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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를 안아주다


고운 최치선


사유의 방1.jpg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사진=최치선 기자)

 

어둠이 가득 찬 방

숨소리마저 메아리치는 곳 나는 눈을 떴고

거기에는 작은 내가 있었다


아가
너는 얼마나 오래 혼자였니 얼마나 많은 밤을 떨며 보냈니 
누군가 와줄까, 손잡아줄까 기다리다 지쳐 잠들었니

나는 기억해 
지독한 외로움, 이유도 없이 불안했던 날들 
특이한 사람, 이상한 사람,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나를

어릴 적 나는 눈을 감으면 더 깊이 가라앉았어 
그곳에서 나는 늘 기다렸어 
엄마의 손길, 아빠의 목소리, 누군가 나를 찾으러 와줄 거라는 희미한 믿음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나는 점점 작아졌어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어 버려진 게 아니라 
그 누구도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는 걸

처음엔 너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어 
너무 아픈 모습이었거든 너무 처참하고, 너무 불쌍해서 
하지만 외면할수록 너는 더욱 깊이 웅크리고 있었지

그래서 다가갔어 
네 손을 잡고, 조심스레 말했어 
“괜찮아, 너 잘못이 아니야. 많이 무서웠지? 그런데도 잘 견뎠어.” 
나는 너를 안았고, 너는 처음으로 울음을 그쳤어

그 후로도 너를 찾았어 
슬플 때, 외로울 때, 이유 없이 불안할 때
네가 내 안에서 울고 있을까 봐

이제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아 너를 사랑해 
너를 이해해 그리고 너도 나를 받아들여

우리는 함께야 
어떤 어둠이 와도 나는 이제 너를 두고 떠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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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운(본명: 최치선)

등단 : 2001년 3월 자유문학 봄호

시집 : 바다의 중심잡기(2012), 동진강에서 사라진 시간(2020)

수상 : 자유문학상(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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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시] 작은 나를 안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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