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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사람과 술, 그리고 고향...모월양조장 김원호 대표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한 사람의 소망이 담긴 공간이자,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켜가는 터전이다. 대기업 엔지니어에서 사업가로, 그리고 전통주 양조인으로 삶을 전환한 김원호 대표의 철학은 ‘우리 땅의 재료와 정직한 손길로 술을 빚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상 수상으로 인정받은 그의 술은 이제 원주의 이름을 새롭게 알리고 있다. ◈친구와의 약속에서 시작된 귀향의 꿈 “우리 나중에 늙으면 다 같이 원주로 돌아와 모여 살자.” 김원호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나눈 농담 같은 약속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20년 넘게 대기업 기계·전자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서울에서 성공적인 사업가로 자리매김했지만, 결국 그는 고향 원주로 향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늘 관심 있던 우리술을 현실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과 양조장을 병행하면서 처음에는 사업에 쏟는 비중이 8이었다. 그러나 점차 양조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지면서 지금은 양조장 9, 서울 1의 삶이 되었다. “서울의 일은 이미 직원들이 알아서 굴러갈 정도로 안정돼 있어요. 이제 제 중심은 원주 모월양조장에 있습니다.”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협동조합 같은 양조장 2010년, 김 대표는 원주에 양조장을 열었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인지도가 부족해 술을 빚어도 팔리지 않았고, 2020년까지만 해도 접을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그 상은 제 개인의 성취라기보다 고향 사람들과 함께해 온 노력의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술을 빚는 길은 언제나 순탄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양조장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였습니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해 금전적으로도 큰 손해를 입었죠. 물질적인 어려움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지지해 준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끝까지 믿어주고 함께해 준 고향 친구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의 모월양조장이 있습니다.” ◈원주의 쌀, 그리고 집요한 연구 양조장의 자부심은 원주에서 직접 재배한 토토미 쌀이다. 김 대표는 자신이 직접 소량의 쌀농사를 지어 보태기도 한다. “우리 땅의 재료로 술을 빚는다는 게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그는 기술자 출신답게 효모 연구에도 몰두한다. 다양한 효모를 증식시켜 가장 적합한 균주를 찾아내고, 증류 과정에서는 초류와 후류 각각 2~3%를 제거해 숙취를 줄인다. 또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에 술을 담아 6개월 이상 숙성해 곡물 본연의 맛을 살린다. “좋은 술은 기술과 정성이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술의 이름에 담긴 의미 모월양조장은 ‘모월 연’, ‘모월 미’, ‘모월 로’, ‘모월 인’ 등 네 가지 술을 내놓고 있다. 모월 연은 원주 쌀 100%로 빚어 산미가 입맛을 돋우고, 모월 미는 군고구마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모월 로(25%)는 부드럽고 깔끔한 목넘김을 자랑하며, 모월 인(41%)은 쌀로만 만든 증류주의 정석으로 깊은 감칠맛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모월(某月)’은 달처럼 시간이 흐르며 술이 익어간다는 뜻입니다. 술은 기다림과 인내의 산물이죠.”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철학은 단순하다. “우리 땅, 우리 사람들과 함께 술을 빚는다.” 그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원주만의 색깔을 담고, 공동체 운영을 통해 상생의 가치를 실현한다. 나아가 꾸준한 연구로 한국 전통주가 해외에서도 인정받기를 꿈꾼다. “고향 원주에서 시작했지만, 목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전통주가 세계에서도 사랑받는 날까지 도전하겠습니다.”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술 공방이 아니라, 사람과 땅,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공동체의 양조장이다. 때론 배신과 손해라는 아픔도 있었지만, 끝내 이를 이겨낸 것은 믿음으로 함께해 준 친구들이었다. 김원호 대표의 술 한 잔에는 고향의 온기, 우정의 힘, 그리고 장인의 집념이 담겨 있다. 모월의 술을 마시는 일은 단순한 음주가 아니라, 원주의 이야기와 한국 전통주의 미래를 함께 나누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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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우보주책...“소걸음의 지혜로 담아낸 우리 술 한 모금”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우보주책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이름의 양조장을 운영하는 김희철 대표를 만나기 위해 5일장이 한창인 용문역 앞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커다란 회의용 탁자와 의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안쪽으로는 주방과 장식장에 가지런히 진열된 술들이 차분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양평의 숲과 들녘 사이, ‘소걸음으로 천천히 전통주의 비책을 찾겠다’는 뜻을 담은 이름의 술 공방 우보주책(牛步酒策). 그 중심엔 김희철 대표가 있다. 그는 50년 음주, 10년 향음, 4년 양조 경력을 자랑하지만, 그보다 더욱 빛나는 건 그의 나눔과 사람을 향한 진심이다. 은행 부행장까지 지냈던 그가 퇴직 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경제 상담, ‘부자강의’라는 이름의 강의를 이어가며 삶의 지혜를 나누는 모습은 술 빚기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은행원에서 양조인으로 “저는 음주 50년, 향음 10년, 양조 4년 경력의 술 전문가입니다.” 김 대표의 첫 인사말은 농담 같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함축한다. 금융권에서 수십 년간 사람들의 돈과 고민을 함께 나누었던 그는 퇴직 후에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상담을 이어갔다. 이제는 술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양조장을 사람과 사람이 만나 교류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밀로 빚은 ‘진짜 술’ 국내 밀 자급률이 1%에도 못 미치는 현실. 그는 양평에서 열린 밀 축제에서 수입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가 등장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 끝에 우리밀로 술을 빚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양평 밀 막걸리와 소주다. 금강, 백강, 토종 앉은뱅이 등 다양한 품종에 양평 쌀 ‘참드림’을 더해 맛을 완성했다. 김 대표는 “밀로 빚은 술은 쌀과 달리 고소하고 담백하다”며 우리밀 술이 가진 차별성을 강조했다. ◈53도 밀소주의 탄생 우보주책의 또 다른 대표작은 양평밀소주다. 증류 과정에서 도수를 조절하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던 53도에 맞췄다. 의외로 도수의 무게감보다 맑고 부드러운 향이 먼저 다가온다. 그는 “실온에서 마시면 향이 더욱 풍부하고, 온더락이나 하이볼로 즐겨도 좋다”고 소개했다. 현재 ‘양평밀소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며 지역 대표 기념품으로도 자리 잡았다. ◈양조장의 현실과 철학 하지만 김 대표는 양조장의 현실을 냉정히 짚는다. “요즘 청년들이 양조장 사업에 뛰어들지만 대부분 1년을 못 버티고 나갑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연 3000만 원의 수익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그는 “양조는 마음을 비우고, 소걸음처럼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나만의 술을 찾고, 시설 확장보다 작지만 알차게 운영하며 단골을 늘리는 게 길이다”라고 조언한다. “술은 결국 사람이 찾는 것이고, 그 관계가 양조장의 힘이 된다”는 말은 우보주책의 운영 철학을 대변한다. ◈예술과 술, 또 하나의 교감 김희철 대표는 술만 빚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섹소폰 연주자이자, 얼마 전까지 악단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음악인으로서의 감수성은 술의 풍미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양평에서 활동하는 시인, 화가, 음악가 등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과 자신이 만든 술을 교환하기도 한다. 술과 예술이 만나는 교류의 장은 우보주책만의 독특한 문화적 향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좋은 술은 좋은 음악처럼 오래 기억된다”며, 술과 예술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개체라고 말한다. 우보주책에서의 한 잔은 단순한 술맛을 넘어 예술과 교감하는 경험이 된다. ◈청년과 함께하는 술자리 우보주책은 열린 사랑방이기도 하다. 청년들이 안주를 들고 오면 2만 원만 내고 무제한으로 술을 즐기도록 개방한다. 그는 이를 “내가 감사한 자리”라고 표현한다. 젊은 세대와 함께 술을 나누며 세대 간 거리를 좁히고, 술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보주책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금융인의 경험, 멘토로서의 따뜻한 마음,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이 술잔 속에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김희철 대표가 빚은 술은 ‘맛’만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양평의 들녘에서 태어난 막걸리 한 사발, 53도 소주 한 잔, 그리고 섹소폰 선율 같은 그의 미소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술은 나눔이고, 사귐이며, 결국 예술이다.” 소걸음처럼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가는 그의 길 위에서, 우보주책은 한국 전통주의 또 다른 미래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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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시철 박사 “AI로 생애 건강 리스크 예측하는 시대 열린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제노시스 AI헬스케어(주) 부회장으로 7월 1일 공식 취임한 강시철 박사는 “AI의 힘으로 수명, 사망 원인, 때를 미리 알고 예방과 치료까지 가능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의료기술을 넘어 인류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그의 메시지는 강렬했다. 제노시스가 개발 중인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은 이제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로 다가서고 있다. ◆“앞으로는 건강의 흐름과 생애 리스크까지 예측 가능하다” “앞으로는 자신의 건강 상태는 물론, 생애 전반의 리스크까지 미리 알 수 있는 시대가 열립니다.” 강 박사는 “그동안 우리는 질병이 발현된 후에야 치료를 시작하는 방식에 익숙했지만, 앞으로는 개인의 유전체와 생체 데이터, 생활습관, 환경 요인 등을 AI가 통합 분석해 미래 건강 흐름과 위험 요인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컨대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 언제쯤 건강상 이상이 나타날지 등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치료뿐 아니라 예방 중심의 의료로 전환이 가능해진다”며 AI 기반 예측 의료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제노시스의 핵심,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개발 중인 핵심 기술은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HDT)’이다. 이 기술은 단순한 디지털 건강 기록이 아닌, 사람의 실제 생체 리듬과 유전 정보를 해석하고 반영해 ‘가상의 나’를 실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강 박사는 이를 ‘인체 해독기’라 부른다. “우리는 인체가 보내는 신호의 90% 이상을 해석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 아니라, 병이 생기기 전에 잡아내는 기술입니다.” 그는 이 기술이 실제 임상에 적용되면, 지금까지 일부 VIP만이 누리던 맞춤형 정밀의료가 누구에게나 제공될 수 있는 ‘보편적 고품질 의료 서비스’로 전환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AI 의료, 5차 산업혁명의 중심축이 되다 강 박사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단순한 산업 영역을 넘어, “5차 산업혁명”의 완성 지점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우리는 이제 인체를 디지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미생물, 생활습관, 환경 등 복합 데이터를 분석해 건강을 예측하고, 치료 방향을 설계하는 일이 인간이 아닌 AI에 의해 가능해지는 시대입니다.” 그는 이어 “인체 번역과 해독이 실현되면, 그것이 바로 5차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이 기술 흐름의 선두에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서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의료 AI 분야에서 세계 일등을 차지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제노시스의 AI 의료진이 이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제가 부회장으로서 그 흐름을 총괄하고 이끌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AI 집단지성이 인류의 삶을 바꾼다” 강 박사는 인터뷰 말미, AI 기술에 대한 신념을 다시금 강조했다. “AI는 더 이상 계산기 수준의 도구가 아닙니다. 인간보다 더 빠르게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치료 방안을 설계하는 새로운 지성입니다. 이 AI 집단지성은 이제 인류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노시스의 기술은 개인을 넘어서 공공의료까지 확장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보편적 의료복지의 실현 또한 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영학 박사인 강시철 부회장은, 20년 이상 기술인문학과 AI 융합 연구를 이어온 인물이다. 저서로는 《AI의료의 미래》,《디스럽션》, 《인공지능과 슈퍼비즈니스》, 《핸디캡 마케팅》 등이 있으며, AI 인문학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상장사 휴센텍 대표이사와 고려대 문과대 교우회장을 역임했다. 강시철 박사의 짧지만 강렬했던 인터뷰는, AI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생명과 죽음을 관리하는 미래 의료의 주체가 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만들어가는 길 위에는, 지금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생명 연장의 기술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의료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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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시흥에 위치한 대한주조의 김미영 대표는 전통주에 대한 깊은 열정과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어왔다. 2009년에 대한주조를 설립한 그는 일본에서의 유학생활과 사업 확장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주를 세계에 알리는 꿈을 키우고 있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생 역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김 대표가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한국식품 도매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술이 가장 큰 이윤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류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특히 한국식품을 일본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주류의 매력을 더욱 느꼈다고 전했다. 일본 유학 중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자,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작은 회사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하며 영업과 납품을 통해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보람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한국식품 도매업체를 창업하며 일본에서의 경험을 활용했다. 대한주조는 2009년 설립되었으며, 최근에는 월 7만 병의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으로 성장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영업과 홍보를 했고, 주류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죠."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자, 그는 다시 주류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있는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공부한 경험도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대한주조는 과일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딸기와 바나나 등을 활용하여 맛과 향을 모두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연막걸리는 탄산이 적고 첫맛이 묵직한 편이지만 목넘길 때는 신맛이 약간 나면서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음자들은 연막걸리에 대해 "부드러운 식감과 적당한 신맛이 조화를 이루어 음용하기 좋다"고 평가하며, 전통주로서의 매력을 느낀다고 전했다. "앞으로 연예인과 협업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싶어요. 연예인 시그니처 막걸리를 기획 중입니다."라며 자신감 있는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지금도 일본에 한국 막걸리와 소주를 판매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제 꿈은 한국의 전통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열정과 비전은 단순한 주류 생산을 넘어 한국 전통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는 전통주가 가진 매력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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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사임당양조장은 권오길 명인의 열정과 노력이 깃든 곳이다. 권 명인은 5년간의 주류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막걸리 제조에 뛰어들었으며, 강릉 출신으로서 고향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여정은 안흥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에 설립된 안흥양조장에서 김성영 선생으로부터 1년간 막걸리 제조법을 전수받았고, 이후 2대 대표인 윤한중 선생으로부터 2년간 추가로 배움을 이어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막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그는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와 사임당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권오길 명인은 강릉 지역의 전통 축제인 단오제에서 단오신주를 제조할 때, 강릉 시민들이 모아 준 쌀을 사용한다. 강릉소주를 만들 때는 풍미를 더욱 좋게 하기 위해 생쌀(강릉황금물쌀)을 이용한다. 그러나 생쌀은 발효가 매우 어려운 재료이므로, 저온 숙성 발효 기간을 10~15일로 설정하고 발효 온도를 섭씨 25~26도로 유지하며 정성을 다해 빚고 있다. 사임당양조장은 이렇게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독특한 제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전통 누룩 대신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여 발효를 진행하는데, 이는 잡균으로 인한 유통 문제를 줄이고 쾌적한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전통 누룩은 고유의 맛과 향을 제공하지만, 잡균으로 인해 술맛이 변하거나 유통 기간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면 품질이 안정적이며 유통 기간도 늘어나는 장점이 있다. 권 명인은 이러한 제조 방식을 통해 월 평균 20만 병 이상의 사임당 강릉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인의 입맛과 유통 환경에 맞는 술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급 재료와 최신 설비를 활용하여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사임당 강릉 소주도 생산하고 있으며, 다양한 곡류를 사용하여 풍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현재 권 명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조장의 운영과 제조법, 유통 등을 배우며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권 명인은 "아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더 발전된 양조장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올해에는 옥수수와 감자를 사용한 약주를 생산하기 위해 설비 시스템을 갖추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맛과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권오길 대표는 지금까지 사임당 막걸리가 자리를 잡기까지 약 1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전통 누룩도 사용해서 만들어봤지만 유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게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맛과 유통기간을 모두 잡은 사임당 막걸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권오길 명인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창의적인 접근으로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도 지역의 자부심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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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 위치한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막걸리로 지역의 주류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 양조장의 이름인 '소두방'은 '솥뚜껑'의 방언으로, 정관읍의 중심인 덕산에서 매남산을 바라보면 솥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김준영 대표는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담아내고 싶어 이 이름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김준영 대표는 약 10년간 통신업에 종사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지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만들어주시던 막걸리를 사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이어받아 진정한 전통주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소두방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현재 소두방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는 '소두방막걸리'와 '퍼플스파클링'이라는 자색고구마 막걸리 두 종류이다. 각각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살려 만들어지며,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는 자색고구마를 50% 사용하고 찹쌀과 누룩을 함께 사용하여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도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자색고구마를 직접 재배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다른 농가와의 협업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막걸리는 탄산이 강하고 색이 아름다워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김 대표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판로 확보이다. 초기에는 마케팅과 홍보가 부족했지만,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으며, 2024년 7월에 첫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그는 향후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길 원하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전통누룩과 개량누룩의 차이도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누룩은 자연 발효로 다양한 미생물이 함께 작용하여 풍미가 깊고 복합적이지만, 개량누룩은 인공 배양된 미생물만 사용하여 일관된 맛을 낸다. 김 대표는 막걸리 종류에 따라 적절히 두 가지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준영 대표는 올해 통신판매에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를 리조트의 PB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예정이며,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그는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소두방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찹쌀과 남평쌀을 50%씩 사용하여 부드럽고 깊은 맛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특히 어머니께서 직접 양조장을 찾아와 쌀을 찌고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을 도와주시는 점이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그대로 담긴 막걸리라고 자부하며, 그 특별한 맛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김준영 대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가족의 사랑과 정성을 담아내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의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부산 정관읍의 역사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담긴 특별한 이야기다. 앞으로 그의 막걸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이처럼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부산의 주류 문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김준영 대표의 열정과 가족의 사랑이 담긴 막걸리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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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여행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는 이를 실현하며 공정여행과 지속 가능한 관광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변 대표는 대안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행을 통한 교육의 시작: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 서울 상수동 카페거리에서 변형석 대표를 만났다. 그는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를 통해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는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왔다. 변 대표는 하자센터에서 7년간 청소년들과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 트래블러스맵을 설립했다. 그의 교육 방식은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방식을 실현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변 대표는 말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며 깨닫게 됩니다. 교과서 속 이론에서 벗어나 세상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몇 배 더 큰 가르침을 줍니다." 공정여행의 철학과 성공 트래블러스맵은 2010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후, 다양한 사회적 기여로 주목받았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고 친환경적 이동 수단을 활용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여행자가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첫해 매출 9억 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연 매출 6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행 상품은 전 세계 31개국에 걸쳐 있으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대표적인 공정여행 상품과 도전 변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의 대표 상품으로 ‘땍때구르르 겨울캠프’(강원도 곰배령)와 캄보디아 반띠아이치마 1박 2일 프로그램을 꼽았다. 이들 상품은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를 중시하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남미 27일 탐방과 북유럽 4개국 여행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환경과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소그룹 여행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빠르게 달리는 여행을 지양합니다. 대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그 지역의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의 철학을 설명하며 깊이 있는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드스꼴라: 여행을 통한 대안교육 트래블러스맵의 부설 여행학교인 로드스꼴라는 15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3년제 대안학교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다. 변 대표는 “로드스꼴라는 교과서 밖에서 세상을 배우는 공간”이라며, "여행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목표를 이루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로드스꼴라는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해왔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진안에서 마을 주민들과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하거나, 백제의 역사를 탐구하며 일본 교토와 오사카를 답사하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 코로나19 팬데믹은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로드스꼴라는 10기 졸업생 배출 후 문을 닫았고, 트래블러스맵은 직원 수를 2명으로 줄여야 했다. 하지만 변 대표는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는 "여행업계는 결국 회복될 것"이라고 믿으며, 특히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돈보다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실버 세대가 늘고 있다"며, 은퇴한 이들에게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남미 여행 프로그램은 완판되었으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여행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공정여행의 미래와 사회적 기여 변형석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을 통해 공정여행의 가치를 계속 확산시키고자 한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현지 회사를 설립해 지역 주민들이 관광 사업을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변 대표는 "여행자는 환경과 지역사회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장기적인 변화를 목표로 윤리적 여행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을 얻고, 타인과 교류하며 성장한다는 변 대표의 철학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위기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공정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움과 교감을 선사하는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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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이승재 대표를 만났다. 밝은 미소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한 이 대표는 지난 수년간 암 유전자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박사들과 협력해왔다. 그는 항노화와 암 예방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승재 대표는 인터뷰에서 회사의 비전과 미래 계획, 그리고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전국으로 확장 중인 제노시스DNA클리닉의 항노화 프로그램과 암 예방 연구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승재 대표는 이러한 혁신적인 연구의 중심에 서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비전과 성과 이승재 대표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주요 목표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항노화 신약 개발입니다.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유니스트의 박종화 교수, 김유미 박사, 서울대 김정용 박사, 임규성 원장 등이 참여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항노화 건강기능식품을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 제품은 현재 임상 중이며, 그 성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라고 밝혔다. 전국 확장과 글로벌 도입 제노시스DNA클리닉은 부산, 서울 압구정, 역삼, 동서울, 병점 등 주요 도시에 이미 오픈했거나 오픈 예정이며, 항노화 프로그램은 두바이와 베트남에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두바이 국립병원과 협력하여 현지에서도 우리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두바이는 사막 지역 특성상 50대 사망률이 높아 우리의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베트남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많은 의사들이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항암 연구와 치료의 새로운 접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 중이다. 이승재 대표는 “우리의 프로토콜은 암 발생 전이나 초기 암 환자들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대학병원에서 포기한 말기 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환자들이 회복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암은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방, 치료, 관리를 통해 암을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건강 비결과 항노화 프로그램의 효과 이승재 대표는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항노화 프로그램을 통해 피가 맑아지고 염증이 사라졌습니다. 면역력이 강화되면서 피부와 머리카락이 재생되고 질환도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에게 ‘회춘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규칙적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운동도 속병이 없고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죠.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 프로토콜을 통해 지금은 40대보다 더 젊고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승재 대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행지로 이탈리아 밀라노와 하와이를 추천했다. 그는 “밀라노는 역사적인 건물과 오래된 명품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큽니다. 수대를 이어온 가업과 전통을 통해 세계적인 명품으로 성장한 회사들이 밀라노에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수세기를 이어오는 전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하와이에 대해서는 “날씨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힐링에 최고 장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재 대표와의 인터뷰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혁신적인 연구와 그의 개인적인 건강 비결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연구와 개발에 열정을 쏟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승재 대표와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와 암 예방 연구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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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6월 5일 여행사 트래블빌더의 이우석(우석몬) 대표와 역삼역 커피빈에서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반바지와 끈 없는 런닝을 입고 헬멧을 든 채 나타난 그는 팔과 다리, 어깨에 멋진 타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이크를 타는군요?"라고 묻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이크와 여행의 시작 '저도 대학 졸업 후 사고가 나기 전까지 잠깐 바이크를 탔었어요.' 대학 시절 잠깐 바이크를 탔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이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이크를 타는 자유로운 그의 모습이 MZ세대의 대표적인 모습 같았다. 인터뷰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시작되었다. 그의 본명은 이우석, '우석몬'이라는 별명은 중학교 때 몬스터를 닮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 별명이 좋아서 지금까지 애칭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첫 여행의 기억 우석몬이 처음 여행을 떠난 것은 9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 중국 여행이었다. "만리장성의 일부만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그는 어린 시절 여행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경험이 여행에 대한 첫 번째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최초의 해외여행은 2015년, 삽자루 선생님께서 공짜로 보내준 유럽 여행이었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꿔놨어요. 14일 동안 유럽 6개국을 다녀왔는데 전부 기억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고, 문화 충격도 받았어요." 그는 그 여행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왜 사람들이 그렇게 큰 돈을 들여 여행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여행 전에는 300만원이면 옷이 몇 벌이고 밥이 몇 끼고,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행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어요." 네덜란드 유학과 목표의 변화 그 후 그는 3수 끝에 9등급에서 3등급, 다시 2등급으로 그리고 마침내 1등급을 달성하고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 "네덜란드가 5년 후 이민 자격을 주기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어요. 대학 3년을 마치고 2년만 버티면 이민이 가능하니까요." 그러나 그의 목표는 1년이 지나지 않아 바뀌게 되었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향수병이 생기고 한국인이 적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도 생기고 정서적으로 불편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이민을 포기하자 그는 네덜란드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수학 강사를 목표로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입학했어요. 거기서 수학을 전공했고, 대학 내내 방학 때는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아르바이트 강의를 했어요." 이우석 대표는 방학 동안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며 하루에 5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세계 일주와 여행사 설립 대학 졸업 후, 그는 세계 일주를 결심했다. "계약서를 쓰려는데 고민이 되더라구요. 내 꿈이 세계 일주인데 강사를 하면 10년 동안 여행을 못할 텐데 그러면 40이 넘게 되고 체력이 지금 같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는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2월부터 시작된 그의 세계 일주는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태국, 두바이, 터키,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 미국, 캐나다, 남미 등 총 58개국을 10개월 동안 여행했다. 귀국 후 그는 강사가 될 계획이었으나, 여행사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4년 2월, 트래블빌더라는 이름의 자유여행사를 설립했어요. 모든 상품이 완판됐고, 여행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여행을 통한 교육과 선한 영향력 이우석 대표는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한다. 그는 여행이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믿는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여행을 통한 깨달음을 전파하고 싶어요. 여행은 살아있는 교육이니까요."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거의 놀다시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9등급이었어요. 하지만 여행에 눈뜬 후 목표가 생겼어요. 이제는 저도 선생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이 대표는 여행을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자신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행의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제가 경험한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자신감과 계획 우석몬의 자신감은 치밀한 계획과 빠른 실행력에서 나왔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바로 실천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행동이 빠른 편이고,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 빠르게 이루죠. 지금까지 제가 조언한 지인들은 대부분 성공했어요." 그는 앞으로 1년 후 강사로서 돈을 벌고, 여행사의 규모도 키울 계획이다. "시기는 2025년이 되겠죠. 강남의 잘 나가는 수학 강사들은 거의 기업 수준이에요. 수백억을 벌어요. 저도 그런 강사가 되고 싶어요." 우석몬 대표와의 2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유롭고 도전적인 삶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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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서울시 풍납2동에 위치한 풍납새마을금고는 변현숙 이사장의 리더십 아래 고객과 직원을 위한 새로운 힐링공간을 마련해 주목받고 있다. 이 공간은 고객과 직원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무료나눔공간으로 회의실과 문화센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변현숙 이사장을 직접 만나,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된 동기와 운영에 대해 들어보았다. "풍납새마을금고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변현숙 이사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고객라운지를 비롯해 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까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는 단순히 금융 업무를 보러 온 고객들뿐만 아니라 풍납동 지역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나눔공간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변 이사장은 고객라운지에 걸린 다양한 작품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현재는 최석운 작가의 유쾌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방문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최 작가의 작품 전시 후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직원들을 위한 공간도 신경을 많이 썼다. 3층에 위치한 직원라운지와 문화센터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강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업무 외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변현숙 이사장은 이번 공간 조성을 통해 고객과 직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풍요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현숙 이사장은 문화센터 뿐 아니라 4층 회의실도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 놓았다. 이러한 공간 조성을 통해 풍납새마을금고가 단순한 금융 기관을 넘어 지역 사회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객과 직원, 그리고 지역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그녀의 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아 힐링과 문화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 이용시간 : 오전 9시~오후 4시 *회의실 이용문의(무료): 풍납새마을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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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수와 노화의 비밀, 박상철 교수에게 듣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대표 이승재)는 3월 18일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 병원에서 노화와 장수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박상철 교수로부터 최근의 연구 성과와 메트포민에 대해 들어 보았다. 교수님, 노화와 장수 연구로 암 예방 프로토콜을 개발 중이신가요? 최근의 연구 성과와 메트포민에 대해 알려주세요. 박상철 교수: 네, 저는 노화와 장수를 연구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요인을 찾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최근에는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과 국민건강 자료를 활용하여 개인 맞춤형 건강식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암 예방을 위한 프로토콜 개발과 제노시스 암 예측 클리닉과의 협력을 통해 국민의 건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메트포민에 대해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 건가요? 박상철 교수: 메트포민은 알려진 비용 효율적인 약물로 알려져 있지만, 연구는 여전히 제한적인 상태입니다. 특허 확보가 어려워 대기업이나 제약회사들이 투자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메트포민과 같은 저렴하고 효과적인 약물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특허가 보장되지 않는 약물에 대한 연구 환경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박상철 교수님은 암 예방 프로토콜 개발을 위해 제노시스 암예측 클리닉과 협력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알려주세요. 박상철 교수: 맞습니다. 저는 김정용 원장님과 제노시스 암예측 클리닉과의 협력을 통해 암 예방 프로토콜을 개발 중입니다. 이는 암 예방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 협력을 통해 환자들의 건강한 노년과 암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교수님의 연구와 노력은 어떻게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기여하고 있을까요? 박상철 교수: 제 연구는 노화와 장수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는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발견된 건강 유지의 비결을 일반 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진행 중인 메트포민 연구는 이 약물의 잠재력을 탐색하여, 기존의 치료 방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노화 관련 질병의 예방 및 관리를 위한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제공하며,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을 연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진행하는 개인 맞춤형 건강식품 개발 프로젝트는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여 최적의 건강식품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건강 관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건강 관리 방식에 혁신을 가져오며,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의 김정용 원장님과 암예방프로토콜을 위해 어떤 협업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상철 교수: 제노시스 암 예측 클리닉과의 협력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협력을 통해 개발된 암 예방 프로토콜은 암 발병의 위험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암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질병의 예방과 건강한 생활 습관의 증진에 중점을 두고 있어, 한국 사회의 건강한 노년을 위한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연구와 노력은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건강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방법과 접근을 모색하며 한국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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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종화 교수와의 대화, 암 진단의 새로운 지평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게놈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종화 교수는 최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와 협업으로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한 암 진단 방법의 혁신적 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조직 생검에 비해 부담이 적고, 암의 정확한 진단 및 치료 과정 모니터링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특히, 이 기술은 암의 조기 발견을 가능하게 하여 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으며, 환자의 삶의 질 유지에도 기여할 것이 예상된다. 박종화 교수는 현재 연구 단계에 있으며,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한 정확도와 안정성의 입증, 의료계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상철 교수와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 김정용 원장 그리고 박종화 교수와 연구팀은 암 진단과 치료의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박종화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교수님,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암 진단과 관련된 혁신적인 연구에 대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우선, 교수님께서는 이 분야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박종화 교수: 네, 저의 연구는 모두 과학자들과 현대 생물학의 기초가 되는 과학적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암 진단과 관련하여, 우리는 환자가 암에 걸렸는지, 걸렸다면 어떤 단계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합니다. 이는 치료의 효과를 측정하고, 필요한 경우 치료 방법을 조정하는 데 중요합니다. 이 연구에 있어서 에피제네틱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에피제네틱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박종화 교수: 물론입니다. 에피제네틱스는 DNA의 변화 없이 유전자의 활성화 상태를 조절하는 연구 분야입니다. 쌍둥이 쥐의 연구를 예로 들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외형이나 건강 상태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는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의 표현을 조절하는 메틸기 같은 요소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구가 암 진단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종화 교수: 우리의 연구는 혈액 속의 종양 DNA를 분석하여 암을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암 세포는 특정한 메틸화 패턴을 가지고 있어, 이를 통해 암의 존재 여부와 종류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개발된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해, 혈액만으로도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액체 생검 기술은 어떤 기술인가요? 박종화 교수: 이 기술은 혈액 샘플을 통해 종양 DNA의 메틸화 패턴을 분석합니다. 과거에는 특정 메틸화 패턴을 검출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지만, 최신 기술을 통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비침습적 방법으로 암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 방식이 암 치료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나요? 박종화 교수: 이러한 기술의 진보는 암 치료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암 진단 방법은 대부분 조직 생검에 의존해 왔습니다. 이는 환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조직 샘플링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욱 정확하고 신속하게 암을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술은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암의 발전 상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교수님의 연구가 앞으로 암 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박종화 교수: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의 박상철 교수님과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의 김정용 원장님 그리고 저희 연구팀은 암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치료 과정을 개선하여 환자의 생존율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단 기술의 발전은 암의 조기 발견을 가능하게 하며, 조기 발견은 암의 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비침습적인 진단 방법은 환자의 부담을 줄이고,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연구가 실제 임상에 적용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박종화 교수: 현재는 이 기술이 연구 단계에 있으며,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검증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해 이 기술의 정확도와 안정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실제 임상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의료계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와 저희 팀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암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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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사람과 술, 그리고 고향...모월양조장 김원호 대표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한 사람의 소망이 담긴 공간이자,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켜가는 터전이다. 대기업 엔지니어에서 사업가로, 그리고 전통주 양조인으로 삶을 전환한 김원호 대표의 철학은 ‘우리 땅의 재료와 정직한 손길로 술을 빚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상 수상으로 인정받은 그의 술은 이제 원주의 이름을 새롭게 알리고 있다. ◈친구와의 약속에서 시작된 귀향의 꿈 “우리 나중에 늙으면 다 같이 원주로 돌아와 모여 살자.” 김원호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나눈 농담 같은 약속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20년 넘게 대기업 기계·전자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서울에서 성공적인 사업가로 자리매김했지만, 결국 그는 고향 원주로 향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늘 관심 있던 우리술을 현실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과 양조장을 병행하면서 처음에는 사업에 쏟는 비중이 8이었다. 그러나 점차 양조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지면서 지금은 양조장 9, 서울 1의 삶이 되었다. “서울의 일은 이미 직원들이 알아서 굴러갈 정도로 안정돼 있어요. 이제 제 중심은 원주 모월양조장에 있습니다.”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협동조합 같은 양조장 2010년, 김 대표는 원주에 양조장을 열었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인지도가 부족해 술을 빚어도 팔리지 않았고, 2020년까지만 해도 접을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그 상은 제 개인의 성취라기보다 고향 사람들과 함께해 온 노력의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술을 빚는 길은 언제나 순탄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양조장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였습니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해 금전적으로도 큰 손해를 입었죠. 물질적인 어려움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지지해 준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끝까지 믿어주고 함께해 준 고향 친구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의 모월양조장이 있습니다.” ◈원주의 쌀, 그리고 집요한 연구 양조장의 자부심은 원주에서 직접 재배한 토토미 쌀이다. 김 대표는 자신이 직접 소량의 쌀농사를 지어 보태기도 한다. “우리 땅의 재료로 술을 빚는다는 게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그는 기술자 출신답게 효모 연구에도 몰두한다. 다양한 효모를 증식시켜 가장 적합한 균주를 찾아내고, 증류 과정에서는 초류와 후류 각각 2~3%를 제거해 숙취를 줄인다. 또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에 술을 담아 6개월 이상 숙성해 곡물 본연의 맛을 살린다. “좋은 술은 기술과 정성이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술의 이름에 담긴 의미 모월양조장은 ‘모월 연’, ‘모월 미’, ‘모월 로’, ‘모월 인’ 등 네 가지 술을 내놓고 있다. 모월 연은 원주 쌀 100%로 빚어 산미가 입맛을 돋우고, 모월 미는 군고구마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모월 로(25%)는 부드럽고 깔끔한 목넘김을 자랑하며, 모월 인(41%)은 쌀로만 만든 증류주의 정석으로 깊은 감칠맛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모월(某月)’은 달처럼 시간이 흐르며 술이 익어간다는 뜻입니다. 술은 기다림과 인내의 산물이죠.”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철학은 단순하다. “우리 땅, 우리 사람들과 함께 술을 빚는다.” 그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원주만의 색깔을 담고, 공동체 운영을 통해 상생의 가치를 실현한다. 나아가 꾸준한 연구로 한국 전통주가 해외에서도 인정받기를 꿈꾼다. “고향 원주에서 시작했지만, 목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전통주가 세계에서도 사랑받는 날까지 도전하겠습니다.”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술 공방이 아니라, 사람과 땅,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공동체의 양조장이다. 때론 배신과 손해라는 아픔도 있었지만, 끝내 이를 이겨낸 것은 믿음으로 함께해 준 친구들이었다. 김원호 대표의 술 한 잔에는 고향의 온기, 우정의 힘, 그리고 장인의 집념이 담겨 있다. 모월의 술을 마시는 일은 단순한 음주가 아니라, 원주의 이야기와 한국 전통주의 미래를 함께 나누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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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사람과 술, 그리고 고향...모월양조장 김원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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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우보주책...“소걸음의 지혜로 담아낸 우리 술 한 모금”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우보주책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이름의 양조장을 운영하는 김희철 대표를 만나기 위해 5일장이 한창인 용문역 앞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커다란 회의용 탁자와 의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안쪽으로는 주방과 장식장에 가지런히 진열된 술들이 차분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양평의 숲과 들녘 사이, ‘소걸음으로 천천히 전통주의 비책을 찾겠다’는 뜻을 담은 이름의 술 공방 우보주책(牛步酒策). 그 중심엔 김희철 대표가 있다. 그는 50년 음주, 10년 향음, 4년 양조 경력을 자랑하지만, 그보다 더욱 빛나는 건 그의 나눔과 사람을 향한 진심이다. 은행 부행장까지 지냈던 그가 퇴직 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경제 상담, ‘부자강의’라는 이름의 강의를 이어가며 삶의 지혜를 나누는 모습은 술 빚기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은행원에서 양조인으로 “저는 음주 50년, 향음 10년, 양조 4년 경력의 술 전문가입니다.” 김 대표의 첫 인사말은 농담 같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함축한다. 금융권에서 수십 년간 사람들의 돈과 고민을 함께 나누었던 그는 퇴직 후에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상담을 이어갔다. 이제는 술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양조장을 사람과 사람이 만나 교류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밀로 빚은 ‘진짜 술’ 국내 밀 자급률이 1%에도 못 미치는 현실. 그는 양평에서 열린 밀 축제에서 수입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가 등장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 끝에 우리밀로 술을 빚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양평 밀 막걸리와 소주다. 금강, 백강, 토종 앉은뱅이 등 다양한 품종에 양평 쌀 ‘참드림’을 더해 맛을 완성했다. 김 대표는 “밀로 빚은 술은 쌀과 달리 고소하고 담백하다”며 우리밀 술이 가진 차별성을 강조했다. ◈53도 밀소주의 탄생 우보주책의 또 다른 대표작은 양평밀소주다. 증류 과정에서 도수를 조절하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던 53도에 맞췄다. 의외로 도수의 무게감보다 맑고 부드러운 향이 먼저 다가온다. 그는 “실온에서 마시면 향이 더욱 풍부하고, 온더락이나 하이볼로 즐겨도 좋다”고 소개했다. 현재 ‘양평밀소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며 지역 대표 기념품으로도 자리 잡았다. ◈양조장의 현실과 철학 하지만 김 대표는 양조장의 현실을 냉정히 짚는다. “요즘 청년들이 양조장 사업에 뛰어들지만 대부분 1년을 못 버티고 나갑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연 3000만 원의 수익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그는 “양조는 마음을 비우고, 소걸음처럼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나만의 술을 찾고, 시설 확장보다 작지만 알차게 운영하며 단골을 늘리는 게 길이다”라고 조언한다. “술은 결국 사람이 찾는 것이고, 그 관계가 양조장의 힘이 된다”는 말은 우보주책의 운영 철학을 대변한다. ◈예술과 술, 또 하나의 교감 김희철 대표는 술만 빚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섹소폰 연주자이자, 얼마 전까지 악단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음악인으로서의 감수성은 술의 풍미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양평에서 활동하는 시인, 화가, 음악가 등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과 자신이 만든 술을 교환하기도 한다. 술과 예술이 만나는 교류의 장은 우보주책만의 독특한 문화적 향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좋은 술은 좋은 음악처럼 오래 기억된다”며, 술과 예술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개체라고 말한다. 우보주책에서의 한 잔은 단순한 술맛을 넘어 예술과 교감하는 경험이 된다. ◈청년과 함께하는 술자리 우보주책은 열린 사랑방이기도 하다. 청년들이 안주를 들고 오면 2만 원만 내고 무제한으로 술을 즐기도록 개방한다. 그는 이를 “내가 감사한 자리”라고 표현한다. 젊은 세대와 함께 술을 나누며 세대 간 거리를 좁히고, 술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보주책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금융인의 경험, 멘토로서의 따뜻한 마음,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이 술잔 속에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김희철 대표가 빚은 술은 ‘맛’만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양평의 들녘에서 태어난 막걸리 한 사발, 53도 소주 한 잔, 그리고 섹소폰 선율 같은 그의 미소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술은 나눔이고, 사귐이며, 결국 예술이다.” 소걸음처럼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가는 그의 길 위에서, 우보주책은 한국 전통주의 또 다른 미래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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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우보주책...“소걸음의 지혜로 담아낸 우리 술 한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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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시철 박사 “AI로 생애 건강 리스크 예측하는 시대 열린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제노시스 AI헬스케어(주) 부회장으로 7월 1일 공식 취임한 강시철 박사는 “AI의 힘으로 수명, 사망 원인, 때를 미리 알고 예방과 치료까지 가능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의료기술을 넘어 인류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그의 메시지는 강렬했다. 제노시스가 개발 중인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은 이제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로 다가서고 있다. ◆“앞으로는 건강의 흐름과 생애 리스크까지 예측 가능하다” “앞으로는 자신의 건강 상태는 물론, 생애 전반의 리스크까지 미리 알 수 있는 시대가 열립니다.” 강 박사는 “그동안 우리는 질병이 발현된 후에야 치료를 시작하는 방식에 익숙했지만, 앞으로는 개인의 유전체와 생체 데이터, 생활습관, 환경 요인 등을 AI가 통합 분석해 미래 건강 흐름과 위험 요인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컨대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 언제쯤 건강상 이상이 나타날지 등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치료뿐 아니라 예방 중심의 의료로 전환이 가능해진다”며 AI 기반 예측 의료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제노시스의 핵심,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개발 중인 핵심 기술은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HDT)’이다. 이 기술은 단순한 디지털 건강 기록이 아닌, 사람의 실제 생체 리듬과 유전 정보를 해석하고 반영해 ‘가상의 나’를 실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강 박사는 이를 ‘인체 해독기’라 부른다. “우리는 인체가 보내는 신호의 90% 이상을 해석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 아니라, 병이 생기기 전에 잡아내는 기술입니다.” 그는 이 기술이 실제 임상에 적용되면, 지금까지 일부 VIP만이 누리던 맞춤형 정밀의료가 누구에게나 제공될 수 있는 ‘보편적 고품질 의료 서비스’로 전환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AI 의료, 5차 산업혁명의 중심축이 되다 강 박사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단순한 산업 영역을 넘어, “5차 산업혁명”의 완성 지점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우리는 이제 인체를 디지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미생물, 생활습관, 환경 등 복합 데이터를 분석해 건강을 예측하고, 치료 방향을 설계하는 일이 인간이 아닌 AI에 의해 가능해지는 시대입니다.” 그는 이어 “인체 번역과 해독이 실현되면, 그것이 바로 5차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이 기술 흐름의 선두에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서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의료 AI 분야에서 세계 일등을 차지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제노시스의 AI 의료진이 이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제가 부회장으로서 그 흐름을 총괄하고 이끌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AI 집단지성이 인류의 삶을 바꾼다” 강 박사는 인터뷰 말미, AI 기술에 대한 신념을 다시금 강조했다. “AI는 더 이상 계산기 수준의 도구가 아닙니다. 인간보다 더 빠르게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치료 방안을 설계하는 새로운 지성입니다. 이 AI 집단지성은 이제 인류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노시스의 기술은 개인을 넘어서 공공의료까지 확장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보편적 의료복지의 실현 또한 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영학 박사인 강시철 부회장은, 20년 이상 기술인문학과 AI 융합 연구를 이어온 인물이다. 저서로는 《AI의료의 미래》,《디스럽션》, 《인공지능과 슈퍼비즈니스》, 《핸디캡 마케팅》 등이 있으며, AI 인문학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상장사 휴센텍 대표이사와 고려대 문과대 교우회장을 역임했다. 강시철 박사의 짧지만 강렬했던 인터뷰는, AI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생명과 죽음을 관리하는 미래 의료의 주체가 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만들어가는 길 위에는, 지금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생명 연장의 기술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의료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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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시철 박사 “AI로 생애 건강 리스크 예측하는 시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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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시흥에 위치한 대한주조의 김미영 대표는 전통주에 대한 깊은 열정과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어왔다. 2009년에 대한주조를 설립한 그는 일본에서의 유학생활과 사업 확장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주를 세계에 알리는 꿈을 키우고 있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생 역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김 대표가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한국식품 도매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술이 가장 큰 이윤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류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특히 한국식품을 일본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주류의 매력을 더욱 느꼈다고 전했다. 일본 유학 중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자,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작은 회사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하며 영업과 납품을 통해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보람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한국식품 도매업체를 창업하며 일본에서의 경험을 활용했다. 대한주조는 2009년 설립되었으며, 최근에는 월 7만 병의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으로 성장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영업과 홍보를 했고, 주류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죠."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자, 그는 다시 주류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있는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공부한 경험도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대한주조는 과일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딸기와 바나나 등을 활용하여 맛과 향을 모두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연막걸리는 탄산이 적고 첫맛이 묵직한 편이지만 목넘길 때는 신맛이 약간 나면서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음자들은 연막걸리에 대해 "부드러운 식감과 적당한 신맛이 조화를 이루어 음용하기 좋다"고 평가하며, 전통주로서의 매력을 느낀다고 전했다. "앞으로 연예인과 협업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싶어요. 연예인 시그니처 막걸리를 기획 중입니다."라며 자신감 있는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지금도 일본에 한국 막걸리와 소주를 판매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제 꿈은 한국의 전통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열정과 비전은 단순한 주류 생산을 넘어 한국 전통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는 전통주가 가진 매력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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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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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사임당양조장은 권오길 명인의 열정과 노력이 깃든 곳이다. 권 명인은 5년간의 주류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막걸리 제조에 뛰어들었으며, 강릉 출신으로서 고향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여정은 안흥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에 설립된 안흥양조장에서 김성영 선생으로부터 1년간 막걸리 제조법을 전수받았고, 이후 2대 대표인 윤한중 선생으로부터 2년간 추가로 배움을 이어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막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그는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와 사임당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권오길 명인은 강릉 지역의 전통 축제인 단오제에서 단오신주를 제조할 때, 강릉 시민들이 모아 준 쌀을 사용한다. 강릉소주를 만들 때는 풍미를 더욱 좋게 하기 위해 생쌀(강릉황금물쌀)을 이용한다. 그러나 생쌀은 발효가 매우 어려운 재료이므로, 저온 숙성 발효 기간을 10~15일로 설정하고 발효 온도를 섭씨 25~26도로 유지하며 정성을 다해 빚고 있다. 사임당양조장은 이렇게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독특한 제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전통 누룩 대신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여 발효를 진행하는데, 이는 잡균으로 인한 유통 문제를 줄이고 쾌적한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전통 누룩은 고유의 맛과 향을 제공하지만, 잡균으로 인해 술맛이 변하거나 유통 기간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면 품질이 안정적이며 유통 기간도 늘어나는 장점이 있다. 권 명인은 이러한 제조 방식을 통해 월 평균 20만 병 이상의 사임당 강릉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인의 입맛과 유통 환경에 맞는 술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급 재료와 최신 설비를 활용하여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사임당 강릉 소주도 생산하고 있으며, 다양한 곡류를 사용하여 풍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현재 권 명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조장의 운영과 제조법, 유통 등을 배우며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권 명인은 "아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더 발전된 양조장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올해에는 옥수수와 감자를 사용한 약주를 생산하기 위해 설비 시스템을 갖추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맛과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권오길 대표는 지금까지 사임당 막걸리가 자리를 잡기까지 약 1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전통 누룩도 사용해서 만들어봤지만 유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게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맛과 유통기간을 모두 잡은 사임당 막걸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권오길 명인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창의적인 접근으로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도 지역의 자부심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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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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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 위치한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막걸리로 지역의 주류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 양조장의 이름인 '소두방'은 '솥뚜껑'의 방언으로, 정관읍의 중심인 덕산에서 매남산을 바라보면 솥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김준영 대표는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담아내고 싶어 이 이름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김준영 대표는 약 10년간 통신업에 종사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지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만들어주시던 막걸리를 사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이어받아 진정한 전통주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소두방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현재 소두방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는 '소두방막걸리'와 '퍼플스파클링'이라는 자색고구마 막걸리 두 종류이다. 각각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살려 만들어지며,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는 자색고구마를 50% 사용하고 찹쌀과 누룩을 함께 사용하여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도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자색고구마를 직접 재배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다른 농가와의 협업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막걸리는 탄산이 강하고 색이 아름다워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김 대표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판로 확보이다. 초기에는 마케팅과 홍보가 부족했지만,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으며, 2024년 7월에 첫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그는 향후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길 원하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전통누룩과 개량누룩의 차이도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누룩은 자연 발효로 다양한 미생물이 함께 작용하여 풍미가 깊고 복합적이지만, 개량누룩은 인공 배양된 미생물만 사용하여 일관된 맛을 낸다. 김 대표는 막걸리 종류에 따라 적절히 두 가지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준영 대표는 올해 통신판매에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를 리조트의 PB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예정이며,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그는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소두방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찹쌀과 남평쌀을 50%씩 사용하여 부드럽고 깊은 맛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특히 어머니께서 직접 양조장을 찾아와 쌀을 찌고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을 도와주시는 점이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그대로 담긴 막걸리라고 자부하며, 그 특별한 맛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김준영 대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가족의 사랑과 정성을 담아내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의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부산 정관읍의 역사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담긴 특별한 이야기다. 앞으로 그의 막걸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이처럼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부산의 주류 문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김준영 대표의 열정과 가족의 사랑이 담긴 막걸리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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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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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여행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는 이를 실현하며 공정여행과 지속 가능한 관광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변 대표는 대안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행을 통한 교육의 시작: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 서울 상수동 카페거리에서 변형석 대표를 만났다. 그는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를 통해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는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왔다. 변 대표는 하자센터에서 7년간 청소년들과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 트래블러스맵을 설립했다. 그의 교육 방식은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방식을 실현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변 대표는 말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며 깨닫게 됩니다. 교과서 속 이론에서 벗어나 세상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몇 배 더 큰 가르침을 줍니다." 공정여행의 철학과 성공 트래블러스맵은 2010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후, 다양한 사회적 기여로 주목받았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고 친환경적 이동 수단을 활용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여행자가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첫해 매출 9억 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연 매출 6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행 상품은 전 세계 31개국에 걸쳐 있으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대표적인 공정여행 상품과 도전 변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의 대표 상품으로 ‘땍때구르르 겨울캠프’(강원도 곰배령)와 캄보디아 반띠아이치마 1박 2일 프로그램을 꼽았다. 이들 상품은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를 중시하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남미 27일 탐방과 북유럽 4개국 여행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환경과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소그룹 여행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빠르게 달리는 여행을 지양합니다. 대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그 지역의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의 철학을 설명하며 깊이 있는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드스꼴라: 여행을 통한 대안교육 트래블러스맵의 부설 여행학교인 로드스꼴라는 15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3년제 대안학교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다. 변 대표는 “로드스꼴라는 교과서 밖에서 세상을 배우는 공간”이라며, "여행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목표를 이루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로드스꼴라는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해왔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진안에서 마을 주민들과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하거나, 백제의 역사를 탐구하며 일본 교토와 오사카를 답사하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 코로나19 팬데믹은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로드스꼴라는 10기 졸업생 배출 후 문을 닫았고, 트래블러스맵은 직원 수를 2명으로 줄여야 했다. 하지만 변 대표는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는 "여행업계는 결국 회복될 것"이라고 믿으며, 특히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돈보다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실버 세대가 늘고 있다"며, 은퇴한 이들에게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남미 여행 프로그램은 완판되었으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여행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공정여행의 미래와 사회적 기여 변형석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을 통해 공정여행의 가치를 계속 확산시키고자 한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현지 회사를 설립해 지역 주민들이 관광 사업을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변 대표는 "여행자는 환경과 지역사회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장기적인 변화를 목표로 윤리적 여행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을 얻고, 타인과 교류하며 성장한다는 변 대표의 철학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위기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공정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움과 교감을 선사하는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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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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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이승재 대표를 만났다. 밝은 미소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한 이 대표는 지난 수년간 암 유전자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박사들과 협력해왔다. 그는 항노화와 암 예방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승재 대표는 인터뷰에서 회사의 비전과 미래 계획, 그리고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전국으로 확장 중인 제노시스DNA클리닉의 항노화 프로그램과 암 예방 연구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승재 대표는 이러한 혁신적인 연구의 중심에 서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비전과 성과 이승재 대표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주요 목표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항노화 신약 개발입니다.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유니스트의 박종화 교수, 김유미 박사, 서울대 김정용 박사, 임규성 원장 등이 참여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항노화 건강기능식품을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 제품은 현재 임상 중이며, 그 성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라고 밝혔다. 전국 확장과 글로벌 도입 제노시스DNA클리닉은 부산, 서울 압구정, 역삼, 동서울, 병점 등 주요 도시에 이미 오픈했거나 오픈 예정이며, 항노화 프로그램은 두바이와 베트남에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두바이 국립병원과 협력하여 현지에서도 우리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두바이는 사막 지역 특성상 50대 사망률이 높아 우리의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베트남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많은 의사들이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항암 연구와 치료의 새로운 접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 중이다. 이승재 대표는 “우리의 프로토콜은 암 발생 전이나 초기 암 환자들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대학병원에서 포기한 말기 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환자들이 회복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암은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방, 치료, 관리를 통해 암을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건강 비결과 항노화 프로그램의 효과 이승재 대표는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항노화 프로그램을 통해 피가 맑아지고 염증이 사라졌습니다. 면역력이 강화되면서 피부와 머리카락이 재생되고 질환도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에게 ‘회춘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규칙적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운동도 속병이 없고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죠.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 프로토콜을 통해 지금은 40대보다 더 젊고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승재 대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행지로 이탈리아 밀라노와 하와이를 추천했다. 그는 “밀라노는 역사적인 건물과 오래된 명품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큽니다. 수대를 이어온 가업과 전통을 통해 세계적인 명품으로 성장한 회사들이 밀라노에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수세기를 이어오는 전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하와이에 대해서는 “날씨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힐링에 최고 장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재 대표와의 인터뷰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혁신적인 연구와 그의 개인적인 건강 비결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연구와 개발에 열정을 쏟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승재 대표와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와 암 예방 연구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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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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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6월 5일 여행사 트래블빌더의 이우석(우석몬) 대표와 역삼역 커피빈에서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반바지와 끈 없는 런닝을 입고 헬멧을 든 채 나타난 그는 팔과 다리, 어깨에 멋진 타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이크를 타는군요?"라고 묻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이크와 여행의 시작 '저도 대학 졸업 후 사고가 나기 전까지 잠깐 바이크를 탔었어요.' 대학 시절 잠깐 바이크를 탔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이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이크를 타는 자유로운 그의 모습이 MZ세대의 대표적인 모습 같았다. 인터뷰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시작되었다. 그의 본명은 이우석, '우석몬'이라는 별명은 중학교 때 몬스터를 닮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 별명이 좋아서 지금까지 애칭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첫 여행의 기억 우석몬이 처음 여행을 떠난 것은 9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 중국 여행이었다. "만리장성의 일부만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그는 어린 시절 여행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경험이 여행에 대한 첫 번째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최초의 해외여행은 2015년, 삽자루 선생님께서 공짜로 보내준 유럽 여행이었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꿔놨어요. 14일 동안 유럽 6개국을 다녀왔는데 전부 기억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고, 문화 충격도 받았어요." 그는 그 여행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왜 사람들이 그렇게 큰 돈을 들여 여행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여행 전에는 300만원이면 옷이 몇 벌이고 밥이 몇 끼고,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행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어요." 네덜란드 유학과 목표의 변화 그 후 그는 3수 끝에 9등급에서 3등급, 다시 2등급으로 그리고 마침내 1등급을 달성하고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 "네덜란드가 5년 후 이민 자격을 주기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어요. 대학 3년을 마치고 2년만 버티면 이민이 가능하니까요." 그러나 그의 목표는 1년이 지나지 않아 바뀌게 되었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향수병이 생기고 한국인이 적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도 생기고 정서적으로 불편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이민을 포기하자 그는 네덜란드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수학 강사를 목표로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입학했어요. 거기서 수학을 전공했고, 대학 내내 방학 때는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아르바이트 강의를 했어요." 이우석 대표는 방학 동안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며 하루에 5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세계 일주와 여행사 설립 대학 졸업 후, 그는 세계 일주를 결심했다. "계약서를 쓰려는데 고민이 되더라구요. 내 꿈이 세계 일주인데 강사를 하면 10년 동안 여행을 못할 텐데 그러면 40이 넘게 되고 체력이 지금 같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는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2월부터 시작된 그의 세계 일주는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태국, 두바이, 터키,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 미국, 캐나다, 남미 등 총 58개국을 10개월 동안 여행했다. 귀국 후 그는 강사가 될 계획이었으나, 여행사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4년 2월, 트래블빌더라는 이름의 자유여행사를 설립했어요. 모든 상품이 완판됐고, 여행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여행을 통한 교육과 선한 영향력 이우석 대표는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한다. 그는 여행이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믿는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여행을 통한 깨달음을 전파하고 싶어요. 여행은 살아있는 교육이니까요."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거의 놀다시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9등급이었어요. 하지만 여행에 눈뜬 후 목표가 생겼어요. 이제는 저도 선생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이 대표는 여행을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자신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행의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제가 경험한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자신감과 계획 우석몬의 자신감은 치밀한 계획과 빠른 실행력에서 나왔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바로 실천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행동이 빠른 편이고,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 빠르게 이루죠. 지금까지 제가 조언한 지인들은 대부분 성공했어요." 그는 앞으로 1년 후 강사로서 돈을 벌고, 여행사의 규모도 키울 계획이다. "시기는 2025년이 되겠죠. 강남의 잘 나가는 수학 강사들은 거의 기업 수준이에요. 수백억을 벌어요. 저도 그런 강사가 되고 싶어요." 우석몬 대표와의 2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유롭고 도전적인 삶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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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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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서울시 풍납2동에 위치한 풍납새마을금고는 변현숙 이사장의 리더십 아래 고객과 직원을 위한 새로운 힐링공간을 마련해 주목받고 있다. 이 공간은 고객과 직원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무료나눔공간으로 회의실과 문화센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변현숙 이사장을 직접 만나,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된 동기와 운영에 대해 들어보았다. "풍납새마을금고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변현숙 이사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고객라운지를 비롯해 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까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는 단순히 금융 업무를 보러 온 고객들뿐만 아니라 풍납동 지역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나눔공간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변 이사장은 고객라운지에 걸린 다양한 작품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현재는 최석운 작가의 유쾌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방문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최 작가의 작품 전시 후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직원들을 위한 공간도 신경을 많이 썼다. 3층에 위치한 직원라운지와 문화센터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강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업무 외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변현숙 이사장은 이번 공간 조성을 통해 고객과 직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풍요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현숙 이사장은 문화센터 뿐 아니라 4층 회의실도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 놓았다. 이러한 공간 조성을 통해 풍납새마을금고가 단순한 금융 기관을 넘어 지역 사회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객과 직원, 그리고 지역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그녀의 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아 힐링과 문화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 이용시간 : 오전 9시~오후 4시 *회의실 이용문의(무료): 풍납새마을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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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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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명다기 품평회 '대상' 수상자 장상철 사기장
- ‘청암요’의 장상철 사기장(49)은 ‘제6회 대한민국 올해의 명다기(名茶器) 품평대회’에 ‘귀얄사발’을 출품해 대상과 입선을 차지했다. 故 신정희 사기장의 사돈이자 제자인 장상철 사기장은 전남 해남이 고향으로 “이번 대회를 통해 전국의 훌륭한 사기장들과 함께 좋은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지게 됐다” 며 “앞으로도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힐링을 얻고 행복해 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고 밝혔다. 수상 후 경남 양산 하북에 머물고 있는 장상철 사기장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해 사발에 대한 얘기를 들어 보았다. 사발 하나로 한국을 알린 사기장사발은 우리 선조들이 예부터 밥, 차, 제사상에 사용되던 평범한 생활 용기였는데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 웅천도요지의 도공들과 그 가족들 125명이 퇴각하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가마터의 불이 꺼졌고, 그 명맥마저 중단되었다. 그리고 일제 때 조선 땅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사발마저 일본으로 가져가면서 국보급 사발들은 전부 일본인의 차지가 되었다. “그렇습니다. 일본인들이 수차례의 침략을 통해 우리의 찻사발을 가져다가 예술품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그 결과 거꾸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 오는 형국이 되었지요.” 정상철 사기장은 “우리 선조들의 사발 제조기법이 일제 때 많이 무너진 게 사실이고 반대로 일본은 우리 것을 가져가 일본의 색깔과 모양으로 재탄생시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그 격차가 확연히 좁혀졌음을 일본이 인정하고 나섰다.고 신정희 선생은 임진 난 때 도요토미가 최상의 찻사발로 극찬한 이도다완을 국내 최초로 재현해 냈다. 그 뒤를 이어 선생의 수제자인 장상철 사기장은 지난 2010년 일본작가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일본 교토의 노무라미술관 초청을 받아 우리 사발 60여 점을 선보이는 첫 전시회를 가졌었다. 당시 6일간 열린 이 전시회 기간 매일 100여 명 이상의 현지인들이 그의 작품을 감상하러 몰려든 기록을 세우며 미술관 최고책임자인 타니 아키라 관장의 권유로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인 ‛통사발’ 의 영구전시까지 이뤄지면서 ‛사발 하나로 한국을 알린 사기장’ 이라는 칭호까지 생겨났다. 예술품으로 오래 남으려면 景致가 있어야 한다일본인들이 극찬하고 올해 대상까지 거머쥔 사발은 어떻게 만들까? “15년간 선생님께 흙과 온도(불)를 전체적으로 배웠습니다. 사발의 종류는 크게 웅천사발, 기안사발, 귀얄사발이 있습니다. 작가마다 좋아하는 흙이 다르기 때문에 사발 또한 다릅니다. 저는 귀얄사발을 주로 작업하는 데 특징은 철분이 많은 흙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흙이 준비되면 머릿속에 그린 사발을 잘 뽑아낸 후 가마에 구워야 하는데 이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사발은 한마디로 불의 예술입니다. 그곳은 인간의 영역이 미치지 않는 곳이죠. 그래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여름에는 중성이상의 불로 겨울에는 이보다 센불을 유지하며 굽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초콜릿 색으로 온도가 중간보다 높을 때 나타나는 색입니다.” 장상철 사기장은 “힘든 과정을 구워낸 사발 중 하나도 건지지 못할 때가 많다”면서 “사발이 하나의 예술품으로 오랫동안 남으려면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 사기장은 또 “도예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위해 도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경제적인 지원도 없고 판로도 없는 사발 작업을 평생 하기란 어려운 게 현실이다”고 털어놓으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반짝 이벤트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우리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릇에 대한 예의가 국격을 높인다사발 작업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작업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아 스승님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지원도 전무해서 살아남으려면 돈 되는 것들을 우선 만들어 팔고 그 다음 예술작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지원은 놀라울 뿐이다. 또다른 고충은 도시에서는 작업자체를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가마를 땔 때 나는 연기는 혐오시설로 오해를 사기 일쑤다. 그때마다 시골로 시골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러다보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어진다. 일본은 우리의 사발을 가져다가 큰 획을 그었다. 예술품으로 승화시켜 세계도자사전에 일본이름으로 사발을 등록했다. 뒤늦게 정부가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일본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사발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도예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사발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 사발은 반드시 두 손으로 잡아야 하고 차를 따르는 법도 예법에 맞게 해야 한다. 그런 기본이 지켜지면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이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작품을 통해 행복해할 때 힐링된다 장상철 사기장은 불가마에서 원하는 작품이 나왔을 때 소년처럼 들뜨고 즐거워진다. 보통 한번에 30~40개가 들어가는데 나올 때 마음에 드는 작품은 잘해야 1점이다. 그것도 운이 좋을 때 그렇다. 그런데 최근 매우 좋은 작품이 딱 1점 눈에 들어왔고 그것을 많은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운반 중 깨지고 말아 너무나 아쉽고 속상했다. 지금은 다시 좋은 사발을 통해 기쁨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 그릇을 일반인들이 사용하면서 행복해하고 감사 인사를 전해 오거나 전화로 재주문을 할 때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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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명다기 품평회 '대상' 수상자 장상철 사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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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世薰 詩人]“시인으로 살아온 반세기 감사하고 행복”
- 제14회 청마문학상 수상자 신세훈 시인한국문단의 대들보 같은 존재이면서 남북 통일문학의 선구자인 아산(我山) 신세훈 시인(73)을 서울 남산한옥마을에서 만났다. 시인은 지난 4월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올해 청마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시상식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뒤늦게 “축하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꼭 받고 싶은 상이었는데 이렇게 이루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웃으며 답한다. 햇살이 제법 뜨겁게 느껴지는 날씨 탓에 촬영이 힘들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되었는데 시인의 미소가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시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움에 도전 하는 에너지원 선생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시절, 22세인 1962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 당선으로 시단에 나왔다. 당선시 ‘강과 바람과 해바라기와 나’는 당시 심사위원인 무애 양주동, 목월 박영종 으로부터 ‘한국문학의 획을 그을 문재’라는 극찬을 받게 한 작품이었다. 그 후 51년의 시간이 지났다. 말 그대로 반세기가 흐른 것이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 100세라 해도 50년은 쉬이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궁금했다. 선생에게 시는 무엇이고 50년 넘게 시인으로 살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그동안 경제가 안 되는 일을 해 오며 살았습니다. 1991년부터 발행한 계간 자유문학을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내 왔으며, 2010년엔 반 년간 문예지 민족시학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매번 적자를 보고 있지만 내가 숨 쉬는 공간 속에서 벗을 삼은지 오래되었어요. 시인이 된 후 시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지금까지 시인으로 사는 것이고 앞으로도 시인으로 살 것입니다.”선생은 시의 힘으로 경제가 안 되는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그만큼 선생에게 시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움에 도전 하는 에너지원이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시인으로 지내 온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비록 돈은 되지 않았지만 멋진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순리대로 물 흐르듯 그렇게 사는 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요?”30년 간 차 마셔 건강 유지, 녹차의 카데킨 면역력 강화시인으로서 소회를 묻자 처음과 같은 답을 주는 선생의 얼굴은 소년처럼 맑은 모습이다. 고희가 넘어서도 깨끗한 피부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좋아하는 일을 하고 건강한 생각과 차를 가까이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루 일과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됩니다. 일어나면 먼저 기체조로 몸을 풀고 가벼운 식사를 해요. 11시쯤 사무실로 출근해서 업무를 보기 시작하는데 보통 8시에서 일이 많으면 저녁 10시까지 하는 편입니다. 퇴근이 늦는 경우가 많아 자기 전에 꼭 저녁을 먹습니다. 그래서 잠은 보통 새벽 2시가 돼야 잡니다.”피부가 좋은 이유는 30년 동안 차를 마셔서 그렇다고 한다. 정식으로 차를 배운 게 1984년이라고 하니 올해로 서른 해가 되는 셈이다. 차를 마시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차례’라고 한다. 일본은 ‘다도’ 중국은 ‘다법’으로 부른다. 선생은 예가 도나 법보다 위에 있다.“당시 차 마시는 것은 대중화 되지 않았습니다. 고작 커피정도였는데 나는 차가 입에 맞았어요. 녹차, 보이차, 홍차, 감잎차, 대추차 등 다양한 차들이 있지만 그중 최고의 차는 녹차입니다. 매일같이 녹차를 마시면 카데킨이라는 항산화제가 암예방은 물론 면역력이 증가되어 감기도 안 걸리고 알레르기도 진정 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혓바늘이나 생인손 등을 앓을 때 녹차를 지속적으로 바르면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낫는 경우가 많아요.”녹차는 토마토, 브로콜리, 마늘 등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세계 10대 건강식품’에 속할 만큼 우리 몸에 이로운 물질이 많다. 선생은 매일 물대신 이런 녹차를 수시로 마시는데 그 때문에 암도 극복하고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몇 해전 일입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외부 모임이 많아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건강검진을 받는데 의사가 정밀검사를 받자고 그래요. 갑상선 암이 의심된다는 거죠. 검사결과 다행히 초기였어요.” 선생은 암 진단을 받은 후 항암치료 대신 자신만의 비법으로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의사가 꿈인 적이 있어요. 그래서 평소에도 동의보감 같은 의학관련 책들도 많이 보았어요. 그런데 갑상선 암 진단을 받자 처음엔 덜컥했지요. 그 때 갑자기 머릿속에 있던 민간요법들이 떠오른 겁니다. 집에 가서 아내한테 커다란 찜통을 내달라고 했어요. 거기에 상황버섯과 인진쑥, 녹차, 양파, 마늘 등 온갖 채와 약재를 넣었어요. 먹다 남은 야채의 뿌리도 넣어서 매일 수시로 마셨습니다. 큰 컵으로 가득 따라서 물대신 그렇게 달인 것을 3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요.”정기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의사가 깜짝 놀란 것이었다. 갑상선 암세포가 다 사라졌다는 말을 하며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면서 어디서 치료를 받았냐고 물었어요. 나는 그냥 웃기만 했습니다. 의사한테 내가 처방한 민간요법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두었어요.”그렇게 암을 치료한 선생은 지금도 녹차를 마시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민조시 개척, 우리문학의 뿌리 찾기 관심 커 후학 양성 50년 문단활동을 하며 선생이 해 온 일은 시만 쓴 게 아니었다. 앞서 얘기한대로 경제가 안되는 문예지 2개를 발행하고 있으며 장편수필, 청소년시, 청소년 소설, 청소년 희곡, 민조시 등을 개척했다. 그 중 민조시의 경우 3,4,5,6조 운율에 맞춰 쓴 우리가락이다. 선생의 입을 통해 민조시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내가 민조시를 처음 쓴 것은 1976년 10월 14일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3·4·5·6조 1·2·3’연작 3편 민조시를 같은 날 한꺼번에 쓴 것입니다. 그 후 24년 만인 2000년 6월에 민조시집 ‘3·4·5·6조’(도서출판 천산) 가 처음 나왔고, 2008년 3월 두 번째 민조시집 ‘통일꽃 핀다’, 2012년 9월 제3민조시집 ‘천부경 나라’를 펴냈습니다. 내가 민조시에 빠진 이유는 대학 때부터 우리문학의 뿌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조시는 한마디로 우리민족의 장단가락입니다. 그것은 이미 농악의 4물놀이와 대중가요의 트롯까지 아우릅니다. 우리가 아는 시조 역시 초장·중장·종장, 3장 6구 12음보로 나눠져 있지만 결국 형식과 내용은 3·4·5·6조입니다. 그런 구조가 예부터 내려오던 소리 장단가락, 무용의 춤사위 등에 응용되었습니다. 왜 그러면 우리 민족이 3박, 3을 중요시했으냐, 이게 역학과 관계가 있습니다. 3·4·5·6조가 바로 1·3·5·7·9의 기본 홀수의 수리, 천부경에 보면 1은 3하고 같은 개념(1=3=天地人=○△□=우주=3재·3신사상)입니다. 3이 곧 6이 되고, 3X3=9가 되고. 9X9=81이 되고, 또 ‘天符經’은 81자인데 곱하기, 나누기, 더하기, 빼기가 모두 천부경안에 들어있습니다. 우리 인류의 수리학과 철학은 우리 조선 동이족의 선조들이 다 해놓은 것입니다.” 선생이 말하는 민조시는 '한 사상'이 배경이다. 한은 일반에 알려졌듯 슬프고, 괴롭고 그런 게 아니다"면서 "크다, 많다, 하나다, 으뜸이다, 우두머리다, 한울타리다라는 뜻이다. 선생은 순우리말도 '한하게'(많이) 만들었다. '풀머리/깨어있는/동녘산자락 청시울가에,/홀로/나/잠드네,/달머리/잠빛 밝은/서녘강허리 금물목샅에./나 홀로/눈뜨네.' 이 민조시에서 풀머리, 청시울가, 달머리, 잠빛 등 시어를 만들었다. '살섞는다'는 말도 처음 사용한 것이다.선생은 문학(민조시)을 통해서 잃어버린 우리민족의 뿌리를 되찾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민조시 관련 이론을 발표했고, 직접 민조시 분야를 개설해 현재 70명의 후학들이 활동하고 있다. 반년간지 민조시학도 꾸준히 발행하고 있다. 머잖아 이 분야가 새롭게 주목을 받으며 크게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버킷리스트는 문학관 건립과 몽골, 인도, 천산 여행...선생은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왜 국문과가 아닌 연영과를 택한 것일까?“시인이 되기 위해 일부러 연영과에 들어갔어요. 연영과를 택한 것은 연극과 시가 하나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는 연극이 곧 시니까요. 세익스피어와 고전시학은 물론 나중에 내 시의 토대가 된 몽타주기법이나 오버랩 등 영화편집기법 등을 배웠습니다. 심상운 씨하고 중대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는데 이 때 국문과인 심상운 씨를 따라 국문과 강의를 많이 들었어요. 신청 할 수 없는 것은 도강도 많이 하고 그랬습니다.” 선생은 시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정치가나 군인의 길을 걸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끝으로 지금 버킷리스트를 만든다면 무엇인 있을지 궁금했다. “먼저 그동안 하지 못한 문학 관련 도서 3만 5천권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고향 시골학교의 폐교를 구입해서 아산 문학관과 시인학교를 설립하고 민조시 문학연구회 같은 연구시설도 갖추고 싶어요. 두 번째는 못 가본 세계를 여행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부회장과 한국문협 이사장을 하면서 세계시인대회 참석차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아직 몽골과 중국 천산(곤륜산), 인도 등은 가지 못했어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쓴 시가 많은데 책으로 엮지 못한 게 많아요. 주로 기행시인데 대부분 장시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끝으로 그동안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남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게 도움 받은 것에 대해 갚을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빚을 갚고 싶습니다.“ 멋진인생은 물처럼 욕심없이 순리대로 사는 것촬영이 끝나고 한옥마을을 내려오면서 선생은 멋지게 사는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욕심없이 순리대로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았어요. 때로는 배신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오면 반겨주고 또 떠나면 보내주고 그렇게 물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바위를 만나면 물이 돌아서 가듯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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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世薰 詩人]“시인으로 살아온 반세기 감사하고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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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박사 원정혜, 평범하지 않은 인터뷰
- ▲ 요가박사 원정혜 [사진_비엠코리아] 그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를 달리는 프로였다. 요가 전도사 또는 수행자로서 원 박사는 19세 때부터 요가를 시작해 지금까지 17년째 외길을 걷고 있는 기인이다. 원박사를 대뜸 기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의 삶 자체가 평범과는 거리가 있어서다. 이제부터 원정혜라는 주인공이 요가에 빠져들게 된 경위와 그의 평범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들어보도록 하자. 출발전 수세미가 된 머릿속017-209-**** 뚜뚜... 통화중이다. 다시 한 번 번호를 확인하고 엄지에 힘을 실어 꾹꾹 눌렀다. 이번엔 신호가 길게 간다. 요즘 흔한 컬러링도 아니고 그냥 일반신호음이다. 요가와 관련된 신비한 음악소리를 기대했는데 조금 실망스러운 느낌이 잠깐 동안 스쳐지나갔다. 무뚝뚝한 기계음은 오랫동안 귀를 간지럽게 하더니 곧 녹음된 여자의 안내멘트가 나왔다. 동시에 폴더를 닫았다. 순간적으로 녹음을 할까 생각했지만 문자를 남기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박사님. 4월호 커버스토리때문에 연락드립니다. 전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몇 번의 수정 끝에 겨우 글자수를 맞춰서 보내고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던 휘파람 소리는 쉽게 울리지 않았다. 다른 취재원과 통화를 끝내고 다른 꼭지를 진행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중 휴대폰에서 휘파람소리가 터져 나왔다. 혹시...예감은 적중했다. 원정혜 박사였다.휴대폰 속 목소리는 무척 쾌활한 명랑소녀 같았다. 간단히 커버스토리의 컨셉과 진행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난감한 목소리로 완곡하게 거절을 해왔다. 이유는 아침 7시부터 강의를 시작해 저녁까지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이었다. 설마 매일 그럴까? 다시 한 번 시간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겨우 **출판사 기획자와 약속 건을 뒤로하고 인터뷰를 잡을 수 있었다. 원래 커버스토리의 기획의도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따라다니면서 주인공의 하루를 스케치하는 것이었는데...시작하기도 전에 꽝이 되고 말았다. 머릿속이 수세미처럼 엉키고 있었다.요가박사를 만나기 전 준비운동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에 인터넷을 뒤졌다.“요가박사, 요가수행자, 2001년 SBS 오락프로그램 ‘장미의 이름’에서 요가코너 진행자, EBS문화센터 요가강사 및 요가프로그램 MC, 유명대학(고려대, 연세대, 숭실대, 숙명여대, 차병원, 중문의대 등)강사, 유명 문화센터 요가강사, 대기업 초청강사, 요가관련 비디오 및 단행본 저자...등” 원정혜라는 이름을 입력하자 바로 그녀와 관련된 인터뷰, 비디오, 뉴스단신 등 많은 정보가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그중 **잡지와 인터뷰 한 기사를 읽어보았다. 대부분 요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역시 요가짱이구나. 요가박사 앞에서 요가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요가관련 사이트를 찾아 요가에 대한 기초정보를 살펴보았다.프린트를 해서 보니 재미는 없었지만 아주 조금 요가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요가는 인도에서 약 6천년 전부터 수행자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수행의 방법으로 어원은 결합한다는 뜻의 yuj이며, 의미는 마음을 긴장시켜 어떤 목적에 상응 혹은 합일한다는 것이다. 요가의 수련과정은 소우주인 자신과 대우주의 조화를 위한 정신력 개발과 육체강화가 목적이다. 인체는 앉고, 서고, 눕는 기본 동작만을 충실히 해도 충분한 운동효과를 볼 수 있는데도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해 인체의 수많은 근육중 사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되고 그것을 반복하다보면 몸의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어 몸에 이상이 생겨 질병이 발생한다. 요가는 몸의 근육을 골고루 사용해 몸을 부드럽게 만들어 건강을 얻고자 하는 운동이다.’그밖에도 요가에 관한 여러정보들이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녀를 만나려는 목적이 요가강의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니기때문에 요가의 정의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원정혜 박사를 만나다7호선을 타고 숭실대에서 내렸다. 약속장소인 ‘일 보스코’를 찾기 전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택시를 못 잡아서 마을버스라도 타고 온다고 한다. 천천히 오시라고 말한 후 ‘일 보스코’를 찾아보았다. 사진기자가 “저쪽에 있어요”한다. 노화가 벌써 왔나 왜 내 눈엔 안보이지? 최기자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았다. 생각보다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때 아닌 폭설로 인도는 빙판이 되어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일 보스코’를 향해 갔는데 문이 닫혀 있다. 토요일이라 주인이 늦잠을 자나? 아무래도 인터뷰는 다른 장소에서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바로 위에 분위기 좋은 커피숍이 보였다. 아직도 걸어오고 있는 사진기자를 부르러 밖에 나갔는데 그 옆에 키 큰 여자가 함께 있었다. 한눈에 원정혜 박사임을 알 수 있었다.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연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온 그녀는 나이에 비해서 훨씬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오랜 수련으로 명징한 눈이 인상적이었다. 시종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하는 모습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차를 시키면서 토스트를 부탁했더니 그녀는 여유있게 구워달라고 덧붙였다. 차가 나오는 사이 100년 만의 폭설이 내린 날씨 얘기를 잠깐 나눈 후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길지 않아서 준비해 간 질문을 빠르게 풀어놓아야 했다. 먼저 원정혜 박사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물어 보았다.“그 날 일정에 따라서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어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밤11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납니다. 기상 후 3시부터 4시까지 명상이나 호흡, 원고 쓰는 일 등 개인적인 시간을 꼭 갖습니다. 정확하게는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하하 죄송해요. 그리고 낮에는 대학강의나 방송, 글쓰는 일, 만남, 언론사 인터뷰 등을 합니다. 특히, 아침강의가 6시부터 있는 날에는 하루 24시간이 너무나 부족해요. 개인적으로 면허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택시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데 부족한 잠은 주로 차안에서 보충합니다. 일을 할 때는 집중력이 대단한 편이어서 EBS명상의 시간 1개월 치를 하루만에 녹화한 적도 있어요. 물론 감독님께서 후한 점수를 주신 덕분이지만요. 하하” 그녀는 고려대 조치원 분교에서 요가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매주 수, 목요일을 빼고는 거의 매일 장거리를 뛴다. 하루에 많을 때는 8개 학교의 강의를 나간다는 그녀. 거기에다 단행본 집필, 비디오 제작, 방송 MC, CF촬영 등 많은 일들을 소화해 내는 샘솟는 체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5세부터 발레를 시작했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 특기생으로 다녔지만 꼭 10등 안에 들었어요. 공부도 잘하고 싶었거든요. 성격이 워낙 아버지를 닮았나 봐요.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제 가방에는 없는 것이 없었고 애들은 그런 절 만물상이라고 불렀어요. 초․중․고 재학시절 발레와 리듬체조 선수를 했지만 체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대학 때 알게 된 요가를 통해서 지금의 체력이 길러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원 교수는 어릴 때부터 날씬 했던 것은 아니었다. 발레와 리듬체조 그리고 에어로빅 등으로 가꿔온 몸매였지만 살이 찌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그녀는 심한 스트레스로 키167cm에 몸무게가 78kg까지 나가게 되었고 이때부터 요가에 더욱 정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요가는 또 다른 세계였고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방학때 해인사와 송광사를 찾아가 매일 일천배를 올린 것도 마음수련을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특히, 박사학위 논문 준비를 위해 해인사를 찾아갔을 때는 매일 3천배를 올렸고 해인사의 원성스님이 머리를 깎으라는 권유를 했을 땐 실제 스님이 되려는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함께 갔던 후배가 집에 연락을 해서 동생(원현성사진작가)이 오지 않았으면 비구니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절에서 내려온 그녀는 요가를 통해 몸무게를 무려 22kg이나 감량하는데 성공했다. 원 교수의 어린시절은 보수적인 집안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 아버지 원오재(70)씨는 현재 **기업 대표를 맡고 있으며 어머니 정영자 씨는 전 유니세프 위원이었고 현재 교통심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는 고대를 나왔고 어머니는 숙명여대를 나왔다 두 분 다 정도를 지키는 깐깐한 분이다. 그녀가 대학은 숙대를 나오고 대학원은 고대를 나온 이유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권유에서였다. 세상물정 전혀 모른채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와서 그녀는 상당히 많은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 특유의 적극성과 완벽함은 요가를 만나면서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학에서도 그녀를 인정하게 되었다 25세부터 대학 강단에 선 그녀는 고려대에서 29세 때 요가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박사학위 취득 후 세상에 요가를 전파하기 위해 요가전도사가 된다.요가 수행시 주의할 점이제부터 원정혜박사의 요가강의가 시작될 참이다. 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일반인들이 요가를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제 수업에 들어오시는 분 들 중에서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 부분이 ”마음이 편해지고 몸의 불편한 부분이 해소되었습니다 하는 것인데요. 이는 요가의 수행이 부자연스러운 일상에서 오는 불편함을 해소시켜주어서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되고 명상과 호흡을 통해서 스스로 마음의 상태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문제점을 인식함으로써 본질적인 평온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일에까지 많은 생각과 판단, 그리고 결정을 하게 되죠, 그러한 과정 중에 스스로의 몸과 마음의 상태는 매우 중요한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요가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정화되면 몸과 마음의 걸림돌이 되는 문제들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요가를 하면서 주의할 점은 무엇이며 반드시 지켜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첫째, 요가 다이어트는 최소한 3개월 후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초보자의 경우 몸이 요가에 적응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물론 2주일 만에 5kg이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미국인은 1주일만에 3kg이 빠졌다고 합니다. 공통적으로 고집이 없고 순수한 사람일수록 반응이 빨랐어요. 반응이 늦더라도 조급하게 굴지 말고 자신의 상태를 꾸준히 지켜봐야 합니다. 둘째, 반드시 규치적으로 해야 합니다.셋째, 반드시 공복상태에서 해야 하고, 식후 2~3시간 후일 때가 가장 적당합니다. 목욕한 직후에도 피해야 하며, 요가체조를 하고 난 뒤에도 곧바로 목욕, 세수, 머리감는 일 등은 피해야 합니다.넷째, 에콜스무브먼트나 요가의 체조부분은 혼자서 해도 좋지만 제대로 요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믿을만한 지도자의 지도를 받도록 합니다. 시중에 나온 책이나 비디오만 믿고 요가를 독학하는 것은 위험합니다.다섯째, 병을 앓은 경험이 있거나 현재 어디가 아픈 곳이 있으면 수련을 받기 전 미리 지도자와 상의 합니다.여섯째, 타인과 경쟁하거나 비교하며 수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수행의 결과도 개인차가 작용합니다. 설령 다른 사람의 진행과정보다 뒤처지더라도 자신의 그릇과 인연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합니다.일곱째, 항상 긍적적으로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어지러우면 요가다이어트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습니다.“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정말 요가박사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이 배어나는 목소리와 해박한 지식 그리고 건강한 모습을 통해 원정혜 박사에 대한 신뢰감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갖는 것 요가의 정신 그녀가 요가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까? 다이어트 성공 아니면 요가전도사로서 이 땅에 요가를 널리 알린 것보다 더 구체적인 무엇이 있을 것 같았다.“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구요. 그것을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그러한 과정 중에 많은 분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셨다거나 좋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하겠습니다.”원박사가 요가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앞서 언급한 대로 다이어트 때문일까?“하하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중고생 때부터 이미 3천배를 엄청했었구요. 지나고 보니 그것도 요가 수행의 일부였어요. 그리고 요가이론이나 실기는 대학에 들어와서 배웠어요. 이곳저곳에서 인연이 되는 선생님들께, 그리고 스님들과 수행자들에게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예뻐지고 살빠지고 건강해진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전공까지 하게 되었네요. 박사 논문까지 요가에 관해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해보니 가장 정확한 전인교육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서요. 다른 어떤 테마를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석 박사 논문을 모두 요가로 쓰게 되었습니다.”이제 그녀의 나이는 37이다. 얼굴은 아직 서른 전후로 밖에 안보이지만 적지 않은 나이다. 어쩌면 화려한 싱글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그녀에게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일 중 가장 힘든 일과 가장 기뻤던 일을 물어 보았다.“늘 하우스 안의 화초처럼 생활해 오다가 20대 중반이 되어 갑자기 많은 일들을 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살아온 삶에 대한 생각들이 다른 경우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그 때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처음 알았죠. 헌데 예술작품을 하는 저로서는 그런 맑지 않은 마음이 작품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글과 작품을 위해서 사시촌이 있는 절로 들어간 것이구요. 새벽에 많은 예불과 절을 드리면서 순간...내 몸 하나, 마음 하나도 다스리지 못한 채 무용을 하면서 이렇게 살이 쪄 있고, 행복하고 싶지만 불행으로 있으면서 누가 내 맘에 든다 안든다.....하는 것은 오만함이었구나...나부터 맘에 들고봐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누군가가 맘에 안든다면...나는 스스로 얼마나 맘에 드는 생활을 하고 넘어가고 이해하게 됩니다.그녀는 절에 들어갈 때의 마음이 가장 힘든 때였고 절에서 5년 동안의 수행을 마치고 나올 때의 마음이 가장 기뻤던 때라고 털어 놓았다.그렇게 절에서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의 정화를 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그녀에게 세상적인 꿈이 있을까? 수행자에게 부귀영화가 어색한 옷이기에 그녀의 답이 궁금했다.“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인생은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수행자로서 교육자로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에 벗어나지 않는 일과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굳이 도전이라기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꿈이 아닐까요?”그녀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힘이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요가전도사로서 이론과 실제뿐 아니라 충분한 자양분을 소유한 그녀는 요가를 배우는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몸과 마음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스스로의 상태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지혜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아름다움을 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몰랐던 몸과 마음에 대한 걸림을 스스로 인식하고 일상에서 맑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수 있기를 바래요. 그리고 요가를 수행하는 분들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건강해져서 서로에게 사랑과 기쁨을 나누어주고 타인의 기쁨을 함께 하고 타인의 슬픔을 함께 아파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가의 경전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어려운 동작을 얼마나 할수 있는 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늘 수행자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요가수행의 길이 아닌가 합니다. 요가를 수십년 했어도 말과 행동이 지저분하고 술과 담배에 능하며 늘 시기질투심에 사로잡혀서 자신만이 정답이라고 자만한다면 그것은 요가를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 늘 겸손하게 열심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스승은 나의 어머니 언제 왔는지 **출판사 기획자 두 명이 뒤쪽 자리에 앉아서 원박사에게 인사를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10분. 아무래도 더 이상의 인터뷰는 무리일 듯싶었다. 마무리를 하기 위해 위해서 남은 질문을 서둘렀다. 단답형 질문에 그녀도 분위기를 눈치 채고 짧게 대답해 주었다. 박사님이 존경하는 분(스승)이 있습니까? 있다면 이유는 무엇 입니까? “주변에 좋은 스승님들이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께 좋은 말씀을 듣거나 수행법들을 많이 배웠어요. 지금의 제가 알고 있는 내용들도 모두 그분들 덕분에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온전한 스승님을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절에도 들어가고 많은 분들을 뵈었지만 스승님은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 어머니세요. 스님들도 수행하지면서 많이 상담을 하시기에 그런가 보다...라고만 했는데요. 수행중에 오는 걸림돌을 해소 하는데는 어머님의 지혜로움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구요. 어머니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그 반정도만해도 저는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을 할만큼 큰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년이상 청소년가장돕기 장학회를 운영해 오시면서 아이들 마음에 금이 가지 않게 지로로만 주시고 주변분들에게 늘 베푸시고 하시는 모습이나 미국에서도 크게 활동하시면서 늘 겸손하신 모습...가정적으로 내조도 잘하시고 자식들에게도 헌신적이시면서도 당신의 삶을 잃지 않으시는 모습 등...너무나 따라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그녀에게 10년후의 모습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수행자답게 넉넉한 답을 해주었다.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10년후에도 늘 지금 곧 죽음에 직면해도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돈이나 명예나 사물은 왔다가 스쳐가는 것인데 지나치게 얽매이다가 중요한 사람들과 사랑이나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지금의 삶을 그대로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친 후 그녀는 **출판사 직원들과 앞으로 나올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고 사진기자와 나는 커피숍을 빠져 나왔다. 인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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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CEO] 김세철 관동대 명지병원장...경쟁력 있는 병원 되려면 고정관념을 깨라
- KBS 건강프로그램 ‘비타민’에서 ‘아들의 성’을 주제로 강연 해 주목 받았던 김세철 관동대 명지병원장(전 중앙대 의료원장)을 만났다. 2009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의료기관평가에서 우수의료기관에 선정되는 등 흑석동 병원 개원 1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김 원장의 리더십과 병원 경영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CEO로 있는 시간 보다 환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고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2005년 2월 중앙대 의료원장에 취임한 이후 보수적인 틀을 깨고 과감한 개혁으로 흑자병원을 만든 주인공 김세철 의료원장. 김 원장에게 병원 CEO로서 성공한 비결을 묻자 돌아 온 답이었다. CEO로서 자신을 알리기보다 의사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김 원장의 속내를 알고 더 이상 묻기가 어려웠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일상적인 질문부터 시작했다. 마침 어제 술자리가 있었다고 하기에 주량을 물어보았다.“소주나 독주로 분위기를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십니다. 많이 마시기보다는 즐긴다고 해야죠.” 애주가임이 틀림없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시간표가 궁금했다.“아무리 술을 마셔도 출근은 언제나 6시 50분입니다. 술은 내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출근은 병원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이기 때문에 어긴 적이 없어요.”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슈퍼컴퓨터처럼 김 원장은 스스로 만든 약속과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아침출근 후 7시 20분에 미팅을 합니다. 모든 전공의 선생들이 모여서 수술환자들에 대한 처방과 진료 등에 대해서 의논을 하죠. 8시까지 전체미팅이 끝나고 나면 회진이나 수술을 시작합니다. 외래가 8시 20분부터 시작되죠. 그 후부터는 수술과 연구 그리고 미팅의 연속이죠. 개인적인 시간이라면 아 출근해서 전체미팅 시작 전까지 약 30분이 전부입니다. 그 시간에 하루일과를 체크하고 E-mail을 읽고 답장을 보내죠.”김 원장은 하루일과를 마치 브리핑 하듯 단숨에 말했다. 의료원장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이유를 묻자 답변은 이번에도 단순명쾌했다.“의사가 수술하고 연구하고 환자와 대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까? 그렇다고 내가 의료원장으로서 일을 도외시 하는 것은 없습니다. 결재도 연구실에서 할 수 있고 원고나 논문도 연구실이 편하거든요. 물론 일이 있으면 의료원장실로 올라와서 업무를 봅니다.”거듭 의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김 원장에게 이번에는 건강관리의 비결을 물었다. “특별한 것은 없어요. 현재 이렇게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형편이라서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많이 걸으려고 노력합니다. 병원 내에서도 빨리 걷기를 실천하고 있어요.”술을 자주마시면 건강에 해롭지 않냐는 질문에도 김 원장은 주저없이 답변했다. “기왕마시는 술인데 기분 좋게 마시면 스트레스 해소에 좋죠. 자기주량만 지키면 술이 나쁘진 않아요. 물론 너무 자주 과음하면 몸이 감당하지 못하지만...”김세철 의료원장은 술이 독주일수도 약주일수도 있는 것은 전적으로 술 마시는 사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최근에 김 원장은 재미있는 작업을 의뢰받았다. 전북 고창군에서 복분자가 남성의 정력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해 달라는 것이었다.“기존의 실험은 객관성이 결여된 부분이 많았어요. 한마디로 허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할 연구는 ‘복분자를 먹고 오줌을 싸면 요강이 깨진다’는 소문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저도 실험의 결과가 기대되는 작업입니다. 이미 복분자의 효능은 장기복용시 노화억제와 황산화작용으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지만 이번 동물실험을 통해 그것을 입증한다면 임상실험을 거쳐 발표하는 수순을 밟을 것입니다.”김 원장은 그밖에도 이미 3년 전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은바 있다. 주제는 “ 환경호르몬이 남성생식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이다. 김 원장은 올해 이 연구를 마무리하고 발표를 하게 되는 데 결과에 따라서 발표 시기는 늦춰질 수도 있다고 한다.“만약 환경호르몬이 남성 비뇨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 결과가 나온다면 파장이 큰 부분인 만큼 발표 시기는 조정 될 것입니다.”김 원장은 올해에만 두 건의 연구를 마무리하게 된다. 대단한 열정이 아니고선 이루기 힘든 결과물이다. 수술과 연구 그리고 크고 작은 회의, 의료원장 업무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했던 대한비뇨기과학회 이사장은 차치하더라도 현재 대한성학회 회장, 한국의료QA학회 부회장, 대한병원협회 경영위원장 등의 과외활동까지 합하면 정말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정말 대단하신 열정입니다”고 한마디 하자 김세철 의료원장은 살짝 웃음을 머금으면서 손사래를 친다. “아닙니다. 시간이 너무 없다보니 기대만큼 열심히 하지 못해서 회원들게 죄송합니다. 올해는 회원들이 좀 더 많은 관심을 갖는 학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비뇨기과의 스타교수인 김세철 의료원장은 남성의 생식기와 관련된 연구를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분자를 비롯한 일련의 연구들이 새삼스러운 분야는 아니다. 지난해에는 비아그라를 5년 이상 복용한 발기부전환자 105명과 남편의 비아그라 복용사실을 알고 있는 배우자 3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왜 비아그라를 장기복용하는가?”그리고 “지난 7년 동안 비아그라 부부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조사결과에서 장기 복용시에도 성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6점 만점 기준으로 남성이 5.15점, 여성이 5.10점으로 상당히 높게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실험의 결과를 통해 발기부전치료제를 오랜 기간 복용해 온 남성들은 ‘발기강직도’를, 배우자들은 ‘오르가슴 증가’를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고 한다. 교 오는 2008년 말 완공예정인 신축병동은 약 400병상으로 지상9층 규모의 최첨단 건물이라고 한다. 이렇게까지 중앙대 의료원이 발전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의사로서 그리고 의료원장으로서 충실했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임직원들이 해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원칙을 지켰는데 그 결과가 좋게 나타났어요.”하나의 원칙 그게 무엇일까?“그것은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도 예외가 될 수 없었죠. 기존의 보수적인 틀을 과감히 깨고 경쟁력 있는 병원이 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스타의사 한명보다 젊은 의료진을 많이 키우는 게 환자를 위해서 훨씬 큰 도움이 됩니다.”김 원장은 병원혁신을 통해 개원 1년 만에 병상가동률 95%를 넘기고 이제는 병상이 부족해 새 병동을 짓고 있을 만큼 흑자를 기록했다. 이런 결과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김 원장의 예외 없는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임상교수가 환자진료 때문에 논문을 쓸 시간이 없다고 하면 환자가 곧 논문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논문과 환자의 치료는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합니다.”중앙대 병원에서 김세철 의료원장만큼 바쁜 사람이 있을까? 김 원장은 지난해에 SCI에만 다섯편의 논문을 발표했다.김 원장의 이런 부지런함은 그의 몸에 밴 습관에서 나온 것이었다. 연구회 때부터 관여해 온 QA학회 일을 보면서 김 원장은 병원이 환자를 만족시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하루일과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루를 효율적으로 쓸까 생각했다고 한다.마찬가지로 출장중에도 비행기 내에서 발표할 논문을 점검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발표를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이처럼 그의 QA생활철학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것은 또 CEO로서 업무를 보는 데 적극 활용되고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능력있는 사람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또는 CEO는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등에 대해 매일같이 고민하면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지난 2005년 8월에 세계남성과학회가 열렸어요. 내가 조직위원장을 맡았는데 사무총장과 각 분과위원장에게 진행을 맡겼어요. 일체 간섭하지 않았죠. 나중에 외국의 교수가 그러더군요. ‘이번처럼 깔끔하게 학회가 진행된 적이 없었다. 사소한 다툼도 없이 학회행사가 잘 끝났다. 고맙다.’고 말입니다.”인터뷰의 대미를 장식하는 내용이었다. 김세철 의료원장의 ‘CEO 노하우’는 QA철학에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효율성과 가치를 생각하는 습관이 중앙대 흑석동 병원을 개원 1년 만에 흑자병원으로 만든 힘의 원천이었다. 김세철 원장은 현재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종신회원이며 의학한림원 정회원과 대한성학회 회장 그리고 한국의료QA학회 부회장, 대한병원협회 경영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서울고등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들에게 말하는 남자 (2006, 해나무)와 전립선 질환의 모든 것 (1997, 일조각) 등을 펴냈다. 수상내역은 아세아태평양 성기능장애학회 최우수논문상 (1989) 재경 경북대총동창회 자랑스런 동문상 의료부문 (1998) 중앙대학교 학술상 (2000) 미국 포경수술정보교육센터 인권상 (2000) 대한비뇨기과학회 학술상 (2002)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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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타임머신⑫ 영화 속에서 더욱 빛나는 스타 신은경
- 제2의 인생을 준비했던 신은경, 비상하다영화 <조폭마누라>의 카리스마 넘치는 여두목을 기억하는가? 신은경의 힘이 아니었다면 조폭마누라는 존재하지 못했다고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정도로 비중있는 스타 중 한명이던 신은경은 결혼과 함께 잠시 스크린 뒤로 물러나 앉았다. 그후 이혼의 아픔을 딛고 다시 브라운관과 스크린에 차례로 복귀하면서 숨겨온 내공을 펼치고 있는 신은경. 그녀의 카리스마는 건재했다. 현재 드라마 '스캔들'에서 아들을 잃고 괴로워하는 윤화영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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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관광청 마리콘 바스코-에브론 지사장 인터뷰
- ▲ 마리콘 바스코 에브론 지사장 올해는 필리핀과 한국이 수교한지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5월엔 3일동안 서울 도심에서 수교 60주년 기념축제가 열려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페스티벌을 주최한 주인공이 바로 필리핀관광청의 마리콘 바스코 에브론 지사장이었다. 에브론 지사장은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할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얼마 전에는 필리핀관청 주최로 세부-다바오 미디어 팸투어를 개최해 필리핀의 아름다운 휴양지를 한국에 소개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에브론 지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와 좋아하는 음식 그리고 에브론 지사장이 직접 추천하는 필리핀의 관광지 등을 소개한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국을 제 2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사랑한다. 특히, 한국의 사계절을 좋아하는데, 경치가 계절마다 바뀌고 나뭇잎의 색과 식물들이 때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패션과 음식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역동성은 언제나 도전적이며 새로운 것들을 보고 하는 것이 기대가 된다. 한가지 불변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한국인들은 필리핀인들처럼 따뜻하고 다정하다.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특히,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김치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모든 야채를 좋아한다. 여러 종류의 나물을 좋아하며 집에서 만들어보는 것도 즐긴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시금치를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불라오와 비슷한 갈비탕과 칼데레타와 비슷한 갈비찜도 좋아한다. 세부와 다바오의 특징은?-세부는 땅과 바다에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다. 또한 희귀 해양 생물이 있는 다이빙 포인트도 있다. 세부는 이제 필리핀으로 가는 제 2의 관문이면서 현대 도시로 거듭났다. 반면 다바오는 정말로 독특한 여행지다. 다바오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필리핀 부족들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바오 사람들은 아직까지 보수적인 편이다. 다바오는 또한 원숭이를 먹고 살아가는 멸종위기의 독수리의 서식지이며 가장 높은 산인, 아포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한국의 관광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자연 그대로의 소박한 분위기가 있는 안동을 좋아한다. 한국 유교의 중심지라고 불릴 만 하다. 산과 계곡은 필리핀과 아주 흡사하며 달콤한 딸기와 고지의 쌀과 야채와 같은 농업 상품은 정말 맛있다. 제주도 또한 기억에 남는다.세부와 다바오의 관광시 주의사항은 무엇인가?-세계 여러 곳에서 모인 여행자들은 그들이 여행 하는 그곳을 중시해야 한다. 우리 문화는 지역마다 다르다. 공통적인 관습이 있는가 하면 수용할 수 없는 관습도 있다. 필리핀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필리핀 사회에서는 가톨릭이 지배적이고 그렇기에 여러 면에서 보수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회나 노인들을 방문할 때에 적절히 옷을 입는 것이 지금과 같은 현대 시대에도 중요하다.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문신 또한 필리핀인들에게는 아직 부정적이다. 보통 문신은 범죄자들이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세부와 다바오의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무엇인가? (추천메뉴)-세부의 점심과 다바오의 두리안은 꼭 먹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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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관광청 마리콘 바스코-에브론 지사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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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설가 구효서...“올해 감미로운 멜로소설 쓰고 싶어요“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가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한 구효서의 직업은 전업작가다. 그는 등단이래 누구보다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이력을 쌓아왔다. 중견소설가로서 그의 이름은 어느새 서점가의 브랜드가 되었다. ▲ 소설가 구효서(사진=트래블아이) 작가 구효서는 신작을 내놓을 때 마다 서정성과 탄탄한 주제의식, 재미를 겸비한 소설로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호평을 받아왔다. 쉽게 읽히면서 깊고 다채로운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각도에서 사회를 보는 (눈을 가진) 이 시대의 진정한 소설가 구효서 씨를 만났다. 남부터미널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작가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초면이지만 사진으로 많이 보아왔기 때문일까? 커피숍을 찾아 걸어가는 동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정한 외모 탓에 샐러리맨으로 보이지만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아우라가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보여줄 것 같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궁금증의 진원지를 찾아보고 싶었다. 비록 한정된 시간과 인터뷰라는 형식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먼저 이메일로 보낸 질문지를 중심으로 작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올 봄에는 단편집이 나옵니다. 그동안 써왔던 단편을 묶어서 창작집 형태로 내고 첫 장편소설을 재출간합니다. 또 지난 12월부터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한 ‘타락’이 7월에 완료되면 멜로소설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새해계획이다. 많은 작업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직업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분량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직업으로서 소설가를 택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잡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소설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 가지 상황이 그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직업소설가가 된 후 26년 동안 소설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다행이란 표현은 내게 ‘행복’으로 들렸다. 우리나라에서 시 또는 소설만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단에 나온 후 지금까지 작가는 그의 말대로 많은 소설을 써왔다. 일정한 톤이나 색깔로 예상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쓰기보다 새로운 양식이나 주제로 옷을 바꿔 입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의 신작을 대할 때 마다 신선함을 선물로 받았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작가 구효서의 스타일은 앞으로도 ‘광대무변’할 것 같은 예감이 들 정도다. 평론가들도 독자들처럼 그의 도전을 신선함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작품성을 담보한 중견작가의 신선함은 근래에 찾아보기 힘든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력을 봐도 전업작가로서 그가 얼마나 신선함을 견지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 멜로 소설에 도전한다는 작가 구효서 1994년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2005년 「소금가마니」 이효석문학상 수상, 2006년 「명두」 황순원문학상 수상, 2007년 「시계가 걸렸던 자리」 한무숙문학상 수상, 2007년 「조율-피아노 월인천강지곡」 허균문학작가상 수상, 2008년 『나가사키 파파』로 대산문학상을 수상 등 작가로서 그의 행보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어져 새로운 도전을 한다. 취재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일뿐,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 바로 ‘멜로소설’이다. “멜로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 하자 작가는 소년처럼 웃으면서 “멜로디와 드라마의 합성어”라고 답한다. “멜로소설은 멜로디처럼 감미로운 드라마가 될 겁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오래전 영화화 된 <침향>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생각났다. 1995년 출간한 ‘낯선 여름’은 이듬해인 96년 홍상수 감독에 의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1996년 출간된 중편소설 「나무남자의 아내」는 김수용 감독의 <침향>으로 각각 스크린에 옮겨졌다. 두 소설이 모두 남녀의 사랑(삼각관계 포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멜로적 성격을 갖춘 것이라 작가가 올해 멜로소설에 도전할 것이란 말을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했다. 좀 더 욕심을 내서 어떤 내용인지 들어보려다 더 이상의 질문은 피했다. 김이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다. 대신 소설쓰기에 대해서 화제를 돌렸다. “취재를 하는 경우는 제 소설 ‘동주’(자음과모음 펴냄)처럼 실존인물을 쓸 때 필수입니다. 이미 수많은 작품과 언론보도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그의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죠. 오히려 그러한 사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그 틈을 메울 수 있는 상상력이 발휘되니까요.” 소설 ‘동주’을 쓰기 위해 그는 일본으로 건너갔고 교토에서 동주의 행적을 쫓았다. 그리고 작가의 말대로 사실과 사실 사이의 틈을 발견했다. 소설 ‘동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주인공은 윤동주(1917~1945)와 동시대를 산 소녀와 현대의 재일교포 3세로 윤동주가 머물렀던 일본의 아파트에 사는 요코는 윤동주가 경찰에 끌려가는 현장 등을 본, 윤동주를 남몰래 좋아하는 15세 아이누족 소녀입니다. 그리고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현대에 사는 재일교포 3세 김경식은 윤동주 유고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실종된 친구를 찾아 나서는데 그 과정은 곧 윤동주의 유고에 가까이 가는 길이 됩니다. 두 사람이 좇는 윤동주의 길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동주'(자음과모음 펴냄)는 윤동주가 소재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주변 인물의 눈으로 윤동주의 삶과 시의 세계를 살펴본 것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소설쓰기에서 취재는 필수라기보다 선택이라고 얘기한다. “모든 소설이 취재를 필요로 하지는 않아요. 제 경우에는 오히려 앉아서 쓴 소설이 더 많습니다. 연예소설이나 굳이 취재가 필요없는 주제는 상상 속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책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데올로기의 산물, 넌센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도배된 세상에서 독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그리고 작가는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한마디로 넌센스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이데올로기를 조장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는 오히려 책 속에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꼭 책속에만 길이 있습니까? 책 밖에도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요. 종이책을 대신해서 e북이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젊은이들이 책을 멀리하는 것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아들과의 대화에서 논리정하게 말하는 것을 볼 때마다 수세에 몰리는 쪽은 나입니다.” 작가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한마디로 독서지상주의사고는 깨져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세상에 대한 경험치는 결코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책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영화와 음악과 여행과 많은 놀이들이 책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책의 지평은 종이만이 아니다. 구 작가는 2000년 e북에 ‘메별’을 연재했다. 이 작품은 이듬해 세계사에서 장편으로 출간됐다. ‘랩소디 인 베를린’ 영화로 만들고 싶어 앞서 언급한 두 소설이 영화화 되었기 때문에 이번엔 작가 스스로 감독이 된다면 어떤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지 물어 보았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랩소디 인 베를린’입니다. 일단 스케일이 크거든요. 음악을 가미하기 때문에 소설보다 매력적일 것입니다.” 두 천재 음악가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 ‘랩소디 인 베를린’은 18세기 말 독일 바이마르와 평양, 21세기 베를린과 일본과 한국을 잇는 배경 속에서 두 조선인 음악가의 불꽃같은 삶을 그리고 있다. 문학적 덕목은 작가의 언어로 말하는 것구효서 작가는 87년 등단작 ‘마디’이후 지금까지 그는 총 92권의 책을 출간 했다. 작품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모두 그의 이름이 나온 책들이다. 26년 결과물인 셈이다. 현재 55세인 그가 앞으로 26년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그동안 써온 작품들이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개작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주제나 방향은 지금도 마음에 들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끝으로 그는 작가의 문학적 덕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작가의 언어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의 언어가 있다고 생각해요. 미술가, 음악가, 샐러리맨, 공무원, 선생님, 목사님, 정치인 등 저마다 활동하고 있는 세계에서 쓰는 언어가 있잖아요. 작가도 마찬가지에요. 책을 통해 자신의 언어가 드러나죠. 그리고 스타들처럼 이미 대중한테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은 책 속에서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자신의 언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 언어는 어디에 속할까’ 생각하면 조심스러워집니다.” 작가는 최근 시비가 불거진 작가들의 모습이 일반인들한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면서 작가의 덕목은 언어에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작가가 정치언어를 쓰면 어떨까요? 논쟁을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하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문학인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언어가 세속적이거나 정치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멜로소설에 도전 인터뷰가 끝날 무렵 구 작가는 대뜸 자신의 모습이 소설가 같냐고 묻는다. 이렇게 질문이 많은 인터뷰이는 처음이다. 그런데 질문과 동시에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한다. “전업작가가 된 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스타일입니다. 9시 출근해서 글을 쓰니까요. 옷은 물론 수염도 깨끗하게 정리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소설가라기보다 회사원으로 봅니다.” 작가의 말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웃음이 나왔다. 그는 수년 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 가 아닌 스터디다. 작가지망생들이 팀을 짜서 그에게 요청하면 응하는 식이다. 하지만 3그룹을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보통 6명 정도 모인 그룹이 3개 정도 되는데 한 주에 1개의 그룹을 2시간씩 합니다. 그들의 열정을 보면서 내가 얻는 게 많아요.” 그의 마지막 멘트 속에 열정이 강조된 것을 보면 올해 도전하는 멜로소설은 젊은이들이 읽기에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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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설가 구효서...“올해 감미로운 멜로소설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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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영주 대표 '인도 홍보의 마이더스'
- 한국인 중 90년 이후 지금까지 인도를 가장 많이 다녀 온 사람은 누구일까? 이렇게 질문하면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들 것이다. 그동안 인도를 여행한 한국인들이 무척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도관광청 한국사무소의 발표에 의하면 93년 인도를 방문한 한국인은 2만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과 인도의 거리가 많이 짧아진 것 같다. 이렇게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진 이유는 누군가 인도에 대해 오랫동안 체계적인 홍보를 해왔음이 분명하다. ▲ 안영주 대표 (BLS서비스코리아)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정답을 공개한다. 주인공은 바로 안영주 BLS서비스코리아 대표이다. 안 대표는 지난해까지 인도관광청 한국사무소를 20년 가까이 이끌어 오면서 한국에 인도를 소개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프로모션을 추진하는 등 한국과 인도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 온 홍보대사이다. 안 대표만큼 공식적으로 인도를 많이 왕래한 한국인은 드물 것이다. Special 인터뷰의 문을 여는 인물로 안영주 대표를 만나보았다. (다음은 안영주 대표와의 일문일답 전문) 인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인도의 캐치프레이즈는 잘 알려져 있듯이 Incredible India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음식, 종교와 풍습, 그리고 역사가 공존하고 있어 한가지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닌 나라입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인도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인도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종교, 문화, 관습, 정치 등 천 가지의 모습을 지닌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또 즐기고 배우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넓은 나라에서 넓게 생각을 하는 진정한 여행자로서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도는 성자부터 가난한 이까지 모두가 공존하는 세계입니다. 인도에서 꼭 봐야 할 곳과 음식 그리고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인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지마할을 비롯해 아그라 성, 아잔타 석굴, 카주라 호 등 28개의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합니다. 인도음식은 지방마다 특색 있는 다양한 음식을 주식으로 합니다. 북인도는 밀가루로 만든 로티(차파티, 난)가 남인도나 벵골에서는 쌀이 주식입니다. 각 지방의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 좋겠죠. 그리고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서 현지인처럼 목욕의식을 행하는 것은 어떨까요? 인도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니까요. 인도의 어떤 점이 매력적입니까?인도에는 세계인을 사로잡는 타지마할이나 사르나트 같은 유명한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1억이 넘는 인도인구 중에서 무려 3억이 영어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글로벌 기업이 많은 인도는 경제 활성화에 주력하는 등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지요. 이제는 관광시장 뿐만 아니라 발전하는 경제로 인해 비즈니스나 유학을 하기 좋은 곳으로도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 ganga 강(갠지즈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최치선 기자) 인도여행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인도를 굳이 오랫동안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인도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여행지 입니다. 가난하지만 바삐 일하며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사는 현지인들의 모습 때문 아닐까 합니다. 외국인이라고 형식적 여행만을 하지 말고, 현지인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현지 문화와 음식 등을 즐기려 노력한다면 인도는 아마 여행객들의 마음속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어 줄 것 입니다.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여행자들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까? 증가추이는 어느 정도 입니까?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여행객은 해마다 상당한 수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5년 동안 매년 큰 증가율을 기록해 2008년 대비 2011년에는 30%가 넘는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높은 증가율로 한국인들이 인도여행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 카지랑가 국립공원에서 코끼리 투어를 하는 여행자들의 모습. (사진=최치선 기자) 대표님과 인도의 인연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1993년, 대전엑스포 인도 파빌리온을 시작으로 한국에 인도를 알리고 홍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2만 명 안팎이던 한국인 방문객이 현재는 1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한 것을 보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인도인들이 좋아하는 인사말이나 행동은 무엇입니까? 양손을 모아 고개를 약간 숙이며 나마스떼라고 하는 인사말을 좋아합니다. 또한 인도에서는 상대방의 발등에 손을 얹고 자신의 이마를 대는 인사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최고의 존경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인도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인사표현입니다. 인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인도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지리적 다양성을 갖고 있는 것 외에도 수많은 외래문화가 지역전통 문화와 결합되어 생겨난 문화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각 지역을 방문하면서 지역적 특성을 충분히 경험하고 온다면 값진 여행이 될 것입니다. 보통의 인도인들은 한국을 어떻게 알고 있나요? 인도 사람들은 한국인에 대한 배려가 높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전세계에 불고 있는 한류바람이 인도 내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대장금이 방영되어 5%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한국가요를 듣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2008년 한국관광공사 뉴델리 지사가 개소한 이래로 많은 인도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인도관광청이 하는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인도관광청은 인도의 다양한 관광지역을 홍보하는 것은 물론 인도 내의 숨겨진 지역을 한국인들에게 소개하고 더 많은 한국인들이 인도내의 다양한 지역을 찾아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미디어를 비롯해 인도영화, 공연, 음식등과 관련된 프로모션을 기획, 후원하고 로드쇼, 세미나, 워크샵, 국제전시 등을 통해 한국인에게 더 친근한 인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도여행 전 관광청을 방문하면 어떤 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요? 인도 여행계획을 하고 계신 분이라면 관광청 홍보사무소를 방문해 안내책자를 받아가실 수 있습니다. 또 관광청 홈페이지를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인도여행에 대한 준비 및 현지정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여행 전 관광청 홈페이지를 꼭 방문하시기를 추천합니다. 현재 운영중인 BLS는 어떤 일을 하는 곳입니까? 인도비자발급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이 인도를 가기위해서는 비자가 꼭 필요합니다. 하루든지 한달이든지간에 인도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비자가 있어야합니다. 가장 많이 받으시는 비자는 관광(Tourist)비자입니다. BLS SERVICE KOREA는 여권 및 비자신청/발급 업무를 처리하는 글로벌 비자 서비스대행업체인 BLS INTERNATIONAL SERVICES의 한국지사로 지난해 11월 3일부터 인도비자접수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인도비자접수센터 업무시간은 비자신청 9:00~12:30, 수령 4:30~5:30이며 발급은 2박3일정도 소요됩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안영주 대표는 사진 촬영에 앞서 센터를 안내하며 비자발급 외에 다양한 서비스들을 설명해 주었다. 이 곳에서는 신청자들의 편의를 위해 택배, SMS, 복사 및 프린팅, 여권사진서비스 등을 실시하고 인도관련 무료책자와 지도 등 인도여행에 필요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여행사와 일반 신청자들을 위해 1시간 무료주차서비스와 여권 취급을 위해 강화된 보안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비자접수센터는 앞으로도 신청자들의 편의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BLS 사무실 위치는 용산구 한남동 258 현대리버티 하우스 2층 202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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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영주 대표 '인도 홍보의 마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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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낭 여행자여 초심을 잃지 말고 속단하지 말자"
- 울룰루의 일출. 사진:강혜진상품이 아닌 여행자가 주인공인 자유여행 문화 정착을 위해 트래블아이는 창간과 함께 세계일주배틀 100탄을 기획했습니다. 이는 해외여행의 기회 확대와 여행을 통한 자기혁명은 물론 세계와의 소통을 사훈으로 삼은 본지의 실천의지 입니다. 세계일주배틀은 지난해 <제1탄 인도를 내품에> (2010.9.6~2010.11.5)에 이어 올해 <제2탄 호주를 내품에> (2011.7.8~2011.8.13)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세계일주배틀 대상의 영예는 강혜진(성균관대 철학과 2학년) 학생이 차지했으며 35일간의 호주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강혜진 학생은 또 이번 여행에서 미션(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쳐라!)까지 성공시켜 사이판 4박5일 상품권도 받게 되었습니다. 세계일주배틀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하이호주와 중화항공 그리고 (주)KT&트래블, (주)나라셀라, (주)탑항공, (주)삼성출판사, (주)스코노코리아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트래블아이는 올해가 가기전 세계일주배틀 제3탄을 준비합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해외여행의 기회를 가질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일환으로 오는 9월 중 트래블아이가 놀라운 변신을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래에 이번 배틀 대상 수상자인 강혜진 학생의 일문일답 인터뷰를 게재 합니다. 그녀는 대학 입학 후 처음 맞은 방학 때부터 인도와 스페인 등 유럽을 유랑하며 배낭여행의 깊은 맛에 흠뻑 빠진 열혈 여행낭자 입니다. 9월부터 그녀의 즐거운 호주배낭여행기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따뜻한 시선으로 열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대상 수상자인 강혜진 학생. 1.이번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결국 마인드컨트롤 이었다. 삼십일이 넘는 여행을 '장기'라고 말붙이기에는 민망한 구석이 있지만 한 달부터 시작되는 장기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여행을 마음먹었을 때와 준비할 때, 떠날 때의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전진해 나가는 마음인 것 같다. 한순간 모든 것이 지겨워질 때도 있고, 완전한 신선함에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해서 후회할 때도 있었다. 이 모든 순간,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를 다스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2.호주 여행전과 여행후의 느낌은 어떤 차이가 있었나? 조금은 당연한 이야기인 듯 하지만, 이번 여행이 나로 하여금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확신하는 버릇을 버리게 해주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고질병이기도 한데, 무엇을 일찍 단언하고 정의 내려서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주 작은 것을 확신하는 순간, 모든 것이 줄어들어 버리는 세상이니까! 사막 투어에서 보게 되는 낙타의 모습. 3. 여행 중 아쉬웠던 점은? 준비기간이 충분하지 못해서 현지에 가서 우왕좌왕했던 순간들이 아쉽다. 불충분한 준비가 오히려 예상외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마음의 불안감마저 잠식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호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물 '캥거루' 4.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몇 가지 장면들이 스치지만, 단연 울룰루 캠핑에서 부쉬 캠핑을 하면서 침낭에 누워서 밤하늘을 볼 때가 정말 기억에 남는다.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온갖 벌레소리, 그리고 별똥별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던 밤을 잊을 수 없다. 5. 호주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속단하지 말아야 할 땅. 6. 앞으로 호주배낭을 하려는 여행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여행을 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35일 동안 호주 전역을 여행한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모두들 신기해했다. 호주에는 생각보다 자유배낭여행객들이 그리 많지 않다. 물론 휴가기간 동안 여행을 즐기는 자들이 상당수이긴 하지만 워킹비자를 통해서 호주에서 번 돈으로 호주여행을 즐기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US달러의 환율을 뛰어넘은 콧대 높은 호주물가에 단단히 마음 준비할 것. 그리고, 시중에 출판된 가이드북을 너무 신봉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많은 정보들이 기재되어있지만, 개인 적으로는 유럽보다 소스가 적어서인지 정보의 객관성이 종종 결여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또한 몇몇 도시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할 것을 추천한다. 호주에는 코끝이 시리는 겨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옛 얘기 또한 4 seasons 1 day 의 날씨를 보여주는 맬버른까지. 자칫 잘못된 날씨정보로 여행전체를 망칠 수도 있으니, 여러 종류의 옷을 단단히 챙길 것. 시드니의 대표적인 명소이자 세계유산인 오페라하우스의 전경. 사진: 강혜진 7. 배낭여행을 통해 얻은 점과 앞으로의 배낭여행지는? 호주에서 수많은 지구방랑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돈과 시간에 얽매이지않고 발닫는 곳은 어디든 떠나는 여행자들에게 깊이 감명 받았다. 호주의 여행 이후 놀라운 자연경관이 주는 경이로움에 대한 갈증이 증가 하게 되었다. 따라서 위대한 건축물과 거대한 도시보다는 도심의 반대편에 있는 인적이 닿지 않은 여행지로 떠나고 싶다. 가령 남미나 아프리카 같은 대자연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나의 다음 여행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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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낭 여행자여 초심을 잃지 말고 속단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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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하이호주 김효철 대표 시드니 현지 인터뷰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지난 3월 서울에 입성한 ‘하이호주’가 주목받고 있다. 영원한 파라다이스 ‘호주’의 현지 여행사로 자리 잡은 ‘하이호주’ 마침내 서울에도 지사를 내고 본격 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20년 동안 시드니에서 한국과 외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여행 업무를 해 온 ‘하이호주’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듣기 위해 하이호주의 김효철 대표를 시드니 본사에서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먼저 호주 현지 여행사인 ‘하이호주’가 서울에 둥지를 튼 이유가 궁금했다. 김 대표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김효철 대표 “지난 20년 가까이 호주현지 여행사로 관광 업무를 해 왔지만 최근 경기 악화로 현지 랜드사들의 폐점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이호주 역시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직접 사무실을 개설해 운영키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법인은 오래전부터 구상해 온 부분이라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호주 현지 업체간 신뢰와 네트워크 강점김 대표의 마지막 언급이 또 다시 꼬리를 물게 했다. 그렇다면 서울입성을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습니다. 호주 현지에서 한국인을 비롯해 외국인을 상대로 20년 이상 영업을 하다 보니 고객의 니즈가 무엇인지 어떤 대응과 적합한 여행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특히, 한국 여행자들의 경우엔 다양한 여행 패턴을 소화해야 만족도가 크기 때문에 ‘하이호주’만의 노하우가 축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서울사무소는 준비했던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오픈 시기가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하이호주가 자랑하는 역량과 노하우는 무엇일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김 대표에게 무리한 부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 보고 싶었다. “특별히 노하우라고 할 것은 없지만 하이호주만의 강점은 오랫동안 호주에서 현지 업체들과 교류를 하다 보니 상호 간 믿음이 커진 것과 다양한 회사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여행자들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김 대표의 말대로라면 하이호주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딱 맞는 숙소, 관광지, 수상레저, 골프 등 다양한 일정을 맞출 수 있고 비용 또한 한국여행사들보다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상품을 무조건 싸게 할 수는 없지만 일정부분 합리적인 가격으로 여행자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특히, 시드니와 케언즈의 데이투어는 가격과 컨텐츠,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서울에서 원스톱으로 호주일정을 케어 해 드리기 때문에 여행자들의 불편함은 최소화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효철 대표는 고객에게 신뢰받는 여행사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여행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하이호주가 현재 가장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상품은 무엇일까? “개인과 가족 등 상황에 맞는 상품들이 있기에 몇 개만을 소개하기가 어렵네요. 대표적인 상품은 시간이 없는 가족이나 연인들끼리 자유일정을 선호하는 여행일 경우 시드니를 중심으로 1박2일부터 4박6일, 5박7일 등 다양한 상품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시드니 시내투어는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해 하버브리지 등의 주요명소를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근교로 나가면 블루마운틴과 포트스테판, 골드코스트, 울릉공 등을 관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시간과 가격 모두 절약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여행가이드와 여행플래너의 역할 충실하이호주는 시드니 외에도 케언즈에 지사를 두고 있다. 케언즈 역시 시드니 못지않게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지역 중 하나인데 하이호주의 차별화된 무기는 무엇일까? "무기하니까 갑자기 무섭네요. (웃음) 하이호주는 말씀하신대로 시드니에 이어 케언즈에 지사를 두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케언즈는 세계최대의 쿠란다 열대우림과 세계유산인 그레이트 베리어리프가 있는 곳입니다. 수상 스포츠와 액티비티의 천국이라 불리는 이유도 세계에서 가장 큰 산호초와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혼부부들에게 인기가 많은 케언즈는 도시가 크지 않아 휴양과 관광을 모두 잡을 수 있다. 게다가 하이호주만의 특화된 갱쟁력으로 저렴한 가격에 멋진 리조트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는 게 가능하다. 하이호주의 장점은 호주를 여행하려는 모든 여행자들에게 친절한 여행 안내자이면서 여행경비를 가장 합리적으로 짜주는 여행 플래너의 역할까지 훌륭하게 완수 한다는 것이다. 하이호주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까지 좋은 일만 있었을까? 호기심은 다시 하이호주의 성공비결에서 위기관리와 극복으로 옮겨갔다. 자칫 방송프로를 흉내 내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었으나 이미 활시위는 당겨졌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호주 현지인들에게 신뢰를 얻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어요. 호주인들은 정직한 사람에게는 무한한 호의를 갖고 대하지만 조금이라도 거짓이 드러나면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업상 하는 작은 거짓도 나중에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부터 철저히 오픈하게 되었어요. 덕분에 지금은 거래처로부터 무조건 신뢰를 얻었고 지금의 하이호주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울에서는 어떨까? 정직이란 기본은 유지하더라도 방법까지 같을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사업은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이호주는 여행상품보다 여행자가 소중합니다. 따라서 여행자 위주의 상품을 준비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진이 거의 남지 않아도 여행자가 필요하다면 섭외를 합니다. 대부분의 상품이 여행자의 동선과 편의를 고려해 만들어졌습니다.” 여행자 위주의 상품 판매해 긍정의 피드백 받는 여행사 목표김 대표는 언제부터 여행업에 발을 들여 놨을까? “젊었을 때 20대부터 가이드를 했습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해서 현지 가이드를 하다보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하이호주를 차렸습니다. 회사를 설립하고도 가이드가 좋아서 오랫동안 사장업무와 병행했어요. 지금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신규 사업으로 시간이 없어서 가이드 업무를 못하고 있습니다.” 여행의 꽃인 가이드를 천직으로 생각한다는 김 대표는 언젠가 제자리로 돌아갈 생각이다. 하이호주의 토대가 굳건한 이유는 바로 현장에서 오랫동안 여행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일어서기 전에 앞으로 ‘하이호주’를 어떤 여행사로 키울 계획인지 들어 보았다.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여행자 위주의 여행상품을 팔고 싶습니다. 나아가 여행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돌아가서 입소문을 낼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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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하이호주 김효철 대표 시드니 현지 인터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