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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시흥에 위치한 대한주조의 김미영 대표는 전통주에 대한 깊은 열정과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어왔다. 2009년에 대한주조를 설립한 그는 일본에서의 유학생활과 사업 확장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주를 세계에 알리는 꿈을 키우고 있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생 역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김 대표가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한국식품 도매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술이 가장 큰 이윤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류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특히 한국식품을 일본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주류의 매력을 더욱 느꼈다고 전했다. 일본 유학 중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자,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작은 회사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하며 영업과 납품을 통해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보람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한국식품 도매업체를 창업하며 일본에서의 경험을 활용했다. 대한주조는 2009년 설립되었으며, 최근에는 월 7만 병의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으로 성장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영업과 홍보를 했고, 주류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죠."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자, 그는 다시 주류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있는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공부한 경험도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대한주조는 과일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딸기와 바나나 등을 활용하여 맛과 향을 모두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연막걸리는 탄산이 적고 첫맛이 묵직한 편이지만 목넘길 때는 신맛이 약간 나면서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음자들은 연막걸리에 대해 "부드러운 식감과 적당한 신맛이 조화를 이루어 음용하기 좋다"고 평가하며, 전통주로서의 매력을 느낀다고 전했다. "앞으로 연예인과 협업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싶어요. 연예인 시그니처 막걸리를 기획 중입니다."라며 자신감 있는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지금도 일본에 한국 막걸리와 소주를 판매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제 꿈은 한국의 전통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열정과 비전은 단순한 주류 생산을 넘어 한국 전통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는 전통주가 가진 매력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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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사임당양조장은 권오길 명인의 열정과 노력이 깃든 곳이다. 권 명인은 5년간의 주류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막걸리 제조에 뛰어들었으며, 강릉 출신으로서 고향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여정은 안흥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에 설립된 안흥양조장에서 김성영 선생으로부터 1년간 막걸리 제조법을 전수받았고, 이후 2대 대표인 윤한중 선생으로부터 2년간 추가로 배움을 이어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막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그는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와 사임당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권오길 명인은 강릉 지역의 전통 축제인 단오제에서 단오신주를 제조할 때, 강릉 시민들이 모아 준 쌀을 사용한다. 강릉소주를 만들 때는 풍미를 더욱 좋게 하기 위해 생쌀(강릉황금물쌀)을 이용한다. 그러나 생쌀은 발효가 매우 어려운 재료이므로, 저온 숙성 발효 기간을 10~15일로 설정하고 발효 온도를 섭씨 25~26도로 유지하며 정성을 다해 빚고 있다. 사임당양조장은 이렇게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독특한 제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전통 누룩 대신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여 발효를 진행하는데, 이는 잡균으로 인한 유통 문제를 줄이고 쾌적한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전통 누룩은 고유의 맛과 향을 제공하지만, 잡균으로 인해 술맛이 변하거나 유통 기간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면 품질이 안정적이며 유통 기간도 늘어나는 장점이 있다. 권 명인은 이러한 제조 방식을 통해 월 평균 20만 병 이상의 사임당 강릉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인의 입맛과 유통 환경에 맞는 술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급 재료와 최신 설비를 활용하여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사임당 강릉 소주도 생산하고 있으며, 다양한 곡류를 사용하여 풍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현재 권 명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조장의 운영과 제조법, 유통 등을 배우며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권 명인은 "아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더 발전된 양조장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올해에는 옥수수와 감자를 사용한 약주를 생산하기 위해 설비 시스템을 갖추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맛과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권오길 대표는 지금까지 사임당 막걸리가 자리를 잡기까지 약 1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전통 누룩도 사용해서 만들어봤지만 유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게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맛과 유통기간을 모두 잡은 사임당 막걸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권오길 명인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창의적인 접근으로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도 지역의 자부심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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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 위치한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막걸리로 지역의 주류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 양조장의 이름인 '소두방'은 '솥뚜껑'의 방언으로, 정관읍의 중심인 덕산에서 매남산을 바라보면 솥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김준영 대표는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담아내고 싶어 이 이름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김준영 대표는 약 10년간 통신업에 종사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지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만들어주시던 막걸리를 사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이어받아 진정한 전통주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소두방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현재 소두방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는 '소두방막걸리'와 '퍼플스파클링'이라는 자색고구마 막걸리 두 종류이다. 각각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살려 만들어지며,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는 자색고구마를 50% 사용하고 찹쌀과 누룩을 함께 사용하여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도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자색고구마를 직접 재배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다른 농가와의 협업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막걸리는 탄산이 강하고 색이 아름다워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김 대표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판로 확보이다. 초기에는 마케팅과 홍보가 부족했지만,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으며, 2024년 7월에 첫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그는 향후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길 원하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전통누룩과 개량누룩의 차이도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누룩은 자연 발효로 다양한 미생물이 함께 작용하여 풍미가 깊고 복합적이지만, 개량누룩은 인공 배양된 미생물만 사용하여 일관된 맛을 낸다. 김 대표는 막걸리 종류에 따라 적절히 두 가지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준영 대표는 올해 통신판매에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를 리조트의 PB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예정이며,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그는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소두방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찹쌀과 남평쌀을 50%씩 사용하여 부드럽고 깊은 맛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특히 어머니께서 직접 양조장을 찾아와 쌀을 찌고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을 도와주시는 점이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그대로 담긴 막걸리라고 자부하며, 그 특별한 맛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김준영 대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가족의 사랑과 정성을 담아내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의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부산 정관읍의 역사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담긴 특별한 이야기다. 앞으로 그의 막걸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이처럼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부산의 주류 문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김준영 대표의 열정과 가족의 사랑이 담긴 막걸리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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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여행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는 이를 실현하며 공정여행과 지속 가능한 관광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변 대표는 대안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행을 통한 교육의 시작: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 서울 상수동 카페거리에서 변형석 대표를 만났다. 그는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를 통해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는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왔다. 변 대표는 하자센터에서 7년간 청소년들과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 트래블러스맵을 설립했다. 그의 교육 방식은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방식을 실현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변 대표는 말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며 깨닫게 됩니다. 교과서 속 이론에서 벗어나 세상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몇 배 더 큰 가르침을 줍니다." 공정여행의 철학과 성공 트래블러스맵은 2010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후, 다양한 사회적 기여로 주목받았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고 친환경적 이동 수단을 활용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여행자가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첫해 매출 9억 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연 매출 6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행 상품은 전 세계 31개국에 걸쳐 있으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대표적인 공정여행 상품과 도전 변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의 대표 상품으로 ‘땍때구르르 겨울캠프’(강원도 곰배령)와 캄보디아 반띠아이치마 1박 2일 프로그램을 꼽았다. 이들 상품은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를 중시하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남미 27일 탐방과 북유럽 4개국 여행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환경과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소그룹 여행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빠르게 달리는 여행을 지양합니다. 대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그 지역의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의 철학을 설명하며 깊이 있는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드스꼴라: 여행을 통한 대안교육 트래블러스맵의 부설 여행학교인 로드스꼴라는 15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3년제 대안학교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다. 변 대표는 “로드스꼴라는 교과서 밖에서 세상을 배우는 공간”이라며, "여행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목표를 이루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로드스꼴라는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해왔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진안에서 마을 주민들과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하거나, 백제의 역사를 탐구하며 일본 교토와 오사카를 답사하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 코로나19 팬데믹은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로드스꼴라는 10기 졸업생 배출 후 문을 닫았고, 트래블러스맵은 직원 수를 2명으로 줄여야 했다. 하지만 변 대표는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는 "여행업계는 결국 회복될 것"이라고 믿으며, 특히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돈보다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실버 세대가 늘고 있다"며, 은퇴한 이들에게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남미 여행 프로그램은 완판되었으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여행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공정여행의 미래와 사회적 기여 변형석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을 통해 공정여행의 가치를 계속 확산시키고자 한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현지 회사를 설립해 지역 주민들이 관광 사업을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변 대표는 "여행자는 환경과 지역사회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장기적인 변화를 목표로 윤리적 여행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을 얻고, 타인과 교류하며 성장한다는 변 대표의 철학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위기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공정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움과 교감을 선사하는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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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이승재 대표를 만났다. 밝은 미소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한 이 대표는 지난 수년간 암 유전자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박사들과 협력해왔다. 그는 항노화와 암 예방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승재 대표는 인터뷰에서 회사의 비전과 미래 계획, 그리고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전국으로 확장 중인 제노시스DNA클리닉의 항노화 프로그램과 암 예방 연구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승재 대표는 이러한 혁신적인 연구의 중심에 서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비전과 성과 이승재 대표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주요 목표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항노화 신약 개발입니다.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유니스트의 박종화 교수, 김유미 박사, 서울대 김정용 박사, 임규성 원장 등이 참여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항노화 건강기능식품을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 제품은 현재 임상 중이며, 그 성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라고 밝혔다. 전국 확장과 글로벌 도입 제노시스DNA클리닉은 부산, 서울 압구정, 역삼, 동서울, 병점 등 주요 도시에 이미 오픈했거나 오픈 예정이며, 항노화 프로그램은 두바이와 베트남에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두바이 국립병원과 협력하여 현지에서도 우리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두바이는 사막 지역 특성상 50대 사망률이 높아 우리의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베트남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많은 의사들이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항암 연구와 치료의 새로운 접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 중이다. 이승재 대표는 “우리의 프로토콜은 암 발생 전이나 초기 암 환자들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대학병원에서 포기한 말기 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환자들이 회복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암은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방, 치료, 관리를 통해 암을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건강 비결과 항노화 프로그램의 효과 이승재 대표는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항노화 프로그램을 통해 피가 맑아지고 염증이 사라졌습니다. 면역력이 강화되면서 피부와 머리카락이 재생되고 질환도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에게 ‘회춘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규칙적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운동도 속병이 없고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죠.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 프로토콜을 통해 지금은 40대보다 더 젊고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승재 대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행지로 이탈리아 밀라노와 하와이를 추천했다. 그는 “밀라노는 역사적인 건물과 오래된 명품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큽니다. 수대를 이어온 가업과 전통을 통해 세계적인 명품으로 성장한 회사들이 밀라노에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수세기를 이어오는 전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하와이에 대해서는 “날씨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힐링에 최고 장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재 대표와의 인터뷰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혁신적인 연구와 그의 개인적인 건강 비결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연구와 개발에 열정을 쏟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승재 대표와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와 암 예방 연구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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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6월 5일 여행사 트래블빌더의 이우석(우석몬) 대표와 역삼역 커피빈에서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반바지와 끈 없는 런닝을 입고 헬멧을 든 채 나타난 그는 팔과 다리, 어깨에 멋진 타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이크를 타는군요?"라고 묻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이크와 여행의 시작 '저도 대학 졸업 후 사고가 나기 전까지 잠깐 바이크를 탔었어요.' 대학 시절 잠깐 바이크를 탔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이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이크를 타는 자유로운 그의 모습이 MZ세대의 대표적인 모습 같았다. 인터뷰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시작되었다. 그의 본명은 이우석, '우석몬'이라는 별명은 중학교 때 몬스터를 닮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 별명이 좋아서 지금까지 애칭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첫 여행의 기억 우석몬이 처음 여행을 떠난 것은 9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 중국 여행이었다. "만리장성의 일부만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그는 어린 시절 여행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경험이 여행에 대한 첫 번째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최초의 해외여행은 2015년, 삽자루 선생님께서 공짜로 보내준 유럽 여행이었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꿔놨어요. 14일 동안 유럽 6개국을 다녀왔는데 전부 기억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고, 문화 충격도 받았어요." 그는 그 여행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왜 사람들이 그렇게 큰 돈을 들여 여행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여행 전에는 300만원이면 옷이 몇 벌이고 밥이 몇 끼고,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행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어요." 네덜란드 유학과 목표의 변화 그 후 그는 3수 끝에 9등급에서 3등급, 다시 2등급으로 그리고 마침내 1등급을 달성하고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 "네덜란드가 5년 후 이민 자격을 주기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어요. 대학 3년을 마치고 2년만 버티면 이민이 가능하니까요." 그러나 그의 목표는 1년이 지나지 않아 바뀌게 되었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향수병이 생기고 한국인이 적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도 생기고 정서적으로 불편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이민을 포기하자 그는 네덜란드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수학 강사를 목표로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입학했어요. 거기서 수학을 전공했고, 대학 내내 방학 때는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아르바이트 강의를 했어요." 이우석 대표는 방학 동안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며 하루에 5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세계 일주와 여행사 설립 대학 졸업 후, 그는 세계 일주를 결심했다. "계약서를 쓰려는데 고민이 되더라구요. 내 꿈이 세계 일주인데 강사를 하면 10년 동안 여행을 못할 텐데 그러면 40이 넘게 되고 체력이 지금 같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는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2월부터 시작된 그의 세계 일주는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태국, 두바이, 터키,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 미국, 캐나다, 남미 등 총 58개국을 10개월 동안 여행했다. 귀국 후 그는 강사가 될 계획이었으나, 여행사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4년 2월, 트래블빌더라는 이름의 자유여행사를 설립했어요. 모든 상품이 완판됐고, 여행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여행을 통한 교육과 선한 영향력 이우석 대표는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한다. 그는 여행이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믿는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여행을 통한 깨달음을 전파하고 싶어요. 여행은 살아있는 교육이니까요."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거의 놀다시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9등급이었어요. 하지만 여행에 눈뜬 후 목표가 생겼어요. 이제는 저도 선생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이 대표는 여행을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자신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행의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제가 경험한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자신감과 계획 우석몬의 자신감은 치밀한 계획과 빠른 실행력에서 나왔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바로 실천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행동이 빠른 편이고,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 빠르게 이루죠. 지금까지 제가 조언한 지인들은 대부분 성공했어요." 그는 앞으로 1년 후 강사로서 돈을 벌고, 여행사의 규모도 키울 계획이다. "시기는 2025년이 되겠죠. 강남의 잘 나가는 수학 강사들은 거의 기업 수준이에요. 수백억을 벌어요. 저도 그런 강사가 되고 싶어요." 우석몬 대표와의 2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유롭고 도전적인 삶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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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서울시 풍납2동에 위치한 풍납새마을금고는 변현숙 이사장의 리더십 아래 고객과 직원을 위한 새로운 힐링공간을 마련해 주목받고 있다. 이 공간은 고객과 직원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무료나눔공간으로 회의실과 문화센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변현숙 이사장을 직접 만나,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된 동기와 운영에 대해 들어보았다. "풍납새마을금고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변현숙 이사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고객라운지를 비롯해 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까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는 단순히 금융 업무를 보러 온 고객들뿐만 아니라 풍납동 지역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나눔공간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변 이사장은 고객라운지에 걸린 다양한 작품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현재는 최석운 작가의 유쾌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방문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최 작가의 작품 전시 후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직원들을 위한 공간도 신경을 많이 썼다. 3층에 위치한 직원라운지와 문화센터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강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업무 외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변현숙 이사장은 이번 공간 조성을 통해 고객과 직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풍요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현숙 이사장은 문화센터 뿐 아니라 4층 회의실도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 놓았다. 이러한 공간 조성을 통해 풍납새마을금고가 단순한 금융 기관을 넘어 지역 사회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객과 직원, 그리고 지역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그녀의 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아 힐링과 문화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 이용시간 : 오전 9시~오후 4시 *회의실 이용문의(무료): 풍납새마을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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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수와 노화의 비밀, 박상철 교수에게 듣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대표 이승재)는 3월 18일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 병원에서 노화와 장수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박상철 교수로부터 최근의 연구 성과와 메트포민에 대해 들어 보았다. 교수님, 노화와 장수 연구로 암 예방 프로토콜을 개발 중이신가요? 최근의 연구 성과와 메트포민에 대해 알려주세요. 박상철 교수: 네, 저는 노화와 장수를 연구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요인을 찾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최근에는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과 국민건강 자료를 활용하여 개인 맞춤형 건강식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암 예방을 위한 프로토콜 개발과 제노시스 암 예측 클리닉과의 협력을 통해 국민의 건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메트포민에 대해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 건가요? 박상철 교수: 메트포민은 알려진 비용 효율적인 약물로 알려져 있지만, 연구는 여전히 제한적인 상태입니다. 특허 확보가 어려워 대기업이나 제약회사들이 투자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메트포민과 같은 저렴하고 효과적인 약물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특허가 보장되지 않는 약물에 대한 연구 환경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박상철 교수님은 암 예방 프로토콜 개발을 위해 제노시스 암예측 클리닉과 협력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알려주세요. 박상철 교수: 맞습니다. 저는 김정용 원장님과 제노시스 암예측 클리닉과의 협력을 통해 암 예방 프로토콜을 개발 중입니다. 이는 암 예방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 협력을 통해 환자들의 건강한 노년과 암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교수님의 연구와 노력은 어떻게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기여하고 있을까요? 박상철 교수: 제 연구는 노화와 장수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는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발견된 건강 유지의 비결을 일반 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진행 중인 메트포민 연구는 이 약물의 잠재력을 탐색하여, 기존의 치료 방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노화 관련 질병의 예방 및 관리를 위한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제공하며,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을 연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진행하는 개인 맞춤형 건강식품 개발 프로젝트는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여 최적의 건강식품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건강 관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건강 관리 방식에 혁신을 가져오며,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의 김정용 원장님과 암예방프로토콜을 위해 어떤 협업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상철 교수: 제노시스 암 예측 클리닉과의 협력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협력을 통해 개발된 암 예방 프로토콜은 암 발병의 위험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암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질병의 예방과 건강한 생활 습관의 증진에 중점을 두고 있어, 한국 사회의 건강한 노년을 위한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연구와 노력은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건강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방법과 접근을 모색하며 한국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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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종화 교수와의 대화, 암 진단의 새로운 지평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게놈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종화 교수는 최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와 협업으로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한 암 진단 방법의 혁신적 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조직 생검에 비해 부담이 적고, 암의 정확한 진단 및 치료 과정 모니터링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특히, 이 기술은 암의 조기 발견을 가능하게 하여 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으며, 환자의 삶의 질 유지에도 기여할 것이 예상된다. 박종화 교수는 현재 연구 단계에 있으며,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한 정확도와 안정성의 입증, 의료계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상철 교수와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 김정용 원장 그리고 박종화 교수와 연구팀은 암 진단과 치료의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박종화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교수님,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암 진단과 관련된 혁신적인 연구에 대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우선, 교수님께서는 이 분야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박종화 교수: 네, 저의 연구는 모두 과학자들과 현대 생물학의 기초가 되는 과학적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암 진단과 관련하여, 우리는 환자가 암에 걸렸는지, 걸렸다면 어떤 단계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합니다. 이는 치료의 효과를 측정하고, 필요한 경우 치료 방법을 조정하는 데 중요합니다. 이 연구에 있어서 에피제네틱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에피제네틱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박종화 교수: 물론입니다. 에피제네틱스는 DNA의 변화 없이 유전자의 활성화 상태를 조절하는 연구 분야입니다. 쌍둥이 쥐의 연구를 예로 들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외형이나 건강 상태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는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의 표현을 조절하는 메틸기 같은 요소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구가 암 진단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종화 교수: 우리의 연구는 혈액 속의 종양 DNA를 분석하여 암을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암 세포는 특정한 메틸화 패턴을 가지고 있어, 이를 통해 암의 존재 여부와 종류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개발된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해, 혈액만으로도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액체 생검 기술은 어떤 기술인가요? 박종화 교수: 이 기술은 혈액 샘플을 통해 종양 DNA의 메틸화 패턴을 분석합니다. 과거에는 특정 메틸화 패턴을 검출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지만, 최신 기술을 통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비침습적 방법으로 암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 방식이 암 치료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나요? 박종화 교수: 이러한 기술의 진보는 암 치료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암 진단 방법은 대부분 조직 생검에 의존해 왔습니다. 이는 환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조직 샘플링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욱 정확하고 신속하게 암을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술은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암의 발전 상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교수님의 연구가 앞으로 암 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박종화 교수: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의 박상철 교수님과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의 김정용 원장님 그리고 저희 연구팀은 암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치료 과정을 개선하여 환자의 생존율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단 기술의 발전은 암의 조기 발견을 가능하게 하며, 조기 발견은 암의 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비침습적인 진단 방법은 환자의 부담을 줄이고,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연구가 실제 임상에 적용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박종화 교수: 현재는 이 기술이 연구 단계에 있으며,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검증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해 이 기술의 정확도와 안정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실제 임상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의료계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와 저희 팀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암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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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이사...암 예방과 암예측을 통한 치료 혁명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암을 미리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다면 암으로 인한 막대한 치료비용과 시간 등을 절약하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일이 가능해 진다.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적으로도 암을 예방할 수 있다면 엄청난 경제적 낭비와 인력손실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암을 정복하는 최우선 과제는 암을 예방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이렇게 우리정부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암예측과 암예방을 연구하는데 올인하는 기업이다. 이 연구소의 이승재 대표를 만나서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암예측과 암예방을 위한 연구가 어느정도 진행되었는지 직접 들어보았다. (다음은 이승재 대표이사와의 1문 1답 전문) 대표님.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어떤 연구를 하는 곳입니까? [이승재 대표] 전세계 과학자와 의료인들이 암을 예방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만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과 예측을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유전자 및 게놈 검사를 통해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분석하고, 암과 관련된 유전적 위험 요인을 조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조기 진단을 통해 암 발병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암예방과 암예측을 연구하는 연구진은 어떻게 됩니까? [이승재 대표] 네, 현재 박종화 교수님, 박상철 교수님, 그리고 김정용 원장님의 협업을 통해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 및 치료 프로토콜을 연구 및 개발 중입니다. 이를 통해 앞서 말씀드린 개인 맞춤형 치료 및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암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고, 사전에 질병을 예측하여 조기에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박종화 교수님이 연구소에서 하시는 일은 주로 무엇입니까? [이승재 대표]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박종화 교수님은 게놈검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주로 간편한 혈액검사를 통해 개인의 유전자 정보와 건강 상태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예방 및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는 개인의 게놈 정보를 분석하여 암 발생 위험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예방 전략을 수립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박상철 교수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이승재 대표] 박상철 교수님은 장수와 노화 연구의 권위자로서,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노화 과정과 암 발생 간의 연관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님의 연구는 암 예방을 위한 생활 습관과 영양 섭취 방안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장수와 건강한 노화를 지원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는 박 교수님의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건강 기능 식품과 치료약을 개발하고, 임상에 적용하여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암예측 클리닉 김정용 원장님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이승재 대표] 김정용 원장은 암전문으로서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암 환자를 위한 항암 치료 전략 개발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암의 종류와 단계에 따른 맞춤형 치료 방안을 연구하며,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한 표적 치료와 면역 치료의 효과를 최적화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환자와 방문 예정인 잠재고객들은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이승재 대표] 환자와 이용 예정인 고객들께서는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연구소가 세계적 권위자인 박종화 교수님과 박상철 교수님의 지도 아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고 있으며, 우리의 연구와 개발에 참여하여 고품질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김정용 원장님과의 협력을 통해 실제 환자들에게 직접 적용되어 검증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환자들의 치료와 예방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통해 어떻게 환자들의 치료 및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이승재 대표] 우리 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통해 환자들은 개인 맞춤형 치료 및 예방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전자 및 게놈 분석을 통해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암과 관련된 유전적 위험 요인을 조사하여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합니다. 또한 장수 및 노화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건강 기능 식품과 치료약을 개발하여 환자들의 치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환자들은 질병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여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조기에 치료를 받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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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부도의 새로운 별, 더헤븐 리조트...김민정 총괄기획이사와의 대화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초겨울의 바다, 그곳에서 바람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세차게 불어옵니다. 하지만 그 바람조차도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무력해집니다. 바로 그 순간, 시간이 마법을 부리듯, 옅은 핑크색 노을이 점차 짙은 핏빛으로 변해갑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일몰이 아니라, 마치 자연이 그려내는 살아있는 그림과도 같습니다. 더헤븐 리조트를 둘러싼 그린은 이 노을빛 아래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나며, 초록과 빨강의 조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 순간, 리조트의 풍경은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마치 예술작품처럼 느껴집니다. 노을이 그린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색의 조화는,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시간과 같습니다. 이곳에서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합니다. 노을이 점점 깊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일상의 소란과 걱정들이 잠시 멈추는 듯합니다. 더헤븐 리조트의 이 특별한 순간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휴식과 평온을 선사합니다. 대한민국 대부도의 심장부에 위치한 7성급 더헤븐 리조트는 단순한 휴양지를 넘어 지속 가능한 관광과 문화의 교차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김민정 총괄기획이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리조트의 경영 철학, 공간 기획, 그리고 대부도의 베이스캠프이자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서의 구상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김민정 이사는 '혁신과 지속 가능성'을 리조트의 핵심 경영 철학으로 꼽았습니다. 더헤븐 리조트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닌, 지속 가능한 관광과 문화의 교차점을 추구하며, 이 철학은 리조트의 모든 서비스와 운영에 반영되어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김 이사는 공간기획자로서 '자연과의 조화'와 '현대적 편안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 두 가지 요소가 리조트의 독특한 매력을 창출한다고 말합니다. 더헤븐 리조트의 특징에 대해 김 이사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라는 위치적 상징성"을 강조했습니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도심에서 벗어나 싱그러운 골프코스와 서해 바다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이 더헤븐 리조트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가치 위에 머무르다"는 슬로건 아래, 럭셔리한 객실 컨디션과 부대시설을 통해 고객들에게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제부도와 서해안 관광의 베이스캠프로서의 강점에 대해, 김 이사는 더헤븐 리조트의 지정학적 위치를 강조했습니다. "물론 제일 중요한건 더헤븐리조트를 꼼꼼히 둘러보는 것입니다. 혹시 산티에고 순례길 같은 산책로와 골프장 초입에 위치한 방주교회를 그냥 지나치지않았나 묻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제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의 2011년 유작으로 물 위에 떠 있는 방주를 형상화 한 건축물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방주교회는 관광지로 인식하고 있지만 대부도의 방주교회는 잘 알지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2024년부터는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통해 방문해주시는 고객분들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들어가 서해안 관광의 베이스캠프로의 강점은 당연히 지정학적 위치입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인 대부도에 위치한 더헤븐리조트의 서쪽으로는 선재도, 영흥도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해 있으며 서해안 라인을 따라 바다를 끼고 달리다 제부도를 지나 시화방조제길을 오르면 아산과 당진까지 해안선을 따라 달릴 수 있는 드라이브코스이기도 합니다." 복합리조트로서의 차별점에 대해 김 이사는 "고퀄리티의 다양한 서비스"를 첫 번째 차별점으로 꼽았습니다. 골프리조트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더헤븐 리조트의 서비스 철학입니다. 겨울 이벤트에 대해서는, 올해 여름 리조트로서 첫 영업을 시작한 만큼, 하드웨어적인 셀렉션보다는 감성적인 삶과 휴식에 초점을 맞춘 이벤트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올유캔드링크와인" 콘셉트의 이벤트와 "드로잉 스튜디오 온기"의 출시 등을 앞두고 있어, 고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글로벌 명품 숙소로서의 발전 전략에 대해 김 이사는 "고유한 문화 경험"과 "최상의 서비스 품질"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전략은 국내외 고객들에게 더헤븐만의 독특한 매력을 전달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입니다. 또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 가능한 관광"과 "혁신적인 고객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러한 혁신은 리조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세계적인 명성을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지속 가능한 경영과 미래 전략에 대해서는 "환경 친화적인 운영"과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주요 전략으로 내세웠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리조트의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김민정 이사는 대부도의 주요 관광지를 더헤븐 리조트와 연결하여 소개했습니다. 대부해솔길은 아름다운 해변과 숲길로 유명하며, 구봉도 낙조전망대에서는 환상적인 일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선재도 목섬은 그림 같은 풍경과 조용한 해변으로 유명하고, 탄도항과 누에섬은 신선한 해산물과 아름다운 해변을 제공합니다. 바다향기테마파크는 다양한 해양 생물과 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이러한 명소들은 더헤븐 리조트가 대부도의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인터뷰 마지막 질문으로 더헤븐 리조트의 2024년에 대해 미리 들어보았습니다. 2024년 더헤븐 리조트에 대한 목표와 비전에 대해 김 이사는 "호텔운영에 관심을 가지고 마케팅, 홍보, 브랜딩과 현장운영까지 직접 참여한 것 자체가 이제 6개월 남짓이라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고 계획이란 단어를 쓰기에도 보족함이 많은 걸 알기에 부끄럽기도 합니다 . 다만 흔들리지않고 올곧게 이끌고 나가려는 부분은 '가치위에 머무르다'는 슬로건의 진정성을 고객의 경험을 통해 알리는 일입니다. 이 일이 조금이라도 손에 익으면 바지락 칼국수와 조개구이만으로 회자되던 대부도를 서해의 짙은 노을을 바라보며 그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더헤븐리조트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는 리마크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김민정 총괄기획이사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더헤븐 리조트가 대부도의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서,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반영한 프로그램과 다양한 문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콘텐츠는 지역사회와 리조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됩니다. 더헤븐 리조트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와 독특한 문화 경험을 제공하며, 각각의 방문을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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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의 꿈을 실현하는 여행...작은별여행사, 한동철 대표의 '우아한 여행'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작은별여행사의 한동철 대표는 최근 논현동에서 역삼동으로 사무실을 확장 이전했다. 이번 이전은 코로나19로 인한 비상경영의 마침표를 찍고, 2024년 여행업계의 정상화를 향한 첫걸음으로 해석된다. 한 대표는 이번 확장 이전이 여행 상품 개발과 인력 증원의 필요성에 의해 추진되었다고 밝혔다. "24시간이 부족하다"는 그의 말에서는 여행업계의 빠른 회복과 함께, 작은별여행사의 새로운 도약을 향한 열정이 느껴진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한동철 대표로부터 ‘작은별여행사’의 어른을 위한 우아한 여행이 무엇인지 자세히 들어보았다. 작은별여행사는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맞춤형 여행을 제공하는 전문 여행사로, '어른들의 우아한 여행'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우며 차별화된 여행 경험을 선사한다. 한동철 대표는 30대에 보시를 제일 많이 한다는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영감을 받아 이 나라의 아름다움을 한국에 소개하고자 여행사를 창업했다. 그후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현재는 남미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4년부터 남미여행을 기획하면서 배낭여행사와 겹치지 않게 주 타겟층을 60대 어른들로 잡고, 어른들에게 어울리는 일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산경험을 덜 할수 있게 쿠스코(3000미터)에서 숙박하지 않고, 우루밤바(2700미터)에서 연박을 하며 1일투어로 마추피추를 다녀오는 일정은 그때만해도 시도되지 않던 마추피추 일정이었습니다. 2년여간 남미여행을 기획하면서 나온 저희들의 슬로건이 바로 ‘어른들의 우아한여행’이었습니다.” 이렇게 작은별여행사는 60세 이후 은퇴자들이 대부분인 고객의 체력과 편안함을 고려하여 일정을 구성한다. 연박을 통해 대도시에서의 휴식을 보장하고, 장거리 이동과 야간버스 이동을 피하는 것이 한 대표의 전략이다. 고객들의 여행 경험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작은별여행사의 철학이다. “주 고객은 은퇴하신 60세 이상의 어른들입니다. 일정을 짧게하면, 찍고찍고 다녀야 하므로 어른들이 힘들어 할 수 있습니다. 이분들의 체력을 배려해야 해서 일정은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하려고 신경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요 대도시에서는 연박내지 3박을 하며 숙박을 길게 잡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장거리 이동을 피하고, 절대로 야간버스 이동은 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잡고 모든 상품을 운영중에 있습니다.” 작은별여행사는 '세미패키지' 방식을 통해 여행자들의 자유로운 여행을 가능하게 하며, '노쇼핑, 노옵션' 정책으로 고객들에게 순수한 여행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러한 정책은 고객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재구매로 이어지는 높은 비율을 자랑한다. "일부 자유일정을 할수 없는 몽골이나 이집트처럼 설명을 꼭 필요한 지역들의 경우엔 풀패키지로 진행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저희는 ‘세미패키지’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인솔자와 동행하며 자유롭게 먹고싶은 것을 먹을수 있게 식당안내를 하고, 할거리들을 추천투어 리스트로 제공하여 강제옵션이 아닌 자유롭게 선택 하실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우리는 여행할 시간도 부족합니다’라는 문구로 쇼핑센터를 들어가야 하는 저가 패키지는 피하고 있습니다. 현지 랜드사의 지상비 및 호텔비도 절대 후불로 하지 않고, 미리 선납하여 협력업체들과 안정적으로 행사를 꾸려가고 있구요. 노옵션이라는건 노’강제옵션’을 말하는데요 지상비를 제대로 주기 때문에 굳이 현지에서 옵션을 별도로 팔아야하는 압박도 없게 하였으며 가이드와 더불어 모든 여행스탭들은 오로지 손님들의 여행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여행방식은 손님들의 기억에 남고 재구매로 이어지는 고객님들의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특별한 여행을 구현하기 위해, 작은별여행사는 60세 이상의 고객들이 또래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여행을 기획한다. 아르헨티나에서의 아사도 파티와 같은 이벤트는 그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어린왕자의 '소행성 B612'는 각자의 꿈을 실현하는 여행으로, 고객들이 자신만의 특별한 여행지를 발견하도록 지원하고 격려해준다. "저희 여행사의 이름과 어울리게 어린왕자의 소행성 B612는 여행자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여행자들이 꿈꾸는 곳을 개척하고, ‘참 좋았다’는 한마디를 해주시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B612로 가고자 하는 꿈이 바로 어른들의 우아한 여행을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미상품을 진행하던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우유니 소금사막에서의 태극기 타프 아래 식사와 고산지대에서의 누룽지 제공 등이 있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는 고객들에게 '어른들의 우아한 여행'을 실현하는 작은별여행사만의 서비스이다. "우유니 소금사막에 대형 태극기 타프를 설치하여 그늘을 만들고, 그 아래 멋지게 식사 테이블을 만들어 잊을 수 없는 점심을 준비하고, 4000미터 고산에서 힘드실 때 아침에 든든하게 누룽지를 내어드리는 것이 말로는 쉬웠지만, 모든 팀들에게 똑같이 구현을 해내야 함으로 현지 사람들을 교육하는건 쉽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많은 팀들의 행사를 하면서 숙달되어 잘 해내고 있어 너무 뿌듯합니다. 이 외에도 파타고니아 트레킹을 떠날 때, 빙하투어를 갈 때 김밥을 주문하여 드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또한 작은별 스탭들만이 챙길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인 것 같습니다. 이런 하나하나의 노력들이 모여 어른들의 우아한 여행을 만들어지는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대표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2024년부터는 모든 여행상품을 정상적으로 출발일을 오픈하고 가까운 중국 운남/사천을 비롯하여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등 테마여행 상품들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여행사의 주요 고객인 58년~60년 어른들이 은퇴하는 2026년까지 특수지역 여행업계를 선도하여 손님들에게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단일여행사 남미여행 송출 2000명시대를 열고자 모든 직원들이 올시즌 1200명의 남미여행을 잘 치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한동철 대표의 철학과 작은별여행사의 미래 지향점은 단순한 여행의 경험을 넘어서, 은퇴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장을 열어주는 꿈의 여정을 제공하는 것이다. '어른들의 우아한 여행'이라는 슬로건 아래, 그들이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우정과 추억을 만들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여행을 기획하는 작은별여행사의 노력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여행업계의 정상화를 위해 사무실 확장과 인력 증원에 힘쓰는 한동철 대표의 열정은, 이 여행사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어가길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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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시흥에 위치한 대한주조의 김미영 대표는 전통주에 대한 깊은 열정과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어왔다. 2009년에 대한주조를 설립한 그는 일본에서의 유학생활과 사업 확장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주를 세계에 알리는 꿈을 키우고 있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생 역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김 대표가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한국식품 도매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술이 가장 큰 이윤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류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특히 한국식품을 일본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주류의 매력을 더욱 느꼈다고 전했다. 일본 유학 중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자,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작은 회사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하며 영업과 납품을 통해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보람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한국식품 도매업체를 창업하며 일본에서의 경험을 활용했다. 대한주조는 2009년 설립되었으며, 최근에는 월 7만 병의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으로 성장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영업과 홍보를 했고, 주류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죠."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자, 그는 다시 주류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있는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공부한 경험도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대한주조는 과일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딸기와 바나나 등을 활용하여 맛과 향을 모두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연막걸리는 탄산이 적고 첫맛이 묵직한 편이지만 목넘길 때는 신맛이 약간 나면서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음자들은 연막걸리에 대해 "부드러운 식감과 적당한 신맛이 조화를 이루어 음용하기 좋다"고 평가하며, 전통주로서의 매력을 느낀다고 전했다. "앞으로 연예인과 협업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싶어요. 연예인 시그니처 막걸리를 기획 중입니다."라며 자신감 있는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지금도 일본에 한국 막걸리와 소주를 판매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제 꿈은 한국의 전통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열정과 비전은 단순한 주류 생산을 넘어 한국 전통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는 전통주가 가진 매력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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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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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사임당양조장은 권오길 명인의 열정과 노력이 깃든 곳이다. 권 명인은 5년간의 주류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막걸리 제조에 뛰어들었으며, 강릉 출신으로서 고향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여정은 안흥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에 설립된 안흥양조장에서 김성영 선생으로부터 1년간 막걸리 제조법을 전수받았고, 이후 2대 대표인 윤한중 선생으로부터 2년간 추가로 배움을 이어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막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그는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와 사임당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권오길 명인은 강릉 지역의 전통 축제인 단오제에서 단오신주를 제조할 때, 강릉 시민들이 모아 준 쌀을 사용한다. 강릉소주를 만들 때는 풍미를 더욱 좋게 하기 위해 생쌀(강릉황금물쌀)을 이용한다. 그러나 생쌀은 발효가 매우 어려운 재료이므로, 저온 숙성 발효 기간을 10~15일로 설정하고 발효 온도를 섭씨 25~26도로 유지하며 정성을 다해 빚고 있다. 사임당양조장은 이렇게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독특한 제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전통 누룩 대신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여 발효를 진행하는데, 이는 잡균으로 인한 유통 문제를 줄이고 쾌적한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전통 누룩은 고유의 맛과 향을 제공하지만, 잡균으로 인해 술맛이 변하거나 유통 기간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면 품질이 안정적이며 유통 기간도 늘어나는 장점이 있다. 권 명인은 이러한 제조 방식을 통해 월 평균 20만 병 이상의 사임당 강릉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인의 입맛과 유통 환경에 맞는 술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급 재료와 최신 설비를 활용하여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사임당 강릉 소주도 생산하고 있으며, 다양한 곡류를 사용하여 풍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현재 권 명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조장의 운영과 제조법, 유통 등을 배우며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권 명인은 "아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더 발전된 양조장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올해에는 옥수수와 감자를 사용한 약주를 생산하기 위해 설비 시스템을 갖추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맛과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권오길 대표는 지금까지 사임당 막걸리가 자리를 잡기까지 약 1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전통 누룩도 사용해서 만들어봤지만 유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게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맛과 유통기간을 모두 잡은 사임당 막걸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권오길 명인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창의적인 접근으로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도 지역의 자부심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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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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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 위치한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막걸리로 지역의 주류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 양조장의 이름인 '소두방'은 '솥뚜껑'의 방언으로, 정관읍의 중심인 덕산에서 매남산을 바라보면 솥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김준영 대표는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담아내고 싶어 이 이름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김준영 대표는 약 10년간 통신업에 종사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지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만들어주시던 막걸리를 사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이어받아 진정한 전통주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소두방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현재 소두방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는 '소두방막걸리'와 '퍼플스파클링'이라는 자색고구마 막걸리 두 종류이다. 각각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살려 만들어지며,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는 자색고구마를 50% 사용하고 찹쌀과 누룩을 함께 사용하여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도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자색고구마를 직접 재배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다른 농가와의 협업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막걸리는 탄산이 강하고 색이 아름다워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김 대표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판로 확보이다. 초기에는 마케팅과 홍보가 부족했지만,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으며, 2024년 7월에 첫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그는 향후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길 원하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전통누룩과 개량누룩의 차이도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누룩은 자연 발효로 다양한 미생물이 함께 작용하여 풍미가 깊고 복합적이지만, 개량누룩은 인공 배양된 미생물만 사용하여 일관된 맛을 낸다. 김 대표는 막걸리 종류에 따라 적절히 두 가지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준영 대표는 올해 통신판매에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를 리조트의 PB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예정이며,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그는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소두방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찹쌀과 남평쌀을 50%씩 사용하여 부드럽고 깊은 맛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특히 어머니께서 직접 양조장을 찾아와 쌀을 찌고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을 도와주시는 점이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그대로 담긴 막걸리라고 자부하며, 그 특별한 맛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김준영 대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가족의 사랑과 정성을 담아내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의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부산 정관읍의 역사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담긴 특별한 이야기다. 앞으로 그의 막걸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이처럼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부산의 주류 문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김준영 대표의 열정과 가족의 사랑이 담긴 막걸리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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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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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여행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는 이를 실현하며 공정여행과 지속 가능한 관광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변 대표는 대안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행을 통한 교육의 시작: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 서울 상수동 카페거리에서 변형석 대표를 만났다. 그는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를 통해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는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왔다. 변 대표는 하자센터에서 7년간 청소년들과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 트래블러스맵을 설립했다. 그의 교육 방식은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방식을 실현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변 대표는 말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며 깨닫게 됩니다. 교과서 속 이론에서 벗어나 세상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몇 배 더 큰 가르침을 줍니다." 공정여행의 철학과 성공 트래블러스맵은 2010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후, 다양한 사회적 기여로 주목받았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고 친환경적 이동 수단을 활용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여행자가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첫해 매출 9억 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연 매출 6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행 상품은 전 세계 31개국에 걸쳐 있으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대표적인 공정여행 상품과 도전 변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의 대표 상품으로 ‘땍때구르르 겨울캠프’(강원도 곰배령)와 캄보디아 반띠아이치마 1박 2일 프로그램을 꼽았다. 이들 상품은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를 중시하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남미 27일 탐방과 북유럽 4개국 여행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환경과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소그룹 여행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빠르게 달리는 여행을 지양합니다. 대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그 지역의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의 철학을 설명하며 깊이 있는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드스꼴라: 여행을 통한 대안교육 트래블러스맵의 부설 여행학교인 로드스꼴라는 15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3년제 대안학교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다. 변 대표는 “로드스꼴라는 교과서 밖에서 세상을 배우는 공간”이라며, "여행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목표를 이루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로드스꼴라는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해왔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진안에서 마을 주민들과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하거나, 백제의 역사를 탐구하며 일본 교토와 오사카를 답사하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 코로나19 팬데믹은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로드스꼴라는 10기 졸업생 배출 후 문을 닫았고, 트래블러스맵은 직원 수를 2명으로 줄여야 했다. 하지만 변 대표는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는 "여행업계는 결국 회복될 것"이라고 믿으며, 특히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돈보다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실버 세대가 늘고 있다"며, 은퇴한 이들에게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남미 여행 프로그램은 완판되었으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여행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공정여행의 미래와 사회적 기여 변형석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을 통해 공정여행의 가치를 계속 확산시키고자 한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현지 회사를 설립해 지역 주민들이 관광 사업을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변 대표는 "여행자는 환경과 지역사회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장기적인 변화를 목표로 윤리적 여행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을 얻고, 타인과 교류하며 성장한다는 변 대표의 철학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위기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공정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움과 교감을 선사하는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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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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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이승재 대표를 만났다. 밝은 미소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한 이 대표는 지난 수년간 암 유전자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박사들과 협력해왔다. 그는 항노화와 암 예방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승재 대표는 인터뷰에서 회사의 비전과 미래 계획, 그리고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전국으로 확장 중인 제노시스DNA클리닉의 항노화 프로그램과 암 예방 연구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승재 대표는 이러한 혁신적인 연구의 중심에 서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비전과 성과 이승재 대표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주요 목표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항노화 신약 개발입니다.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유니스트의 박종화 교수, 김유미 박사, 서울대 김정용 박사, 임규성 원장 등이 참여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항노화 건강기능식품을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 제품은 현재 임상 중이며, 그 성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라고 밝혔다. 전국 확장과 글로벌 도입 제노시스DNA클리닉은 부산, 서울 압구정, 역삼, 동서울, 병점 등 주요 도시에 이미 오픈했거나 오픈 예정이며, 항노화 프로그램은 두바이와 베트남에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두바이 국립병원과 협력하여 현지에서도 우리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두바이는 사막 지역 특성상 50대 사망률이 높아 우리의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베트남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많은 의사들이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항암 연구와 치료의 새로운 접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 중이다. 이승재 대표는 “우리의 프로토콜은 암 발생 전이나 초기 암 환자들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대학병원에서 포기한 말기 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환자들이 회복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암은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방, 치료, 관리를 통해 암을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건강 비결과 항노화 프로그램의 효과 이승재 대표는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항노화 프로그램을 통해 피가 맑아지고 염증이 사라졌습니다. 면역력이 강화되면서 피부와 머리카락이 재생되고 질환도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에게 ‘회춘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규칙적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운동도 속병이 없고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죠.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 프로토콜을 통해 지금은 40대보다 더 젊고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승재 대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행지로 이탈리아 밀라노와 하와이를 추천했다. 그는 “밀라노는 역사적인 건물과 오래된 명품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큽니다. 수대를 이어온 가업과 전통을 통해 세계적인 명품으로 성장한 회사들이 밀라노에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수세기를 이어오는 전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하와이에 대해서는 “날씨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힐링에 최고 장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재 대표와의 인터뷰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혁신적인 연구와 그의 개인적인 건강 비결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연구와 개발에 열정을 쏟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승재 대표와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와 암 예방 연구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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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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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6월 5일 여행사 트래블빌더의 이우석(우석몬) 대표와 역삼역 커피빈에서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반바지와 끈 없는 런닝을 입고 헬멧을 든 채 나타난 그는 팔과 다리, 어깨에 멋진 타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이크를 타는군요?"라고 묻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이크와 여행의 시작 '저도 대학 졸업 후 사고가 나기 전까지 잠깐 바이크를 탔었어요.' 대학 시절 잠깐 바이크를 탔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이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이크를 타는 자유로운 그의 모습이 MZ세대의 대표적인 모습 같았다. 인터뷰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시작되었다. 그의 본명은 이우석, '우석몬'이라는 별명은 중학교 때 몬스터를 닮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 별명이 좋아서 지금까지 애칭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첫 여행의 기억 우석몬이 처음 여행을 떠난 것은 9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 중국 여행이었다. "만리장성의 일부만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그는 어린 시절 여행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경험이 여행에 대한 첫 번째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최초의 해외여행은 2015년, 삽자루 선생님께서 공짜로 보내준 유럽 여행이었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꿔놨어요. 14일 동안 유럽 6개국을 다녀왔는데 전부 기억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고, 문화 충격도 받았어요." 그는 그 여행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왜 사람들이 그렇게 큰 돈을 들여 여행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여행 전에는 300만원이면 옷이 몇 벌이고 밥이 몇 끼고,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행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어요." 네덜란드 유학과 목표의 변화 그 후 그는 3수 끝에 9등급에서 3등급, 다시 2등급으로 그리고 마침내 1등급을 달성하고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 "네덜란드가 5년 후 이민 자격을 주기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어요. 대학 3년을 마치고 2년만 버티면 이민이 가능하니까요." 그러나 그의 목표는 1년이 지나지 않아 바뀌게 되었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향수병이 생기고 한국인이 적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도 생기고 정서적으로 불편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이민을 포기하자 그는 네덜란드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수학 강사를 목표로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입학했어요. 거기서 수학을 전공했고, 대학 내내 방학 때는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아르바이트 강의를 했어요." 이우석 대표는 방학 동안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며 하루에 5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세계 일주와 여행사 설립 대학 졸업 후, 그는 세계 일주를 결심했다. "계약서를 쓰려는데 고민이 되더라구요. 내 꿈이 세계 일주인데 강사를 하면 10년 동안 여행을 못할 텐데 그러면 40이 넘게 되고 체력이 지금 같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는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2월부터 시작된 그의 세계 일주는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태국, 두바이, 터키,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 미국, 캐나다, 남미 등 총 58개국을 10개월 동안 여행했다. 귀국 후 그는 강사가 될 계획이었으나, 여행사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4년 2월, 트래블빌더라는 이름의 자유여행사를 설립했어요. 모든 상품이 완판됐고, 여행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여행을 통한 교육과 선한 영향력 이우석 대표는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한다. 그는 여행이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믿는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여행을 통한 깨달음을 전파하고 싶어요. 여행은 살아있는 교육이니까요."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거의 놀다시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9등급이었어요. 하지만 여행에 눈뜬 후 목표가 생겼어요. 이제는 저도 선생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이 대표는 여행을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자신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행의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제가 경험한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자신감과 계획 우석몬의 자신감은 치밀한 계획과 빠른 실행력에서 나왔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바로 실천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행동이 빠른 편이고,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 빠르게 이루죠. 지금까지 제가 조언한 지인들은 대부분 성공했어요." 그는 앞으로 1년 후 강사로서 돈을 벌고, 여행사의 규모도 키울 계획이다. "시기는 2025년이 되겠죠. 강남의 잘 나가는 수학 강사들은 거의 기업 수준이에요. 수백억을 벌어요. 저도 그런 강사가 되고 싶어요." 우석몬 대표와의 2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유롭고 도전적인 삶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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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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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서울시 풍납2동에 위치한 풍납새마을금고는 변현숙 이사장의 리더십 아래 고객과 직원을 위한 새로운 힐링공간을 마련해 주목받고 있다. 이 공간은 고객과 직원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무료나눔공간으로 회의실과 문화센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변현숙 이사장을 직접 만나,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된 동기와 운영에 대해 들어보았다. "풍납새마을금고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변현숙 이사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고객라운지를 비롯해 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까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는 단순히 금융 업무를 보러 온 고객들뿐만 아니라 풍납동 지역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나눔공간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변 이사장은 고객라운지에 걸린 다양한 작품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현재는 최석운 작가의 유쾌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방문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최 작가의 작품 전시 후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직원들을 위한 공간도 신경을 많이 썼다. 3층에 위치한 직원라운지와 문화센터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강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업무 외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변현숙 이사장은 이번 공간 조성을 통해 고객과 직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풍요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현숙 이사장은 문화센터 뿐 아니라 4층 회의실도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 놓았다. 이러한 공간 조성을 통해 풍납새마을금고가 단순한 금융 기관을 넘어 지역 사회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객과 직원, 그리고 지역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그녀의 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아 힐링과 문화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 이용시간 : 오전 9시~오후 4시 *회의실 이용문의(무료): 풍납새마을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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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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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수와 노화의 비밀, 박상철 교수에게 듣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대표 이승재)는 3월 18일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 병원에서 노화와 장수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박상철 교수로부터 최근의 연구 성과와 메트포민에 대해 들어 보았다. 교수님, 노화와 장수 연구로 암 예방 프로토콜을 개발 중이신가요? 최근의 연구 성과와 메트포민에 대해 알려주세요. 박상철 교수: 네, 저는 노화와 장수를 연구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요인을 찾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최근에는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과 국민건강 자료를 활용하여 개인 맞춤형 건강식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암 예방을 위한 프로토콜 개발과 제노시스 암 예측 클리닉과의 협력을 통해 국민의 건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메트포민에 대해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 건가요? 박상철 교수: 메트포민은 알려진 비용 효율적인 약물로 알려져 있지만, 연구는 여전히 제한적인 상태입니다. 특허 확보가 어려워 대기업이나 제약회사들이 투자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메트포민과 같은 저렴하고 효과적인 약물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특허가 보장되지 않는 약물에 대한 연구 환경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박상철 교수님은 암 예방 프로토콜 개발을 위해 제노시스 암예측 클리닉과 협력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알려주세요. 박상철 교수: 맞습니다. 저는 김정용 원장님과 제노시스 암예측 클리닉과의 협력을 통해 암 예방 프로토콜을 개발 중입니다. 이는 암 예방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 협력을 통해 환자들의 건강한 노년과 암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교수님의 연구와 노력은 어떻게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기여하고 있을까요? 박상철 교수: 제 연구는 노화와 장수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는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발견된 건강 유지의 비결을 일반 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진행 중인 메트포민 연구는 이 약물의 잠재력을 탐색하여, 기존의 치료 방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노화 관련 질병의 예방 및 관리를 위한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제공하며,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을 연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진행하는 개인 맞춤형 건강식품 개발 프로젝트는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여 최적의 건강식품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건강 관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건강 관리 방식에 혁신을 가져오며,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의 김정용 원장님과 암예방프로토콜을 위해 어떤 협업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상철 교수: 제노시스 암 예측 클리닉과의 협력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협력을 통해 개발된 암 예방 프로토콜은 암 발병의 위험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암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질병의 예방과 건강한 생활 습관의 증진에 중점을 두고 있어, 한국 사회의 건강한 노년을 위한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연구와 노력은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건강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방법과 접근을 모색하며 한국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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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수와 노화의 비밀, 박상철 교수에게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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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종화 교수와의 대화, 암 진단의 새로운 지평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게놈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종화 교수는 최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와 협업으로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한 암 진단 방법의 혁신적 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조직 생검에 비해 부담이 적고, 암의 정확한 진단 및 치료 과정 모니터링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특히, 이 기술은 암의 조기 발견을 가능하게 하여 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으며, 환자의 삶의 질 유지에도 기여할 것이 예상된다. 박종화 교수는 현재 연구 단계에 있으며,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한 정확도와 안정성의 입증, 의료계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상철 교수와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 김정용 원장 그리고 박종화 교수와 연구팀은 암 진단과 치료의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박종화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교수님,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암 진단과 관련된 혁신적인 연구에 대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우선, 교수님께서는 이 분야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박종화 교수: 네, 저의 연구는 모두 과학자들과 현대 생물학의 기초가 되는 과학적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암 진단과 관련하여, 우리는 환자가 암에 걸렸는지, 걸렸다면 어떤 단계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합니다. 이는 치료의 효과를 측정하고, 필요한 경우 치료 방법을 조정하는 데 중요합니다. 이 연구에 있어서 에피제네틱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에피제네틱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박종화 교수: 물론입니다. 에피제네틱스는 DNA의 변화 없이 유전자의 활성화 상태를 조절하는 연구 분야입니다. 쌍둥이 쥐의 연구를 예로 들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외형이나 건강 상태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는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의 표현을 조절하는 메틸기 같은 요소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구가 암 진단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종화 교수: 우리의 연구는 혈액 속의 종양 DNA를 분석하여 암을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암 세포는 특정한 메틸화 패턴을 가지고 있어, 이를 통해 암의 존재 여부와 종류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개발된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해, 혈액만으로도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액체 생검 기술은 어떤 기술인가요? 박종화 교수: 이 기술은 혈액 샘플을 통해 종양 DNA의 메틸화 패턴을 분석합니다. 과거에는 특정 메틸화 패턴을 검출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지만, 최신 기술을 통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비침습적 방법으로 암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 방식이 암 치료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나요? 박종화 교수: 이러한 기술의 진보는 암 치료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암 진단 방법은 대부분 조직 생검에 의존해 왔습니다. 이는 환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조직 샘플링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욱 정확하고 신속하게 암을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술은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암의 발전 상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교수님의 연구가 앞으로 암 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박종화 교수: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의 박상철 교수님과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의 김정용 원장님 그리고 저희 연구팀은 암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치료 과정을 개선하여 환자의 생존율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단 기술의 발전은 암의 조기 발견을 가능하게 하며, 조기 발견은 암의 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비침습적인 진단 방법은 환자의 부담을 줄이고,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연구가 실제 임상에 적용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박종화 교수: 현재는 이 기술이 연구 단계에 있으며,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검증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해 이 기술의 정확도와 안정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실제 임상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의료계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와 저희 팀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암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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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종화 교수와의 대화, 암 진단의 새로운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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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이사...암 예방과 암예측을 통한 치료 혁명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암을 미리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다면 암으로 인한 막대한 치료비용과 시간 등을 절약하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일이 가능해 진다.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적으로도 암을 예방할 수 있다면 엄청난 경제적 낭비와 인력손실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암을 정복하는 최우선 과제는 암을 예방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이렇게 우리정부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암예측과 암예방을 연구하는데 올인하는 기업이다. 이 연구소의 이승재 대표를 만나서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암예측과 암예방을 위한 연구가 어느정도 진행되었는지 직접 들어보았다. (다음은 이승재 대표이사와의 1문 1답 전문) 대표님.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어떤 연구를 하는 곳입니까? [이승재 대표] 전세계 과학자와 의료인들이 암을 예방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만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과 예측을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유전자 및 게놈 검사를 통해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분석하고, 암과 관련된 유전적 위험 요인을 조사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조기 진단을 통해 암 발병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암예방과 암예측을 연구하는 연구진은 어떻게 됩니까? [이승재 대표] 네, 현재 박종화 교수님, 박상철 교수님, 그리고 김정용 원장님의 협업을 통해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 및 치료 프로토콜을 연구 및 개발 중입니다. 이를 통해 앞서 말씀드린 개인 맞춤형 치료 및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암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고, 사전에 질병을 예측하여 조기에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박종화 교수님이 연구소에서 하시는 일은 주로 무엇입니까? [이승재 대표]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박종화 교수님은 게놈검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주로 간편한 혈액검사를 통해 개인의 유전자 정보와 건강 상태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예방 및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는 개인의 게놈 정보를 분석하여 암 발생 위험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예방 전략을 수립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박상철 교수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이승재 대표] 박상철 교수님은 장수와 노화 연구의 권위자로서,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노화 과정과 암 발생 간의 연관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님의 연구는 암 예방을 위한 생활 습관과 영양 섭취 방안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장수와 건강한 노화를 지원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는 박 교수님의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건강 기능 식품과 치료약을 개발하고, 임상에 적용하여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암예측 클리닉 김정용 원장님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이승재 대표] 김정용 원장은 암전문으로서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암 환자를 위한 항암 치료 전략 개발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암의 종류와 단계에 따른 맞춤형 치료 방안을 연구하며,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한 표적 치료와 면역 치료의 효과를 최적화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환자와 방문 예정인 잠재고객들은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이승재 대표] 환자와 이용 예정인 고객들께서는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연구소가 세계적 권위자인 박종화 교수님과 박상철 교수님의 지도 아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고 있으며, 우리의 연구와 개발에 참여하여 고품질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김정용 원장님과의 협력을 통해 실제 환자들에게 직접 적용되어 검증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환자들의 치료와 예방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통해 어떻게 환자들의 치료 및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이승재 대표] 우리 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통해 환자들은 개인 맞춤형 치료 및 예방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전자 및 게놈 분석을 통해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암과 관련된 유전적 위험 요인을 조사하여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합니다. 또한 장수 및 노화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건강 기능 식품과 치료약을 개발하여 환자들의 치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환자들은 질병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여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조기에 치료를 받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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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이사...암 예방과 암예측을 통한 치료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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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차의 산실을 복원한 駿惠 송양희 대표
- ▲ 송양희 대표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살던 집과 구 사옥을 차실로 꾸민 주인공이 있다. 바로 준혜 송양희 대표(주)삼양ENP)다. 송 대표는 30년 가까이 차를 마시며 우리 차의 효능과 효과 그리고 다례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전파하기 위해 5개의 차실을 만들었다. 지금부터 송 대표와 함께 차실로 차여행을 떠나보자.관계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차’ “제가 차를 마신 것은 6살 때부터인데 가족전체가 평소 차를 즐겨마셔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차를 배우게 된 것은 21년전 호반회에 가입하면서입니다.”하지만 송 대표가 차를 배우게 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김윤호 삼양에코노지 대표)을 위해서 술 대신 차를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긴 후 남편의 생활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죠. 체중도 빠지고 더 이상 살이 찌지 않았어요. 우리 차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하고 저희 부부는 더욱 열심히 차를 마시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차실도 자연스럽게 귀빈 접대용과 교육용 그리고 저희 부부가 사용하는 차실로 하나 둘 확장해 간 것입니다.”송 대표의 노력과 차에 대한 관심은 가족 전체를 차인으로 만들었고 최근 결혼한 아들부부를 위해서 차실을 꾸며 줄 정도가 되었다.송 대표가 차를 마시면서 얻게 된 것은 남편의 체중관리와 여러 개의 차실만이 아니다. “차는 우선 관계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요. 친분을 더해주고 차를 나누며 감성공유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차를 통해 치유가 된다는 것이죠. 가정이나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차를 마시면 긴장이 완화되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미워하는 감정 등 우리 몸에 해로운 생각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껴요.” ▲ 준혜헌에 있는 헌다대 외국인의 눈을 매료시킨 준혜헌(駿惠軒) 송 대표의 호를 따서 만든 준혜헌은 ‘큰 은혜를 알고 실천하는 집’이란 뜻으로 경북대학교 오상룡 박사가 내려준 이름이다. 이곳은 이미 유명 정치인, 기업인, 외국인, 문화 예술인 등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하다. 특히, 사업 때문에 외국인 바이어들을 초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 이곳을 찾는 외국인마다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춘천의 명소가 되어버린 준혜헌은 송 대표의 30년 차 인생이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준혜헌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아요. 태양열과 지열을 이용해서 운영되는 제로 하우스로 전에 살던 가정집을 리모델링 한 것입니다.” 준혜헌에는 차실이 모두 5개가 있다. 주 출입구의 현판과 주련, 붉은 다선문(일심사랑방으로 연결되는 문)과 찻사발이 부조되어 있는 검은 빗돌이 방문자의 눈길을 끈다. 주출입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헌다대가 보인다. 이 집의 중심인 헌다대는 송 대표가 100일 기도를 드릴 정도로 정성을 쏟는 곳이다. 하지만 시간을 정해놓고 하기보다는 시간이 날때마다 수시로 와서 기도를 한다. “처음에는 요일과 시간을 정해 놓고 헌다를 했는데 일을 하면서 큰 어려움이 왔어요. 그래서 지금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와서 기도를 드려요.”세심정을 지나면 두 개의 밝은 공간으로 나누어진 최초의 차실이 있고 우측에는 중국식 차실인 입식다례실과 부속 차실이 있다. 특히, 생활차실에서는 기운을 모은다는 탑장과 긴 탁자, 장식장, 팔각상이 있고 베란다를 무대공간으로 꾸며 작은 음악회도 열린다.중국차실로 이어지는 커튼 너머에도 부부전용의 침실 차실이 있고 일심사랑방으로 연결된다. 일심사랑방은 고려시대 북부지방의 사랑방을 차실로 재현한 곳이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차실로 꼽힌다. ▲ 말차실 고려시대 차문화 공간 일심사랑방 부부의 마음이 하나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 ‘일심사랑방’은 선조들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던 다용도 공간인 사랑방을 차실로 재현한 것이다.“밥을 해먹고 남은 열로 차를 끓이던, 부엌과 방이 함께 있는 방식을 살리면서 접견실 혹은 대기실을 두어 사랑방 분위기를 연출했어요.”송 대표는 농암 박봉규 장인이 만든 차실 가구 덕에 분위기가 더욱 돋보이는 것 같다면서 다음 장소인 말차방으로 안내했다. 준혜헌에 있는 차실 가구들은 농암이 평생 연구하며 지켜온 14번의 손질을 거친다는 태움질기법으로 만든 목재 가구로 부드러움 질감과 내구성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말차방은 말차를 마실 수 있는 전용 공간으로 봉창, 반침, 이불장 등을 옛 그대로 재현했다. 일심사랑방을 지나 옆 건물로 가면 2층과 3층에 각각 찾자리 교육실과 준혜헌 교육장이 있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신사옥을 짓게되자 구사옥을 차전용 교육장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많은 인원을 교육 할 수 있는 공간이고 이곳에서 아동과 유아를 대상으로 다례교육을 시키고 있어요.” 차 교육과 봉사활동 그리고 환경사업송양희 대표는 한전연구원과 직원으로 만나 사내커플이 되었고 결혼에 골인했다. 그래서 둘사이에는 공통점이 적지않다. 차는 기본이고 환경을 생각하는 에너지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2000년 초에 태양광이나 지열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뛰어들어 지금은 이 분야에서 꽤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얼마 전부터 해수를 이용한 에너지 연구를 시작했어요. 전국을 무대로 지열공사를 해 주었는데 반응이 좋아요. 저도 자연친화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니까 환경을 지키는데 일조한다는 보람도 있어요. 정부차원에서 환경을 보존하는 일은 게을리 하면 안될 것 같아요.”송 대표는 “원전을 세우거나 유지하는 대신 그 비용을 친환경 재생에너지 개발에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우리나라도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할 날이 올 것이다”고 예상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준혜헌의 계획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한서대 건강증진대학원에서 차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그리고 한국다도대학원 제19기를 졸업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시간과 돈을 투자해 차를 배운 이유는 그동안 해 온 봉사활동과도 연관이 있어요. 청소년 상담을 20년 이상 해오고 있는데 차 마시는 법을 가르치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볼 때가 많아요.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그 효과는 큰 것 같아요.” 송 대표는 아이들이 세계인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우리 것을 알고 가야 핳 것 같아서 교육장을 마련했고 다례교육전문가를 양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송대표는 “학교에서 다례교육을 시킬 수 있도록 다구와 다기들을 준비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준혜헌을 찾는 세계인들이 우리 차 문화를 체험하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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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차의 산실을 복원한 駿惠 송양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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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환우들의 멋진 주치의 ‘노동영 교수’
- [트래블아이 =최치선 기자]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인 비너스회 창립을 주도하고 현재 서울대병원 유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는 노동영 교수(서울대 의대 외과학 교실)는 여성암 발생 1위인 유방암 퇴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용장 중 한 명이다. 노 교수를 만나 그의 일상과 취미 그리고 올해 계획 등에 대해서 들어 보았다. “그리그의 피아노 콘체르트를 좋아합니다. 대학 때 프렌츠호른을 배워 약 10년 동안 연주를 했는데 그 영향인지 스케일이 큰 음악이 좋더군요. 지금은 연주보다 서울대 의대 오케스트라 지도 교수로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습니다.”연구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무엇이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노동영교수가 활짝 웃으며 답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7시에 출근해서 비너스 홈피를 관리하고 8시부터 수술과 외래를 보면 금방 점심시간이 된다. 식사가 끝나고 차 한 잔 마시자마자 곧 수술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데 하루 대부분을 보내지만 노동영 교수의 얼굴은 지친 표정이 없다. 오히려 일을 즐긴다고 할 정도로 화색이 돈다. 그의 밝고 긍정적인 사유가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노동영 교수는 유방암 환자들을 떼놓고는 생각 할 수가 없다. 유방암 환자들의 공식 모임이 전혀 없었던 척박한 풍토에서 2000년 12월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인 비너스회를 창립했으며 그 후 지금까지 비너스 홈페이지를 통해 환우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주치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 결과 올해로 7년째가 되는 비너스회 홈페이지에 실린 노 교수의 답변이 무려 10,000건을 돌파했다고 한다. 환우들의 모임 비너스회 창립하고 주치의 자청“존스 홉킨스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졸업논문 주제로 내가 답변한 것을 활용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2월에는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으로 책이 나옵니다.”일을 취미처럼 즐기는 노동영 교수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노동영 교수는 우리나라의 유방암발생률이 해마다 늘고 있지만 그에 못잖게 5년이상 생존율도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85%이상 생존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몇 개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해서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노 교수는 영상수술법을 고안했으며 유전체가 환자의 종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할 계획이다. 그리고 기형단백질을 찾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는 국제컨소시엄(15개국 참여)에서 한국 대표 중 한명이다. 한국측 단장은 유명희 박사(KAIST 교수)다. 노동영 교수는 이처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환자를 진료하고 매년 700여 명의 환자를 수술한다. 그는 유방암의 세포 및 분자연구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지난 94년부터 SCI 등 세계적 권위지 에 이와 관련된 논문을 100여편 이상 발표했다. 그의 행보는 비단 연구와 수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0년에 유방건강재단을 창립했고, 한국유방암학회 대외협력 및 국제이사 등 대외활동에도 열심이다. 2002년부터는 유방암 계몽 캠페인인 ‘핑크 리본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5대 도시(서울, 대전, 광주, 대구, 부산)를 돌며 단축마라톤 대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참여율도 높아서 한 번에 8,000~10,000명이 참여합니다. 개인적으로 큰 보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비록 5km구간이지만 환우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뛰기 때문에 너무 기쁘다고 한다. 클래식 마니아로 10년간 호른연주 해그는 또 2004년 초까지 서울대병원의 의무기록실장을 맡아 ‘전자 의무기록 시스템(EMR)구축의 리더가 되었다. 이처럼 그의 활동분야는 결코 녹록치 않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소화하기 힘든 분량이다. 그래서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게 그에겐 야속하기만 하다. 자칫 노동영 교수의 이미지가 무척 건조하게 비쳐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는 앞서 말했듯이 클래식 마니아로서 전통식을 고집하는 부위기 있는 토종남자이다.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길 줄 아는 신세대 가장의 면모도 고스란히 갖고 있고 컴퓨터도 직접 홈페이지를 관리할 만큼 수준급이다. 노동영 교수는 요리에도 관심이 많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솜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볶음밥과 찌개 종류는 칭찬을 받을 만큼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지금처럼 유방암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의 맛있는 요리를 맛보기 힘들겠지만 유방암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환우들을 생각할 때 유방암을 정복하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촬영을 하기에 앞서 유방암과 관련해 노동영 교수에게 궁금한 것 몇 가지를 질문했다.최근 유방암의 발생률이 높아지고 있는데 원인이 무엇입니까?“지난 2001년부터 계속 유방암이 위암과 자궁경부암을 제치고 1위에 올라 있습니다. 유방암의 발병률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식생활이 점차 서구화되고 있고 생활패턴이 몸을 조금 움직이는 쪽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폐암, 전립선암과 마찬가지로 유방암도 선진국형 암입니다.” 유방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결혼 뒤 아기를 일찍 낳도록 하며 모유가 좋습니다. 또 매주 3일 이상 한 번에 30분 이상 운동해야 합니다. 미국 암협회에서는 암 예방을 위해 채소를 하루 다섯 접시 이상 먹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콩을 듬뿍 먹는 것이 좋습니다. 콩은 여성에게 유방암과 함께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은 음식입니다.” 유방암을 조기 진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합니까?“20세 이상은 매달 자가 진단하고 30대 중반 이후엔 해마다 유방촬영 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자가 진단으로 70%이상이 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가슴에 멍울이 맺힐 경우 80%는 양성종양이지만 20%는 암이라고 봅니다. 멍울은 더러 겨드랑이에 생기기도 합니다. 한 쪽 유두에서 핏빛 분비물이 나오거나 유두가 갑자기 들어가는 경우, 젖가슴 한쪽이 쑥 들어가는 경우, 양쪽 가슴이 비대칭이 될 때 등에도 유방암을 의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증세가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정기 검사가 필요합니다.” 유방암에 잘 걸리는 사람은 어떤 유형입니까?“고지방 고칼로리의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에게서 잘 생기는데 12세 이전에 초경이 시작되고 55세 이후에 폐경이 된 사람도 잘 걸리며 폐경이후 비만인 사람도 발병률이 높습니다. 출산이 늦거나 아예 아이를 갖지 않는 여성도 잘 걸리죠. 물론 가족력이 있으면 더 조심해야합니다. 서구에서는 50대에 환자가 가장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40대에서 발병률이 가장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유방암은 완치가 가능합니까?“유방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합니다. 유방에만 암이 있을 때엔 10년 생존율이 98%정도이고 주변 조직에만 암이 침범했을 때에도 생존율이 70%를 넘습니다. 그러나 다른 장기로 전이가 시작되면 생존율이 20%대로 떨어집니다. 조기에 암을 발견하면 대부분 가슴을 보존하는 수술을 받을 수 있으며 가슴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아도 유방 성형 수술로 가슴형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기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Profile노동영 교수(서울대병원 유방암센터장) 서울대학교 병원 EMR팀장, 의료정보 센터장, 의무기록실장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서울대학교암연구소 유방암 연구실장, 한국유방암학회 국제협력이사, 한국 과학기술 한림원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상내역은 지난 93년 미국 NIH의 Fogarty International Fellowship Award를 받았으며, 2001년에는 Oraganon international로부터 ‘젊은 연구자상’을 2005년 6월에는 한국유방암학회 동아학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유방암’ ‘유방암예방 식이요법’ ‘암을 알고 이기는 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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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연을 품은 화가 소정란
- ▲ 겨울소리2 (72.7x53.0cm, Oil on Canvas 2008) 소정란作 가지 않은 길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의 자취가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음으로 해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 없이 아무에게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아, 나는 뒷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다른 길에 이어져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여기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위 시는 대부분 한 번쯤 읽어보고 들어봤을 프로스트의 명시 ‘가지 않은 길’이다. 꿈꾸는 소녀처럼 큰 눈을 가진 소정란 작가(서양화가)의 첫번째 개인전(2009.9) 도록 맨 앞장에 이 시가 실려 있다. ▲ 소정란 작가(서양화가)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첫 눈에도 감성이 풍부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특별히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첫 페이지에 수록한 이유가 있으세요? “네. 개인전을 열기까지 많은 방황을 한 것 같아서요. 결혼 전까지 비록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림에 대한 애착은 늘 갖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던 터라 내가 할 일이 어쩌면 이 길이 아닌가 생각했었거든요.”소정란 작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커피잔을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시를 회상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결혼 후에도 양육에 신경쓰느라 그림 그릴 기회를 잡지 못했어요. 그러다 13년 전 친한 언니의 제안으로 화실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누르고 있었던 그림에 대한 동경과 에너지가 분출되기 시작했죠.” ▲ 녹빛향연 (40.9x60.6cm) Oil on Canvas 2010. ▲ 겨울소리(120.0x60.0cm Oil on Canvas 2008) '그랬었다. 오랜시간 정체성을 찾지 못해서 한 때 우울함과 허허로움으로 힘들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으로...붓을 잡고 캔버스를 마주하면서 내게 있어 햇살은 더욱 청아했으며, 살갗에 닿는 바람은 마치 여린 얼굴에 꽃물이 들은 느낌이라고 할까?정말이지 오랜만에 찾아든 설렘이었다. 때론 진한 커피향보다 물감냄새가 그리운 걸 보면...좋은 작품을 만날 때마다 심장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면...남겨둔 다른 한 길을 기꺼이 찾아듦이 지금의 소중한 오늘이 아닐까 싶다.그대 있음에 진정 나는 행복하다.'작가는 시가 실린 바로 옆 페이지에 위의 문장으로 자신의 재기를 알렸다. 시적 감수성을 겸비한 화가의 시선은 캔버스에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2002년부터 다시 시작한 그림은 약 7년간의 개인수련을 거쳐 마침내 2009년 화려하게 꽃피웠다.첫 번째 개인전에서 사람들에게 선보인 작품은 한결같이 자연을 담았다. 시골 고향이나 외갓집에 가면 볼 수 있는 황토길, 강가의 풍경, 시골 산길에서 마주치는 소나무, 꽃밭, 가을향이 묻어나는 오솔길, 겨울철 흰 눈으로 하얗게 덮인 농로 등이 작가의 따뜻하고 맑은 시선에 채집되었다. ▲ 봄빛 (72.7x 50.0cm Oil on Canvas 2009) ▲ 녹빛향연 “2008년 국전에서 100호 작품이 입선을 했어요. 그림을 시작하고 6년만의 결실이었어요. 그렇게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어요. 동기부여도 되고 제 속에 에너지도 더 뜨거워지는 것 같고...그래서 더욱 열심히 작품에 집중했어요.”작가는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입선한 다음해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약 3년간 인사동에 있는 화랑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했다.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얻은 게 많아요.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접하면서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물론 제가 추구하는 작가적 성향도 더욱 뚜렷해졌죠.”작가는 왜 자연만을 고집하는 것일까? 그것도 동물이나 곤충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꽃과 나무, 강과 시골 길 등의 옛 자연풍경이다. ▲ 소정란 화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어렸을 적 보았던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이 점점 도시화되면서 사라지는 게 안타깝고 아쉽더라고요. 지금도 시골에 가면 산길이나 농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을 볼 수 있는데 제 눈엔 그게 참 이쁘게 보였어요. 계절에 따라 개울이나 강의 주변이 초록에서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는 것도 그렇고 겨울엔 온통 하얗게 뒤덮이는 산길도 운치가 있고요.”작가의 눈에 비친 시골풍경은 시로 보면 서정시에 가깝다. 자연을 그리는 작가의 태도는 사물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다. 즉 자연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교감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과 교감을 통해 감성이 깊어지면 그때 비로소 캔버스에 자신이 채집한 풍경을 펼쳐 놓는다.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잔잔하고 평화롭다. 울렁거리는 마음도 평온해진다. 미술치료가 절로 되는 느낌이 든다. “성격은 그렇지 못한데 작업을 할 때는 거의 몰입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머릿속에 있는 구도와 장면이 작업이 끝날 때까지 각인된 상태로 남아 있어요.” 작가는 “앞으로 묘사에서 그치는 게 아니고 새로운 터치와 반구상적인 작업을 하고 싶다”면서 “쉽지 않겠지만 풀어야 할 숙제로 생각한다”고 주문을 외우듯 말한다. 자신을 화가로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도록 이끌어준 분은 김성호 선생님이다. 그의 ‘새벽’이란 작품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네 번째 개인전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새로운 구도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지금까지 사용한 유화 대신 아크릴작업도 할 생각이다. 그녀는 평소 음악과 책을 자주 접하면서 인문학적 소양도 쌓고 골프와 산책으로 체력도 기른다. 이 모든 게 자신의 작품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겨울소리 작가에게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와 이제 막 그림에 입문한 후배주부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청했다. “창작은 대부분 산책 중에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사진을 찍고 그중 가장 잘 나온 것을 선택해서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해요. 저와 비슷한 길을 걷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은 크게 생각나는 게 없는데...저 같은 경우 전시회에 자주 가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성향이나 주제 등이 다르기 때문에 무척 흥미로워요.”그녀는 작품의 폭을 넓혀주는데 타 장르의 지식이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태경의 크로스오버를 좋아하고 시집을 즐겨 읽는 편이죠. 타 장르의 정서가 작품을 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다녀야 할 부분이죠.”소정란 작가는 앞으로 예쁜 모습으로 살고 싶다면서 거기에는 작품이 주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2년 후 네 번째 개인전을 할 것이라면서 보다 편안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엄마가 아이 손을 잡고 와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 올 수 있는 전시회를 기대해 주세요.” ▲ 서양화가 소정란 소정란 작가 프로필 개인전 3회단체전 동이7인전(동이갤러리) 단성7인전(단성갤러리) 서울아카데미전(세종문화회관) 아름다운동행전(북부지방검찰청) 대한민국회화제(서울시립미술관) 한국미술협회전(예술의전당) 서울국제미술제(조선일보미술관) 대한민국여성미술제 혜윰전(세종문화회관) 고구려의기상전(조형갤러리)외 다수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2008) 현재 한국미술협회, 서울아카데미, 대한민국회화제 회원, 한국미협서양화2분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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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연을 품은 화가 소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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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토로 세상을 빚어내는 김진욱 명장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잘 됐네요. 부암동 공사현장으로 오세요. 힐링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실 겁니다.” ▲ 황토미장 분야 최고로 손꼽히는 김진욱 명장 7월의 색은 황색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황토’가 떠올랐고 황토를 다루는 대한민국 명장을 수소문 하게 되었다. 주인공은 바로 김진욱 명장(황토 미장. 59)이다. 김 명장은 대한민국 전통 미장 특히 황토 미장분야에서 최고라 할 수 있다. 사실 명장이란 호칭에서 나오는 무게감 때문에 인터뷰에 앞서 약간 긴장을 했다. 하지만 실제 주택을 짓고 있는 현장에서 만난 명장은 부드럽게 웃으며 마중까지 나와 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온화한 부처님의 미소가 피어 있었다. 부암동 언덕에 위치한 붉은색 2층 벽돌집은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된 듯 윤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외관만 봤을 때는 평범한 여느 단독주택과 다를 바 없었다. 황토를 바르고 그 위에 백토를 칠하는 날이라고 했던 김진욱 명장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보자마자 인사와 함께 “황토 작업은 어디에서 하시나요?”하고 물었다. 하지만 김 명장은 공사현장의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듣지 못했는지 산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명장은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다.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으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까 질문한 게 뭐에요? 소음 때문에 잘 듣지 못했어요.”잠깐 숨을 돌리며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데 명장이 웃으면서 묻는다. “아. 네...황토작업을 하신다기에 어디서 하는지 궁금해서요.”명장도 올라오느라 숨이 차는지 호흡을 고른 후 천천히 답을 시작했다. “황토는 안채 즉 벽채와 바닥에 사용하고 천장에는 무게 때문에 백토만 바릅니다.”장인건설 대표를 맡고 있는 김진욱 명장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독학으로 미장기술을 터득해 2011년 건축시공(미장) 분야 대한민국명장(509호)이 됐다. '한옥미장용 벽체 외엮기 방법 특허 및 각도 조절용 미장 흙손 실용신안'을 보유하는 등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강점을 가진 김 명장은 처음엔 현대미장을 했지만 어느 순간 전통미장의 멋과 맛에 빠져 30년 간 이 길을 걷고 있다. “처음 20년간은 현대건축 일을 했어요. 하지만 현대미장은 빠르고 싸고 강한대신 몸에 독소를 남기더군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전통복원에 대한 보람도 느끼고 즐겁게 일하니 몸도 건강해졌습니다.”김 명장은 어려서부터 건설현장에서 일을 해오다 30대 중반에 우연히 전통미장을 하게 된 후로 다시는 현대미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전통미장은 명장에게는 운명같은 것이었다. “쉽지 않았어요. 시멘트 대신 황토라는 재료도 그렇고 책에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순전히 독학으로 수많은 강좌를 쫓아다니며 배웠습니다.” 그는 말한다. “황토미장은 생각만큼 어렵고 까다롭지 않습니다. 자연재료에 대한 이해와 흙을 알면 쉬워지죠. 백토 가격도 일반 시멘트와 가격이 비슷합니다. 25톤에 110만원 (운반비 50만원 포함가), 황토는 30만원 정도니까 내부만이라도 황토를 사용해 리모델링 할 수 있습니다.”김진욱 명장은 그동안 경복궁, 경희궁, 숭례문 등의 복원작업에 참여했다. 미장편수로 숭례문 복구에 참여한 김진욱 명장이 말하는 황토의 특성은 무엇일까?“황토에 열을 가하게 되면 원적외선이 나오게 되고 우리는 원적외선의 효과를 누리는 겁니다.햇볕을 쬐고 있을 때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 원적외선 때문이죠. 열작용으로 인해서 각종 질병들의 원인인 세균들을 없애주고, 모세혈관을 확장시켜서 혈액순환과 세포조직 생성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 세포를 활성화 시켜 노화방지, 신진대사 촉진, 만성피로와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발한작용 촉진, 통증완화, 중금속 제거, 숙면, 탈취, 방균, 곰팡이 번식방지, 제습, 공기정화 등의 효과가 있어 주택 및 건축자재, 주방기구, 섬유·의류·침구류, 의료기구, 찜질방 등의 여러 분야에 쓰이고 있습니다.“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김 명장의 눈빛이 더 반짝거렸다. 다음은 명장의 황토예찬인데 중간에 끊기가 어려워 한 번에 정리해 보았다. 읽어보면 꽤 유익한 정보가 될 것이다.“흙은 성분, 색깔에 따라 황토/적토/흑토/백토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중 황토가 으뜸입니다. 옛날 조상들은 황토를 이용해 각종 질병을 치료했으며, 황토로 만든 온돌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황토는 살균과 독성을 중화시키는 약성이 우수하며 인체에 유익한 효소가 50여가지나 담겨 있어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에너지 효율성을 가지는 황토의 분자특성은 수많은 다공성을 가진 특징과 결합성에 있습니다, 황토를 활용해 습식양생과 압축결정체로 구성 주택의 벽체와 바닥재에 적용할 경우 여름철 냉방(에어컨)과 겨울철(난방)을 가동할시 황토분자는 내부온도와 자기 몸의 온도가 일정 할 때까지 냉기, 온기를 지속적으로 흡수합니다. 그리고 내부의 온도가 내려가면 이를 다시 환원(열을 내뿜는다)하는 작용을 하며 냉방의 경우도 주거환경의 바람직한 습도기준 40%~60%에도 관여해 항상 쾌적한 습도조절이 자동으로 진행되는 특성과 함께 에너지 효율 30% 절감효과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황토가 가지는 기능성은 밀폐된 주거공간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4대 유해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아세트 알데히드, 톨루엔, 자일렌 등 인체의 호흡기를 통해 오랫동안 체내에 축적되면서 이름모를 다양한 질병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아토피 질환을 포함한 호흡기 폐 질환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시멘트는 뇌에 치명적인 문제점을 나타낼 수 있다는 보도가 방송된바 있습니다, 그래서 황토의 분자구조는 이러한 밀폐된 주거 공간내의 유해물질을 정화 시키는 기능을 하고 중화 분해 흡수 하여 청정한 맑은공기를 만들어 주고 습도 조절을 해줍니다. 황토는 습도가 많은 경우 습기를 흡수하고 실내가 건조한 경우 습기를 공기 중으로 내보내 줍니다. 따라서 습도를 조절하는데 매우 뛰어난 효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세균과 곰팡이균을 없애주면서 향균작용과 해독작용을 합니다. 황토는 우리 신체에 나쁜 물질을 정화시켜주며 독소를 없애주는 착하고 좋은 흙입니다.” 김 명장은 황토가 현대와 전통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아토피는 물론이고 새집 증후군도 없다며 김치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은 명품이라고 예찬한다. 한참을 얘기하다보니 지금 작업하고 있는 공사현장이 궁금해졌다. 김 명장에게 현장을 좀 보여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말한다. “지금 짓고 있는 집은 문화재청에 근무하는 국장님이 직접 주문해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전체 외관은 현대식이지만 내부는 전통방식 즉, 황토와 백토로 마감했습니다. 벽채와 천장 그리고 바닥은 전부 황토와 백토를 사용했어요. 직접 보시면 아시겠지만 짚을 섞어서 인장력도 높였고 인테리어 효과도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황토는 성질상 물에 약해서 작업하기 좋은 계절은 4월부터 5월까지 선선하고 건조한 날씨입니다. 비가 오는 장마기와 한겨울은 피해야 합니다.” 친환경재료로 작업하는 것은 곧 자연에 순응하는 일이다. 그는 순도 100%황토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시멘트를 섞으면 황토의 성질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장이 그동안 배출한 제자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약 100여명에 이른다. 황토미장은 배우는데 약 3개월 정도 걸리지만 숙련까지는 3년은 필요하다. 하지만 배우려는 사람들이 적다. 수요는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기에 지금 배우면 좋다. 명장은 전통미장을 배우려는 사람이 적어서 많이 아쉽다고 말한다. 전통가옥과 고궁, 문화재 보수에 사람이 필요한데 충족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석회는 외벽에 칠하는 것이지 내부에 사용하면 안된다. 내부에는 석회대신 백토를 사용해야 미적 효과가 있다. 순서는 황토를 바른 후 양생 과정을 거친 후 다 마른 다음 백토를 바른다.김진욱 명장은 그동안 주로 사찰작업과 고궁, 문화재, 개인주택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작업은 경희궁, 숭례문, 덕수궁 등이다. 그가 지금까지 전통작업을 해오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전통기법의 맥이 단절되었다는 현실이다. “황토를 통해서 힐링을 달성할 수 있는데도 노력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정부와 국민이 우리의 좋은 문화를 지금 찾아가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욱 어려워지는데 현실은 이를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황토집과 같은 좋은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가 황토미장을 배우고 익히는데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조선시대 의궤였다. “지금 개량 시멘트는 100년이 가지만 흙은 재령이 없습니다. 즉, 수 백년이 지나도 괜찮다는 겁니다. 시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고 그 자체가 자연입니다. 따라서 흙을 사용해 집을 지으면 재건축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친환경재료는 자연에 순응합니다. 황토의 성질상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고 강해집니다.” 따라서 현대건축에 황토를 응용할 경우 외벽은 석회를 사용하고 내부의 벽체와 바닥 등은 황토를 사용한다. 작업과정에서 주의할 점은 황토를 반죽할 때 기계로 찍으면 안되고 손으로 해야 단단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야 비와 바람을 견디면서 단단해진다. 그리고 통나무를 섞는 것은 황토의 성질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볏짚과 대나무는 괜찮다. 통나무는 횡력이 약하기 때문에 황토의 장점이 충분히 발휘될 수 없다. 하지만 볏짚을 사용하면 인장력이 강화되어 좋다는 것이다. 현대건축에서 시멘트에 철근을 넣는 것은 바로 황토에 볏짚을 넣은 것을 응용한 것이다. 여기까지 황토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 김 명장을 따라서 공사하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인부들과 제자들이 집 안팎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명장은 현장에 오는 동안 제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20살 여제자가 어린나이에 정말 열심히라면서 꼭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요즘에 그것도 남자들도 기피하는 노가다를 여자가 배운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 빨리 만나고 싶었다. ▲ 제자들이 김진욱 명장의 황토미장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 김 명장이 작업하고 있는 집의 특성은 외벽은 현대건축이지만 내부는 전부 황토와 백토를 사용했다. 벽체에 바른 황토의 두께는 45mm, 천장은 무게 때문에 15mm백토만을 바른다. 일반주택은 3개월이면 해체부터 완공까지 충분하지만 이 집처럼 황토를 사용하면 두 배의 기간 약 6개월이 소요된다. 공사가 한창인 집안에 들어서자 명장은 성큼 걸음을 옮기면서 제자를 찾는다. 그렇게 제자를 아끼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명장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비좁은 드레스룸에서 백토를 바르고 있는 세 명의 인부 중 앳된 여학생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바로 명장이 칭찬을 아끼지 않던 여제자였다. 인터뷰를 위해 잠시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드디어 명장의 여제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수줍어하며 작은 목소리로 질문에 답하는 여성이 바로 조금 전 자신의 얼굴보다 몇 배 더 커 보이는 흙손을 들고 거기에 황토를 이겨 벽과 천장을 바르던 인부 중 하나였다. 김희원씨는 스무살이다. 160정도 되는 키에 마른 체형으로 흔히 말하는 노가다판(현장인부)에서 일하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려서부터 전통에 관심이 많았다. 오래된 고건축이나 흙을 좋아했는데 마침 설계를 배우다가 담당 선생님의 소개로 지금의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흙을 배운지 3개월 되었는데 재밌다고 한다. 힘은 많이 들지만 하고 싶은 작업을 하니까 그렇게 힘들지 않다. 교실에서 배웠던 것보다 현장에서 명장님께 배우는 게 더 많고 좋다. 게다가 명장님이 쉽게 가르쳐주셔서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다. 사실 체력적인 부분이 좀 힘들긴 하지만 극복할 수 있다. 흙 만지는 일이 재밌다.김희원 씨의 짧은 인터뷰가 끝나자 명장이 또 한 명의 수제자를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김현수. 스물세살 남자다. 그는 현대건축을 배웠다. 시공에 관심이 있어서 설계를 희원씨와 배우다가 명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시멘트 작업할 때는 몸이 간지럽고 눈이 따가웠는데 흙을 만지면서는 그런 게 없어졌다. 앞으로 더 많이 배우고 싶다. 선택을 잘한 것 같다. 작업이 즐겁다. 두 젊은 제자의 인터뷰를 마치자 명장은 밖으로 나가더니 누군가를 부른다. 잠시 후 안전모를 쓴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3년째 명장에게 일을 배우고 있는 김두한 팀장(43 남)이었다. 명장은 김 팀장을 소개하며 이 친구가 진국이라며 칭찬을 쏟아냈다. 김두한이란 전설의 주먹과 이름이 같은 그는 타일시공만 10년을 했다. 1년전에 일반시공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대양식은 정형화되었지만 전통은 그렇지 않다. 황토미장만해도 어떤 룰이 있는 게 아니라 명장님의 노하우가 곧 교본이 되기 때문에 작업때마다 약간의 변수(차이)가 있다. 현대건축은 작업의 리스크가 적지만 전통방식은 상황에 따라 리스크가 달라진다. 그는 앞으로 명장님을 괴롭혀서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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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양화가 조원춘 “여행 하면서 세상의 풍경을 담아요”
- 글/최치선 사진/정대일 ▲ 베니스 풍경...조원춘 서양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프리다 칼로, 케테 콜비츠, 파울라 모더존-베커, 나혜석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눈치 빠른 독자들은 첫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류화가라는 것. 태어난 때와 나라는 다르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색으로 세상을 풍자했고 작품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내는데 성공했다. 이 달에 소개하는 조원춘(56) 작가 역시 여류화가다. 조 화가는 여행을 통해 세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 조원춘 서양화가는 세계의 여행지에서 가져온 보물을 주방 한쪽 벽면에 가득 채워놓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 한국미술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동석 화가(동양화)에게 인터뷰를 위해 괜찮은 여류화가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사무국장은 며칠 후 조원춘 화가를 추천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조 화가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도회적인 느낌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가진 여성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처음에는 완곡하게 거절을 했다. 이유는 이름 있는 작가들이 많은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품을 본 후 결정하자고 설득을 했다. 잠시 후 그녀가 카톡으로 보내온 이국적인 풍경들은 유명 화가들을 잊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색이 마음에 와 닿았다. 강한 느낌의 원색이지만 들떠 보이지 않았다. 물론 손바닥보다 작은 화면으로 본 그림만 가지고 작품을 알아보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첫 느낌은 괜찮았다. 조 화가에게 전화를 해서 인터뷰 시간을 잡았다. 그녀의 작업실은 강동구에 있는 자택이었다. “여류화가의 작업실은 어떤 풍경일까?”그녀를 만나기 전 가졌던 호기심이었다. 그동안 취재했던 작가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그래서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약간의 긴장감도 생겼다. 벨을 누르고 인터폰을 통해 확인절차를 거쳐 조 화가의 작업실로 올라갔다.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식탁에 앉았다. 화가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내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벽에 걸린 그녀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은 거실에서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식탁 뒤 한쪽 벽면에는 제법 큰 부조가 붙어 있었다. ‘저건 무엇일까?’ 궁금증을 풀기위해 다가갔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벽에 붙어 있던 것은 수십 아니 수백 개의 마그네틱 기념품이었다. ▲ 화가의 소중한 추억이 스며있는 마그네틱 기념품들이 벽화처럼 장식되어 있다. “여행을 좋아해서 시간이 될 때마다 해외를 나가요. 관광지보다 현지인들이 많이 다니는 골목노점상이나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저런 마그네틱 기념품을 구입했어요. 여행갈 때마다 하나 둘씩 모았는데 이젠 정말 소중한 보물들이 되었네요.”기념품을 살펴보는 동안 그녀가 말했다. “저 기념품 하나하나에 추억이 묻어 있어요. 다른 것들은 무겁고 부피가 있어서 가지고 다니기에도 불편한데 마그네틱 기념품은 작고 가볍고 무엇보다 독특해서 좋아요. 저에게 여행의 재미와 추억을 동시에 주는 귀한 선물같은 존재들이죠.” 계속해서 기념품 예찬이 이어졌다. 그녀의 말대로 벽에 붙어 있는 기념품들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기념품 하나하나가 그녀가 여행한 나라와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 같았다. 조 화가는 저 기념품을 통해 여행지에서의 추억과 풍경을 떠올리며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약 40여개의 나라를 다녀왔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나혜석이 1927년부터 3년간 세계일주를 하며 얻은 영감을 작품에 반영했듯이 조원춘 화가도 이국적인 풍경들을 담아낸다. “저는 주로 여행지에서 본 풍경을 그려요.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는 뒷골목인데...그렇다고 작품의 배경이 모두 골목은 아니고요. 풍경을 그리지만 하늘은 가능한 노출을 안 시키고 차나 배 등 이동수단을 풍경에서 부각시키려고 해요.” 화가의 설명을 듣고 작품을 보니 단번에 이해가 됐다. 그녀말대로 그림 속에는 하늘이 차지하는 공간은 작았다. 대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중 하나가 주인공처럼 확 눈에 들어왔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배나 트램 등 움직이는 대중교통이 풍경 속에서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림 속에 있는 자동차나 배는 저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 제 마음을 달리는 자동차나 배에 은유적으로 담아봤어요.”화가는 자신의 마음을 저렇게 이동수단에 투영시켜 여행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화가의 그림그리기는 여행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 올때까지 사진을 찍거나 정물을 감상하듯 오랫동안 주시하는 버릇이 있다. 항상 시간이 쫓기지만 그래도 맘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더 많이 집중하게 된다. 여행지에서 그녀가 빼놓지 않고 들리는 곳은 미술관이다. 특히 유럽여행에서는 마음껏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녀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결혼 후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경북여중과 경북여고를 다니면서 재능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여동생 역시 그림을 그렸고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미대를 포기하고 가정교육학과를 다녔다. 그 때 참고 숨겼던 그림에 대한 미련은 고스란히 결혼 후 육아를 끝내자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38세 되던 해 동네에서 가까이 지내던 화가지망생 친구들과 함께 미술과외를 받았다. 강사는 미대생이었다. 기초적인 데생부터 시작해 다양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워밍업을 거쳤다. 그릴수록 그림에 대한 갈증이 심해진 조 화가는 문화센터에 등록해 그림을 배우던 중 노재순 전 한국미협 회장을 만나게 된다. “노재순 회장으로부터 그림을 배우면서 제 실력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그려야겠다는 확신 같은 게 생겼죠. 스승도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고 용기를 줬어요. 저는 문화센터를 다니면서 항상 공부잘하는 학생처럼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했어요. 미리 집에서 작업을 많이 했고 그 결과 실력이 늘었던 거죠. 노 회장은 그런 저를 칭찬했고 나중에는 개인사사까지 해 주셨어요.” 그녀는 당시 스승으로부터 배웠던 시간이 지금의 자신을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정말 열심히 그림에 집중했어요. 대학 때 하지 못한 그림을 다시 하게 되니까 에너지도 많이생기고 자신감도 회복하게 되더군요. 이전보다 실력이 향상된 것 같았어요.”그녀말대로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능은 스승을 만나면서 마중물이 되어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다. 한국미술대전에서 2회 연속 입선하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에 한계를 느끼는 시간이 찾아왔다. 슬럼프였다. 풍경화를 그리다가 있는 그대로를 담기보다 자신의 느낌을 클로즈업해서 부각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풍경에 있는 대상을 모두 담기보다 특화된 어느 하나를 담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단순화시켜야 했다. 그런데 그 작업이 쉽지 않았다. 단순화시켜서 반복하는 작업을 계속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 사이 완성된 작품을 놓고 질문을 던진다. ‘어디에서 실수한 것일까? 무엇을 빠뜨린 것일까?’ 그녀는 이 의문점을 풀기위해 더 많이 여행하면서 유명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보았다. 아직까지는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으나 그녀의 의지는 곧 정답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여행담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갔다. 서둘러 몇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나 전시회는 무엇이냐고 하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2011년에 대구 대백프라자(2011:mother&daughters전(대백프라자)4인전)에서 했던 4인전이에요. 어머니의 팔순을 기념해 세딸이 마련한 전시회였는데 지금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나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지 전시회 내내 저와 자매들이 감사했어요.”어머니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그녀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녀가 결혼 후 뒤늦게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어느날 어머니 정태연 여사에게도 그림을 그려보시라 권했던 것이다.“그렇게 시작한 어머니의 그림이 어느새 저보다 훨씬 좋은 작품으로 세상에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딸들이 다 모였을 때 팔순잔치말고 더 뜻깊은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어머니를 위한 전시회를 해드리자고 뜻을 모았어요. 결과는 대성공이었어요.”그녀의 기획으로 탄생한 4인전은 대구와 경북에서 화제가 되었다. 어머니 정태연, 첫째딸 조원춘, 둘째 조원지, 셋째 조원정 등 세 딸과 어머니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전시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족이 모두 화가인데다 작품의 개성도 뚜렷해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던 전시회였다. “연세가 있으셔서 여행을 마음대로 다닐 수 없게 된 어머니께 제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드렸어요. 어머니는 제 사진을 보고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해 작품을 완성했던 것이죠. 저보다 훨씬 색이나 구도가 좋아요.”조 화가는 어머니가 일찍 그림을 배우셨다면 지금쯤 꽤 유명한 여류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그녀에게 자신처럼 결혼 후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는 후배들을 위해 한마디 조언을 부탁했다.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무엇보다 자존감은 그림을 그리는데 꼭 필요한 에너지거든요. 그리고 자기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저처럼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거든요. 그때마다 ‘그림은 나를 발전시킨다’고 주문을 외우면 극복이 가능해요. 끝으로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래야 좋은 결과물도 나오고 희망이 생겨요.”그녀는 앞으로 3년 후에 개인전을 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여행도 다니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있다. 그녀가 인터뷰를 끝내고 촬영을 하는 동안 작업실에 놓여 있는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했다. 이탈리아의 곤돌라, 프랑스남부의 어느 골목길풍경, 에펠탑이 보이는 도로위 자동차들, 그리스의 항구 등 이국적인 풍경들을 보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나혜석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순간 파리풍경, 스페인풍경, 스페인해수욕장, 만주봉천풍경 등 나혜석이 세계일주를 하면서 그렸던 작품들이 조 화가의 그림에 오버랩 되었다. 작업실을 나오면서 배웅을 하는 그녀에게 이번에 유럽을 가시면 독일이 낳은 서양최초의 여류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의 좋은 기운을 받아 오라고 주문했다. 서양화가 조원춘 개인전 및 초대전 2004:세종문화회관 2008:동이갤러리 2008:setec 2009:see&sea (부산) 2010:이윤수갤러리 2011:mother&daughters전(대백프라자)4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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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양화가 조원춘 “여행 하면서 세상의 풍경을 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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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최은선 작가...그림과 그림책에서 행복 찾는 영원한 피터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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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명다기 품평회 '대상' 수상자 장상철 사기장
- ‘청암요’의 장상철 사기장(49)은 ‘제6회 대한민국 올해의 명다기(名茶器) 품평대회’에 ‘귀얄사발’을 출품해 대상과 입선을 차지했다. 故 신정희 사기장의 사돈이자 제자인 장상철 사기장은 전남 해남이 고향으로 “이번 대회를 통해 전국의 훌륭한 사기장들과 함께 좋은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지게 됐다” 며 “앞으로도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힐링을 얻고 행복해 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고 밝혔다. 수상 후 경남 양산 하북에 머물고 있는 장상철 사기장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해 사발에 대한 얘기를 들어 보았다. 사발 하나로 한국을 알린 사기장사발은 우리 선조들이 예부터 밥, 차, 제사상에 사용되던 평범한 생활 용기였는데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 웅천도요지의 도공들과 그 가족들 125명이 퇴각하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가마터의 불이 꺼졌고, 그 명맥마저 중단되었다. 그리고 일제 때 조선 땅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사발마저 일본으로 가져가면서 국보급 사발들은 전부 일본인의 차지가 되었다. “그렇습니다. 일본인들이 수차례의 침략을 통해 우리의 찻사발을 가져다가 예술품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그 결과 거꾸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 오는 형국이 되었지요.” 정상철 사기장은 “우리 선조들의 사발 제조기법이 일제 때 많이 무너진 게 사실이고 반대로 일본은 우리 것을 가져가 일본의 색깔과 모양으로 재탄생시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그 격차가 확연히 좁혀졌음을 일본이 인정하고 나섰다.고 신정희 선생은 임진 난 때 도요토미가 최상의 찻사발로 극찬한 이도다완을 국내 최초로 재현해 냈다. 그 뒤를 이어 선생의 수제자인 장상철 사기장은 지난 2010년 일본작가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일본 교토의 노무라미술관 초청을 받아 우리 사발 60여 점을 선보이는 첫 전시회를 가졌었다. 당시 6일간 열린 이 전시회 기간 매일 100여 명 이상의 현지인들이 그의 작품을 감상하러 몰려든 기록을 세우며 미술관 최고책임자인 타니 아키라 관장의 권유로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인 ‛통사발’ 의 영구전시까지 이뤄지면서 ‛사발 하나로 한국을 알린 사기장’ 이라는 칭호까지 생겨났다. 예술품으로 오래 남으려면 景致가 있어야 한다일본인들이 극찬하고 올해 대상까지 거머쥔 사발은 어떻게 만들까? “15년간 선생님께 흙과 온도(불)를 전체적으로 배웠습니다. 사발의 종류는 크게 웅천사발, 기안사발, 귀얄사발이 있습니다. 작가마다 좋아하는 흙이 다르기 때문에 사발 또한 다릅니다. 저는 귀얄사발을 주로 작업하는 데 특징은 철분이 많은 흙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흙이 준비되면 머릿속에 그린 사발을 잘 뽑아낸 후 가마에 구워야 하는데 이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사발은 한마디로 불의 예술입니다. 그곳은 인간의 영역이 미치지 않는 곳이죠. 그래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여름에는 중성이상의 불로 겨울에는 이보다 센불을 유지하며 굽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초콜릿 색으로 온도가 중간보다 높을 때 나타나는 색입니다.” 장상철 사기장은 “힘든 과정을 구워낸 사발 중 하나도 건지지 못할 때가 많다”면서 “사발이 하나의 예술품으로 오랫동안 남으려면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 사기장은 또 “도예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위해 도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경제적인 지원도 없고 판로도 없는 사발 작업을 평생 하기란 어려운 게 현실이다”고 털어놓으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반짝 이벤트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우리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릇에 대한 예의가 국격을 높인다사발 작업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작업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아 스승님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지원도 전무해서 살아남으려면 돈 되는 것들을 우선 만들어 팔고 그 다음 예술작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지원은 놀라울 뿐이다. 또다른 고충은 도시에서는 작업자체를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가마를 땔 때 나는 연기는 혐오시설로 오해를 사기 일쑤다. 그때마다 시골로 시골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러다보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어진다. 일본은 우리의 사발을 가져다가 큰 획을 그었다. 예술품으로 승화시켜 세계도자사전에 일본이름으로 사발을 등록했다. 뒤늦게 정부가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일본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사발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도예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사발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 사발은 반드시 두 손으로 잡아야 하고 차를 따르는 법도 예법에 맞게 해야 한다. 그런 기본이 지켜지면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이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작품을 통해 행복해할 때 힐링된다 장상철 사기장은 불가마에서 원하는 작품이 나왔을 때 소년처럼 들뜨고 즐거워진다. 보통 한번에 30~40개가 들어가는데 나올 때 마음에 드는 작품은 잘해야 1점이다. 그것도 운이 좋을 때 그렇다. 그런데 최근 매우 좋은 작품이 딱 1점 눈에 들어왔고 그것을 많은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운반 중 깨지고 말아 너무나 아쉽고 속상했다. 지금은 다시 좋은 사발을 통해 기쁨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 그릇을 일반인들이 사용하면서 행복해하고 감사 인사를 전해 오거나 전화로 재주문을 할 때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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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명다기 품평회 '대상' 수상자 장상철 사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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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世薰 詩人]“시인으로 살아온 반세기 감사하고 행복”
- 제14회 청마문학상 수상자 신세훈 시인한국문단의 대들보 같은 존재이면서 남북 통일문학의 선구자인 아산(我山) 신세훈 시인(73)을 서울 남산한옥마을에서 만났다. 시인은 지난 4월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올해 청마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시상식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뒤늦게 “축하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꼭 받고 싶은 상이었는데 이렇게 이루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웃으며 답한다. 햇살이 제법 뜨겁게 느껴지는 날씨 탓에 촬영이 힘들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되었는데 시인의 미소가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시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움에 도전 하는 에너지원 선생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시절, 22세인 1962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 당선으로 시단에 나왔다. 당선시 ‘강과 바람과 해바라기와 나’는 당시 심사위원인 무애 양주동, 목월 박영종 으로부터 ‘한국문학의 획을 그을 문재’라는 극찬을 받게 한 작품이었다. 그 후 51년의 시간이 지났다. 말 그대로 반세기가 흐른 것이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 100세라 해도 50년은 쉬이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궁금했다. 선생에게 시는 무엇이고 50년 넘게 시인으로 살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그동안 경제가 안 되는 일을 해 오며 살았습니다. 1991년부터 발행한 계간 자유문학을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내 왔으며, 2010년엔 반 년간 문예지 민족시학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매번 적자를 보고 있지만 내가 숨 쉬는 공간 속에서 벗을 삼은지 오래되었어요. 시인이 된 후 시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지금까지 시인으로 사는 것이고 앞으로도 시인으로 살 것입니다.”선생은 시의 힘으로 경제가 안 되는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그만큼 선생에게 시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움에 도전 하는 에너지원이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시인으로 지내 온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비록 돈은 되지 않았지만 멋진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순리대로 물 흐르듯 그렇게 사는 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요?”30년 간 차 마셔 건강 유지, 녹차의 카데킨 면역력 강화시인으로서 소회를 묻자 처음과 같은 답을 주는 선생의 얼굴은 소년처럼 맑은 모습이다. 고희가 넘어서도 깨끗한 피부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좋아하는 일을 하고 건강한 생각과 차를 가까이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루 일과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됩니다. 일어나면 먼저 기체조로 몸을 풀고 가벼운 식사를 해요. 11시쯤 사무실로 출근해서 업무를 보기 시작하는데 보통 8시에서 일이 많으면 저녁 10시까지 하는 편입니다. 퇴근이 늦는 경우가 많아 자기 전에 꼭 저녁을 먹습니다. 그래서 잠은 보통 새벽 2시가 돼야 잡니다.”피부가 좋은 이유는 30년 동안 차를 마셔서 그렇다고 한다. 정식으로 차를 배운 게 1984년이라고 하니 올해로 서른 해가 되는 셈이다. 차를 마시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차례’라고 한다. 일본은 ‘다도’ 중국은 ‘다법’으로 부른다. 선생은 예가 도나 법보다 위에 있다.“당시 차 마시는 것은 대중화 되지 않았습니다. 고작 커피정도였는데 나는 차가 입에 맞았어요. 녹차, 보이차, 홍차, 감잎차, 대추차 등 다양한 차들이 있지만 그중 최고의 차는 녹차입니다. 매일같이 녹차를 마시면 카데킨이라는 항산화제가 암예방은 물론 면역력이 증가되어 감기도 안 걸리고 알레르기도 진정 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혓바늘이나 생인손 등을 앓을 때 녹차를 지속적으로 바르면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낫는 경우가 많아요.”녹차는 토마토, 브로콜리, 마늘 등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세계 10대 건강식품’에 속할 만큼 우리 몸에 이로운 물질이 많다. 선생은 매일 물대신 이런 녹차를 수시로 마시는데 그 때문에 암도 극복하고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몇 해전 일입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외부 모임이 많아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건강검진을 받는데 의사가 정밀검사를 받자고 그래요. 갑상선 암이 의심된다는 거죠. 검사결과 다행히 초기였어요.” 선생은 암 진단을 받은 후 항암치료 대신 자신만의 비법으로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의사가 꿈인 적이 있어요. 그래서 평소에도 동의보감 같은 의학관련 책들도 많이 보았어요. 그런데 갑상선 암 진단을 받자 처음엔 덜컥했지요. 그 때 갑자기 머릿속에 있던 민간요법들이 떠오른 겁니다. 집에 가서 아내한테 커다란 찜통을 내달라고 했어요. 거기에 상황버섯과 인진쑥, 녹차, 양파, 마늘 등 온갖 채와 약재를 넣었어요. 먹다 남은 야채의 뿌리도 넣어서 매일 수시로 마셨습니다. 큰 컵으로 가득 따라서 물대신 그렇게 달인 것을 3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요.”정기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의사가 깜짝 놀란 것이었다. 갑상선 암세포가 다 사라졌다는 말을 하며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면서 어디서 치료를 받았냐고 물었어요. 나는 그냥 웃기만 했습니다. 의사한테 내가 처방한 민간요법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두었어요.”그렇게 암을 치료한 선생은 지금도 녹차를 마시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민조시 개척, 우리문학의 뿌리 찾기 관심 커 후학 양성 50년 문단활동을 하며 선생이 해 온 일은 시만 쓴 게 아니었다. 앞서 얘기한대로 경제가 안되는 문예지 2개를 발행하고 있으며 장편수필, 청소년시, 청소년 소설, 청소년 희곡, 민조시 등을 개척했다. 그 중 민조시의 경우 3,4,5,6조 운율에 맞춰 쓴 우리가락이다. 선생의 입을 통해 민조시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내가 민조시를 처음 쓴 것은 1976년 10월 14일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3·4·5·6조 1·2·3’연작 3편 민조시를 같은 날 한꺼번에 쓴 것입니다. 그 후 24년 만인 2000년 6월에 민조시집 ‘3·4·5·6조’(도서출판 천산) 가 처음 나왔고, 2008년 3월 두 번째 민조시집 ‘통일꽃 핀다’, 2012년 9월 제3민조시집 ‘천부경 나라’를 펴냈습니다. 내가 민조시에 빠진 이유는 대학 때부터 우리문학의 뿌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조시는 한마디로 우리민족의 장단가락입니다. 그것은 이미 농악의 4물놀이와 대중가요의 트롯까지 아우릅니다. 우리가 아는 시조 역시 초장·중장·종장, 3장 6구 12음보로 나눠져 있지만 결국 형식과 내용은 3·4·5·6조입니다. 그런 구조가 예부터 내려오던 소리 장단가락, 무용의 춤사위 등에 응용되었습니다. 왜 그러면 우리 민족이 3박, 3을 중요시했으냐, 이게 역학과 관계가 있습니다. 3·4·5·6조가 바로 1·3·5·7·9의 기본 홀수의 수리, 천부경에 보면 1은 3하고 같은 개념(1=3=天地人=○△□=우주=3재·3신사상)입니다. 3이 곧 6이 되고, 3X3=9가 되고. 9X9=81이 되고, 또 ‘天符經’은 81자인데 곱하기, 나누기, 더하기, 빼기가 모두 천부경안에 들어있습니다. 우리 인류의 수리학과 철학은 우리 조선 동이족의 선조들이 다 해놓은 것입니다.” 선생이 말하는 민조시는 '한 사상'이 배경이다. 한은 일반에 알려졌듯 슬프고, 괴롭고 그런 게 아니다"면서 "크다, 많다, 하나다, 으뜸이다, 우두머리다, 한울타리다라는 뜻이다. 선생은 순우리말도 '한하게'(많이) 만들었다. '풀머리/깨어있는/동녘산자락 청시울가에,/홀로/나/잠드네,/달머리/잠빛 밝은/서녘강허리 금물목샅에./나 홀로/눈뜨네.' 이 민조시에서 풀머리, 청시울가, 달머리, 잠빛 등 시어를 만들었다. '살섞는다'는 말도 처음 사용한 것이다.선생은 문학(민조시)을 통해서 잃어버린 우리민족의 뿌리를 되찾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민조시 관련 이론을 발표했고, 직접 민조시 분야를 개설해 현재 70명의 후학들이 활동하고 있다. 반년간지 민조시학도 꾸준히 발행하고 있다. 머잖아 이 분야가 새롭게 주목을 받으며 크게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버킷리스트는 문학관 건립과 몽골, 인도, 천산 여행...선생은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왜 국문과가 아닌 연영과를 택한 것일까?“시인이 되기 위해 일부러 연영과에 들어갔어요. 연영과를 택한 것은 연극과 시가 하나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는 연극이 곧 시니까요. 세익스피어와 고전시학은 물론 나중에 내 시의 토대가 된 몽타주기법이나 오버랩 등 영화편집기법 등을 배웠습니다. 심상운 씨하고 중대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는데 이 때 국문과인 심상운 씨를 따라 국문과 강의를 많이 들었어요. 신청 할 수 없는 것은 도강도 많이 하고 그랬습니다.” 선생은 시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정치가나 군인의 길을 걸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끝으로 지금 버킷리스트를 만든다면 무엇인 있을지 궁금했다. “먼저 그동안 하지 못한 문학 관련 도서 3만 5천권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고향 시골학교의 폐교를 구입해서 아산 문학관과 시인학교를 설립하고 민조시 문학연구회 같은 연구시설도 갖추고 싶어요. 두 번째는 못 가본 세계를 여행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부회장과 한국문협 이사장을 하면서 세계시인대회 참석차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아직 몽골과 중국 천산(곤륜산), 인도 등은 가지 못했어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쓴 시가 많은데 책으로 엮지 못한 게 많아요. 주로 기행시인데 대부분 장시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끝으로 그동안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남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게 도움 받은 것에 대해 갚을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빚을 갚고 싶습니다.“ 멋진인생은 물처럼 욕심없이 순리대로 사는 것촬영이 끝나고 한옥마을을 내려오면서 선생은 멋지게 사는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욕심없이 순리대로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았어요. 때로는 배신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오면 반겨주고 또 떠나면 보내주고 그렇게 물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바위를 만나면 물이 돌아서 가듯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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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世薰 詩人]“시인으로 살아온 반세기 감사하고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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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박사 원정혜, 평범하지 않은 인터뷰
- ▲ 요가박사 원정혜 [사진_비엠코리아] 그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를 달리는 프로였다. 요가 전도사 또는 수행자로서 원 박사는 19세 때부터 요가를 시작해 지금까지 17년째 외길을 걷고 있는 기인이다. 원박사를 대뜸 기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의 삶 자체가 평범과는 거리가 있어서다. 이제부터 원정혜라는 주인공이 요가에 빠져들게 된 경위와 그의 평범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들어보도록 하자. 출발전 수세미가 된 머릿속017-209-**** 뚜뚜... 통화중이다. 다시 한 번 번호를 확인하고 엄지에 힘을 실어 꾹꾹 눌렀다. 이번엔 신호가 길게 간다. 요즘 흔한 컬러링도 아니고 그냥 일반신호음이다. 요가와 관련된 신비한 음악소리를 기대했는데 조금 실망스러운 느낌이 잠깐 동안 스쳐지나갔다. 무뚝뚝한 기계음은 오랫동안 귀를 간지럽게 하더니 곧 녹음된 여자의 안내멘트가 나왔다. 동시에 폴더를 닫았다. 순간적으로 녹음을 할까 생각했지만 문자를 남기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박사님. 4월호 커버스토리때문에 연락드립니다. 전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몇 번의 수정 끝에 겨우 글자수를 맞춰서 보내고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던 휘파람 소리는 쉽게 울리지 않았다. 다른 취재원과 통화를 끝내고 다른 꼭지를 진행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중 휴대폰에서 휘파람소리가 터져 나왔다. 혹시...예감은 적중했다. 원정혜 박사였다.휴대폰 속 목소리는 무척 쾌활한 명랑소녀 같았다. 간단히 커버스토리의 컨셉과 진행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난감한 목소리로 완곡하게 거절을 해왔다. 이유는 아침 7시부터 강의를 시작해 저녁까지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이었다. 설마 매일 그럴까? 다시 한 번 시간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겨우 **출판사 기획자와 약속 건을 뒤로하고 인터뷰를 잡을 수 있었다. 원래 커버스토리의 기획의도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따라다니면서 주인공의 하루를 스케치하는 것이었는데...시작하기도 전에 꽝이 되고 말았다. 머릿속이 수세미처럼 엉키고 있었다.요가박사를 만나기 전 준비운동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에 인터넷을 뒤졌다.“요가박사, 요가수행자, 2001년 SBS 오락프로그램 ‘장미의 이름’에서 요가코너 진행자, EBS문화센터 요가강사 및 요가프로그램 MC, 유명대학(고려대, 연세대, 숭실대, 숙명여대, 차병원, 중문의대 등)강사, 유명 문화센터 요가강사, 대기업 초청강사, 요가관련 비디오 및 단행본 저자...등” 원정혜라는 이름을 입력하자 바로 그녀와 관련된 인터뷰, 비디오, 뉴스단신 등 많은 정보가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그중 **잡지와 인터뷰 한 기사를 읽어보았다. 대부분 요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역시 요가짱이구나. 요가박사 앞에서 요가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요가관련 사이트를 찾아 요가에 대한 기초정보를 살펴보았다.프린트를 해서 보니 재미는 없었지만 아주 조금 요가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요가는 인도에서 약 6천년 전부터 수행자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수행의 방법으로 어원은 결합한다는 뜻의 yuj이며, 의미는 마음을 긴장시켜 어떤 목적에 상응 혹은 합일한다는 것이다. 요가의 수련과정은 소우주인 자신과 대우주의 조화를 위한 정신력 개발과 육체강화가 목적이다. 인체는 앉고, 서고, 눕는 기본 동작만을 충실히 해도 충분한 운동효과를 볼 수 있는데도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해 인체의 수많은 근육중 사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되고 그것을 반복하다보면 몸의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어 몸에 이상이 생겨 질병이 발생한다. 요가는 몸의 근육을 골고루 사용해 몸을 부드럽게 만들어 건강을 얻고자 하는 운동이다.’그밖에도 요가에 관한 여러정보들이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녀를 만나려는 목적이 요가강의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니기때문에 요가의 정의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원정혜 박사를 만나다7호선을 타고 숭실대에서 내렸다. 약속장소인 ‘일 보스코’를 찾기 전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택시를 못 잡아서 마을버스라도 타고 온다고 한다. 천천히 오시라고 말한 후 ‘일 보스코’를 찾아보았다. 사진기자가 “저쪽에 있어요”한다. 노화가 벌써 왔나 왜 내 눈엔 안보이지? 최기자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았다. 생각보다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때 아닌 폭설로 인도는 빙판이 되어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일 보스코’를 향해 갔는데 문이 닫혀 있다. 토요일이라 주인이 늦잠을 자나? 아무래도 인터뷰는 다른 장소에서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바로 위에 분위기 좋은 커피숍이 보였다. 아직도 걸어오고 있는 사진기자를 부르러 밖에 나갔는데 그 옆에 키 큰 여자가 함께 있었다. 한눈에 원정혜 박사임을 알 수 있었다.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연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온 그녀는 나이에 비해서 훨씬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오랜 수련으로 명징한 눈이 인상적이었다. 시종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하는 모습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차를 시키면서 토스트를 부탁했더니 그녀는 여유있게 구워달라고 덧붙였다. 차가 나오는 사이 100년 만의 폭설이 내린 날씨 얘기를 잠깐 나눈 후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길지 않아서 준비해 간 질문을 빠르게 풀어놓아야 했다. 먼저 원정혜 박사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물어 보았다.“그 날 일정에 따라서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어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밤11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납니다. 기상 후 3시부터 4시까지 명상이나 호흡, 원고 쓰는 일 등 개인적인 시간을 꼭 갖습니다. 정확하게는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하하 죄송해요. 그리고 낮에는 대학강의나 방송, 글쓰는 일, 만남, 언론사 인터뷰 등을 합니다. 특히, 아침강의가 6시부터 있는 날에는 하루 24시간이 너무나 부족해요. 개인적으로 면허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택시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데 부족한 잠은 주로 차안에서 보충합니다. 일을 할 때는 집중력이 대단한 편이어서 EBS명상의 시간 1개월 치를 하루만에 녹화한 적도 있어요. 물론 감독님께서 후한 점수를 주신 덕분이지만요. 하하” 그녀는 고려대 조치원 분교에서 요가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매주 수, 목요일을 빼고는 거의 매일 장거리를 뛴다. 하루에 많을 때는 8개 학교의 강의를 나간다는 그녀. 거기에다 단행본 집필, 비디오 제작, 방송 MC, CF촬영 등 많은 일들을 소화해 내는 샘솟는 체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5세부터 발레를 시작했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 특기생으로 다녔지만 꼭 10등 안에 들었어요. 공부도 잘하고 싶었거든요. 성격이 워낙 아버지를 닮았나 봐요.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제 가방에는 없는 것이 없었고 애들은 그런 절 만물상이라고 불렀어요. 초․중․고 재학시절 발레와 리듬체조 선수를 했지만 체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대학 때 알게 된 요가를 통해서 지금의 체력이 길러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원 교수는 어릴 때부터 날씬 했던 것은 아니었다. 발레와 리듬체조 그리고 에어로빅 등으로 가꿔온 몸매였지만 살이 찌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그녀는 심한 스트레스로 키167cm에 몸무게가 78kg까지 나가게 되었고 이때부터 요가에 더욱 정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요가는 또 다른 세계였고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방학때 해인사와 송광사를 찾아가 매일 일천배를 올린 것도 마음수련을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특히, 박사학위 논문 준비를 위해 해인사를 찾아갔을 때는 매일 3천배를 올렸고 해인사의 원성스님이 머리를 깎으라는 권유를 했을 땐 실제 스님이 되려는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함께 갔던 후배가 집에 연락을 해서 동생(원현성사진작가)이 오지 않았으면 비구니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절에서 내려온 그녀는 요가를 통해 몸무게를 무려 22kg이나 감량하는데 성공했다. 원 교수의 어린시절은 보수적인 집안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 아버지 원오재(70)씨는 현재 **기업 대표를 맡고 있으며 어머니 정영자 씨는 전 유니세프 위원이었고 현재 교통심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는 고대를 나왔고 어머니는 숙명여대를 나왔다 두 분 다 정도를 지키는 깐깐한 분이다. 그녀가 대학은 숙대를 나오고 대학원은 고대를 나온 이유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권유에서였다. 세상물정 전혀 모른채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와서 그녀는 상당히 많은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 특유의 적극성과 완벽함은 요가를 만나면서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학에서도 그녀를 인정하게 되었다 25세부터 대학 강단에 선 그녀는 고려대에서 29세 때 요가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박사학위 취득 후 세상에 요가를 전파하기 위해 요가전도사가 된다.요가 수행시 주의할 점이제부터 원정혜박사의 요가강의가 시작될 참이다. 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일반인들이 요가를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제 수업에 들어오시는 분 들 중에서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 부분이 ”마음이 편해지고 몸의 불편한 부분이 해소되었습니다 하는 것인데요. 이는 요가의 수행이 부자연스러운 일상에서 오는 불편함을 해소시켜주어서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되고 명상과 호흡을 통해서 스스로 마음의 상태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문제점을 인식함으로써 본질적인 평온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일에까지 많은 생각과 판단, 그리고 결정을 하게 되죠, 그러한 과정 중에 스스로의 몸과 마음의 상태는 매우 중요한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요가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정화되면 몸과 마음의 걸림돌이 되는 문제들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요가를 하면서 주의할 점은 무엇이며 반드시 지켜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첫째, 요가 다이어트는 최소한 3개월 후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초보자의 경우 몸이 요가에 적응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물론 2주일 만에 5kg이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미국인은 1주일만에 3kg이 빠졌다고 합니다. 공통적으로 고집이 없고 순수한 사람일수록 반응이 빨랐어요. 반응이 늦더라도 조급하게 굴지 말고 자신의 상태를 꾸준히 지켜봐야 합니다. 둘째, 반드시 규치적으로 해야 합니다.셋째, 반드시 공복상태에서 해야 하고, 식후 2~3시간 후일 때가 가장 적당합니다. 목욕한 직후에도 피해야 하며, 요가체조를 하고 난 뒤에도 곧바로 목욕, 세수, 머리감는 일 등은 피해야 합니다.넷째, 에콜스무브먼트나 요가의 체조부분은 혼자서 해도 좋지만 제대로 요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믿을만한 지도자의 지도를 받도록 합니다. 시중에 나온 책이나 비디오만 믿고 요가를 독학하는 것은 위험합니다.다섯째, 병을 앓은 경험이 있거나 현재 어디가 아픈 곳이 있으면 수련을 받기 전 미리 지도자와 상의 합니다.여섯째, 타인과 경쟁하거나 비교하며 수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수행의 결과도 개인차가 작용합니다. 설령 다른 사람의 진행과정보다 뒤처지더라도 자신의 그릇과 인연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합니다.일곱째, 항상 긍적적으로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어지러우면 요가다이어트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습니다.“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정말 요가박사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이 배어나는 목소리와 해박한 지식 그리고 건강한 모습을 통해 원정혜 박사에 대한 신뢰감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갖는 것 요가의 정신 그녀가 요가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까? 다이어트 성공 아니면 요가전도사로서 이 땅에 요가를 널리 알린 것보다 더 구체적인 무엇이 있을 것 같았다.“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구요. 그것을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그러한 과정 중에 많은 분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셨다거나 좋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하겠습니다.”원박사가 요가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앞서 언급한 대로 다이어트 때문일까?“하하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중고생 때부터 이미 3천배를 엄청했었구요. 지나고 보니 그것도 요가 수행의 일부였어요. 그리고 요가이론이나 실기는 대학에 들어와서 배웠어요. 이곳저곳에서 인연이 되는 선생님들께, 그리고 스님들과 수행자들에게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예뻐지고 살빠지고 건강해진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전공까지 하게 되었네요. 박사 논문까지 요가에 관해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해보니 가장 정확한 전인교육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서요. 다른 어떤 테마를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석 박사 논문을 모두 요가로 쓰게 되었습니다.”이제 그녀의 나이는 37이다. 얼굴은 아직 서른 전후로 밖에 안보이지만 적지 않은 나이다. 어쩌면 화려한 싱글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그녀에게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일 중 가장 힘든 일과 가장 기뻤던 일을 물어 보았다.“늘 하우스 안의 화초처럼 생활해 오다가 20대 중반이 되어 갑자기 많은 일들을 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살아온 삶에 대한 생각들이 다른 경우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그 때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처음 알았죠. 헌데 예술작품을 하는 저로서는 그런 맑지 않은 마음이 작품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글과 작품을 위해서 사시촌이 있는 절로 들어간 것이구요. 새벽에 많은 예불과 절을 드리면서 순간...내 몸 하나, 마음 하나도 다스리지 못한 채 무용을 하면서 이렇게 살이 쪄 있고, 행복하고 싶지만 불행으로 있으면서 누가 내 맘에 든다 안든다.....하는 것은 오만함이었구나...나부터 맘에 들고봐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누군가가 맘에 안든다면...나는 스스로 얼마나 맘에 드는 생활을 하고 넘어가고 이해하게 됩니다.그녀는 절에 들어갈 때의 마음이 가장 힘든 때였고 절에서 5년 동안의 수행을 마치고 나올 때의 마음이 가장 기뻤던 때라고 털어 놓았다.그렇게 절에서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의 정화를 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그녀에게 세상적인 꿈이 있을까? 수행자에게 부귀영화가 어색한 옷이기에 그녀의 답이 궁금했다.“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인생은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수행자로서 교육자로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에 벗어나지 않는 일과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굳이 도전이라기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꿈이 아닐까요?”그녀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힘이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요가전도사로서 이론과 실제뿐 아니라 충분한 자양분을 소유한 그녀는 요가를 배우는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몸과 마음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스스로의 상태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지혜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아름다움을 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몰랐던 몸과 마음에 대한 걸림을 스스로 인식하고 일상에서 맑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수 있기를 바래요. 그리고 요가를 수행하는 분들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건강해져서 서로에게 사랑과 기쁨을 나누어주고 타인의 기쁨을 함께 하고 타인의 슬픔을 함께 아파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가의 경전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어려운 동작을 얼마나 할수 있는 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늘 수행자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요가수행의 길이 아닌가 합니다. 요가를 수십년 했어도 말과 행동이 지저분하고 술과 담배에 능하며 늘 시기질투심에 사로잡혀서 자신만이 정답이라고 자만한다면 그것은 요가를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 늘 겸손하게 열심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스승은 나의 어머니 언제 왔는지 **출판사 기획자 두 명이 뒤쪽 자리에 앉아서 원박사에게 인사를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10분. 아무래도 더 이상의 인터뷰는 무리일 듯싶었다. 마무리를 하기 위해 위해서 남은 질문을 서둘렀다. 단답형 질문에 그녀도 분위기를 눈치 채고 짧게 대답해 주었다. 박사님이 존경하는 분(스승)이 있습니까? 있다면 이유는 무엇 입니까? “주변에 좋은 스승님들이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께 좋은 말씀을 듣거나 수행법들을 많이 배웠어요. 지금의 제가 알고 있는 내용들도 모두 그분들 덕분에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온전한 스승님을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절에도 들어가고 많은 분들을 뵈었지만 스승님은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 어머니세요. 스님들도 수행하지면서 많이 상담을 하시기에 그런가 보다...라고만 했는데요. 수행중에 오는 걸림돌을 해소 하는데는 어머님의 지혜로움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구요. 어머니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그 반정도만해도 저는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을 할만큼 큰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년이상 청소년가장돕기 장학회를 운영해 오시면서 아이들 마음에 금이 가지 않게 지로로만 주시고 주변분들에게 늘 베푸시고 하시는 모습이나 미국에서도 크게 활동하시면서 늘 겸손하신 모습...가정적으로 내조도 잘하시고 자식들에게도 헌신적이시면서도 당신의 삶을 잃지 않으시는 모습 등...너무나 따라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그녀에게 10년후의 모습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수행자답게 넉넉한 답을 해주었다.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10년후에도 늘 지금 곧 죽음에 직면해도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돈이나 명예나 사물은 왔다가 스쳐가는 것인데 지나치게 얽매이다가 중요한 사람들과 사랑이나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지금의 삶을 그대로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친 후 그녀는 **출판사 직원들과 앞으로 나올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고 사진기자와 나는 커피숍을 빠져 나왔다. 인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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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박사 원정혜, 평범하지 않은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