되면 醫通(의통)은 자연스레 이루어집니다) 복식호흡을 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지혜가 충만된다 끝으로 호흡(복식. 단전) 법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으~앵하는 호(날숨)로 태어나서 운명 시 깊은 숨을 들이쉬는 흡(들숨)으로써 한 생애를 마무리합니다. 갓난아이는 숨골이라는 백회와 전두엽으로 天氣(천기)를 받아 숨 쉬는 대주천 호흡에서 단전호흡 복식호흡 흉식 호흡 어깨호흡으로 이어지는 삶이 전개됩니다. 건강을 잃은 대부분의 사람은 흉식 호흡으로, 중환자는 어깨호흡을 합니다. 정신수련에 임하는 모든 분들은 호흡의 중요성을 깨닫고 복식호흡이 늘 떠나지 않도록 합니다. 나아가 의식을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에 두면서 단전호흡을 합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 하단전에 精(정)이 쌓여 따뜻해지며 중단전에 氣(기)가 충만 되고 상단전에는 精神(정신)이라는 빛이 밝아집니다. 하단전 호흡법은 의식을 하단전(배꼽 및 2치 반에서 등 쪽 2/3지점)에 두면서 호흡을 가늘고 길게 하면 하단전부위에서 열감이 느껴지며 이 열감이 회음을 지나 척추를 타고 백회. 얼굴. 가슴을 지나 하단전에 이르는 소주천 행공이 이루어집니다. 소주천 행공은 기감이 예민한 사람은 기감을 느끼게 되나 둔감한 사람은 못느끼기도 합니다. 하단전 호흡 시는 허리를 너무 곧게 펴는 것 보다 깊은 호흡이 잘 되도록 합니다. 소주천 행공이 잘 되면 하단전에 의식을 두어도 상단전이 밝아지며 입안에는 상쾌한 침 옥침이 고이며 胃腸(위장)과 장기들이 튼튼해집니다. 대주천 행공은 백회와 전두엽을 통해 곧 바로 天氣(천기)가 하단전에 모여지는 것으로 이때는 살모사가 머리를 쳐드는 것과 같이 허리가 곧게 펴지며 척추에 힘이 꽉 차이며 배는 거의 움직이지 않으며, 84000기공이 활짝 열려 기공호흡. 피부호흡이 왕성히 이루어져 몸에는 싱그러운 냄새가 납니다. 三昧(삼매)란 잠자는 것과 매우 비슷하나 고개나 허리가 처지지 않고 곧 바른 상태를 유지하면서 몸은 가벼워지고 머리는 맑아지면서 밝은 지혜가 싹 틉니다. 호흡(복식. 단전) 호흡법은 코로 숨을 들이 마실 때 아랫배(단전)가 불러지도록 하고 숨을 내 쉴 때는 아랫배가 들어가도록 하는 호흡법으로 평상시 호흡보다 조금 길게 연속적으로 반복하여 차츰 시간을 길게 하는 것으로 무리하게 지식호흡을 하지 안 토록 하는 호흡법입니다. 하지만 몸이 안 좋을 경우는 숨을 들이 마실 때 아랫배부터 가슴 어깨까지 숨을 꽉 채우고 숨을 내 쉴 때는 아랫배부터 천천히 꺼지도록 합니다. 호흡(복식. 단전) 효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앉아서 또는 서서 일을 합니다. 반가부좌 등의 자세로 깊은 호흡을 하게 되면 하체로 가는 피는 극소량이 되고 많은 피가 복부에 모이게 됩니다. 이때 깊은 호흡으로 즉 강한 펌프질을 하게 되며 복부에 모인 피가 회음 척추를 통해 뇌까지 많은 양이 전해집니다. 뇌에는 많은 모세혈관이 있습니다. 많은 피의 공급으로 막혔던 뇌혈관들이 원활이 작동하게 됩니다. 그 느낌은 처음에는 머리가 간지럽고. 까실까실한 느낌에서 이슬비가 내리는 것 같습니다. 깊어지면 벌레가 지나가는 느낌. 박이 터지는 느낌. 소나기가 지나가는 느낌. 더욱 깊어지면 내 몸이 기화되는 느낌. 모닥불에 타는 느낌이 들며. 나중에는 상 서러운 기운. 빛나는 후광이 생기며 몸이 가볍고 항상 원기가 충만한 건강한 삶이 주워집니다. 막걸리 한 사발을 빨리 마실 수는 있지만 티스푼으로 천천히 마시면 취기가 올라와 다 마시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호흡을 가늘고 길게 호흡하면 고농도의 산소를 흡수 할 수 있으며 길게 뱉는 호흡을 통해 피부의 84000기공이 열려 피부호흡이 일어나 피부가 고와지며 각종 피부병이 완치됩니다. 호흡이 고요해 지면 삼매경에 들며 입안에는 상큼한 침 옥침이 고여지고 이 옥침이 위를 튼튼히 하고 맑고 밝은 기운으로 지혜의 문이 열리고 무병장수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수련에는 바른 자세가 기본이다 호흡과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자세 역시 중요합니다. 바른 자세에서 바른 행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기혈 흐름에 장애를 일으키고 장기의 기능이 둔화 되어 몸에 이상이 옵니다. 바른 자세는 바른 자세와 편한 자세로 나눕니다. “제가 어린시절 수련할 때는 특별한 스승이나 참고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책 구하기를 그만두고 스스로 독학을 하며 체득했습니다. 식이요법 역시 매일 아침마다 쌀이나 콩을 씹어서 먹었고 나중에는 현미를 먹었습니다. 그렇게 생식하며 수개월을 보내니 기운이 좋아지고 뻐마디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해보니 사람마다 파장이 다르고 기의 운행이 다르기 때문에 맞춤식 수련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가 약한 사람이 있고 기가 강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에 맞는 명상과 기치료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선사는 계속해서 기와 명상, 식이요법 등에 대해 설명했고 이어서 서양에서도 대체의학이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강조했다. “서양 국가들에서 점점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의학적 치료의 일부로 대체의학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1997년, 미국인들은 대체의학 요법사에게 6억 2,900만 회 이상의 방문을 했고, 이는 1990년 이래로 47%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 수치는 같은 해에 모든 1차 치료의사를 방문한 3억 8,600만 회를 상당히 초과합니다. 2007년에는, 18세 이상 미국인의 38%가 어떤 형태의 대체의학을 이용했습니다. 사람들이 대체의학 요법을 찾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태는 근골격계 문제(예: 만성 요통, 경부통 또는 관절통), 불안감, 높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코감기 또는 기침감기,두통,수면 문제, 아토피 등 피부염, 그밖에 암 등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에 직면한 많은 사람들은 특히 말기에 전통적 치료가 거의 희망을 제공하지 못할 때 대체요법을 찾고 있습니다.” 명상이나 기수련은 집보다 산에서 하는게 효과가 좋다 선사는 명상이나 기수련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시간이 허락한다면 집보다는 산이나 조용한 암자에서 하기를 권한다. “외국인들도 한국의 기치료나 명상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한국의 산이나 암자를 찾아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수련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활상의 이유로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좀 더 멀리 보고 자신의 건강이나 가족의 건강을 위한다면 적어도 한두달은 심산유곡에서 기수련이나 명상을 하길 권합니다. 물론 시간이나 환경이 허락해야겠지요.” 산에서 하게되면 무엇보다 우주의 파장을 그대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와 효과가 크다. 여기에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정확하게 배우고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치료를 통해 앞서 말한 여러 가지 난치병을 치료하고 정신병도 낫게 할 수있다. 선사는 기치료란 막혀 있는 기혈을 뚫어주고 기순환을 원활하게 해서 나쁜 독을 밖으로 배출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모세혈관이 살아나고 해독이 잘 되기 때문에 면역력이 강화되고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또한 체온이 상승하면서 건강해진다. 선사에게 그동안 수행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냐고 물어보았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생사를 넘나들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기의 운행 원리를 깨달았고 내 병도 내가 알아서 고칠 수 있어서 만족합니다.”선사는 수행자는 스스로 자기의 병을 고칠 수 있어야 하고 결국 수행을 완성하면 그렇게 된다고 말했다. 인성교육과 정신교육 병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수행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선사에게 답을 구했다. “인성교육과 정신교육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사람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행복하려면 무엇보다 감각이 살아있어야 하지요. 만약 감각이 죽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면 즐거움을 맛볼수 없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느끼는 것이고 죽으면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식 후 흰 죽을 먹으면 쌀의 맛과 향이 그대로 내 몸에 전달되는 것이죠. 혼자서 수행하는 것은 소를 길들이는 것과 같이 힘들고 고통 스럽지만 결과는 아주 좋습니다. 자기 절제를 통해 단식에 성공하고 모든 감각 기관이 다시 살아나면 그전에 느끼지 못한 사소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행복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물질과 눈앞의 즐거움만 쫒다보면 점점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을 알게 되면 이미 늦는 것입니다. 대부분 공황장애나 우울증 등이 심해져서 자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감각이 살아나고 작은 즐거움을 깨닫게 되면 뇌세포가 건강해지면서 삶의 의지가 커집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되고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더욱 자신감을 되찾게 됩니다. 선사는 끝으로 “자신이 30년 넘게 수행해 온 결과물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앞으로 국제 힐링센터를 중국과 한국에 세울 계획”이라는 포부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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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자연의 원형을 담는 작가 김동석
- ▲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61x61Cm 씨앗,스톤젤미디움,아크릴. 2012 평론가 고충환 씨는 김동석의 회화를 이렇게 평했다. “그의 그림은 문학적이고 서사적이다. 그러면서도 생리적으로 소설보다는 시에 가깝다.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 풀어서 설명하기보다는 함축적이고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문법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말 걸기 방식은 그림에서도 나타나고 주제에도 반영된다. 이를테면 어머니의 사계(1996)외 연작, 나에게 길을 묻다(2007-2008), 그리고 and 그리다(2009-2010) 등이다.” 지금부터 대지를 화폭에 옮겨 놓는 작업을 통해 존재의 원형을 표현하고 있는 김동석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글·최치선 사진·정대일 자료사진·김동석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림을 하게 된 동기를 묻자 김동석 작가는 큰 고민없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예상 밖의 답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을 오기로 그리기 시작했다는 말씀이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맞다고 한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한 눈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어느 날 뒤통수를 가격당하는 충격을 받았어요.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내가 받은 상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남들 다 타는 1년 개근상이나 선행상도 타지 못했더군요. 그래서 졸업하기 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반드시 상을 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 작가는 그로부터 얼마 후 학교에서 도내 미술대회에 나갈 학생을 뽑는 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소 그리기를 좋아하던 작가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자신을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미술부도 아닌 학생이 학교 대표로 나가겠다는 말에 선생님은 황당해 하면서 이미 나갈 학생들이 정해졌으니 어렵겠다는 말을 했다. “그때는 꼭 나가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졸라도 선생님은 허락을 하지 않았다. 당시 크게 낙담을 한 그는 대회에 나간 학생들이 얼마나 잘 그리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마침 대회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열렸는데 소방차들이 물 쏘는 장면을 그리는 것이 주제였다. 그는 그림 그리는 아이들을 하나 둘 살펴보기 시작했다. 특히, 추천받은 아이들을 더욱 유심히 봤는데 누구도 자신보다 잘 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김 작가는 그 날 상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었다. 바로 자신감이었다. 중학교에 진학 한 후 김 작가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운중지월(雲中之月)이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받은 상은 그림이 아니라 노래였어요. <누가 누가 잘하나>에 출연해서 1등상을 받았거든요.” 김 작가의 끼는 그림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예술은 통한다 했던가. 그는 노래를 통해 먼저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미술부에 들어간 김 작가는 첫 실기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 때의 기분은 정말 좋았다. “미술로 인정받은 첫 상이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후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나가 입선도 하면서 그림에 대해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어요.” ▲ 어머니의땅-아름다운 비행53.0X45.5cm 2007스톤젤미디움,켄버스에아크릴 육사의 꿈을 접고 화가를 준비하다 김동석 작가의 꿈은 처음부터 화가가 되는 것이었을까?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렸고 대회에 나가서 여러차례 상도 탈 정도면 화가를 꿈꾸었을 것 같았다. “아닙니다. 제 꿈은 처음부터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은 오기 때문에 시작했는데 적성에 맞았던 것일뿐 제가 동경했던 곳은 육사였어요.” 세 번째로 의외의 답이 나왔다. 갑자기 그의 머릿 속에 든 생각들이 궁금해졌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문과가 아닌 이과를 선택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진학상담을 받았지만 성적 때문에 육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의 상실감은 엄청 컸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좌절감 같은 것이 밀려왔으니까요.” 김 작가는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당시 목표하던 꿈이 사라져 버리자 그는 정신적으로 큰 위기에 처했고 방황을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다 문득 새로운 꿈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잘하는 일 바로 그림 그리는 것이었다. 미대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방학 때마다 홍대 근처에 찾아와서 개인교습을 받았다.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떨어졌어요. 홍대에서 살아도 붙기 어려운데 방학 때만 올라와 배우니 한계가 있었던 것이죠.” 그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계예술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등록금을 주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입대를 하게 된다. 제대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집에서는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했어요. 그래서 등록금을 주지 않으면 스스로 관두겠지 했던가봐요.” 자퇴 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지도교수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선처를 구했다. 다행히 휴학처리가 되었고 그는 1년동안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입시를 준비했다. 국민대 의상디자인과에 들어갔으나 맞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 김동석 작가 우여곡절 끝에 개최한 첫 전시회 용기를 얻다 “첫 개인전은 96년에 열었습니다. [어머니의 사계]라는 주제로 전시를 했어요.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그린 것이었습니다.” 초기 김 작가의 작품은 어머니를 모티브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어머니의 사랑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의 생명을 잉태하는 대지 역시 어머니와 같았다. “첫 번째 전시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전시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화실 보증금을 담보로 제가 대학 때부터 거래하던 은행에 찾아갔어요. 은행지점장을 만나서 사정을 얘기하고 천만원 대출을 받았습니다.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인사동과 순천에서 순회전시를 열었는데 순천전시는 6학년 때 선생님께 인정받기 위한 의도가 컸어요.” 그는 첫 전시기간 중 작품 한 점을 팔았다. 그것도 전혀 모르는 관람객이 자신의 작품을 사겠다고 했을 때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실기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은 이후 그림을 통해 인정받은 두 번째 사건이었다. “100만원에 작품이 팔렸는데 정말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제 그림이 누군가에게 팔리는 것을 처음 경험했거든요. 그 분 덕에 용기와 희망을 얻었습니다.” 땅을 통해 어머니와 자연의 원형을 그리다 김 작가는 지금까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엔돌핀이 솟아 나왔다. “제 그림은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 많습니다. 캔버스는 대지이고 나무와 꽃, 길, 호수, 바다 등이 만들어지는데 초기작품에서는 황토를 직접 발라 대지를 표현하기도 했어요. 총천연색으로 대상을 그리던 중 문득 인공적인 색보다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콩껍질이나 호두 같은 자연의 재료를 이용해 작업을 하게되었어요. 캔버스도 돌가루를 뿌려서 거친 느낌을 주었죠. 일기장에 쓴 한글을 배경으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한글서체를 만들었는데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 일반인들은 암호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김 작가의 작품성향도 작업 방식에 따라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초기엔 어머니를 주제로 많이 그렸다면 지금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같이 나를 찾는 작품이 많아요. 실제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하는데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2009년 LA에서 약 1개월간 머물며 전시회를 갖는다. 버질아메리카의 초대로 김동석 개인전을 갖게 된 것이었다. “전시기간은 물론 전시가 끝나고도 아이들과 여행을 했어요. 가족과 함께 미국이란 나라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죠.” ▲ 어머니의 땅-한반도(91.0X72.7cm)혼합재료 여행으로 작가의 시야와 아우라를 넓히다 작가에게 여행은 새로운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작품의 모티브를 얻거나 새로운 소재를 발견하기도 하고 시야가 확대되면서 작품의 성향이 바뀌기도 한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는데 그 중 해외에 나가면 자연을 보면서 색에 대한 개념이 바뀌는 경향이 있습니다. 몽고에 갔을 때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그때 작가는 ‘내가 그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2005년부터 내 작품에서 색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어요. 화이트와 블랙만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이 묻는 거에요. “아빠는 화가인데 색을 쓸 줄 모르냐고”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려다가 문득 아이들은 나의 영원한 팬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서 오방색에 해당하는 황(中), 청(東), 백(西), 적(南), 흑(北)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아빠를 진짜 화가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아 작가도 기뻤다. ▲ 나에게로떠나는여행(53X33.3cm) 입체적인 작품 속에 세상을 담아내다 작업을 통해 작가의 마음이 드러난다. 그는 작품을 그리는 작가의 혼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작업을 할 때 최선을 다한다. 그렇지 못하면 작품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 다음은 관람객의 몫입니다. 내 품을 벗어난 작품은 나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니까요.” 김동석 작가의 작품은 입체적이다. 화면을 평면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입체를 두고 싶어한다. 그래서 공간을 연결하기도 하고 씨앗을 심기도 한다. 그의 새로운 시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림은 힐링 그 자체니까요. 꿈의 장이고 희망이고 위안이고 위로를 주니까요.” 시간의 흔적을 그리며 행복을 얻다 그에게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만족스러웠을 때는 언제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재미있는 답이 나왔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작품이 나왔을 때 만족감이 가장 큽니다. 신혼 초에 집이 넓지 않아서 방바닥에 작품을 놓고 그리다 잠깐 나갔다 왔는데 처음보는 발자국들이 찍혀 있잖아요. 처음엔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들이 건너가다 찍어 놓은 발자국들이었어요. 그 발자국들을 그대로 살려서 작업을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김동석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분명히 1시간 집중했는데 5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많아요.”라며 털털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행복한 사람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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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환우들의 멋진 주치의 ‘노동영 교수’
- [트래블아이 =최치선 기자]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인 비너스회 창립을 주도하고 현재 서울대병원 유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는 노동영 교수(서울대 의대 외과학 교실)는 여성암 발생 1위인 유방암 퇴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용장 중 한 명이다. 노 교수를 만나 그의 일상과 취미 그리고 올해 계획 등에 대해서 들어 보았다. “그리그의 피아노 콘체르트를 좋아합니다. 대학 때 프렌츠호른을 배워 약 10년 동안 연주를 했는데 그 영향인지 스케일이 큰 음악이 좋더군요. 지금은 연주보다 서울대 의대 오케스트라 지도 교수로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습니다.”연구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무엇이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노동영교수가 활짝 웃으며 답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7시에 출근해서 비너스 홈피를 관리하고 8시부터 수술과 외래를 보면 금방 점심시간이 된다. 식사가 끝나고 차 한 잔 마시자마자 곧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데 하루 대부분을 보내지만 노동영 교수의 얼굴은 지친 표정이 없다. 오히려 일을 즐긴다고 할 정도로 화색이 돈다. 그의 밝고 긍정적인 사유가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노동영 교수는 유방암 환자들을 떼놓고는 생각 할 수가 없다. 유방암 환자들의 공식 모임이 전혀 없었던 척박한 풍토에서 2000년 12월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인 비너스회를 창립했으며 그 후 지금까지 비너스 홈페이지를 통해 환우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주치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 결과 올해로 7년째가 되는 비너스회 홈페이지에 실린 노 교수의 답변이 무려 10,000건을 돌파했다고 한다. 환우들의 모임 비너스회 창립하고 주치의 자청“존스 홉킨스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졸업논문 주제로 내가 답변한 것을 활용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2월에는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으로 책이 나옵니다.”일을 취미처럼 즐기는 노동영 교수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노동영 교수는 우리나라의 유방암발생률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그에 못잖게 5년이상 생존율도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85%이상 생존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몇 개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해서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노 교수는 영상수술법을 고안했으며 유전체가 환자의 종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할 계획이다. 그리고 기형단백질을 찾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는 국제컨소시엄(15개국 참여)에서 한국 대표 중 한명이다. 한국측 단장은 유명희 박사(KAIST 교수)다. 노동영 교수는 이처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환자를 진료하고 매년 700여 명의 환자를 수술한다. 그는 유방암의 세포 및 분자연구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지난 94년부터 SCI 등 세계적 권위지 에 이와 관련된 논문을 100여편 이상 발표했다. 그의 행보는 비단 연구와 수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0년에 유방건강재단을 창립했고, 한국유방암학회 대외협력 및 국제이사 등 대외활동에도 열심이다. 2002년부터는 유방암 계몽 캠페인인 ‘핑크 리본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5대 도시(서울, 대전, 광주, 대구, 부산)를 돌며 단축마라톤 대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참여율도 높아서 한 번에 8,000~10,000명이 참여합니다. 개인적으로 큰 보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비록 5km구간이지만 환우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뛰기 때문에 너무 기쁘다고 한다. 클래식 마니아로 10년간 호른연주 해그는 또 2004년 초까지 서울대병원의 의무기록실장을 맡아 ‘전자 의무기록 시스템(EMR)구축의 리더가 되었다. 이처럼 그의 활동분야는 결코 녹록치 않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소화하기 힘든 분량이다. 그래서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게 그에겐 야속하기만 하다. 자칫 노동영 교수의 이미지가 무척 건조하게 비쳐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는 앞서 말했듯이 클래식 마니아로서 전통식을 고집하는 부위기 있는 토종남자이다.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길 줄 아는 신세대 가장의 면모도 고스란히 갖고 있고 컴퓨터도 직접 홈페이지를 관리할 만큼 수준급이다. 노동영 교수는 요리에도 관심이 많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솜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볶음밥과 찌개 종류는 칭찬을 받을 만큼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지금처럼 유방암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의 맛있는 요리를 맛보기 힘들겠지만 유방암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환우들을 생각할 때 유방암을 정복하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촬영을 하기에 앞서 유방암과 관련해 노동영 교수에게 궁금한 것 몇 가지를 질문했다.최근 유방암의 발생률이 높아지고 있는데 원인이 무엇입니까?“지난 2001년부터 계속 유방암이 위암과 자궁경부암을 제치고 1위에 올라 있습니다. 유방암의 발병률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식생활이 점차 서구화되고 있고 생활패턴이 몸을 조금 움직이는 쪽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폐암, 전립선암과 마찬가지로 유방암도 선진국형 암입니다.”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결혼 뒤 아기를 일찍 낳도록 하며 모유가 좋습니다. 또 매주 3일 이상 한 번에 30분 이상 운동해야 합니다. 미국 암협회에서는 암 예방을 위해 채소를 하루 다섯 접시 이상 먹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콩을 듬뿍 먹는 것이 좋습니다. 콩은 여성에게 유방암과 함께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은 음식입니다.” 유방암을 조기 진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합니까?“20세 이상은 매달 자가 진단하고 30대 중반 이후엔 해마다 유방촬영 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자가 진단으로 70%이상이 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가슴에 멍울이 맺힐 경우 80%는 양성종양이지만 20%는 암이라고 봅니다. 멍울은 더러 겨드랑이에 생기기도 합니다. 한 쪽 유두에서 핏빛 분비물이 나오거나 유두가 갑자기 들어가는 경우, 젖가슴 한쪽이 쑥 들어가는 경우, 양쪽 가슴이 비대칭이 될 때 등에도 유방암을 의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증세가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정기 검사가 필요합니다.” 유방암에 잘 걸리는 사람은 어떤 유형입니까?“고지방 고칼로리의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에게서 잘 생기는데 12세 이전에 초경이 시작되고 55세 이후에 폐경이 된 사람도 잘 걸리며 폐경이후 비만인 사람도 발병률이 높습니다. 출산이 늦거나 아예 아이를 갖지 않는 여성도 잘 걸리죠. 물론 가족력이 있으면 더 조심해야합니다. 서구에서는 50대에 환자가 가장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40대에서 발병률이 가장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유방암은 완치가 가능합니까?“유방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합니다. 유방에만 암이 있을 때엔 10년 생존율이 98%정도이고 주변 조직에만 암이 침범했을 때에도 생존율이 70%를 넘습니다. 그러나 다른 장기로 전이가 시작되면 생존율이 20%대로 떨어집니다. 조기에 암을 발견하면 대부분 가슴을 보존하는 수술을 받을 수 있으며 가슴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아도 유방 성형 수술로 가슴형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기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Profile노동영 교수(서울대병원 유방암센터장) 서울대학교 병원 EMR팀장, 의료정보 센터장, 의무기록실장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서울대학교암연구소 유방암 연구실장, 한국유방암학회 국제협력이사, 한국 과학기술 한림원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상내역은 지난 93년 미국 NIH의 Fogarty International Fellowship Award를 받았으며, 2001년에는 Oraganon international로부터 ‘젊은 연구자상’을 2005년 6월에는 한국유방암학회 동아학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유방암’ ‘유방암예방 식이요법’ ‘암을 알고 이기는 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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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환우들의 멋진 주치의 ‘노동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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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자유를 노래하는 빛의 여행자 '김중만'
- 지하철역에서 처음 그를 보았다. 유명 카메라 광고모델로 나온 그가 한쪽 벽을 다 채운 커다란 광고판에서 행인들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레게 머리를 하고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던 그의 눈이 궁금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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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연을 품은 화가 소정란
- ▲ 겨울소리2 (72.7x53.0cm, Oil on Canvas 2008) 소정란作 가지 않은 길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의 자취가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음으로 해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 없이 아무에게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아, 나는 뒷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다른 길에 이어져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여기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위 시는 대부분 한 번쯤 읽어보고 들어봤을 프로스트의 명시 ‘가지 않은 길’이다. 꿈꾸는 소녀처럼 큰 눈을 가진 소정란 작가(서양화가)의 첫번째 개인전(2009.9) 도록 맨 앞장에 이 시가 실려 있다. ▲ 소정란 작가(서양화가)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첫 눈에도 감성이 풍부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특별히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첫 페이지에 수록한 이유가 있으세요? “네. 개인전을 열기까지 많은 방황을 한 것 같아서요. 결혼 전까지 비록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림에 대한 애착은 늘 갖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던 터라 내가 할 일이 어쩌면 이 길이 아닌가 생각했었거든요.”소정란 작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커피잔을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시를 회상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결혼 후에도 양육에 신경쓰느라 그림 그릴 기회를 잡지 못했어요. 그러다 13년 전 친한 언니의 제안으로 화실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누르고 있었던 그림에 대한 동경과 에너지가 분출되기 시작했죠.” ▲ 녹빛향연 (40.9x60.6cm) Oil on Canvas 2010. ▲ 겨울소리(120.0x60.0cm Oil on Canvas 2008) '그랬었다. 오랜시간 정체성을 찾지 못해서 한 때 우울함과 허허로움으로 힘들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으로...붓을 잡고 캔버스를 마주하면서 내게 있어 햇살은 더욱 청아했으며, 살갗에 닿는 바람은 마치 여린 얼굴에 꽃물이 들은 느낌이라고 할까?정말이지 오랜만에 찾아든 설렘이었다. 때론 진한 커피향보다 물감냄새가 그리운 걸 보면...좋은 작품을 만날 때마다 심장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면...남겨둔 다른 한 길을 기꺼이 찾아듦이 지금의 소중한 오늘이 아닐까 싶다.그대 있음에 진정 나는 행복하다.'작가는 시가 실린 바로 옆 페이지에 위의 문장으로 자신의 재기를 알렸다. 시적 감수성을 겸비한 화가의 시선은 캔버스에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2002년부터 다시 시작한 그림은 약 7년간의 개인수련을 거쳐 마침내 2009년 화려하게 꽃피웠다.첫 번째 개인전에서 사람들에게 선보인 작품은 한결같이 자연을 담았다. 시골 고향이나 외갓집에 가면 볼 수 있는 황토길, 강가의 풍경, 시골 산길에서 마주치는 소나무, 꽃밭, 가을향이 묻어나는 오솔길, 겨울철 흰 눈으로 하얗게 덮인 농로 등이 작가의 따뜻하고 맑은 시선에 채집되었다. ▲ 봄빛 (72.7x 50.0cm Oil on Canvas 2009) ▲ 녹빛향연 “2008년 국전에서 100호 작품이 입선을 했어요. 그림을 시작하고 6년만의 결실이었어요. 그렇게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어요. 동기부여도 되고 제 속에 에너지도 더 뜨거워지는 것 같고...그래서 더욱 열심히 작품에 집중했어요.”작가는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선한 다음해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약 3년간 인사동에 있는 화랑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했다.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얻은 게 많아요.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접하면서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물론 제가 추구하는 작가적 성향도 더욱 뚜렷해졌죠.”작가는 왜 자연만을 고집하는 것일까? 그것도 동물이나 곤충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꽃과 나무, 강과 시골 길 등의 옛 자연풍경이다. ▲ 소정란 화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어렸을 적 보았던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이 점점 도시화되면서 사라지는 게 안타깝고 아쉽더라고요. 지금도 시골에 가면 산길이나 농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을 볼 수 있는데 제 눈엔 그게 참 이쁘게 보였어요. 계절에 따라 개울이나 강의 주변이 초록에서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는 것도 그렇고 겨울엔 온통 하얗게 뒤덮이는 산길도 운치가 있고요.”작가의 눈에 비친 시골풍경은 시로 보면 서정시에 가깝다. 자연을 그리는 작가의 태도는 사물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다. 즉 자연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교감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과 교감을 통해 감성이 깊어지면 그때 비로소 캔버스에 자신이 채집한 풍경을 펼쳐 놓는다.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잔잔하고 평화롭다. 울렁거리는 마음도 평온해진다. 미술치료가 절로 되는 느낌이 든다. “성격은 그렇지 못한데 작업을 할 때는 거의 몰입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머릿속에 있는 구도와 장면이 작업이 끝날 때까지 각인된 상태로 남아 있어요.” 작가는 “앞으로 묘사에서 그치는 게 아니고 새로운 터치와 반구상적인 작업을 하고 싶다”면서 “쉽지 않겠지만 풀어야 할 숙제로 생각한다”고 주문을 외우듯 말한다. 자신을 화가로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도록 이끌어준 분은 김성호 선생님이다. 그의 ‘새벽’이란 작품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네 번째 개인전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새로운 구도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지금까지 사용한 유화 대신 아크릴작업도 할 생각이다. 그녀는 평소 음악과 책을 자주 접하면서 인문학적 소양도 쌓고 골프와 산책으로 체력도 기른다. 이 모든 게 자신의 작품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겨울소리 작가에게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와 이제 막 그림에 입문한 후배주부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청했다. “창작은 대부분 산책 중에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사진을 찍고 그중 가장 잘 나온 것을 선택해서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해요. 저와 비슷한 길을 걷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크게 생각나는 게 없는데...저 같은 경우 전시회에 자주 가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성향이나 주제 등이 다르기 때문에 무척 흥미로워요.”그녀는 작품의 폭을 넓혀주는데 타 장르의 지식이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태경의 크로스오버를 좋아하고 시집을 즐겨 읽는 편이죠. 타 장르의 정서가 작품을 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다녀야 할 부분이죠.”소정란 작가는 앞으로 예쁜 모습으로 살고 싶다면서 거기에는 작품이 주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2년 후 네 번째 개인전을 할 것이라면서 보다 편안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엄마가 아이 손을 잡고 와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 올 수 있는 전시회를 기대해 주세요.” ▲ 서양화가 소정란 소정란 작가 프로필 개인전 3회단체전 동이7인전(동이갤러리) 단성7인전(단성갤러리) 서울아카데미전(세종문화회관) 아름다운동행전(북부지방검찰청) 대한민국회화제(서울시립미술관) 한국미술협회전(예술의전당) 서울국제미술제(조선일보미술관) 대한민국여성미술제 혜윰전(세종문화회관) 고구려의기상전(조형갤러리)외 다수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2008) 현재 한국미술협회, 서울아카데미, 대한민국회화제 회원, 한국미협서양화2분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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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연을 품은 화가 소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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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토로 세상을 빚어내는 김진욱 명장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잘 됐네요. 부암동 공사현장으로 오세요. 힐링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실 겁니다.” ▲ 황토미장 분야 최고로 손꼽히는 김진욱 명장 7월의 색은 황색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황토’가 떠올랐고 황토를 다루는 대한민국 명장을 수소문 하게 되었다. 주인공은 바로 김진욱 명장(황토 미장. 59)이다. 김 명장은 대한민국 전통 미장 특히 황토 미장분야에서 최고라 할 수 있다. 사실 명장이란 호칭에서 나오는 무게감 때문에 인터뷰에 앞서 약간 긴장을 했다. 하지만 실제 주택을 짓고 있는 현장에서 만난 명장은 부드럽게 웃으며 마중까지 나와 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온화한 부처님의 미소가 피어 있었다. 부암동 언덕에 위치한 붉은색 2층 벽돌집은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된 듯 윤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외관만 봤을 때는 평범한 여느 단독주택과 다를 바 없었다. 황토를 바르고 그 위에 백토를 칠하는 날이라고 했던 김진욱 명장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보자마자 인사와 함께 “황토 작업은 어디에서 하시나요?”하고 물었다. 하지만 김 명장은 공사현장의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듣지 못했는지 산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명장은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다.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으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까 질문한 게 뭐에요? 소음 때문에 잘 듣지 못했어요.”잠깐 숨을 돌리며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데 명장이 웃으면서 묻는다. “아. 네...황토작업을 하신다기에 어디서 하는지 궁금해서요.”명장도 올라오느라 숨이 차는지 호흡을 고른 후 천천히 답을 시작했다. “황토는 안채 즉 벽채와 바닥에 사용하고 천장에는 무게 때문에 백토만 바릅니다.”장인건설 대표를 맡고 있는 김진욱 명장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독학으로 미장기술을 터득해 2011년 건축시공(미장) 분야 대한민국명장(509호)이 됐다. '한옥미장용 벽체 외엮기 방법 특허 및 각도 조절용 미장 흙손 실용신안'을 보유하는 등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강점을 가진 김 명장은 처음엔 현대미장을 했지만 어느 순간 전통미장의 멋과 맛에 빠져 30년 간 이 길을 걷고 있다. “처음 20년간은 현대건축 일을 했어요. 하지만 현대미장은 빠르고 싸고 강한대신 몸에 독소를 남기더군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전통복원에 대한 보람도 느끼고 즐겁게 일하니 몸도 건강해졌습니다.”김 명장은 어려서부터 건설현장에서 일을 해오다 30대 중반에 우연히 전통미장을 하게 된 후로 다시는 현대미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전통미장은 명장에게는 운명같은 것이었다. “쉽지 않았어요. 시멘트 대신 황토라는 재료도 그렇고 책에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순전히 독학으로 수많은 강좌를 쫓아다니며 배웠습니다.” 그는 말한다. “황토미장은 생각만큼 어렵고 까다롭지 않습니다. 자연재료에 대한 이해와 흙을 알면 쉬워지죠. 백토 가격도 일반 시멘트와 가격이 비슷합니다. 25톤에 110만원 (운반비 50만원 포함가), 황토는 30만원 정도니까 내부만이라도 황토를 사용해 리모델링 할 수 있습니다.”김진욱 명장은 그동안 경복궁, 경희궁, 숭례문 등의 복원작업에 참여했다. 미장편수로 숭례문 복구에 참여한 김진욱 명장이 말하는 황토의 특성은 무엇일까?“황토에 열을 가하게 되면 원적외선이 나오게 되고 우리는 원적외선의 효과를 누리는 겁니다.햇볕을 쬐고 있을 때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 원적외선 때문이죠. 열작용으로 인해서 각종 질병들의 원인인 세균들을 없애주고, 모세혈관을 확장시켜서 혈액순환과 세포조직 생성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 세포를 활성화 시켜 노화방지, 신진대사 촉진, 만성피로와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발한작용 촉진, 통증완화, 중금속 제거, 숙면, 탈취, 방균, 곰팡이 번식방지, 제습, 공기정화 등의 효과가 있어 주택 및 건축자재, 주방기구, 섬유·의류·침구류, 의료기구, 찜질방 등의 여러 분야에 쓰이고 있습니다.“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김 명장의 눈빛이 더 반짝거렸다. 다음은 명장의 황토예찬인데 중간에 끊기가 어려워 한 번에 정리해 보았다. 읽어보면 꽤 유익한 정보가 될 것이다.“흙은 성분, 색깔에 따라 황토/적토/흑토/백토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중 황토가 으뜸입니다. 옛날 조상들은 황토를 이용해 각종 질병을 치료했으며, 황토로 만든 온돌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황토는 살균과 독성을 중화시키는 약성이 우수하며 인체에 유익한 효소가 50여가지나 담겨 있어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에너지 효율성을 가지는 황토의 분자특성은 수많은 다공성을 가진 특징과 결합성에 있습니다, 황토를 활용해 습식양생과 압축결정체로 구성 주택의 벽체와 바닥재에 적용할 경우 여름철 냉방(에어컨)과 겨울철(난방)을 가동할시 황토분자는 내부온도와 자기 몸의 온도가 일정 할 때까지 냉기, 온기를 지속적으로 흡수합니다. 그리고 내부의 온도가 내려가면 이를 다시 환원(열을 내뿜는다)하는 작용을 하며 냉방의 경우도 주거환경의 바람직한 습도기준 40%~60%에도 관여해 항상 쾌적한 습도조절이 자동으로 진행되는 특성과 함께 에너지 효율 30% 절감효과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황토가 가지는 기능성은 밀폐된 주거공간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4대 유해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아세트 알데히드, 톨루엔, 자일렌 등 인체의 호흡기를 통해 오랫동안 체내에 축적되면서 이름모를 다양한 질병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아토피 질환을 포함한 호흡기 폐 질환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시멘트는 뇌에 치명적인 문제점을 나타낼 수 있다는 보도가 방송된바 있습니다, 그래서 황토의 분자구조는 이러한 밀폐된 주거 공간내의 유해물질을 정화 시키는 기능을 하고 중화 분해 흡수 하여 청정한 맑은공기를 만들어 주고 습도 조절을 해줍니다. 황토는 습도가 많은 경우 습기를 흡수하고 실내가 건조한 경우 습기를 공기 중으로 내보내 줍니다. 따라서 습도를 조절하는데 매우 뛰어난 효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세균과 곰팡이균을 없애주면서 향균작용과 해독작용을 합니다. 황토는 우리 신체에 나쁜 물질을 정화시켜주며 독소를 없애주는 착하고 좋은 흙입니다.” 김 명장은 황토가 현대와 전통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아토피는 물론이고 새집 증후군도 없다며 김치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은 명품이라고 예찬한다. 한참을 얘기하다보니 지금 작업하고 있는 공사현장이 궁금해졌다. 김 명장에게 현장을 좀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말한다. “지금 짓고 있는 집은 문화재청에 근무하는 국장님이 직접 주문해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전체 외관은 현대식이지만 내부는 전통방식 즉, 황토와 백토로 마감했습니다. 벽채와 천장 그리고 바닥은 전부 황토와 백토를 사용했어요. 직접 보시면 아시겠지만 짚을 섞어서 인장력도 높였고 인테리어 효과도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황토는 성질상 물에 약해서 작업하기 좋은 계절은 4월부터 5월까지 선선하고 건조한 날씨입니다. 비가 오는 장마기와 한겨울은 피해야 합니다.” 친환경재료로 작업하는 것은 곧 자연에 순응하는 일이다. 그는 순도 100%황토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시멘트를 섞으면 황토의 성질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장이 그동안 배출한 제자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약 100여명에 이른다. 황토미장은 배우는데 약 3개월 정도 걸리지만 숙련까지는 3년은 필요하다. 하지만 배우려는 사람들이 적다. 수요는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기에 지금 배우면 좋다. 명장은 전통미장을 배우려는 사람이 적어서 많이 아쉽다고 말한다. 전통가옥과 고궁, 문화재 보수에 사람이 필요한데 충족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석회는 외벽에 칠하는 것이지 내부에 사용하면 안된다. 내부에는 석회대신 백토를 사용해야 미적 효과가 있다. 순서는 황토를 바른 후 양생 과정을 거친 후 다 마른 다음 백토를 바른다.김진욱 명장은 그동안 주로 사찰작업과 고궁, 문화재, 개인주택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작업은 경희궁, 숭례문, 덕수궁 등이다. 그가 지금까지 전통작업을 해오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전통기법의 맥이 단절되었다는 현실이다. “황토를 통해서 힐링을 달성할 수 있는데도 노력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정부와 국민이 우리의 좋은 문화를 지금 찾아가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욱 어려워지는데 현실은 이를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황토집과 같은 좋은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가 황토미장을 배우고 익히는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조선시대 의궤였다. “지금 개량 시멘트는 100년이 가지만 흙은 재령이 없습니다. 즉, 수 백년이 지나도 괜찮다는 겁니다. 시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고 그 자체가 자연입니다. 따라서 흙을 사용해 집을 지으면 재건축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친환경재료는 자연에 순응합니다. 황토의 성질상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고 강해집니다.” 따라서 현대건축에 황토를 응용할 경우 외벽은 석회를 사용하고 내부의 벽체와 바닥 등은 황토를 사용한다. 작업과정에서 주의할 점은 황토를 반죽할 때 기계로 찍으면 안되고 손으로 해야 단단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야 비와 바람을 견디면서 단단해진다. 그리고 통나무를 섞는 것은 황토의 성질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볏짚과 대나무는 괜찮다. 통나무는 횡력이 약하기 때문에 황토의 장점이 충분히 발휘될 수 없다. 하지만 볏짚을 사용하면 인장력이 강화되어 좋다는 것이다. 현대건축에서 시멘트에 철근을 넣는 것은 바로 황토에 볏짚을 넣은 것을 응용한 것이다. 여기까지 황토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 김 명장을 따라서 공사하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인부들과 제자들이 집 안팎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명장은 현장에 오는 동안 제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20살 여제자가 어린나이에 정말 열심히라면서 꼭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요즘에 그것도 남자들도 기피하는 노가다를 여자가 배운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 빨리 만나고 싶었다. ▲ 제자들이 김진욱 명장의 황토미장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김 명장이 작업하고 있는 집의 특성은 외벽은 현대건축이지만 내부는 전부 황토와 백토를 사용했다. 벽체에 바른 황토의 두께는 45mm, 천장은 무게 때문에 15mm백토만을 바른다. 일반주택은 3개월이면 해체부터 완공까지 충분하지만 이 집처럼 황토를 사용하면 두 배의 기간 약 6개월이 소요된다. 공사가 한창인 집안에 들어서자 명장은 성큼 걸음을 옮기면서 제자를 찾는다. 그렇게 제자를 아끼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명장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비좁은 드레스룸에서 백토를 바르고 있는 세 명의 인부 중 앳된 여학생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바로 명장이 칭찬을 아끼지 않던 여제자였다. 인터뷰를 위해 잠시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드디어 명장의 여제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수줍어하며 작은 목소리로 질문에 답하는 여성이 바로 조금 전 자신의 얼굴보다 몇 배 더 커 보이는 흙손을 들고 거기에 황토를 이겨 벽과 천장을 바르던 인부 중 하나였다. 김희원씨는 스무살이다. 160정도 되는 키에 마른 체형으로 흔히 말하는 노가다판(현장인부)에서 일하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려서부터 전통에 관심이 많았다. 오래된 고건축이나 흙을 좋아했는데 마침 설계를 배우다가 담당 선생님의 소개로 지금의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흙을 배운지 3개월 되었는데 재밌다고 한다. 힘은 많이 들지만 하고 싶은 작업을 하니까 그렇게 힘들지 않다. 교실에서 배웠던 것보다 현장에서 명장님께 배우는 게 더 많고 좋다. 게다가 명장님이 쉽게 가르쳐주셔서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다. 사실 체력적인 부분이 좀 힘들긴 하지만 극복할 수 있다. 흙 만지는 일이 재밌다.김희원 씨의 짧은 인터뷰가 끝나자 명장이 또 한 명의 수제자를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김현수. 스물세살 남자다. 그는 현대건축을 배웠다. 시공에 관심이 있어서 설계를 희원씨와 배우다가 명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시멘트 작업할 때는 몸이 간지럽고 눈이 따가웠는데 흙을 만지면서는 그런 게 없어졌다. 앞으로 더 많이 배우고 싶다. 선택을 잘한 것 같다. 작업이 즐겁다. 두 젊은 제자의 인터뷰를 마치자 명장은 밖으로 나가더니 누군가를 부른다. 잠시 후 안전모를 쓴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3년째 명장에게 일을 배우고 있는 김두한 팀장(43 남)이었다. 명장은 김 팀장을 소개하며 이 친구가 진국이라며 칭찬을 쏟아냈다. 김두한이란 전설의 주먹과 이름이 같은 그는 타일시공만 10년을 했다. 1년전에 일반시공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대양식은 정형화되었지만 전통은 그렇지 않다. 황토미장만해도 어떤 룰이 있는 게 아니라 명장님의 노하우가 곧 교본이 되기 때문에 작업때마다 약간의 변수(차이)가 있다. 현대건축은 작업의 리스크가 적지만 전통방식은 상황에 따라 리스크가 달라진다. 그는 앞으로 명장님을 괴롭혀서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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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최치선 사진/정대일 ▲ 베니스 풍경...조원춘 서양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프리다 칼로, 케테 콜비츠, 파울라 모더존-베커, 나혜석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눈치 빠른 독자들은 첫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류화가라는 것. 태어난 때와 나라는 다르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색으로 세상을 풍자했고 작품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내는데 성공했다. 이 달에 소개하는 조원춘(56) 작가 역시 여류화가다. 조 화가는 여행을 통해 세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 조원춘 서양화가는 세계의 여행지에서 가져온 보물을 주방 한쪽 벽면에 가득 채워놓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 한국미술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동석 화가(동양화)에게 인터뷰를 위해 괜찮은 여류화가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사무국장은 며칠 후 조원춘 화가를 추천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조 화가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도회적인 느낌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가진 여성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처음에는 완곡하게 거절을 했다. 이유는 이름 있는 작가들이 많은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품을 본 후 결정하자고 설득을 했다. 잠시 후 그녀가 카톡으로 보내온 이국적인 풍경들은 유명 화가들을 잊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색이 마음에 와 닿았다. 강한 느낌의 원색이지만 들떠 보이지 않았다. 물론 손바닥보다 작은 화면으로 본 그림만 가지고 작품을 알아보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첫 느낌은 괜찮았다. 조 화가에게 전화를 해서 인터뷰 시간을 잡았다. 그녀의 작업실은 강동구에 있는 자택이었다. “여류화가의 작업실은 어떤 풍경일까?”그녀를 만나기 전 가졌던 호기심이었다. 그동안 취재했던 작가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그래서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약간의 긴장감도 생겼다. 벨을 누르고 인터폰을 통해 확인절차를 거쳐 조 화가의 작업실로 올라갔다.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식탁에 앉았다. 화가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내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벽에 걸린 그녀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은 거실에서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식탁 뒤 한쪽 벽면에는 제법 큰 부조가 붙어 있었다. ‘저건 무엇일까?’ 궁금증을 풀기위해 다가갔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벽에 붙어 있던 것은 수십 아니 수백 개의 마그네틱 기념품이었다. ▲ 화가의 소중한 추억이 스며있는 마그네틱 기념품들이 벽화처럼 장식되어 있다. “여행을 좋아해서 시간이 될 때마다 해외를 나가요. 관광지보다 현지인들이 많이 다니는 골목노점상이나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저런 마그네틱 기념품을 구입했어요. 여행갈 때마다 하나 둘씩 모았는데 이젠 정말 소중한 보물들이 되었네요.”기념품을 살펴보는 동안 그녀가 말했다. “저 기념품 하나하나에 추억이 묻어 있어요. 다른 것들은 무겁고 부피가 있어서 가지고 다니기에도 불편한데 마그네틱 기념품은 작고 가볍고 무엇보다 독특해서 좋아요. 저에게 여행의 재미와 추억을 동시에 주는 귀한 선물같은 존재들이죠.” 계속해서 기념품 예찬이 이어졌다. 그녀의 말대로 벽에 붙어 있는 기념품들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기념품 하나하나가 그녀가 여행한 나라와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 같았다. 조 화가는 저 기념품을 통해 여행지에서의 추억과 풍경을 떠올리며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약 40여개의 나라를 다녀왔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나혜석이 1927년부터 3년간 세계일주를 하며 얻은 영감을 작품에 반영했듯이 조원춘 화가도 이국적인 풍경들을 담아낸다. “저는 주로 여행지에서 본 풍경을 그려요.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는 뒷골목인데...그렇다고 작품의 배경이 모두 골목은 아니고요. 풍경을 그리지만 하늘은 가능한 노출을 안 시키고 차나 배 등 이동수단을 풍경에서 부각시키려고 해요.” 화가의 설명을 듣고 작품을 보니 단번에 이해가 됐다. 그녀말대로 그림 속에는 하늘이 차지하는 공간은 작았다. 대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중 하나가 주인공처럼 확 눈에 들어왔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배나 트램 등 움직이는 대중교통이 풍경 속에서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림 속에 있는 자동차나 배는 저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 제 마음을 달리는 자동차나 배에 은유적으로 담아봤어요.”화가는 자신의 마음을 저렇게 이동수단에 투영시켜 여행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화가의 그림그리기는 여행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 올때까지 사진을 찍거나 정물을 감상하듯 오랫동안 주시하는 버릇이 있다. 항상 시간이 쫓기지만 그래도 맘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더 많이 집중하게 된다. 여행지에서 그녀가 빼놓지 않고 들리는 곳은 미술관이다. 특히 유럽여행에서는 마음껏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녀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결혼 후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경북여중과 경북여고를 다니면서 재능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여동생 역시 그림을 그렸고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미대를 포기하고 가정교육학과를 다녔다. 그 때 참고 숨겼던 그림에 대한 미련은 고스란히 결혼 후 육아를 끝내자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38세 되던 해 동네에서 가까이 지내던 화가지망생 친구들과 함께 미술과외를 받았다. 강사는 미대생이었다. 기초적인 데생부터 시작해 다양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워밍업을 거쳤다. 그릴수록 그림에 대한 갈증이 심해진 조 화가는 문화센터에 등록해 그림을 배우던 중 노재순 전 한국미협 회장을 만나게 된다. “노재순 회장으로부터 그림을 배우면서 제 실력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그려야겠다는 확신 같은 게 생겼죠. 스승도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고 용기를 줬어요. 저는 문화센터를 다니면서 항상 공부잘하는 학생처럼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했어요. 미리 집에서 작업을 많이 했고 그 결과 실력이 늘었던 거죠. 노 회장은 그런 저를 칭찬했고 나중에는 개인사사까지 해 주셨어요.” 그녀는 당시 스승으로부터 배웠던 시간이 지금의 자신을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정말 열심히 그림에 집중했어요. 대학 때 하지 못한 그림을 다시 하게 되니까 에너지도 많이생기고 자신감도 회복하게 되더군요. 이전보다 실력이 향상된 것 같았어요.”그녀말대로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능은 스승을 만나면서 마중물이 되어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다. 한국미술대전에서 2회 연속 입선하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에 한계를 느끼는 시간이 찾아왔다. 슬럼프였다. 풍경화를 그리다가 있는 그대로를 담기보다 자신의 느낌을 클로즈업해서 부각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풍경에 있는 대상을 모두 담기보다 특화된 어느 하나를 담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단순화시켜야 했다. 그런데 그 작업이 쉽지 않았다. 단순화시켜서 반복하는 작업을 계속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 사이 완성된 작품을 놓고 질문을 던진다. ‘어디에서 실수한 것일까? 무엇을 빠뜨린 것일까?’ 그녀는 이 의문점을 풀기위해 더 많이 여행하면서 유명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보았다. 아직까지는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으나 그녀의 의지는 곧 정답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여행담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갔다. 서둘러 몇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나 전시회는 무엇이냐고 하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2011년에 대구 대백프라자(2011:mother&daughters전(대백프라자)4인전)에서 했던 4인전이에요. 어머니의 팔순을 기념해 세딸이 마련한 전시회였는데 지금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나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지 전시회 내내 저와 자매들이 감사했어요.”어머니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그녀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녀가 결혼 후 뒤늦게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어느날 어머니 정태연 여사에게도 그림을 그려보시라 권했던 것이다.“그렇게 시작한 어머니의 그림이 어느새 저보다 훨씬 좋은 작품으로 세상에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딸들이 다 모였을 때 팔순잔치말고 더 뜻깊은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어머니를 위한 전시회를 해드리자고 뜻을 모았어요. 결과는 대성공이었어요.”그녀의 기획으로 탄생한 4인전은 대구와 경북에서 화제가 되었다. 어머니 정태연, 첫째딸 조원춘, 둘째 조원지, 셋째 조원정 등 세 딸과 어머니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전시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족이 모두 화가인데다 작품의 개성도 뚜렷해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던 전시회였다. “연세가 있으셔서 여행을 마음대로 다닐 수 없게 된 어머니께 제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드렸어요. 어머니는 제 사진을 보고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해 작품을 완성했던 것이죠. 저보다 훨씬 색이나 구도가 좋아요.”조 화가는 어머니가 일찍 그림을 배우셨다면 지금쯤 꽤 유명한 여류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그녀에게 자신처럼 결혼 후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는 후배들을 위해 한마디 조언을 부탁했다.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무엇보다 자존감은 그림을 그리는데 꼭 필요한 에너지거든요. 그리고 자기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저처럼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거든요. 그때마다 ‘그림은 나를 발전시킨다’고 주문을 외우면 극복이 가능해요. 끝으로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래야 좋은 결과물도 나오고 희망이 생겨요.”그녀는 앞으로 3년 후에 개인전을 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여행도 다니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있다. 그녀가 인터뷰를 끝내고 촬영을 하는 동안 작업실에 놓여 있는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했다. 이탈리아의 곤돌라, 프랑스남부의 어느 골목길풍경, 에펠탑이 보이는 도로위 자동차들, 그리스의 항구 등 이국적인 풍경들을 보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나혜석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순간 파리풍경, 스페인풍경, 스페인해수욕장, 만주봉천풍경 등 나혜석이 세계일주를 하면서 그렸던 작품들이 조 화가의 그림에 오버랩 되었다. 작업실을 나오면서 배웅을 하는 그녀에게 이번에 유럽을 가시면 독일이 낳은 서양최초의 여류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의 좋은 기운을 받아 오라고 주문했다. 서양화가 조원춘 개인전 및 초대전 2004:세종문화회관 2008:동이갤러리 2008:setec 2009:see&sea (부산) 2010:이윤수갤러리 2011:mother&daughters전(대백프라자)4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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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최은선 작가...그림과 그림책에서 행복 찾는 영원한 피터팬
- ▲ KT&G_001 ▲ KT&G002.jpg ▲ KT&G_004 ▲ KT&G005 ▲ KT&G006 ▲ KT&G_007 ▲ MAMA001 ▲ MAMA002 ▲ MAMA004 ▲ MAMA007 ▲ MAMA009 ▲ MAMA010 ▲ MAMA011 ▲ MOON001 (최은선 작가 프로필) 2009년 SI그림책학교 졸업 2010년 영국 캠브리지 Anglia Ruskin University 교류전 2011년 KT&G 상상마당 외벽 및 내부 sign 디자인 2011년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 벽면 일러스트 디자인 2011년 KT&G 상상마당 디자인 스퀘어 초대 개인전 'MAMA' 2011년 인천 시민문화 예술센터 레지던시 작가 선정 2011년 갤러리 some 초대 개인전 'MAMA' 2013년 CJ 2014년 캘린더 일러스트 작업 2014년 갤러리 다락 초대 개인전 '달:사랑의 기억' 2014년 갤러리 다락 초대 그룹전 '오너먼트' 2014년 디자이너 슈즈 SYNN 콜라보레이션 작가 선정 인터뷰 “괜찮아요. 부담 갖지 마시라고 저도 늦어드릴게요. 기다리시는 동안 맥주 두 병은 마셔야 해요. 저도 이미 두 병을 마셨으니까요.”인터뷰 시간을 맞추지 못해 미리 30분쯤 늦을 것 같다고 보낸 문자에 대한 답이었다. 나는 홍대근처 악어라는 카페에서 그녀의 지시대로 맥주를 시켜놓고 페이스 북에 있는 ‘최은선’이란 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특별한 정보라도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뒤져보았지만 공개된 사진첩에는 필요한 정보가 없었다. 머리카락을 내린 채 웅크리고 있는 모습, 패턴인형, 전시회, 고양이, 작업 장면, 웃고 있는 모습, 공항 게이트 등등...맥주를 마시면서 다시 한 번 스마트 폰에 찍힌 문자를 들여다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롱보드라거 두 병을 마신다고 취하진 않지만 갑자기 취중토크가 될 것 같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다려졌다. 재밌거나 개성이 강하거나 아니면 시크한 성격일지 모른다는 나름의 추리를 해 보았다. 그렇게 혼자서 그녀와의 인터뷰 준비를 하는 동안 맥주 두 병은 비어졌다. 시간을 보니 카페에 도착한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못 오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나와의 만남이 싫어서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 때 스마트 폰의 녹색 점멸등이 깜빡거렸다. ‘작가’로부터 문자가 온 것이다. “지금 가고 있는데 헤매고 있어요. 하지만 찾아갈게요.” 왠지 이번 인터뷰는 재밌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여유를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천천히 오세요. 작가님” 혼자 있기가 뭐해 술을 더 시킬까 하다가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주인여자에게 입구 쪽 벽면에 그려진 귀여운 핑크색 악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저 그림 혹시 직접 그리셨나요?”왠지 그림을 그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인은 웃으면서 손사래를 친다. “아니에요. 친구가 그려주었어요.”뒤에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음악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주인은 옥상인 듯한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한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직감적으로 그녀가 닉네임 ‘타투’ 임을 알았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얼굴이었다. 캐주얼차림에 머리는 단발이었고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안경테를 꼈는데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여기 앉을까요? 아니면 위로 올라갈까요? 춥지 않다면 옥상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그녀가 자리에 앉으려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살짝 웃으면서 올라가자고 한다. 옥상에는 이미 상당수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늘이 보이는 테라스같이 제법 운치가 있는 장소였다. 유럽의 어느 카페 같기도 한 그곳에서 그녀와의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자리에 앉아서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 “혹시 해리포터 닮았다는 말 안 들으셨나요? 너무 똑같아요.”말을 하고 보니 초면에 실수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됐다. 해리포터는 남자고 내 앞에 있는 작가는 여자가 아닌가. 눈치를 보는데 앞에 앉은 ‘작가’는 반응이 없다. 혼자서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밤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몇 개의 질문을 준비했다. 먼저 그녀의 일상이 궁금했다. 작업에 쏟는 시간은 하루 중 얼마나 될까? “작업은 깨어 있을 때 해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부터 새벽 5시~6시까지 하는 것 같아요. 그러고 자기 시작하면 보통 11시나 12시쯤 일어나죠. 그래서 늘 잠이 부족해요. 일은 오후 4시부터 저녁 10시. 손님이 많으면 11시에서 12시까지 하게 되죠.”심플하다. 일하고 작업하고 자고 그게 전부. 어떤 작업을 하는지 들어 보았다. “아직은 찾아가는 여정에 있어 제대로 된 답을 해드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 현재까지는 제 안의 색과 소리와 이미지의 세부를 기하학적인 커다란 틀 안에 쏟아내 보기도 하고, 틀을 거두어 세부의 흐름을 풀어 놓아보기도 합니다. 때론, 쏟아놓는 바닥이 캔버스가 되기도 하고, 유리창이 되기도 하고, 커다란 건물의 외벽이기도 하고, 손바닥만한 인형이 되기도 해요. 실험의 과정에 있어서 추구하는 작품의 성향을 특정하기는 어려우나, 현재는 세부의 묘사가 강한 라인 드로잉 작품 위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을 스마트 폰에서 꺼내 보여준다. 잘은 모르겠으나 클림트를 닮았다. 자세히 보니 피카소가 중년에 만난 마리 테레즈의 풍만한 모습이 살짝 보이기도 하다. 작가는 어떤 동기로 그림을 시작했을까?“어릴 적 취미였던 인형 만드는 재주를 눈여겨 본 먼 친척 언니가 그림책 편집자로 일하고 계셨고, 그 언니의 권유로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던 20대 초반에 첫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첫 책을 하며 스스로의 무모함과 무능력으로 인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힘들게 했음을 깨닫고, 공부할 길을 찾던 중, 사진을 접하게 되었고, 지인의 권유로 공연 사진 찍는 일을 시작하여 업으로 삼다가 10년이란 먼 길을 돌아 뒤늦게 최미란 작가께서 운영하시는 CM그림책 학교와 미대에 들어갔어요. 그림은 그림책 학교 입학을 계기로 시작하였고 동기는 딱히 없으나, 굳이 찾자면 머릿속에서만 머물다 사라지는 상상과 삶을 살며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감정들을 마음의 이미지와 시적인 언어로 노래하는 그림책이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위로받았던 것은 저였으며, 그때도 지금도 그림과 그림책에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이 연유가 동기이자 목적이며, 삶의 이유입니다.”부러웠다. 행복을 찾고 있다는 그 말이 나에겐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나도 오랫동안 찾아본 행복이지만 결국 매너리즘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작가’는 왠지 그 행복을 찾을 것 같았다. 곧....... 그녀가 원하는 행복을 찾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감사할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떤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았을까?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배움과 실력이 많이 부족하여 좋아하는 작가로 답을 하겠습니다. 영국의 그림책 작가인 존 버닝햄과 앤서니 브라운, 스웨덴의 마티아스 어덜순을 좋아하며, 프랑스 작가 니키 드 생팔 ( Niki de Saint Phalle)도 매력적입니다.”예상이 빗나갔다. 적어도 구스타프 클림트가 나올 줄 알았는데...그녀를 만나기 전에 좀 더 그림책 공부를 하고 왔어야 했다. 안이했던 준비가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코니 같은 카페의 분위기 탓에 어색함이 조금은 감추어진다는 사실. 마지막 잔을 부딪치며 기억에 남는 작품과 전시회에 대해서 부탁했다. “아끼는 작품은 1TH_개인전 ‘Mama’ 중 ‘Mama:엄마가 나보다 어렸던 그때_29’ 유년 시절, 엄마에 대한 기억과 엄마가 부재했던 시간의 상상을 인형으로 풀어낸 전시가 첫 개인전이었습니다. 위의 작업이 시작이자 대표작품 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작업으로, 이 작업을 하며 엄마에 대한 제 감정을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 것이 그 이유입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유년의 불행을 누구나 어렵지 않게 겪을 수 있는 경험쯤으로 치부하고 스스로의 상처를 회피해오다 어렸을 때는 너무 일찍 늙어버린 아이로, 커서는 영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아이로 살아가고 있는 자아를 이 작업을 통해 깨달았지요. 그 깨달음의 첫 걸음인 작업이라 가장 애착이 많이 갑니다.”‘작가’와의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다. 그녀가 나를 향해 애매모호한 미소를 짓고 홀연히 사라진 후 나는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에 부스러기처럼 남은 여운을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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