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2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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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어둠이 고요히 내려앉은 시간, 동궁과 월지는 빛으로 스스로를 깨웠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궁성의 선들이 물 위에서 부드럽게 흔들리고, 천 년 전 신라의 숨결이 그 잔물결 사이로 조용히 스며 나왔다. 첨성대와 대릉원에서 이어지던 여행의 여운이 이곳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의 문장처럼 완성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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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과 월지 야경(사진=최치선 기자)

 

황금빛 조명이 성벽을 타고 흐르며 물결 위에 두 번째 궁을 만든다. 사진 속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건물의 지붕이 아니라, 그 지붕이 물 속에 비친 또 하나의 세상이다. 마치 신라가 현실과 이상, 인간과 자연 사이에 놓아둔 경계선이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다는 듯, 물 위의 궁은 본래의 궁보다도 더 선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동궁과 월지는 원래 왕실의 연회와 손님을 맞아들이던 장소였다. 그 환대의 공간이 오늘은 여행자를 품고, 바람 한 점 없는 밤하늘 아래서 잔잔히 말을 건넨다. “천 년의 시간은 지나갔지만, 그 안에서 길을 잃지 말라”고. 화려함이 아니라, 오래된 고요 속에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나무들은 어둠 속에서도 서로의 자리를 잃지 않으며, 물은 그림자를 받아 안고 긴 호흡으로 숨을 고른다. 사람들은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이 공간을 조심스레 걷는다. 신라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미의 감각은 이렇게 밤마다 다시 태어난다.

 

사진 속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이 빛이 실은 과거의 잔광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라는 생각이 든다. 눈부심이 아니라 고요함으로 마음을 씻어주는 위로. 그래서 동궁과 월지는 늘 경주의 밤을 가장 아름답게 만든다.

오늘의 나는 이 풍경을 사진 속에 담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품어왔다.

빛과 어둠 사이에 오래도록 흔들리며 남아 있는 신라의 마음 같은 것. 그 여운은 아마 내일도, 그다음 날도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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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선의 포토에세이] 동궁과 월지, 빛이 머무는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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