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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사람과 술, 그리고 고향...모월양조장 김원호 대표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한 사람의 소망이 담긴 공간이자,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켜가는 터전이다. 대기업 엔지니어에서 사업가로, 그리고 전통주 양조인으로 삶을 전환한 김원호 대표의 철학은 ‘우리 땅의 재료와 정직한 손길로 술을 빚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상 수상으로 인정받은 그의 술은 이제 원주의 이름을 새롭게 알리고 있다. ◈친구와의 약속에서 시작된 귀향의 꿈 “우리 나중에 늙으면 다 같이 원주로 돌아와 모여 살자.” 김원호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나눈 농담 같은 약속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20년 넘게 대기업 기계·전자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서울에서 성공적인 사업가로 자리매김했지만, 결국 그는 고향 원주로 향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늘 관심 있던 우리술을 현실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과 양조장을 병행하면서 처음에는 사업에 쏟는 비중이 8이었다. 그러나 점차 양조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지면서 지금은 양조장 9, 서울 1의 삶이 되었다. “서울의 일은 이미 직원들이 알아서 굴러갈 정도로 안정돼 있어요. 이제 제 중심은 원주 모월양조장에 있습니다.”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협동조합 같은 양조장 2010년, 김 대표는 원주에 양조장을 열었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인지도가 부족해 술을 빚어도 팔리지 않았고, 2020년까지만 해도 접을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그 상은 제 개인의 성취라기보다 고향 사람들과 함께해 온 노력의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술을 빚는 길은 언제나 순탄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양조장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였습니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해 금전적으로도 큰 손해를 입었죠. 물질적인 어려움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지지해 준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끝까지 믿어주고 함께해 준 고향 친구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의 모월양조장이 있습니다.” ◈원주의 쌀, 그리고 집요한 연구 양조장의 자부심은 원주에서 직접 재배한 토토미 쌀이다. 김 대표는 자신이 직접 소량의 쌀농사를 지어 보태기도 한다. “우리 땅의 재료로 술을 빚는다는 게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그는 기술자 출신답게 효모 연구에도 몰두한다. 다양한 효모를 증식시켜 가장 적합한 균주를 찾아내고, 증류 과정에서는 초류와 후류 각각 2~3%를 제거해 숙취를 줄인다. 또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에 술을 담아 6개월 이상 숙성해 곡물 본연의 맛을 살린다. “좋은 술은 기술과 정성이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술의 이름에 담긴 의미 모월양조장은 ‘모월 연’, ‘모월 미’, ‘모월 로’, ‘모월 인’ 등 네 가지 술을 내놓고 있다. 모월 연은 원주 쌀 100%로 빚어 산미가 입맛을 돋우고, 모월 미는 군고구마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모월 로(25%)는 부드럽고 깔끔한 목넘김을 자랑하며, 모월 인(41%)은 쌀로만 만든 증류주의 정석으로 깊은 감칠맛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모월(某月)’은 달처럼 시간이 흐르며 술이 익어간다는 뜻입니다. 술은 기다림과 인내의 산물이죠.”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철학은 단순하다. “우리 땅, 우리 사람들과 함께 술을 빚는다.” 그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원주만의 색깔을 담고, 공동체 운영을 통해 상생의 가치를 실현한다. 나아가 꾸준한 연구로 한국 전통주가 해외에서도 인정받기를 꿈꾼다. “고향 원주에서 시작했지만, 목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전통주가 세계에서도 사랑받는 날까지 도전하겠습니다.”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술 공방이 아니라, 사람과 땅,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공동체의 양조장이다. 때론 배신과 손해라는 아픔도 있었지만, 끝내 이를 이겨낸 것은 믿음으로 함께해 준 친구들이었다. 김원호 대표의 술 한 잔에는 고향의 온기, 우정의 힘, 그리고 장인의 집념이 담겨 있다. 모월의 술을 마시는 일은 단순한 음주가 아니라, 원주의 이야기와 한국 전통주의 미래를 함께 나누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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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우보주책...“소걸음의 지혜로 담아낸 우리 술 한 모금”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우보주책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이름의 양조장을 운영하는 김희철 대표를 만나기 위해 5일장이 한창인 용문역 앞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커다란 회의용 탁자와 의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안쪽으로는 주방과 장식장에 가지런히 진열된 술들이 차분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양평의 숲과 들녘 사이, ‘소걸음으로 천천히 전통주의 비책을 찾겠다’는 뜻을 담은 이름의 술 공방 우보주책(牛步酒策). 그 중심엔 김희철 대표가 있다. 그는 50년 음주, 10년 향음, 4년 양조 경력을 자랑하지만, 그보다 더욱 빛나는 건 그의 나눔과 사람을 향한 진심이다. 은행 부행장까지 지냈던 그가 퇴직 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경제 상담, ‘부자강의’라는 이름의 강의를 이어가며 삶의 지혜를 나누는 모습은 술 빚기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은행원에서 양조인으로 “저는 음주 50년, 향음 10년, 양조 4년 경력의 술 전문가입니다.” 김 대표의 첫 인사말은 농담 같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함축한다. 금융권에서 수십 년간 사람들의 돈과 고민을 함께 나누었던 그는 퇴직 후에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상담을 이어갔다. 이제는 술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양조장을 사람과 사람이 만나 교류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밀로 빚은 ‘진짜 술’ 국내 밀 자급률이 1%에도 못 미치는 현실. 그는 양평에서 열린 밀 축제에서 수입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가 등장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 끝에 우리밀로 술을 빚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양평 밀 막걸리와 소주다. 금강, 백강, 토종 앉은뱅이 등 다양한 품종에 양평 쌀 ‘참드림’을 더해 맛을 완성했다. 김 대표는 “밀로 빚은 술은 쌀과 달리 고소하고 담백하다”며 우리밀 술이 가진 차별성을 강조했다. ◈53도 밀소주의 탄생 우보주책의 또 다른 대표작은 양평밀소주다. 증류 과정에서 도수를 조절하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던 53도에 맞췄다. 의외로 도수의 무게감보다 맑고 부드러운 향이 먼저 다가온다. 그는 “실온에서 마시면 향이 더욱 풍부하고, 온더락이나 하이볼로 즐겨도 좋다”고 소개했다. 현재 ‘양평밀소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며 지역 대표 기념품으로도 자리 잡았다. ◈양조장의 현실과 철학 하지만 김 대표는 양조장의 현실을 냉정히 짚는다. “요즘 청년들이 양조장 사업에 뛰어들지만 대부분 1년을 못 버티고 나갑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연 3000만 원의 수익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그는 “양조는 마음을 비우고, 소걸음처럼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나만의 술을 찾고, 시설 확장보다 작지만 알차게 운영하며 단골을 늘리는 게 길이다”라고 조언한다. “술은 결국 사람이 찾는 것이고, 그 관계가 양조장의 힘이 된다”는 말은 우보주책의 운영 철학을 대변한다. ◈예술과 술, 또 하나의 교감 김희철 대표는 술만 빚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섹소폰 연주자이자, 얼마 전까지 악단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음악인으로서의 감수성은 술의 풍미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양평에서 활동하는 시인, 화가, 음악가 등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과 자신이 만든 술을 교환하기도 한다. 술과 예술이 만나는 교류의 장은 우보주책만의 독특한 문화적 향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좋은 술은 좋은 음악처럼 오래 기억된다”며, 술과 예술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개체라고 말한다. 우보주책에서의 한 잔은 단순한 술맛을 넘어 예술과 교감하는 경험이 된다. ◈청년과 함께하는 술자리 우보주책은 열린 사랑방이기도 하다. 청년들이 안주를 들고 오면 2만 원만 내고 무제한으로 술을 즐기도록 개방한다. 그는 이를 “내가 감사한 자리”라고 표현한다. 젊은 세대와 함께 술을 나누며 세대 간 거리를 좁히고, 술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보주책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금융인의 경험, 멘토로서의 따뜻한 마음,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이 술잔 속에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김희철 대표가 빚은 술은 ‘맛’만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양평의 들녘에서 태어난 막걸리 한 사발, 53도 소주 한 잔, 그리고 섹소폰 선율 같은 그의 미소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술은 나눔이고, 사귐이며, 결국 예술이다.” 소걸음처럼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가는 그의 길 위에서, 우보주책은 한국 전통주의 또 다른 미래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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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시철 박사 “AI로 생애 건강 리스크 예측하는 시대 열린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제노시스 AI헬스케어(주) 부회장으로 7월 1일 공식 취임한 강시철 박사는 “AI의 힘으로 수명, 사망 원인, 때를 미리 알고 예방과 치료까지 가능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의료기술을 넘어 인류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그의 메시지는 강렬했다. 제노시스가 개발 중인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은 이제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로 다가서고 있다. ◆“앞으로는 건강의 흐름과 생애 리스크까지 예측 가능하다” “앞으로는 자신의 건강 상태는 물론, 생애 전반의 리스크까지 미리 알 수 있는 시대가 열립니다.” 강 박사는 “그동안 우리는 질병이 발현된 후에야 치료를 시작하는 방식에 익숙했지만, 앞으로는 개인의 유전체와 생체 데이터, 생활습관, 환경 요인 등을 AI가 통합 분석해 미래 건강 흐름과 위험 요인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컨대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 언제쯤 건강상 이상이 나타날지 등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치료뿐 아니라 예방 중심의 의료로 전환이 가능해진다”며 AI 기반 예측 의료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제노시스의 핵심,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개발 중인 핵심 기술은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HDT)’이다. 이 기술은 단순한 디지털 건강 기록이 아닌, 사람의 실제 생체 리듬과 유전 정보를 해석하고 반영해 ‘가상의 나’를 실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강 박사는 이를 ‘인체 해독기’라 부른다. “우리는 인체가 보내는 신호의 90% 이상을 해석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 아니라, 병이 생기기 전에 잡아내는 기술입니다.” 그는 이 기술이 실제 임상에 적용되면, 지금까지 일부 VIP만이 누리던 맞춤형 정밀의료가 누구에게나 제공될 수 있는 ‘보편적 고품질 의료 서비스’로 전환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AI 의료, 5차 산업혁명의 중심축이 되다 강 박사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단순한 산업 영역을 넘어, “5차 산업혁명”의 완성 지점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우리는 이제 인체를 디지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미생물, 생활습관, 환경 등 복합 데이터를 분석해 건강을 예측하고, 치료 방향을 설계하는 일이 인간이 아닌 AI에 의해 가능해지는 시대입니다.” 그는 이어 “인체 번역과 해독이 실현되면, 그것이 바로 5차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이 기술 흐름의 선두에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서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의료 AI 분야에서 세계 일등을 차지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제노시스의 AI 의료진이 이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제가 부회장으로서 그 흐름을 총괄하고 이끌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AI 집단지성이 인류의 삶을 바꾼다” 강 박사는 인터뷰 말미, AI 기술에 대한 신념을 다시금 강조했다. “AI는 더 이상 계산기 수준의 도구가 아닙니다. 인간보다 더 빠르게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치료 방안을 설계하는 새로운 지성입니다. 이 AI 집단지성은 이제 인류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노시스의 기술은 개인을 넘어서 공공의료까지 확장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보편적 의료복지의 실현 또한 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영학 박사인 강시철 부회장은, 20년 이상 기술인문학과 AI 융합 연구를 이어온 인물이다. 저서로는 《AI의료의 미래》,《디스럽션》, 《인공지능과 슈퍼비즈니스》, 《핸디캡 마케팅》 등이 있으며, AI 인문학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상장사 휴센텍 대표이사와 고려대 문과대 교우회장을 역임했다. 강시철 박사의 짧지만 강렬했던 인터뷰는, AI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생명과 죽음을 관리하는 미래 의료의 주체가 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만들어가는 길 위에는, 지금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생명 연장의 기술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의료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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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시흥에 위치한 대한주조의 김미영 대표는 전통주에 대한 깊은 열정과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어왔다. 2009년에 대한주조를 설립한 그는 일본에서의 유학생활과 사업 확장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주를 세계에 알리는 꿈을 키우고 있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생 역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김 대표가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한국식품 도매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술이 가장 큰 이윤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류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특히 한국식품을 일본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주류의 매력을 더욱 느꼈다고 전했다. 일본 유학 중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자,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작은 회사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하며 영업과 납품을 통해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보람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한국식품 도매업체를 창업하며 일본에서의 경험을 활용했다. 대한주조는 2009년 설립되었으며, 최근에는 월 7만 병의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으로 성장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영업과 홍보를 했고, 주류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죠."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자, 그는 다시 주류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있는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공부한 경험도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대한주조는 과일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딸기와 바나나 등을 활용하여 맛과 향을 모두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연막걸리는 탄산이 적고 첫맛이 묵직한 편이지만 목넘길 때는 신맛이 약간 나면서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음자들은 연막걸리에 대해 "부드러운 식감과 적당한 신맛이 조화를 이루어 음용하기 좋다"고 평가하며, 전통주로서의 매력을 느낀다고 전했다. "앞으로 연예인과 협업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싶어요. 연예인 시그니처 막걸리를 기획 중입니다."라며 자신감 있는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지금도 일본에 한국 막걸리와 소주를 판매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제 꿈은 한국의 전통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열정과 비전은 단순한 주류 생산을 넘어 한국 전통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는 전통주가 가진 매력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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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사임당양조장은 권오길 명인의 열정과 노력이 깃든 곳이다. 권 명인은 5년간의 주류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막걸리 제조에 뛰어들었으며, 강릉 출신으로서 고향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여정은 안흥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에 설립된 안흥양조장에서 김성영 선생으로부터 1년간 막걸리 제조법을 전수받았고, 이후 2대 대표인 윤한중 선생으로부터 2년간 추가로 배움을 이어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막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그는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와 사임당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권오길 명인은 강릉 지역의 전통 축제인 단오제에서 단오신주를 제조할 때, 강릉 시민들이 모아 준 쌀을 사용한다. 강릉소주를 만들 때는 풍미를 더욱 좋게 하기 위해 생쌀(강릉황금물쌀)을 이용한다. 그러나 생쌀은 발효가 매우 어려운 재료이므로, 저온 숙성 발효 기간을 10~15일로 설정하고 발효 온도를 섭씨 25~26도로 유지하며 정성을 다해 빚고 있다. 사임당양조장은 이렇게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독특한 제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전통 누룩 대신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여 발효를 진행하는데, 이는 잡균으로 인한 유통 문제를 줄이고 쾌적한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전통 누룩은 고유의 맛과 향을 제공하지만, 잡균으로 인해 술맛이 변하거나 유통 기간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면 품질이 안정적이며 유통 기간도 늘어나는 장점이 있다. 권 명인은 이러한 제조 방식을 통해 월 평균 20만 병 이상의 사임당 강릉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인의 입맛과 유통 환경에 맞는 술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급 재료와 최신 설비를 활용하여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사임당 강릉 소주도 생산하고 있으며, 다양한 곡류를 사용하여 풍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현재 권 명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조장의 운영과 제조법, 유통 등을 배우며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권 명인은 "아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더 발전된 양조장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올해에는 옥수수와 감자를 사용한 약주를 생산하기 위해 설비 시스템을 갖추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맛과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권오길 대표는 지금까지 사임당 막걸리가 자리를 잡기까지 약 1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전통 누룩도 사용해서 만들어봤지만 유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게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맛과 유통기간을 모두 잡은 사임당 막걸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권오길 명인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창의적인 접근으로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도 지역의 자부심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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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 위치한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막걸리로 지역의 주류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 양조장의 이름인 '소두방'은 '솥뚜껑'의 방언으로, 정관읍의 중심인 덕산에서 매남산을 바라보면 솥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김준영 대표는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담아내고 싶어 이 이름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김준영 대표는 약 10년간 통신업에 종사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지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만들어주시던 막걸리를 사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이어받아 진정한 전통주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소두방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현재 소두방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는 '소두방막걸리'와 '퍼플스파클링'이라는 자색고구마 막걸리 두 종류이다. 각각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살려 만들어지며,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는 자색고구마를 50% 사용하고 찹쌀과 누룩을 함께 사용하여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도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자색고구마를 직접 재배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다른 농가와의 협업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막걸리는 탄산이 강하고 색이 아름다워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김 대표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판로 확보이다. 초기에는 마케팅과 홍보가 부족했지만,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으며, 2024년 7월에 첫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그는 향후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길 원하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전통누룩과 개량누룩의 차이도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누룩은 자연 발효로 다양한 미생물이 함께 작용하여 풍미가 깊고 복합적이지만, 개량누룩은 인공 배양된 미생물만 사용하여 일관된 맛을 낸다. 김 대표는 막걸리 종류에 따라 적절히 두 가지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준영 대표는 올해 통신판매에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를 리조트의 PB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예정이며,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그는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소두방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찹쌀과 남평쌀을 50%씩 사용하여 부드럽고 깊은 맛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특히 어머니께서 직접 양조장을 찾아와 쌀을 찌고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을 도와주시는 점이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그대로 담긴 막걸리라고 자부하며, 그 특별한 맛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김준영 대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가족의 사랑과 정성을 담아내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의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부산 정관읍의 역사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담긴 특별한 이야기다. 앞으로 그의 막걸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이처럼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부산의 주류 문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김준영 대표의 열정과 가족의 사랑이 담긴 막걸리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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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여행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는 이를 실현하며 공정여행과 지속 가능한 관광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변 대표는 대안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행을 통한 교육의 시작: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 서울 상수동 카페거리에서 변형석 대표를 만났다. 그는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를 통해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는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왔다. 변 대표는 하자센터에서 7년간 청소년들과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 트래블러스맵을 설립했다. 그의 교육 방식은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방식을 실현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변 대표는 말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며 깨닫게 됩니다. 교과서 속 이론에서 벗어나 세상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몇 배 더 큰 가르침을 줍니다." 공정여행의 철학과 성공 트래블러스맵은 2010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후, 다양한 사회적 기여로 주목받았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고 친환경적 이동 수단을 활용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여행자가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첫해 매출 9억 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연 매출 6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행 상품은 전 세계 31개국에 걸쳐 있으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대표적인 공정여행 상품과 도전 변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의 대표 상품으로 ‘땍때구르르 겨울캠프’(강원도 곰배령)와 캄보디아 반띠아이치마 1박 2일 프로그램을 꼽았다. 이들 상품은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를 중시하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남미 27일 탐방과 북유럽 4개국 여행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환경과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소그룹 여행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빠르게 달리는 여행을 지양합니다. 대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그 지역의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의 철학을 설명하며 깊이 있는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드스꼴라: 여행을 통한 대안교육 트래블러스맵의 부설 여행학교인 로드스꼴라는 15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3년제 대안학교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다. 변 대표는 “로드스꼴라는 교과서 밖에서 세상을 배우는 공간”이라며, "여행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목표를 이루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로드스꼴라는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해왔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진안에서 마을 주민들과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하거나, 백제의 역사를 탐구하며 일본 교토와 오사카를 답사하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 코로나19 팬데믹은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로드스꼴라는 10기 졸업생 배출 후 문을 닫았고, 트래블러스맵은 직원 수를 2명으로 줄여야 했다. 하지만 변 대표는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는 "여행업계는 결국 회복될 것"이라고 믿으며, 특히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돈보다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실버 세대가 늘고 있다"며, 은퇴한 이들에게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남미 여행 프로그램은 완판되었으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여행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공정여행의 미래와 사회적 기여 변형석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을 통해 공정여행의 가치를 계속 확산시키고자 한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현지 회사를 설립해 지역 주민들이 관광 사업을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변 대표는 "여행자는 환경과 지역사회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장기적인 변화를 목표로 윤리적 여행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을 얻고, 타인과 교류하며 성장한다는 변 대표의 철학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위기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공정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움과 교감을 선사하는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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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이승재 대표를 만났다. 밝은 미소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한 이 대표는 지난 수년간 암 유전자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박사들과 협력해왔다. 그는 항노화와 암 예방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승재 대표는 인터뷰에서 회사의 비전과 미래 계획, 그리고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전국으로 확장 중인 제노시스DNA클리닉의 항노화 프로그램과 암 예방 연구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승재 대표는 이러한 혁신적인 연구의 중심에 서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비전과 성과 이승재 대표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주요 목표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항노화 신약 개발입니다.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유니스트의 박종화 교수, 김유미 박사, 서울대 김정용 박사, 임규성 원장 등이 참여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항노화 건강기능식품을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 제품은 현재 임상 중이며, 그 성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라고 밝혔다. 전국 확장과 글로벌 도입 제노시스DNA클리닉은 부산, 서울 압구정, 역삼, 동서울, 병점 등 주요 도시에 이미 오픈했거나 오픈 예정이며, 항노화 프로그램은 두바이와 베트남에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두바이 국립병원과 협력하여 현지에서도 우리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두바이는 사막 지역 특성상 50대 사망률이 높아 우리의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베트남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많은 의사들이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항암 연구와 치료의 새로운 접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 중이다. 이승재 대표는 “우리의 프로토콜은 암 발생 전이나 초기 암 환자들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대학병원에서 포기한 말기 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환자들이 회복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암은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방, 치료, 관리를 통해 암을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건강 비결과 항노화 프로그램의 효과 이승재 대표는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항노화 프로그램을 통해 피가 맑아지고 염증이 사라졌습니다. 면역력이 강화되면서 피부와 머리카락이 재생되고 질환도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에게 ‘회춘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규칙적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운동도 속병이 없고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죠.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 프로토콜을 통해 지금은 40대보다 더 젊고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승재 대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행지로 이탈리아 밀라노와 하와이를 추천했다. 그는 “밀라노는 역사적인 건물과 오래된 명품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큽니다. 수대를 이어온 가업과 전통을 통해 세계적인 명품으로 성장한 회사들이 밀라노에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수세기를 이어오는 전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하와이에 대해서는 “날씨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힐링에 최고 장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재 대표와의 인터뷰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혁신적인 연구와 그의 개인적인 건강 비결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연구와 개발에 열정을 쏟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승재 대표와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와 암 예방 연구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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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6월 5일 여행사 트래블빌더의 이우석(우석몬) 대표와 역삼역 커피빈에서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반바지와 끈 없는 런닝을 입고 헬멧을 든 채 나타난 그는 팔과 다리, 어깨에 멋진 타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이크를 타는군요?"라고 묻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이크와 여행의 시작 '저도 대학 졸업 후 사고가 나기 전까지 잠깐 바이크를 탔었어요.' 대학 시절 잠깐 바이크를 탔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이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이크를 타는 자유로운 그의 모습이 MZ세대의 대표적인 모습 같았다. 인터뷰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시작되었다. 그의 본명은 이우석, '우석몬'이라는 별명은 중학교 때 몬스터를 닮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 별명이 좋아서 지금까지 애칭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첫 여행의 기억 우석몬이 처음 여행을 떠난 것은 9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 중국 여행이었다. "만리장성의 일부만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그는 어린 시절 여행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경험이 여행에 대한 첫 번째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최초의 해외여행은 2015년, 삽자루 선생님께서 공짜로 보내준 유럽 여행이었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꿔놨어요. 14일 동안 유럽 6개국을 다녀왔는데 전부 기억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고, 문화 충격도 받았어요." 그는 그 여행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왜 사람들이 그렇게 큰 돈을 들여 여행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여행 전에는 300만원이면 옷이 몇 벌이고 밥이 몇 끼고,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행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어요." 네덜란드 유학과 목표의 변화 그 후 그는 3수 끝에 9등급에서 3등급, 다시 2등급으로 그리고 마침내 1등급을 달성하고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 "네덜란드가 5년 후 이민 자격을 주기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어요. 대학 3년을 마치고 2년만 버티면 이민이 가능하니까요." 그러나 그의 목표는 1년이 지나지 않아 바뀌게 되었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향수병이 생기고 한국인이 적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도 생기고 정서적으로 불편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이민을 포기하자 그는 네덜란드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수학 강사를 목표로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입학했어요. 거기서 수학을 전공했고, 대학 내내 방학 때는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아르바이트 강의를 했어요." 이우석 대표는 방학 동안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며 하루에 5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세계 일주와 여행사 설립 대학 졸업 후, 그는 세계 일주를 결심했다. "계약서를 쓰려는데 고민이 되더라구요. 내 꿈이 세계 일주인데 강사를 하면 10년 동안 여행을 못할 텐데 그러면 40이 넘게 되고 체력이 지금 같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는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2월부터 시작된 그의 세계 일주는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태국, 두바이, 터키,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 미국, 캐나다, 남미 등 총 58개국을 10개월 동안 여행했다. 귀국 후 그는 강사가 될 계획이었으나, 여행사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4년 2월, 트래블빌더라는 이름의 자유여행사를 설립했어요. 모든 상품이 완판됐고, 여행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여행을 통한 교육과 선한 영향력 이우석 대표는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한다. 그는 여행이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믿는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여행을 통한 깨달음을 전파하고 싶어요. 여행은 살아있는 교육이니까요."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거의 놀다시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9등급이었어요. 하지만 여행에 눈뜬 후 목표가 생겼어요. 이제는 저도 선생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이 대표는 여행을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자신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행의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제가 경험한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자신감과 계획 우석몬의 자신감은 치밀한 계획과 빠른 실행력에서 나왔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바로 실천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행동이 빠른 편이고,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 빠르게 이루죠. 지금까지 제가 조언한 지인들은 대부분 성공했어요." 그는 앞으로 1년 후 강사로서 돈을 벌고, 여행사의 규모도 키울 계획이다. "시기는 2025년이 되겠죠. 강남의 잘 나가는 수학 강사들은 거의 기업 수준이에요. 수백억을 벌어요. 저도 그런 강사가 되고 싶어요." 우석몬 대표와의 2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유롭고 도전적인 삶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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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서울시 풍납2동에 위치한 풍납새마을금고는 변현숙 이사장의 리더십 아래 고객과 직원을 위한 새로운 힐링공간을 마련해 주목받고 있다. 이 공간은 고객과 직원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무료나눔공간으로 회의실과 문화센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변현숙 이사장을 직접 만나,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된 동기와 운영에 대해 들어보았다. "풍납새마을금고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변현숙 이사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고객라운지를 비롯해 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까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는 단순히 금융 업무를 보러 온 고객들뿐만 아니라 풍납동 지역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나눔공간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변 이사장은 고객라운지에 걸린 다양한 작품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현재는 최석운 작가의 유쾌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방문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최 작가의 작품 전시 후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직원들을 위한 공간도 신경을 많이 썼다. 3층에 위치한 직원라운지와 문화센터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강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업무 외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변현숙 이사장은 이번 공간 조성을 통해 고객과 직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풍요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현숙 이사장은 문화센터 뿐 아니라 4층 회의실도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 놓았다. 이러한 공간 조성을 통해 풍납새마을금고가 단순한 금융 기관을 넘어 지역 사회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객과 직원, 그리고 지역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그녀의 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아 힐링과 문화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 이용시간 : 오전 9시~오후 4시 *회의실 이용문의(무료): 풍납새마을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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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수와 노화의 비밀, 박상철 교수에게 듣다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대표 이승재)는 3월 18일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 병원에서 노화와 장수연구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박상철 교수로부터 최근의 연구 성과와 메트포민에 대해 들어 보았다. 교수님, 노화와 장수 연구로 암 예방 프로토콜을 개발 중이신가요? 최근의 연구 성과와 메트포민에 대해 알려주세요. 박상철 교수: 네, 저는 노화와 장수를 연구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요인을 찾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최근에는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과 국민건강 자료를 활용하여 개인 맞춤형 건강식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암 예방을 위한 프로토콜 개발과 제노시스 암 예측 클리닉과의 협력을 통해 국민의 건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메트포민에 대해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 건가요? 박상철 교수: 메트포민은 알려진 비용 효율적인 약물로 알려져 있지만, 연구는 여전히 제한적인 상태입니다. 특허 확보가 어려워 대기업이나 제약회사들이 투자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메트포민과 같은 저렴하고 효과적인 약물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특허가 보장되지 않는 약물에 대한 연구 환경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박상철 교수님은 암 예방 프로토콜 개발을 위해 제노시스 암예측 클리닉과 협력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알려주세요. 박상철 교수: 맞습니다. 저는 김정용 원장님과 제노시스 암예측 클리닉과의 협력을 통해 암 예방 프로토콜을 개발 중입니다. 이는 암 예방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 협력을 통해 환자들의 건강한 노년과 암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교수님의 연구와 노력은 어떻게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기여하고 있을까요? 박상철 교수: 제 연구는 노화와 장수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는 장수한 분들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발견된 건강 유지의 비결을 일반 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진행 중인 메트포민 연구는 이 약물의 잠재력을 탐색하여, 기존의 치료 방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노화 관련 질병의 예방 및 관리를 위한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제공하며,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을 연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진행하는 개인 맞춤형 건강식품 개발 프로젝트는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여 최적의 건강식품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건강 관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건강 관리 방식에 혁신을 가져오며, 많은 사람들이 보다 쉽게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의 김정용 원장님과 암예방프로토콜을 위해 어떤 협업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상철 교수: 제노시스 암 예측 클리닉과의 협력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협력을 통해 개발된 암 예방 프로토콜은 암 발병의 위험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암으로 인한 사망률 감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질병의 예방과 건강한 생활 습관의 증진에 중점을 두고 있어, 한국 사회의 건강한 노년을 위한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연구와 노력은 한국 사회의 건강 수명 연장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건강한 노년을 위한 새로운 방법과 접근을 모색하며 한국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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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종화 교수와의 대화, 암 진단의 새로운 지평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게놈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종화 교수는 최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와 협업으로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한 암 진단 방법의 혁신적 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조직 생검에 비해 부담이 적고, 암의 정확한 진단 및 치료 과정 모니터링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특히, 이 기술은 암의 조기 발견을 가능하게 하여 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으며, 환자의 삶의 질 유지에도 기여할 것이 예상된다. 박종화 교수는 현재 연구 단계에 있으며,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한 정확도와 안정성의 입증, 의료계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상철 교수와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 김정용 원장 그리고 박종화 교수와 연구팀은 암 진단과 치료의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음은 박종화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교수님,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암 진단과 관련된 혁신적인 연구에 대한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우선, 교수님께서는 이 분야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박종화 교수: 네, 저의 연구는 모두 과학자들과 현대 생물학의 기초가 되는 과학적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암 진단과 관련하여, 우리는 환자가 암에 걸렸는지, 걸렸다면 어떤 단계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합니다. 이는 치료의 효과를 측정하고, 필요한 경우 치료 방법을 조정하는 데 중요합니다. 이 연구에 있어서 에피제네틱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에피제네틱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박종화 교수: 물론입니다. 에피제네틱스는 DNA의 변화 없이 유전자의 활성화 상태를 조절하는 연구 분야입니다. 쌍둥이 쥐의 연구를 예로 들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외형이나 건강 상태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는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의 표현을 조절하는 메틸기 같은 요소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구가 암 진단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종화 교수: 우리의 연구는 혈액 속의 종양 DNA를 분석하여 암을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암 세포는 특정한 메틸화 패턴을 가지고 있어, 이를 통해 암의 존재 여부와 종류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개발된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해, 혈액만으로도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액체 생검 기술은 어떤 기술인가요? 박종화 교수: 이 기술은 혈액 샘플을 통해 종양 DNA의 메틸화 패턴을 분석합니다. 과거에는 특정 메틸화 패턴을 검출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지만, 최신 기술을 통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비침습적 방법으로 암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 방식이 암 치료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나요? 박종화 교수: 이러한 기술의 진보는 암 치료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암 진단 방법은 대부분 조직 생검에 의존해 왔습니다. 이는 환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조직 샘플링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액체 생검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욱 정확하고 신속하게 암을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술은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암의 발전 상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교수님의 연구가 앞으로 암 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박종화 교수: 제노시스바이오연구소의 박상철 교수님과 제노시스 암예측클리닉의 김정용 원장님 그리고 저희 연구팀은 암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치료 과정을 개선하여 환자의 생존율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단 기술의 발전은 암의 조기 발견을 가능하게 하며, 조기 발견은 암의 치료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비침습적인 진단 방법은 환자의 부담을 줄이고,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연구가 실제 임상에 적용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박종화 교수: 현재는 이 기술이 연구 단계에 있으며,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검증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해 이 기술의 정확도와 안정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실제 임상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의료계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와 저희 팀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암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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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사람과 술, 그리고 고향...모월양조장 김원호 대표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한 사람의 소망이 담긴 공간이자,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켜가는 터전이다. 대기업 엔지니어에서 사업가로, 그리고 전통주 양조인으로 삶을 전환한 김원호 대표의 철학은 ‘우리 땅의 재료와 정직한 손길로 술을 빚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상 수상으로 인정받은 그의 술은 이제 원주의 이름을 새롭게 알리고 있다. ◈친구와의 약속에서 시작된 귀향의 꿈 “우리 나중에 늙으면 다 같이 원주로 돌아와 모여 살자.” 김원호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나눈 농담 같은 약속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20년 넘게 대기업 기계·전자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서울에서 성공적인 사업가로 자리매김했지만, 결국 그는 고향 원주로 향했다. “고향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늘 관심 있던 우리술을 현실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업과 양조장을 병행하면서 처음에는 사업에 쏟는 비중이 8이었다. 그러나 점차 양조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지면서 지금은 양조장 9, 서울 1의 삶이 되었다. “서울의 일은 이미 직원들이 알아서 굴러갈 정도로 안정돼 있어요. 이제 제 중심은 원주 모월양조장에 있습니다.”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협동조합 같은 양조장 2010년, 김 대표는 원주에 양조장을 열었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다. 인지도가 부족해 술을 빚어도 팔리지 않았고, 2020년까지만 해도 접을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그 상은 제 개인의 성취라기보다 고향 사람들과 함께해 온 노력의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술을 빚는 길은 언제나 순탄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양조장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였습니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해 금전적으로도 큰 손해를 입었죠. 물질적인 어려움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지지해 준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끝까지 믿어주고 함께해 준 고향 친구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의 모월양조장이 있습니다.” ◈원주의 쌀, 그리고 집요한 연구 양조장의 자부심은 원주에서 직접 재배한 토토미 쌀이다. 김 대표는 자신이 직접 소량의 쌀농사를 지어 보태기도 한다. “우리 땅의 재료로 술을 빚는다는 게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그는 기술자 출신답게 효모 연구에도 몰두한다. 다양한 효모를 증식시켜 가장 적합한 균주를 찾아내고, 증류 과정에서는 초류와 후류 각각 2~3%를 제거해 숙취를 줄인다. 또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옹기에 술을 담아 6개월 이상 숙성해 곡물 본연의 맛을 살린다. “좋은 술은 기술과 정성이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술의 이름에 담긴 의미 모월양조장은 ‘모월 연’, ‘모월 미’, ‘모월 로’, ‘모월 인’ 등 네 가지 술을 내놓고 있다. 모월 연은 원주 쌀 100%로 빚어 산미가 입맛을 돋우고, 모월 미는 군고구마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모월 로(25%)는 부드럽고 깔끔한 목넘김을 자랑하며, 모월 인(41%)은 쌀로만 만든 증류주의 정석으로 깊은 감칠맛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모월(某月)’은 달처럼 시간이 흐르며 술이 익어간다는 뜻입니다. 술은 기다림과 인내의 산물이죠.”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철학은 단순하다. “우리 땅, 우리 사람들과 함께 술을 빚는다.” 그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원주만의 색깔을 담고, 공동체 운영을 통해 상생의 가치를 실현한다. 나아가 꾸준한 연구로 한국 전통주가 해외에서도 인정받기를 꿈꾼다. “고향 원주에서 시작했지만, 목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의 전통주가 세계에서도 사랑받는 날까지 도전하겠습니다.” 모월양조장은 단순한 술 공방이 아니라, 사람과 땅,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공동체의 양조장이다. 때론 배신과 손해라는 아픔도 있었지만, 끝내 이를 이겨낸 것은 믿음으로 함께해 준 친구들이었다. 김원호 대표의 술 한 잔에는 고향의 온기, 우정의 힘, 그리고 장인의 집념이 담겨 있다. 모월의 술을 마시는 일은 단순한 음주가 아니라, 원주의 이야기와 한국 전통주의 미래를 함께 나누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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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사람과 술, 그리고 고향...모월양조장 김원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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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우보주책...“소걸음의 지혜로 담아낸 우리 술 한 모금”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우보주책이라는 다소 철학적인 이름의 양조장을 운영하는 김희철 대표를 만나기 위해 5일장이 한창인 용문역 앞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커다란 회의용 탁자와 의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안쪽으로는 주방과 장식장에 가지런히 진열된 술들이 차분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양평의 숲과 들녘 사이, ‘소걸음으로 천천히 전통주의 비책을 찾겠다’는 뜻을 담은 이름의 술 공방 우보주책(牛步酒策). 그 중심엔 김희철 대표가 있다. 그는 50년 음주, 10년 향음, 4년 양조 경력을 자랑하지만, 그보다 더욱 빛나는 건 그의 나눔과 사람을 향한 진심이다. 은행 부행장까지 지냈던 그가 퇴직 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경제 상담, ‘부자강의’라는 이름의 강의를 이어가며 삶의 지혜를 나누는 모습은 술 빚기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은행원에서 양조인으로 “저는 음주 50년, 향음 10년, 양조 4년 경력의 술 전문가입니다.” 김 대표의 첫 인사말은 농담 같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함축한다. 금융권에서 수십 년간 사람들의 돈과 고민을 함께 나누었던 그는 퇴직 후에도 대학생과 서민을 위한 상담을 이어갔다. 이제는 술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양조장을 사람과 사람이 만나 교류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밀로 빚은 ‘진짜 술’ 국내 밀 자급률이 1%에도 못 미치는 현실. 그는 양평에서 열린 밀 축제에서 수입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가 등장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 끝에 우리밀로 술을 빚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양평 밀 막걸리와 소주다. 금강, 백강, 토종 앉은뱅이 등 다양한 품종에 양평 쌀 ‘참드림’을 더해 맛을 완성했다. 김 대표는 “밀로 빚은 술은 쌀과 달리 고소하고 담백하다”며 우리밀 술이 가진 차별성을 강조했다. ◈53도 밀소주의 탄생 우보주책의 또 다른 대표작은 양평밀소주다. 증류 과정에서 도수를 조절하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던 53도에 맞췄다. 의외로 도수의 무게감보다 맑고 부드러운 향이 먼저 다가온다. 그는 “실온에서 마시면 향이 더욱 풍부하고, 온더락이나 하이볼로 즐겨도 좋다”고 소개했다. 현재 ‘양평밀소주’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며 지역 대표 기념품으로도 자리 잡았다. ◈양조장의 현실과 철학 하지만 김 대표는 양조장의 현실을 냉정히 짚는다. “요즘 청년들이 양조장 사업에 뛰어들지만 대부분 1년을 못 버티고 나갑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연 3000만 원의 수익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그는 “양조는 마음을 비우고, 소걸음처럼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나만의 술을 찾고, 시설 확장보다 작지만 알차게 운영하며 단골을 늘리는 게 길이다”라고 조언한다. “술은 결국 사람이 찾는 것이고, 그 관계가 양조장의 힘이 된다”는 말은 우보주책의 운영 철학을 대변한다. ◈예술과 술, 또 하나의 교감 김희철 대표는 술만 빚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섹소폰 연주자이자, 얼마 전까지 악단의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음악인으로서의 감수성은 술의 풍미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양평에서 활동하는 시인, 화가, 음악가 등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과 자신이 만든 술을 교환하기도 한다. 술과 예술이 만나는 교류의 장은 우보주책만의 독특한 문화적 향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좋은 술은 좋은 음악처럼 오래 기억된다”며, 술과 예술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개체라고 말한다. 우보주책에서의 한 잔은 단순한 술맛을 넘어 예술과 교감하는 경험이 된다. ◈청년과 함께하는 술자리 우보주책은 열린 사랑방이기도 하다. 청년들이 안주를 들고 오면 2만 원만 내고 무제한으로 술을 즐기도록 개방한다. 그는 이를 “내가 감사한 자리”라고 표현한다. 젊은 세대와 함께 술을 나누며 세대 간 거리를 좁히고, 술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보주책은 단순한 양조장이 아니다. 금융인의 경험, 멘토로서의 따뜻한 마음,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이 술잔 속에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김희철 대표가 빚은 술은 ‘맛’만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양평의 들녘에서 태어난 막걸리 한 사발, 53도 소주 한 잔, 그리고 섹소폰 선율 같은 그의 미소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술은 나눔이고, 사귐이며, 결국 예술이다.” 소걸음처럼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가는 그의 길 위에서, 우보주책은 한국 전통주의 또 다른 미래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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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우보주책...“소걸음의 지혜로 담아낸 우리 술 한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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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시철 박사 “AI로 생애 건강 리스크 예측하는 시대 열린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제노시스 AI헬스케어(주) 부회장으로 7월 1일 공식 취임한 강시철 박사는 “AI의 힘으로 수명, 사망 원인, 때를 미리 알고 예방과 치료까지 가능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의료기술을 넘어 인류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그의 메시지는 강렬했다. 제노시스가 개발 중인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은 이제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로 다가서고 있다. ◆“앞으로는 건강의 흐름과 생애 리스크까지 예측 가능하다” “앞으로는 자신의 건강 상태는 물론, 생애 전반의 리스크까지 미리 알 수 있는 시대가 열립니다.” 강 박사는 “그동안 우리는 질병이 발현된 후에야 치료를 시작하는 방식에 익숙했지만, 앞으로는 개인의 유전체와 생체 데이터, 생활습관, 환경 요인 등을 AI가 통합 분석해 미래 건강 흐름과 위험 요인을 사전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컨대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 언제쯤 건강상 이상이 나타날지 등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치료뿐 아니라 예방 중심의 의료로 전환이 가능해진다”며 AI 기반 예측 의료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제노시스의 핵심,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개발 중인 핵심 기술은 ‘3세대 휴먼 디지털 트윈(HDT)’이다. 이 기술은 단순한 디지털 건강 기록이 아닌, 사람의 실제 생체 리듬과 유전 정보를 해석하고 반영해 ‘가상의 나’를 실시간으로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강 박사는 이를 ‘인체 해독기’라 부른다. “우리는 인체가 보내는 신호의 90% 이상을 해석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 아니라, 병이 생기기 전에 잡아내는 기술입니다.” 그는 이 기술이 실제 임상에 적용되면, 지금까지 일부 VIP만이 누리던 맞춤형 정밀의료가 누구에게나 제공될 수 있는 ‘보편적 고품질 의료 서비스’로 전환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AI 의료, 5차 산업혁명의 중심축이 되다 강 박사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가 단순한 산업 영역을 넘어, “5차 산업혁명”의 완성 지점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우리는 이제 인체를 디지털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미생물, 생활습관, 환경 등 복합 데이터를 분석해 건강을 예측하고, 치료 방향을 설계하는 일이 인간이 아닌 AI에 의해 가능해지는 시대입니다.” 그는 이어 “인체 번역과 해독이 실현되면, 그것이 바로 5차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이 기술 흐름의 선두에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서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의료 AI 분야에서 세계 일등을 차지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제노시스의 AI 의료진이 이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제가 부회장으로서 그 흐름을 총괄하고 이끌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AI 집단지성이 인류의 삶을 바꾼다” 강 박사는 인터뷰 말미, AI 기술에 대한 신념을 다시금 강조했다. “AI는 더 이상 계산기 수준의 도구가 아닙니다. 인간보다 더 빠르게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치료 방안을 설계하는 새로운 지성입니다. 이 AI 집단지성은 이제 인류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노시스의 기술은 개인을 넘어서 공공의료까지 확장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보편적 의료복지의 실현 또한 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영학 박사인 강시철 부회장은, 20년 이상 기술인문학과 AI 융합 연구를 이어온 인물이다. 저서로는 《AI의료의 미래》,《디스럽션》, 《인공지능과 슈퍼비즈니스》, 《핸디캡 마케팅》 등이 있으며, AI 인문학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상장사 휴센텍 대표이사와 고려대 문과대 교우회장을 역임했다. 강시철 박사의 짧지만 강렬했던 인터뷰는, AI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생명과 죽음을 관리하는 미래 의료의 주체가 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제노시스 AI헬스케어가 만들어가는 길 위에는, 지금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생명 연장의 기술과,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의료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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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시철 박사 “AI로 생애 건강 리스크 예측하는 시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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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시흥에 위치한 대한주조의 김미영 대표는 전통주에 대한 깊은 열정과 함께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어왔다. 2009년에 대한주조를 설립한 그는 일본에서의 유학생활과 사업 확장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주를 세계에 알리는 꿈을 키우고 있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생 역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김 대표가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한국식품 도매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술이 가장 큰 이윤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류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 그는 경제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특히 한국식품을 일본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주류의 매력을 더욱 느꼈다고 전했다. 일본 유학 중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자,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작은 회사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일하며 영업과 납품을 통해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보람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한국식품 도매업체를 창업하며 일본에서의 경험을 활용했다. 대한주조는 2009년 설립되었으며, 최근에는 월 7만 병의 막걸리를 생산하는 양조장으로 성장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영업과 홍보를 했고, 주류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었죠."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일본에 가지 못하게 되자, 그는 다시 주류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있는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공부한 경험도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대한주조는 과일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으며, 딸기와 바나나 등을 활용하여 맛과 향을 모두 잡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연막걸리는 탄산이 적고 첫맛이 묵직한 편이지만 목넘길 때는 신맛이 약간 나면서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음자들은 연막걸리에 대해 "부드러운 식감과 적당한 신맛이 조화를 이루어 음용하기 좋다"고 평가하며, 전통주로서의 매력을 느낀다고 전했다. "앞으로 연예인과 협업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싶어요. 연예인 시그니처 막걸리를 기획 중입니다."라며 자신감 있는 포부를 밝혔다. 김 대표는 지금도 일본에 한국 막걸리와 소주를 판매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 전통주를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제 꿈은 한국의 전통주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열정과 비전은 단순한 주류 생산을 넘어 한국 전통주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는 전통주가 가진 매력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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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시흥 연막걸리...전통주, 그 매력에 빠진 김미영 대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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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사임당양조장은 권오길 명인의 열정과 노력이 깃든 곳이다. 권 명인은 5년간의 주류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막걸리 제조에 뛰어들었으며, 강릉 출신으로서 고향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여정은 안흥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에 설립된 안흥양조장에서 김성영 선생으로부터 1년간 막걸리 제조법을 전수받았고, 이후 2대 대표인 윤한중 선생으로부터 2년간 추가로 배움을 이어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막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그는 고향인 강릉으로 돌아와 사임당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권오길 명인은 강릉 지역의 전통 축제인 단오제에서 단오신주를 제조할 때, 강릉 시민들이 모아 준 쌀을 사용한다. 강릉소주를 만들 때는 풍미를 더욱 좋게 하기 위해 생쌀(강릉황금물쌀)을 이용한다. 그러나 생쌀은 발효가 매우 어려운 재료이므로, 저온 숙성 발효 기간을 10~15일로 설정하고 발효 온도를 섭씨 25~26도로 유지하며 정성을 다해 빚고 있다. 사임당양조장은 이렇게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는 독특한 제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전통 누룩 대신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여 발효를 진행하는데, 이는 잡균으로 인한 유통 문제를 줄이고 쾌적한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전통 누룩은 고유의 맛과 향을 제공하지만, 잡균으로 인해 술맛이 변하거나 유통 기간이 짧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효모와 입국을 사용하면 품질이 안정적이며 유통 기간도 늘어나는 장점이 있다. 권 명인은 이러한 제조 방식을 통해 월 평균 20만 병 이상의 사임당 강릉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인의 입맛과 유통 환경에 맞는 술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한, 고급 재료와 최신 설비를 활용하여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사임당 강릉 소주도 생산하고 있으며, 다양한 곡류를 사용하여 풍미를 극대화하고 있다. 현재 권 명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조장의 운영과 제조법, 유통 등을 배우며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권 명인은 "아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더 발전된 양조장을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올해에는 옥수수와 감자를 사용한 약주를 생산하기 위해 설비 시스템을 갖추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맛과 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특히 권오길 대표는 지금까지 사임당 막걸리가 자리를 잡기까지 약 1년 동안 실패를 거듭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전통 누룩도 사용해서 만들어봤지만 유통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게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맛과 유통기간을 모두 잡은 사임당 막걸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권오길 명인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창의적인 접근으로 강릉의 전통주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사임당양조장은 앞으로도 지역의 자부심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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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 여행] 권오길 명인...전통을 넘어 현대를 담다, 강릉 사임당 막걸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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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 위치한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막걸리로 지역의 주류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 양조장의 이름인 '소두방'은 '솥뚜껑'의 방언으로, 정관읍의 중심인 덕산에서 매남산을 바라보면 솥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김준영 대표는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담아내고 싶어 이 이름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김준영 대표는 약 10년간 통신업에 종사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지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만들어주시던 막걸리를 사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이어받아 진정한 전통주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소두방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현재 소두방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막걸리는 '소두방막걸리'와 '퍼플스파클링'이라는 자색고구마 막걸리 두 종류이다. 각각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살려 만들어지며,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는 자색고구마를 50% 사용하고 찹쌀과 누룩을 함께 사용하여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도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자색고구마를 직접 재배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다른 농가와의 협업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막걸리는 탄산이 강하고 색이 아름다워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김 대표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는 것은 판로 확보이다. 초기에는 마케팅과 홍보가 부족했지만,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으며, 2024년 7월에 첫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그는 향후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길 원하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전통누룩과 개량누룩의 차이도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누룩은 자연 발효로 다양한 미생물이 함께 작용하여 풍미가 깊고 복합적이지만, 개량누룩은 인공 배양된 미생물만 사용하여 일관된 맛을 낸다. 김 대표는 막걸리 종류에 따라 적절히 두 가지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준영 대표는 올해 통신판매에 집중할 계획임을 밝혔다. 특히 자색고구마 막걸리를 리조트의 PB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예정이며,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그는 전통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소두방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찹쌀과 남평쌀을 50%씩 사용하여 부드럽고 깊은 맛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특히 어머니께서 직접 양조장을 찾아와 쌀을 찌고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을 도와주시는 점이 큰 힘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그대로 담긴 막걸리라고 자부하며, 그 특별한 맛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김준영 대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가족의 사랑과 정성을 담아내고 있다. 소두방양조장의 막걸리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부산 정관읍의 역사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담긴 특별한 이야기다. 앞으로 그의 막걸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이처럼 소두방양조장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부산의 주류 문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김준영 대표의 열정과 가족의 사랑이 담긴 막걸리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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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의 전통을 담은 막걸리, 김준영 대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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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여행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는 이를 실현하며 공정여행과 지속 가능한 관광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다. 변 대표는 대안교육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행을 통한 교육의 시작: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 서울 상수동 카페거리에서 변형석 대표를 만났다. 그는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를 통해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는 공정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왔다. 변 대표는 하자센터에서 7년간 청소년들과 함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 트래블러스맵을 설립했다. 그의 교육 방식은 협동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여행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방식을 실현했다. “여행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변 대표는 말한다.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며 깨닫게 됩니다. 교과서 속 이론에서 벗어나 세상을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몇 배 더 큰 가르침을 줍니다." 공정여행의 철학과 성공 트래블러스맵은 2010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후, 다양한 사회적 기여로 주목받았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고 친환경적 이동 수단을 활용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서, 여행자가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첫해 매출 9억 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연 매출 60억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여행 상품은 전 세계 31개국에 걸쳐 있으며,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대표적인 공정여행 상품과 도전 변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의 대표 상품으로 ‘땍때구르르 겨울캠프’(강원도 곰배령)와 캄보디아 반띠아이치마 1박 2일 프로그램을 꼽았다. 이들 상품은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를 중시하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남미 27일 탐방과 북유럽 4개국 여행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환경과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소그룹 여행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빠르게 달리는 여행을 지양합니다. 대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그 지역의 문화를 깊이 체험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변 대표는 공정여행의 철학을 설명하며 깊이 있는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드스꼴라: 여행을 통한 대안교육 트래블러스맵의 부설 여행학교인 로드스꼴라는 15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3년제 대안학교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직접 여행을 기획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다. 변 대표는 “로드스꼴라는 교과서 밖에서 세상을 배우는 공간”이라며, "여행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목표를 이루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로드스꼴라는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해왔다. 예를 들어, 전라북도 진안에서 마을 주민들과 도보여행 코스를 개발하거나, 백제의 역사를 탐구하며 일본 교토와 오사카를 답사하는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 코로나19 팬데믹은 트래블러스맵과 로드스꼴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로드스꼴라는 10기 졸업생 배출 후 문을 닫았고, 트래블러스맵은 직원 수를 2명으로 줄여야 했다. 하지만 변 대표는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그는 "여행업계는 결국 회복될 것"이라고 믿으며, 특히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돈보다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실버 세대가 늘고 있다"며, 은퇴한 이들에게 특별한 여행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남미 여행 프로그램은 완판되었으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여행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공정여행의 미래와 사회적 기여 변형석 대표는 트래블러스맵을 통해 공정여행의 가치를 계속 확산시키고자 한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현지 회사를 설립해 지역 주민들이 관광 사업을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변 대표는 "여행자는 환경과 지역사회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래블러스맵은 장기적인 변화를 목표로 윤리적 여행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을 얻고, 타인과 교류하며 성장한다는 변 대표의 철학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위기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공정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움과 교감을 선사하는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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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형석 트래블러스맵 대표, 공정여행으로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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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이승재 대표를 만났다. 밝은 미소와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한 이 대표는 지난 수년간 암 유전자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박사들과 협력해왔다. 그는 항노화와 암 예방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승재 대표는 인터뷰에서 회사의 비전과 미래 계획, 그리고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전국으로 확장 중인 제노시스DNA클리닉의 항노화 프로그램과 암 예방 연구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이승재 대표는 이러한 혁신적인 연구의 중심에 서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비전과 성과 이승재 대표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주요 목표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항노화 신약 개발입니다.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유니스트의 박종화 교수, 김유미 박사, 서울대 김정용 박사, 임규성 원장 등이 참여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항노화 건강기능식품을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개발할 예정입니다. 이 제품은 현재 임상 중이며, 그 성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라고 밝혔다. 전국 확장과 글로벌 도입 제노시스DNA클리닉은 부산, 서울 압구정, 역삼, 동서울, 병점 등 주요 도시에 이미 오픈했거나 오픈 예정이며, 항노화 프로그램은 두바이와 베트남에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두바이 국립병원과 협력하여 현지에서도 우리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두바이는 사막 지역 특성상 50대 사망률이 높아 우리의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베트남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많은 의사들이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에서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항암 연구와 치료의 새로운 접근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는 암 예방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개발 중이다. 이승재 대표는 “우리의 프로토콜은 암 발생 전이나 초기 암 환자들에게 특히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대학병원에서 포기한 말기 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환자들이 회복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암은 예방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방, 치료, 관리를 통해 암을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건강 비결과 항노화 프로그램의 효과 이승재 대표는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며 “항노화 프로그램을 통해 피가 맑아지고 염증이 사라졌습니다. 면역력이 강화되면서 피부와 머리카락이 재생되고 질환도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에게 ‘회춘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규칙적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운동도 속병이 없고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죠.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 프로토콜을 통해 지금은 40대보다 더 젊고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승재 대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행지로 이탈리아 밀라노와 하와이를 추천했다. 그는 “밀라노는 역사적인 건물과 오래된 명품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큽니다. 수대를 이어온 가업과 전통을 통해 세계적인 명품으로 성장한 회사들이 밀라노에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수세기를 이어오는 전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하와이에 대해서는 “날씨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힐링에 최고 장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재 대표와의 인터뷰는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혁신적인 연구와 그의 개인적인 건강 비결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연구와 개발에 열정을 쏟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승재 대표와 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의 항노화와 암 예방 연구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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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시스 바이오연구소 이승재 대표, 항노화와 암예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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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6월 5일 여행사 트래블빌더의 이우석(우석몬) 대표와 역삼역 커피빈에서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반바지와 끈 없는 런닝을 입고 헬멧을 든 채 나타난 그는 팔과 다리, 어깨에 멋진 타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이크를 타는군요?"라고 묻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이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이크와 여행의 시작 '저도 대학 졸업 후 사고가 나기 전까지 잠깐 바이크를 탔었어요.' 대학 시절 잠깐 바이크를 탔던 경험을 이야기하자 이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이크를 타는 자유로운 그의 모습이 MZ세대의 대표적인 모습 같았다. 인터뷰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시작되었다. 그의 본명은 이우석, '우석몬'이라는 별명은 중학교 때 몬스터를 닮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그 별명이 좋아서 지금까지 애칭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첫 여행의 기억 우석몬이 처음 여행을 떠난 것은 9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 중국 여행이었다. "만리장성의 일부만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그는 어린 시절 여행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 경험이 여행에 대한 첫 번째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최초의 해외여행은 2015년, 삽자루 선생님께서 공짜로 보내준 유럽 여행이었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꿔놨어요. 14일 동안 유럽 6개국을 다녀왔는데 전부 기억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고, 문화 충격도 받았어요." 그는 그 여행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왜 사람들이 그렇게 큰 돈을 들여 여행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여행 전에는 300만원이면 옷이 몇 벌이고 밥이 몇 끼고, 좋아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행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어요." 네덜란드 유학과 목표의 변화 그 후 그는 3수 끝에 9등급에서 3등급, 다시 2등급으로 그리고 마침내 1등급을 달성하고 네덜란드로 유학을 갔다. "네덜란드가 5년 후 이민 자격을 주기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어요. 대학 3년을 마치고 2년만 버티면 이민이 가능하니까요." 그러나 그의 목표는 1년이 지나지 않아 바뀌게 되었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향수병이 생기고 한국인이 적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도 생기고 정서적으로 불편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꿨어요." 이민을 포기하자 그는 네덜란드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수학 강사를 목표로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입학했어요. 거기서 수학을 전공했고, 대학 내내 방학 때는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아르바이트 강의를 했어요." 이우석 대표는 방학 동안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며 하루에 5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강의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세계 일주와 여행사 설립 대학 졸업 후, 그는 세계 일주를 결심했다. "계약서를 쓰려는데 고민이 되더라구요. 내 꿈이 세계 일주인데 강사를 하면 10년 동안 여행을 못할 텐데 그러면 40이 넘게 되고 체력이 지금 같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는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2월부터 시작된 그의 세계 일주는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태국, 두바이, 터키,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 미국, 캐나다, 남미 등 총 58개국을 10개월 동안 여행했다. 귀국 후 그는 강사가 될 계획이었으나, 여행사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4년 2월, 트래블빌더라는 이름의 자유여행사를 설립했어요. 모든 상품이 완판됐고, 여행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여행을 통한 교육과 선한 영향력 이우석 대표는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한다. 그는 여행이 단순히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믿는다. "삽자루 선생님처럼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여행을 통한 깨달음을 전파하고 싶어요. 여행은 살아있는 교육이니까요." 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거의 놀다시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9등급이었어요. 하지만 여행에 눈뜬 후 목표가 생겼어요. 이제는 저도 선생님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이 대표는 여행을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자신의 시야를 넓혀주었고, 이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선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여행의 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행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제가 경험한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자신감과 계획 우석몬의 자신감은 치밀한 계획과 빠른 실행력에서 나왔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바로 실천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행동이 빠른 편이고, 단계별로 목표를 세워 빠르게 이루죠. 지금까지 제가 조언한 지인들은 대부분 성공했어요." 그는 앞으로 1년 후 강사로서 돈을 벌고, 여행사의 규모도 키울 계획이다. "시기는 2025년이 되겠죠. 강남의 잘 나가는 수학 강사들은 거의 기업 수준이에요. 수백억을 벌어요. 저도 그런 강사가 되고 싶어요." 우석몬 대표와의 2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의 이야기는 자유롭고 도전적인 삶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리라 생각한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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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자, 우석몬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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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 [트래블아이=문소지 기자] 서울시 풍납2동에 위치한 풍납새마을금고는 변현숙 이사장의 리더십 아래 고객과 직원을 위한 새로운 힐링공간을 마련해 주목받고 있다. 이 공간은 고객과 직원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무료나눔공간으로 회의실과 문화센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변현숙 이사장을 직접 만나, 이 공간을 마련하게 된 동기와 운영에 대해 들어보았다. "풍납새마을금고와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변현숙 이사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고객라운지를 비롯해 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까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구성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는 단순히 금융 업무를 보러 온 고객들뿐만 아니라 풍납동 지역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나눔공간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변 이사장은 고객라운지에 걸린 다양한 작품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현재는 최석운 작가의 유쾌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방문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최 작가의 작품 전시 후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직원들을 위한 공간도 신경을 많이 썼다. 3층에 위치한 직원라운지와 문화센터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강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업무 외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변현숙 이사장은 이번 공간 조성을 통해 고객과 직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풍요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변현숙 이사장은 문화센터 뿐 아니라 4층 회의실도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 놓았다. 이러한 공간 조성을 통해 풍납새마을금고가 단순한 금융 기관을 넘어 지역 사회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힐링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객과 직원, 그리고 지역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그녀의 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아 힐링과 문화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객라운지와 문화센터 이용시간 : 오전 9시~오후 4시 *회의실 이용문의(무료): 풍납새마을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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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현숙 이사장과 함께한 풍납새마을금고의 힐링 공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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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연경 이사...“플랜더스와 브뤼셀 공항 알수록 즐거워요”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20대 후반의 나이에 여행업에 뛰어든 김연경 이사는 현재 벨기에 플랜더스 관광청과 브뤼셀 공항 한국대표사무소를 책임지고 있다. ▲ 브뤼셀 도시 풍경 ▲ 브뤼헤 운하 풍경 ▲ 겐트의 성 (헨트 성) 김 이사는 이미 10년 전부터 서호주 관광청을 운영하며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호주 퍼스 지역을 한국에 소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후 프린세스 크루즈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지금은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과 북쪽지역에 속하는 플랜더스 관광청의 한국사무소를 맡고 있다. 김 이사가 손대는 사업마다 남다른 성과를 내면서 업계에서는 칭찬이 자자하다. 플랜더스를 여행하려는 한국인들에게 하나라도 더 홍보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김 이사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이미지에 비해 파워풀한 행동이 인상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 벨기에 플랜더스 관광청 한국사무소를 맡고 있는 김연경 이사(Ⓒ트래블아이) UN본부와 NATO본부가 있는 작지만 강한 나라 벨기에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광화문 찻집에서 김 이사를 만났다. “지난번 라트비아 대사관에서도 인사드렸는데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네요. 더 건강해진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김 이사는 약속 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나타났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먼저 일어나 인사를 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제가 주말에 운동을 하다 손을 다쳐서 병원에 급히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그녀의 말에 놀란 눈으로 손을 보았더니 정말 한쪽 손에 아직 퍼렇게 멍자국이 나 있었고 제법 부어 보였다. “전화를 주시지 그러셨어요. 병원에서 충분히 치료 받고 인터뷰는 나중에 해도 되는데...” 김 이사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아니에요. 거의 다 나았어요. 처음엔 정말 많이 부어서 손을 움직일 수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멀쩡합니다.” 다행이었다. 김 이사의 호탕한 웃음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벨기에에 대해 궁금한 게 참 많았기에 앉자마자 질문부터 시작했다. 우선 벨기에와 플랜더스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벨기에는 우리나라 경상도 크기만한 면적에 인구는 약 1000만이 조금 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크기에 비해 속이 꽉찬 나라에요. 나토와 유럽연합 EU본부가 있고 유럽의 모든 나라로 가는 관문이기도 합니다. 허브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제가 맡고 있는 플랜더스 는 아름다운 광장, 웅장한 중세 건축, 자갈이 깔린 거리와 박물관이 있는 도시와 마을들이 서로 가깝게 모여있는 벨기에의 북부지역입니다. 수도 브뤼셀은 벨기에 여행을 시작하기에 아주 편리한 곳 입니다. 브뤼셀에서 여장을 풀고 안트워프, 브뤼헤, 겐트, 루벤 또는 메헬렌으로 이동하며 특별한 시간을 즐겨보세요.” ▲ 겐트 만화거리 ▲ 루벤 ▲ 메헬렌 저녁 풍경 플랜더스 여행 중 추천코스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플랜더스 여행의 시작점은 브뤼셀입니다. 벨기에의 수도이면서 동시에 벨기에의 다양한 문화를 한 번에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여행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중세시대에서 딱 멈춘 듯한 브뤼헤를 여행한다면 플랜더스를 보다 생생하게 체험하실 수 있어요.” ▲ 브뤼셀 야간풍경 플랜더스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저는 한마디로 중세로 가는 시간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뤼셀의 그랑플라스(Grand-Place)는 성당, 시청사, 길드 하우스, 왕궁, 백조의 집 등 이야기로 가득한 중세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입니다. 또한 세심한 안목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플랜더스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환희’는 아마도 플랜더스를 가장 잘 대변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플랜더스는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에 새로운 차원을 더하는 장인 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금 플랜더스의 장인정신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플랜더스의 장인 정신은 찬란한 문화, 예술, 건축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플랜더스는 박물관에 전시된 소장품처럼 역사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플랜더스는 당신이 보고 즐기는 모든 것에 살아 숨쉬는 그 모든 것입니다. 플랜더스는 독특한 경험입니다. 즉, 플랜더스 장인 정신은 패션, 디자인, 미식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플랜더스는 인생에서 좋은 모든 것을 누리고, 동시에 그런 것을 즐길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플랜더스가 낯선 한국인에게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으세요? “플랜더스는 아직 한국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읽었던 [플란다스의 개]라는 동화와 만화를 떠올리시면 금방 와 닿을 것입니다. 그밖에 와플, 초콜릿, 맥주 등으로 유명하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한 축구 강국이기도 합니다.” ▲ 브뤼헤 도시 풍경 이사님께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플랜더스 명소는 어디인가요? “저는 플랜더스의 모든 곳이 다 좋지만 그 중에서도 브뤼해를 좋아합니다. 브뤼셀의 그랑플라스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면 1시간 거리의 브뤼헤(Brugge)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입니다. 도시라기보다는 마을 같은 브뤼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신비한 중세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드는 곳이죠. 역사를 잘 보존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여행지이기도 합니다. 브뤼헤 역시 한가운데 있는 마르크트 광장을 중심으로 고딕, 바로크,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을 나란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 중세 시대부터 만들어진 자갈길을 천천히 걸으며 작고 예쁜 상점과 미로처럼 얽혀 있는 작은 거리와 종탑, 예배당 등을 감상하는 것이 이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도시 구석까지도 보고 싶다면 운하를 따라 운행하는 작은 보트를 타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벨기에 맥주는 유럽에서 얼마나 유명한가요? “플랜더스에서 중세 시대를 가장 먼저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오래된 건축물들이 아니라 바로 맥주라고 합니다. 2016년 유네스코의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오랜 맥주 역사를 가진 벨기에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현재 약 5천 종 이상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대표적인 맥주 강국입니다. 브뤼셀에 있는 델리움 카페는 기네스북이 선정한 세계 최다 종류의 맥주를 판매하고 있는 맥주 술집으로 어떤 벨기에 맥주를 상상하던 이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 여행자들에게 벨기에의 맥주 중에서 일명 ‘수도원 맥주’라고 불리는 트라피스트 맥주를 꼭 경험해 보라고 추천합니다. 중세 시대 수도원에서 금식 기간에 영양 보충을 위해서 그리고 수도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접대용으로 양조 되었던 트라피스트 맥주는 특히 엄격한 규율이 있던 수도회에서 만들어진 맥주를 의미하는데 특별한 맛과 역사를 자랑합니다. 지금도 수도원 내의 양조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이 맥주들은 오랫동안 전수된 그곳만의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있지요, 여행자들은 이런 트라피스트 맥주에 얽힌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플랜더스의 중세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시간이 없어서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플랜더스 맥주를 맛보고 싶다면 매일 운영되는 다양한 맥주 투어에 참가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 벨기에 맥주 ▲ 루벤 맥주 명소가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브뤼헤의 전통 맥주입니다. 맥주 순례자들이 반드시 방문한다는 할브만 브루어리는 그중 가장 인기 있는 맥주 명소입니다. 광대와 반달이 그려진 라벨로 유명한 할브만 브루어리에는 양조 과정을 보여주는 투어도 있으며, 신선한 맥주를 쉬지 않고 마실 수 있는 바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맥주를 가장 멋지게 마실 수 있는 장소는 마르크트 중앙 광장 어딘가에 있는 카페 2층입니다. 이 도시의 모든 중세 건축물과 마차들이 지나가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맥주를 마시다 보면 어느새 중세로 가는 시간 여행자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 브뤼헤 맥주zot 맥주 다음으로 플랜더스를 대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만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스머프’ 만화 영화와 우리나라에는 덜 알려졌지만 ‘틴틴’이라는 만화 캐릭터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이들의 탄생지가 바로 벨기에 입니다. 벨기에가 만화로 유명해진 이유는 다양성 때문인 것 같아요. 오랫동안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서 살다 보니 보다 편안하고 가벼운 방식으로 소통하고 어울리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이론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런 만화의 중심지 역시 브뤼셀입니다. 브뤼셀 공항 청사 한가운데에는 틴틴 만화에 나오는 대형 로켓이 상징처럼 세워져 있으며, 그랑플라스 바로 옆에는 틴틴 전문 매장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틴틴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전시와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이런 만화에 대한 애정은 거리 곳곳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브뤼셀 건물 외벽에 그려진 만화 캐릭터를 찾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코믹 루트까지 만들어졌고 시내 관광 안내 센터에서도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끝으로 플랜더스에 대해 여행자가 알아두면 좋은 정보 부탁드립니다 “플랜더스 지역에서 도시 간 이동은 기차가 가장 편리하고 운행 횟수도 많고 저렴합니다. 도시가 작아서 각 도시에서는 도보 또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합니다. 그밖에 좀 더 자세하게 여행준비를 하고 싶다면 벨기에 플랜더스 관광청, 브뤼셀 공항, 벨기에 플랜더스 네이버 카페 등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인터뷰를 끝내려는데 김연경 이사는 웃으면서 가장 중요한 걸 빠트렸다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벨기에 하면 초콜릿이 정말 유명해요. 그 중심에 있는 곳이 바로 플랜더스입니다. 초콜릿은 세계가 인정하는 플랜더스의 아이콘입니다. 플랜더스 전역에 걸쳐 약 2130개의 수제 초콜릿 상점이 있습니다. 매년 30만t 이상의 초콜릿을 생산하는 초콜릿 수도로 불리는 플랜더스는 특히 일반 초콜릿보다 프랄린(Praline)이라 불리는 다양한 속을 넣은 초콜릿이 유명합니다. 아름답게 조각된 프랄린은 입에 넣으면 놀라운 질감과 풍미가 퍼집니다. 벨기에 플랜더스 이전에도 스페인, 프랑스에 이미 초콜릿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초콜릿을 대중화하고 명품 대열에 올리고 프랄린을 만들어낸 것은 다름아닌 플랜더스의 초콜릿 장인들입니다. 플랜더스에서 초콜릿의 시작은 예상외로 약국입니다. 한 약국의 약사가 쓰디쓴 약을 삼키기 어려워하는 환자를 위해 약의 겉면을 달달한 초콜릿으로 덮어 환자들 특히 어린이가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후 반응이 좋아지자 약을 빼고 초콜릿만 판매하게 됐다고 해요. 문제는 무더운 여름의 날씨. 초콜릿을 주머니에 넣으면 더위에 다 녹아서 옷에 묻기도 하고, 들고 다니기에도 불편했습니다. 최초의 초콜릿 약을 제조한 약국에서 이것을 보고, 초콜릿별로 담아 보관하는 우리가 요즘 보고 있는 초콜릿 박스를 개발해낸 것이 초콜릿 판매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 벨기에 초콜릿 플랜더스의 초콜릿이 독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풍부한 코코아 함량 때문입니다. 세계 어느 초콜릿보다 훨씬 더 높은 코코아 함량을 자랑합니다. 여기에 순수 코코아 버터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플랜더스 초콜릿은 최고급 코코아 콩을 사용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유명한 장인들은 자신의 수제 초콜릿 질을 유지하기 위해 남미에 직접 코코아 농장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초콜릿보다 품질이 우수하고 맛이 좋습니다.” 이렇게 초콜릿이 플랜더스에서 발전하게 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우선 초콜릿 장인이 가장 많습니다. 세계 초콜릿업계에서 대기업으로 불리는 칼리바우트비콜레이드는 물론 중소업체인 고디바 레오니다스 그리고 창의적인 초콜릿과 전통적인 방법으로 초콜릿을 제조하는 수많은 소규모 수제 초콜릿 장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초콜릿 장인이 플랜더스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연경 이사의 플랜더스 초콜릿 소개는 봇물 터지듯 계속 이어졌다. “플랜더스의 초콜릿은 대단히 창의적입니다. 전통적인 프랄린 초콜릿 장인들은 물론 디자인과 맛에서 창의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생강 퓨레와 고추냉이 같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획기적인 초콜릿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초콜릿을 담은 상자도 초콜릿으로 제조해 박스까지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초콜릿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특별한 경험 그 자체 입니다. 플랜더스에서는 초콜릿 박물관투어 시음워크숍 등 일반인이 참가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즐거움이 있으니 꼭 참석하시면 좋겠습니다. 벨기에 정부는 질 높은 초콜릿에 인증서를 주고 있습니다. 좀 더 품질 좋은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인증제도를 도입할 정도로 벨기에의 초콜릿 사랑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플랜더스의 모든 주요 도시에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초콜릿 매장이 있으며, 매장마다 장인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프랄린을 맛볼 수 있습니다. 밸런타인데이에 플랜더스로 여행을 한다면 연인과 함께 초콜릿 도보 여행(chocolate walk)을 해보는 것도 좋아요. 플랜더스 각 도시에 있는 다양한 수제 초콜릿 매장은 매장마다 정열적인 초콜릿 장인이 활동하며 각자 자신만의 초콜릿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초콜릿을 만들기도 하고, 초콜릿 비타민, 초콜릿 립스틱 등 흥미로운 아이템도 만날 수 있으며, 새로운 속 재료를 넣은 초콜릿 등이 있어 초콜릿 투어에 참가하면 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초콜릿 도보투어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초콜릿 도보 투어는 현지에서 진행하는 전문 가이드와 함께하는 1일 투어에 합류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대부분 2시간 정도로 이뤄지는 투어는 우선 초콜릿의 기본 지식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이후 초콜릿 매장을 직접 돌아보고 시식하며 설명을 들어보세요.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투어도 가능합니다. 각종 입장료, 모든 초콜릿 시식 등의 비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김연경 이사와의 인터뷰는 알차고 즐거웠다. 벨기에와 플랜더스 지방에 대해 자세히 알았고 플랜더스 도시의 특징과 문화, 맥주, 초콜릿이 유명하다는 사실도 새롭게 들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관광청 홍보를 하면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호주에 이어 벨기에 특히 플랜더스를 알리게 되어 기쁘고 보람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또 "앞으로 플랜더스를 좀 더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소개하고 새로운 명소들을 발굴해서 홍보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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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물관내부. [사진=최치선 기자]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인도박물관 취재 계획을 잡던 중, 박물관의 모든 물건이 개인 소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인도에 심취했기에 박물관을 만들 정도일까 하는 궁금증은 자연스레 인터뷰로 이어졌다. 조용한 박물관에서 나직하게 ‘안녕하세요’라고 건네는 인사는 팔순의 나이가 무색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 김양식 관장. [사진=최치선 기자] 마음속의 고향사람이 있는 곳, 정말 감동적 이었습니다. 내가10살 때, 문학소년 이었던 큰오빠가 타고르시인의 ‘초승달’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었어요. 타고르시인이 아이들에게 동화처럼 들려주던 이야기였는데 그걸 읽고난 다음부터 학교 작문시간에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 담임선생님이 내 시를 보고 반 친구들 앞에서 ‘이게 바로 시입니다’라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학급 뒤 게시판에 한 달 동안 붙여주셨죠. 아마 인도를 만난 것이 그때가 아닌가 싶어요. 지금까지 시를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구요. 시간이 흘러서 75년, 인도에서 아시아시인대회가 열려서 한국대표로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처음 인도땅을 밟게된 계기였어요. 내가 내내 동경하고 막연하게 그리워했던 인도가 거기에 있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너무 너무 감동적이어서 귀국후에 인도철학과로 대학원 진학을 했죠. 인도의 고대경전을 읽고,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인도의 학문과 만나면서 얻은 것이 너무 많아요. 내가 항상 부족하다고느껴서 찾으려 했던 것, 그게 그곳에 있었어요. 논문을 쓰면서 딱 두 번 울었는데, 한 번은 너무 힘들어서, 그리고 한 번은 너무 기뻐서에요. 내가 인도의 학문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기뻤어요. 그렇게 인도와의 인연을 지속시켜 오면서 인도가 내 인생으로 들어오게 되었죠. 지금은 보시다시피 인도박물관도 열었고, 한인 문화연구도 하고 있어요. 인도 네루대학 한국학과에 장학금도 주고 있지요. 학부, 대학원, 석, 박사 한 사람씩. 그랬더니 요즘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대요. 예전엔 일본학과가 더 인기였는데…한국학과교수들이 좋아해요. 아마 올해는 “김양식문학상”을 만들 것 같네요. ▲ 가네샤 상 [사진=최치선 기자] 성인들의 나라 1975년이죠? 비행기 위에서 보니까 황토땅에 거목들이 군데군데 시퍼렇게 서 있었어요. 보고있자니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구. 10일동안 회의를 하고, 회의는 한 사나흘 했나? 열흘을 머물렀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시인들이랑 같이 슬리퍼를 끌고 돌아다니면서 인도식으로 밥도 먹고. 조병화 선생님은 당신은 그렇게 먹으면 탈나서 안된다고 도망가시더라구. 사나흘 정도 인도 현지인들과 생활을 했는데 그때 아마 내 인생관이 바뀌었을 거에요. 성인들 같은 그 사람들한테 반해 버렸죠. 너무 평화로운 모습이 인상적 이었어요. 지금의인도는 그때와는 조금 달라요. 지방은 아직 그때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큰 도시들은 변화하고 있죠. 몇 년 전에 공항에 갔더니, 그 공항의 호화스러움이 어휴~ 말도 못해요. 인천공항이 초라해 보일 정도였어요. 공항에 융단을 깔았다고 하면 얼마나 호화스러운지 아시겠지요?인도 전통문양으로 장식한 실내는 입국 심사대에 선 사람들이 모두 압도당할 정도로 호화스러워요. 입국심사 기다리면서 다들 그것만 쳐다보고 있었다니까요. 아마 인도는 지금 발전하는 과도기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서 걸러내고 또 걸러내겠죠. ▲ [사진=최치선 기자] 인도에는 서양음악과가 없다?인도사람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어요.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서양의 식민지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대학에는 서양음악과가 없어요. 오케스트라나, 심포니같은 조직된 서양음악 단체도 없지요. 왜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대요. 모든 국민이 우리의 고전음악을 사랑하고 아끼고 존경하는데, 왜 서양음악이 필요하냐는 거죠. 철저해요. 아마 민족성인가 봐요. 지금은 아이들이 영어를 공용어로 배우니까 달라졌겠지만, 75년 당시에는 “Happy birthday” 노래도 몰랐어요. 우리나라의 국악과가 서양음악과 창설 이후에 생긴 것을 보면 참 다르죠. 우리나라가 서구지향적인 문화라면, 인도는 철저하게 자신들의 문화를 고수하려고해요.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프라이드가 대단해요. 길가의 거지들도 경전을 외워 밥을 빌어먹고다니니까요. 이러한 자국의 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오랜세월 식민지 생활에도 살아남은 이유가 아닐까요? 반면 교육열은 우리나라와 비슷해요. 어떻게든 공부시켜서 외국으로 보내려고 하지요. 식민지 생활을 하면서 교육에 대한 열망이 생긴 탓 일거에요. 이런 점은 우리나라와 같죠. 인도여행은 여행하기 전이 중요하다인도를 여행하기 전에 충분한 사전조사를 하는 것이 좋아요. 특히, 갈 곳의 역사를 공부하고 간다면 보다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거에요. 제가 좋아하는 곳은 시르나트(녹양원) 입니다. 오래된 불교 사원인데 석가모니의 첫 설법지로 유명한 곳이에요. 정말 평화로워요. 다 무너지고 탑 하나만 남은 곳이지만 그곳의 공기 자체에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어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곳에만 한 달 정도 있고 싶네요. 아! 인도의 박물관은 꼭 가보세요.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국보급의 물건들이 쌓여 있는 곳이죠. 또, 인도의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으니 사전에 알아 보고가야 합니다. 일년에 30% 이렇게 오르더라구요. 발전 속도가 굉장해요. 흔히들 인도를 잠자는 사자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이제 그 잠자는 사자가 깨어났다고도 이야기하고요. 인도를 가면 뭔지 모를 든든한 안정감을 느껴요. 흔들리지 않는 인도인들의 고집 같은 것. 그런건 아무데서나 느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앞으로 학생들이 인도로 유학을 많이 갔으면 좋겠어요. 물가가 점점 오르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학비도 굉장히 싸고 무엇보다 배울 것이 너무 많아요. 미국이나 호주 등 다른 서양권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죠. 인도는 5천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깊이있는 문화예술이 있으니까요. ▲ 피리부는 여인의 상 [사진=최치선 기자] 배낭 여행자에게 도움이 되는Tip 파리채/모기향: 인도 사람들은 살생을 하지 않으므로, 파리채나 모기향 등 벌레퇴치용 물건을가져가면 좋다. 바가지: 인도의 곡식에는 돌이나 모래가 많이 섞여 있다고 한다. 밥을 해 먹을 요량이면 바가지 같은 것으로 미리 걸러 주는 것이좋다. 물파스: 인도 현지에서도 구매가능 하나, 이름도 어렵고 구하기도 어려우므로 미리 가져가는 것이 좋다. 교통: 버스와 기차를 많이 이용한다. 요즘은 리무진 버스가 시내버스로 다니기 때문에 아주 편리하다. 기차를 이용할 때는 조금 번거롭더라도 좋은 등급의 기차를 미리 예매하자. 낮은 등급의 경우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 좌석표가 있어도 절대 비켜주지 않는다.음식: 마살라티(Masala tea) 인도의 향신료를 혼합하여 만든차. 한국인들 입맛에는 잘 안맞을수 있으나 인도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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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깔깔씨 안혜연의 I Love India
- “인도에서 만난 소소한 일상들 큰 감동으로 다가와요” ▲ 안혜연 씨의 인도 여행기가 편안한 이유는 차이를 인정하고 주장하기보다 들으려 했기때문이다. 깔깔씨 안혜연은 인도에 잘 어울리는 여자다. 처음 인터뷰 하는 자리에서도 상대의 자유를 허용할만큼. 그녀가 생각하는 인도는 세상을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우주다. 인도에 온 전세계 여행자들을 포용하고 그들이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한책임 또한 여행자 자신의 몫이다. 깔깔씨의 입을 통해 듣게된 인도는 또 차이를 인정 하는 나라다. 3번의 인도 여행을 통해 깔깔씨는 자신의 인도를 만든 것 같았다. 퀼트 같은 인도. 각자 다른 성격과 색깔, 모양까지 한데 모여서 자연스럽게 하나되는 모습. 틀이 없는 무형의나라 인도에서는 여행자가 상상한대로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깔깔씨도 그랬다. 인터뷰 내용을보면 행간에 존재하는 그녀의 여행 속 감동을 느낄수 있다. 인도를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퀼트! 색색의 천조각을 붙여 만든 퀼트처럼,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나라.(깔깔씨의 친절한 Tip : http://travelindia.kr/70105039993)인도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사실 인도로 가기 위해서는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요. 정말 필수적인 것을 꼽으라면여권과 인도비자, 항공권과 돈만 준비된다면 인도로 떠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가 된 겁니다. 여기에 사전조사와 갖가지 준비물, 약간의 모험심과 도전정신, 인도를 향해 활짝열린 마음만 더해진다면 인도 여행준비 끝. ‘즐겁게’ 여행하고, ‘안전하게’ 돌아오면 됩니다.인도에서 꼭 봐야 할 곳과 음식 그리고 해야할 것은?인도에서 꼭 봐야 할 곳과 해야 할 것이라...음...콕 집어 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여행의 목적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가고 싶은 곳과 특징을 파악해 보고,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오면 된다고 생각해요. 인도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도사를 꼽겠어요. 도사를 정말 좋아해요. 어떤 도시에 도착하든, 도사가 맛있는 혹은도사를 파는 식당을 찾아내는 것이 첫 번째 일과 였어요. 그만큼 도사에 푹 빠져 지냈어요.(깔깔씨의 친절한Tip : http://travelindia.kr/70116991700 – 도사 만드는 방법 등)인도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인도를 좋아하는 이유는?)머릿속에 인도를 떠올려 보세요. 막연하게 지저분한 거리, 낯선 사람들의 희번덕이는 눈빛만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인도는 아름다운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라입니다. 다른 도시에발을 디딜 때마다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도시마다 뚜렷하고 이채로운 매력을 품고 있지요.인도 여행시 주의 할 점은?여행은 불확실성의 연속이에요. 일상속에서 늘 비슷한 패턴으로 지냈던 것에 비한다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확률이 많은건 사실입니다. 인도를 여행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된 사람도 있고,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어요. 밤늦게 낯선 곳을 돌아다니면 위험해요. 모르는 사람을 쫄랑쫄랑 따라나서는 것도 당연히 위험한 행동이고요.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을 아무런 의심없이 넙죽 받아 먹는 것 또한, 때에 따라서는 위험 할 수 있어요. 이건 어느나라를 여행하건 공통사항인 것 같아요. 하지 말라는 짓은 절대하지 않는 게 상책 입니다.(학생들이) 인도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행길은 인생길의 미니어처 같거든요. 온갖 희로애락이 함께 하지요. 동반자를 잘 만나야 해요.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 외롭지 않으니까요. 또 길을 잘 찾아야 해요. 어떤 날은 길을 잃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야 고달프지 않아요. 때로는 험난하기도 한데,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어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니까. 여행이 끝난 뒤 남겨진 추억은, 삶을 이어가며 사는데 활력이되기도 합니다. 인도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동수단)저는 여행할 때, 걸을 수 있는 곳은 웬만하면 걷는 편이에요. 빠르게 지나가면서 스치던 풍경이, 걸으면 천천히 흐르는 모습으로 다가오거든요.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고, 때때로 사람 사는 이이기가 들려 오기도해요. 버스 혹은 기차를 타고 갈 때에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다면, 걸을 때에는 더 깊은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건강에도 좋고요!인도에서 한국과 완전 다른 문화는?알다시피 인도는 노출에 관대한 편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여자들처럼 핫팬츠 입은 여자를 찾아 보기 어렵지요. 인도에서 다리 노출은 참 야해요. 그런데 반대로, 상체 노출에는 좀 관대한편 입니다. 살집이 두둑하든, 늘씬한 허리를 자랑하든 관계없이 배는 잘도 드러내지요. 그리고술. 인도는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술이 금기시되는 문화에요. 우리나라는 술을 권하는 사회 잖아요? 아주 다르죠. 인도에는 주류반입이 금지된 도시(푸쉬카르 등)도 몇 있습니다. 아! 가장 다른 건,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는 거에요. 대신 수도꼭지만 있지요. 인도에서는 오른손이 하는 일과 왼손이 하는 일이 따로 있답니다. 오른 손은 주로 밥상머리에서, 왼손은 주로화장실에서 바빠요. 생각해보니 숟가락도 없네요. 손으로 밥을 먹으니까요. 물에 손을 씻고 나서 밥에 달(콩으로 만든 수프)을 부어 조물조물 주물러 입에 쏙 넣거나 짜파티(밀가루로 만든 북인도의 주식)를 한 입 크기로 찢어 찬과 함께 손으로 집어 먹어요. 누구의 입에 들락날락 거렸는지 모를 숟가락보다 내 손이 훨씬 깨끗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죠.인도여행시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물건이나 책 또는 조언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물건은 우산을 꼽겠습니다. 햇볕이 몹시 뜨거우면 양산으로 활용해 태양을 피할 수 있고요, 비가 내리면 우산으로 비를 피할 수 있어요. 제게는 그보다 값진 용도로 쓰이는데요. 화장실이 없어서 난감할 때, 더없이 훌륭한 아이템 입니다. 모서리를 찾아내우산을 펼치면 볼일 보는데 낯부끄러운 장면을 연출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책이나 조언은 인도를 여행하기 전, 다른 건 몰라도 힌두교에 대한 대략적인 지식은 알고 가셨으면 해요. 한나라를 바라 보는데, 역사와 문화를 배제하고는 그 나라를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도에서 힌두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생활이지요. 힌두교를 모르고는 그들의 삶을 올바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라마야나>나<마하바라타> 등 힌두교를 엿볼 수 있는 책 한 두 권 정도는 반드시 읽어보고 떠나시길 바랍니다.인도여행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방법이 있다면?사람이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여행이끝나고 나면 그 때의 두근거림도, 설렘도 조금씩 사그라지죠. 시간이 지날수록 벅차올랐던 감동도, 때로는 나른했던 일상도 기억속에서 서서히 옅어져가기 마련인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게 있습니다. 바로 사람이에요. 그들은 알고 있을까요? 그들의 소소했던 일상이 내 여행에서는 더 할나위 없는 즐거움이었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이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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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깔깔씨 안혜연의 I Love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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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태연 대표, 인도는 사랑의 메신저
- ▲ 인도잡화점 모쉬룸숲을 운영하고 있는 김태연 대표. 인도 물건을 파는 인터넷 사이트를 찾았다. 뒤져보니 직접 인도에서 물건을 떼온단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과연 마진이 남을까? 하는 것. 자세히 살펴보니 가족이 같이 하는 것 같다. 굉장히 앳된 얼굴인데 아들도 있다? 이거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분명 인도에 흠뻑 빠져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역시나 집의 입구부터 인도의 향 냄새가 진동을 하고 안에선 쿵짝쿵짝 흥겨운 인도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작은 어머니가 어릴 때 인도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나도 가고 싶다.’ 란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에 대학교 1학년 여름에 작은어머니께 인도여행을 권유 받았어요. 인도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과 가는 거라 걱정을 하나도 안 했어요. 돈 관리도 작은 어머니가 해 주셨고… 그냥 막연한 생각에 인도는 덥고, 더럽고, 힘들 거니까 그것만 걱정하자 하면서 갔죠. 근데! 생각보다 안 힘든 거에요. 더럽지도 않고, 어~ 괜찮은데? 하면서 식당엘 갔더니 음식도 너무 맛있는 거에요~ 그렇게 인도를 처음 만났죠. 처음 다녀왔을 땐 그냥 첫 해외여행이 인도였구나 하는 정도? 별 감흥이 없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슬슬 인도병이 생기는 거에요. 자꾸 생각나고, 가고 싶고. 그래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휴학도 하게 되고, 생활의 목적이 인도가 되어 버린 거죠. 두 번째는 친구와 갔어요. 한달 동안. 그리고 모든 배낭여행자들처럼 가능한 한 많은 곳을 다녀오리라는 욕심에 이곳 저곳을 막 돌아다녔어요. 그러고 나서 한국에 왔더니 너무 아쉬운 거에요. 좀 더 느낄 수 있었는데… 그래서 한 달은 안돼! 하고 6개월짜리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거기서 신랑을 만났어요. ▲ 김태연 대표가 운영 중인 인도전문 샵 '모쉬룸 숲' 인도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6개월 여행 때 바라나시에 타뷸라를 배우는 곳에서 신랑을 만났어요. 처음에는 별로 친하진 않고 그냥 인사만 하는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은 각자 다음 스케줄을 위해 떠나고 결국에는 신랑과 저 그리고 다른 친구 한 명이 남았어요. 그때부터 식사 후에 그들과 차를 마시는 게 일과가 되었죠. 처음에는 바라나시에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이 아니었는데, 타뷸라가 너무 재미있어서 오래 눌러 앉았던 게 신랑을 만난 계기가 된 거에요. 점점 친해지면서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인도 커리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그러던 중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어요. 뭐할까 하다가 닭 요리를 해먹자! 하고 의견이 모아져서 소박한 파티를 열게 되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그 친구가 내가 묶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고 갔어요. 그 전까지는 다른 게스트 하우스에 있었거든요. 그러고는 방을 옮길까 묻더라구요. 저는 룸쉐어를 하자는 건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서 보니 그게 사귀자는 이야기였던 거에요. 그렇게 사귀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 인도비자가 끊겼어요. 그때 6개월짜리 비자였는데, 중국이랑 네팔쪽에서 2~3개월 쓰고 하다 보니 비자가 끊겼어요. 인도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되어 난 태국으로 가겠다 했죠. 그랬더니 신랑이 자기 스케줄을 다 버리고 따라왔어요. 그리고 태국에서 파라다이스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프로포즈를 받았어요. 시간으로 보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에요. 2달 반? 3달? 근데 그 하루하루의 농도가 굉장히 진했어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났더니 벌써 여기까지 와버린 거 있죠? 아! 제가 신랑이 일본인이란 거 이야기 했나요? Masala India 인도는 마살라에요. 마살라란 향신료를 섞은 것인데, 레시피대로 조합된 향신료 양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개성 있는 향신료들이 섞여서 또 하나의 개성 있는 마살라가 되는 것처럼, 인도는 문화예술, 종교, 언어 모든 방면에서 마살라에요. 각각의 개성이 너무 달라서 충돌이 있긴 하지만 그 충돌이 있기 전 묘하게 유지되는 밸런스를 가지고 있죠.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마음을 여는 것이에요. 인도는 더럽다. 위험하다. 거지, 사기꾼이 많다. 이런 것들이요. 이런 선입견을 가지니까 순수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이 될 수 밖에 없어요. 그게 지속되면 현지인과 여행자 간의 골이 생겨버려요. 물론 정말 속셈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여행자의 몫이죠. 한가지 팁을 알려드릴게요. 내가 헤매고 있는데 적극적으로 안내를 해주겠다면서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다가오는 사람은 거의 사기꾼이에요. 그들은 약간 영국식 악센트를 사용하는 사람은 교육받은 상류층 사람이죠. 근처의 인도 청년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것보다는 겉모습이 나이가 좀 들고, 기름이 반질반질 하면서 배도 좀 나오고, 시계도 좀 좋은 것을 찬 사람을 찾아보세요. 대부분 보통의 상류층 사람이니까요. 정말 좋은 인도 친구를 만나서 마음을 터놓고 교류할 기회를 꼭 잡길 바래요. 왜냐하면 인도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인도의 가정집이거든요. 여행을 하기 전 가장 최악을 먼저 상상 해 보세요.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비책도 하나 생각 해 두고요. 저는 예전 여행 때 황달에 걸린 적이 있었어요. 당시 저를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너~ 죽기 싫으면 병원 가는 게 좋을껄?” 하고 놀렸죠. 병원에서 처방 받고 삼 개월간 고기 같은 단백질은 하나도 못 먹고 채소랑 약만 달고 살았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그땐 정말 죽을 것 같았어요. 저에겐 그게 최악의 일이었네요. 아! 그리고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발 같이 밥 먹고 같은 곳을 함께 가고… 뭐든 같이 하려고 하지 마세요. 자신의 여행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거에요. 제발! 인도는 갈 때마다 새로운 나를 발견 하는 것 같아요.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과 하루에도 몇번씩 교차하는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거든요. 릭샤 값을 흥정하는 그 순간에도 5루피를 더 깎을지 10분 먼저 출발할지 선택해야 해요. 그런 생각의 생각이 넘쳐가는 곳이 인도에요. 인도에 가면 누구나가 철학자가 되거든요. Tip 1. 주의점 남자 - 여성 여행자들은 어딜 가나 남자 조심. 현지인은 물론, 가끔 고삐 풀린 여행자들도 있다. 김태연씨 역시 고삐 풀린 한국남자들 때문에 꽤나 고생했다고. 물갈이 - 세수나 양치를 할 때 조금 먹는 것으로도 배탈이 날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더욱 조심하자. 미네랄 워터를 사 마시는 습관을 들일 것! 생과일 주스 같은 로컬 워터를 쓰는 음료도 조심하자. Tip 2. IT ITEM 1회용 변기커버 - 김태연씨가 인도를 갈 때 꼭 가져가는 물건. 이것 하나면 위생과 편리함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 특히 인도의 변기는 표면에 잔 흠집이 많아 거칠기 때문에 더욱 유용하게 쓰인다고. 1000원샵에서 판매하고 있다. 얇은 이불보 - 침대가 깨끗하지 않은 숙소, 기차, 버스 등 얇은 이불 보 하나면 어디서든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가져가지 보다 현지에서 큰 스카프를 사는 것이 실용적이다. 교통 - 태연씨가 주로 이용하는 것은 기차. 그 중에서도 침대칸을 애용한다고 한다. 침대칸은 이용하기 전 꼭 물티슈 같은 것으로 꼭 닦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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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태연 대표, 인도는 사랑의 메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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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역사 , 그랜드 투어에서 책임여행까지
- 여행도 역사가 있을까?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는 어느 것 하나 과거가 숨어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혹자는 여행은 집을 떠나 돌아다니는 것인데, 원시시대 때부터 있던 것에 무슨 특별한 역사가 있냐고 묻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여행이라는 것이 근대의 발달과 함께 대중화되어 온 과정을 살펴보면 분명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은 여행의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 세느강변 풍경 (프랑스) 유럽의 근세가 들어설 무렵인 18세기 중반, 귀족과 신흥 부르조아 계급, 즉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뼈대있는 집안의 자식들은 교양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기 전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등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특히 영국과 북유럽의 왕족 자식들은 자신들 문화의 뿌리를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찾고자 여행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삼았습니다. 이들은 부유층이긴 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을 날아간다는 것은 당연히 꿈도 꿀 수 없었고, 철도도 아직 탄생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마차를 고용하여 여정을 떠났습니다. 숙박 시설도 고급의 호텔들은 발전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여인숙과 같은 나그네 숙소를 이용하였습니다. 당연히 불편이 따라 왔고, 때론 건강과 안전이 위험스럽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 과정을 인생의 징검다리를 넘는 중요한 경험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여행을 '그랜드투어(grand tour)'라고 불렀습니다.근대 여행의 아버지라 불릴만한 토마스 쿡은 19세기 중반, 철도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패키지여행을 조직하게 됩니다. 그랜드투어가 비로소 근대 문명의 이기 위에서 올라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패키지투어를 통해 수요의 예측이 가능해지자 여행에 필요한 여러가지 서비스들이 표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여행 수요자를 대상으로 하는 레스토랑과 식사, 숙박업소, 교통 시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또한 여행 시장을 상류층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넓히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됩니다.제1차 세계대전은 다시 한번 여행의 형태를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바로 전쟁을 위해 쓰였던 비행기가 일반인들의 여행 목적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여행은 유럽이란 지역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유럽 문명권 밖인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로 다니기 시작합니다. 또 한 가지, 이런 여행을 하는 주류로 대학생 층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귀족의 자제들에서 젊은 지식인들이 세상을 경험하는 방법으로 여행을 선택한 것입니다. 60년대 독일의 국민차 무당벌레(폭스바겐)를 끌고 유럽을 방랑한 모습은 이 즈음에 많이 나타났습니다. 73년 젊은 영국인 토니휠러와 그 여자친구 모린은 런던을 출발하여 육로를 따라 유럽, 아시아, 호주까지를 여행하게 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여행기를 묶어 싱가포르의 한 인쇄공장에서 작은 책자로 엮어내게 되는데, 옐로우 바이블(Yellow Bible)이라 불리는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의 시초가 됩니다.우리나라에서는 80년 중앙대 복학생이었던 박경우씨가 고모의 초청장으로 여권을 받은 후 일본과 동남아를 배낭여행하고 쓴 '배낭족'이란 책이 출간되면서, 그랜드투어의 유산을 한국에 뿌린 시초가 되었습니다. 물론 50년대 김찬삼선생의 세계일주 여행기가 있었지만, 한국 배낭족의 뿌리가 박경우씨라는데는 많은 여행가들의 이견이 없는 상태입니다.그리고 21세기, 이제는 여행이 첨단 디지틀기기와 무장되었고, 또 환경, 빈곤의 문제와 결합되기 시작했습니다. 휴대폰과 인터넷은 여행의 본질을 되묻게 합니다. 왜냐하면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인데, 이 두 장치는 더욱 익숙하게 연결시키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방인의 발이 많을수록 그 지역의 문화와 생태는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책임여행(responsible tourism)과 그린투어가 새로운 여행 문화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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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역사 , 그랜드 투어에서 책임여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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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 최일순의 세계일주...2077일간의 잊지 못할 소풍
-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처음부터 그와의 인터뷰는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인도로가는길'의 제2대 촌장인 심바를 통해 소개 받았을때만 해도 여행을 좋아하는 술집 주인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반전은 금방 왔다. 긴 곱슬머리를 뒤로 묶은 채 대금을 부는 그의 모습은 영낙없이 나그네를 떠올리게 할만큼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 대금연주를 마치고 해맑게 웃고 있는 배우 최일순의 모습이 소년같다. 그 이후로 늦은 시간까지 밤하늘이 열린 작은 마당 한 가운데 조그만 원탁에서 막걸리와 생두부 몇 조각에 김치를 얹어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그의 간단한 이력을 공개한다. 눈치 챘겠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다. 특히, 여행에 대한 그의 프로필은 일반적인 여행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느낌마저 들게 할 것이다. 그를 자세히 보면 중남미 혹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 이제 막 온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아마 오랜 여행탓에 세계인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외모는 그렇게 탈 한국인의 모습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는 분명 한국인이었다.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난 그는 자연인 최일순에서 배우 최일순이 되기위해 서울예대 연극과를 입학하고 졸업 전 소기의 목적을 이룬다. 1987년부터 연극, 영화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평생 배우로 살 결심을 하지만 10년을 못 채우고 청춘을 오롯이 바친 서울을 떠난다. 잊고 있었던 푸른 별과 꿈을 동시에 보다 그가 둥지를 튼 곳은 강원도 정선의 골짜기에 있는 움막이었다. 당시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움막을 뜯어내고 집을 지었다고 한다. 사진을 찍으면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가 되는 아름다운 골짜기가 마음에 들어 정착한 그 곳은 이제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이 되었다. ▲ 페루 남부 나스카 북쪽 사막에 그려진 거대한 지상화와 그 사이를 관통하는 고속도로의 모습. (나스카 지상화는 직선, 나선, 새, 원숭이, 거미, 꽃 등을 표현하고 있으며 길이가 수백m 에 이른다. (사진.최일순) ▲ 나스카 지상화에 그려진 그림들을 새겨넣은 돌. 나스카에서는 이 돌을 기념품으로 판매한다.(사진. 최일순) 그렇게 서울을 떠나 강원도 산골짜기에 집을 짓고 살던 그가 갑자기 여행을 시작한 동기는 무엇일까? “어느 날 저녁하늘에 빛나는 무수히 많은 별들을 보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꿈들이 반짝거리기 시작했어요. 매연과 오염물질로 가득한 서울의 밤하늘에서는 한 번도 본적 없는 별들이지만 그 별은 분명 내 머리 위에 떠 있었던 것이죠. 내 꿈도 그랬어요.” 배우 최일순은 마침내 시골 하늘에서 별과 꿈을 동시에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저 없이 배낭을 꾸렸다. 첫 여행지 캐나다에서 느낀 자유와 희열 처음으로 나간 목적지는 캐나다였다. 밴쿠버와 로키를 여행하면서 그는 진정으로 자신이 되는 것을 느꼈다. 시작부터 목적이나 목표를 갖고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 그냥 발길 가는대로 자신의 지문과 족적이 없는 처녀의 땅을 밟고 싶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자유와 희열이 몰려왔다. 여행을 통해 그는 다시 태어났다. 한국에서 아주 오랫동안 켜켜이 쌓였던 세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세포가 자라기 시작했다. 캐나다를 돌아보면서 그는 여행이 주는 무엇인가를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마트에서 절대 살수 없는 무형의 가치와 세계 그리고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가면을 벗고 자연이 준 진짜 얼굴찾기 한국에 돌아 온 그는 정선의 산 속으로 들어가 칩거한다. 그리고 일정시간이 흐른 후 다시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배우는 차츰 자신이 썼던 가면을 벗고 자연이 준 진짜 얼굴을 하나씩 되찾는다. 동남아, 인도, 티베트, 네팔, 중국, 몽골을 차례로 여행 하면서 그는 어느새 남이 가지 않은 땅을 밟고 있었다. 여행을 시작한지 7년 만에 그는 오지여행 인솔자로 활동한다. 길잡이로서의 최일순은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얻게 된 일이었다. 그는 ‘최일순과 함께하는 세계여행’ 팀을 인솔하며 여행자들에게 새로운 인상을 심어주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함께 하는 여행으로 바뀐 것이지만 여행의 본질은 변할 수 없었다. 하늘, 땅, 물의 길은 하나기에 여행자의 수가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소풍 떠나는 길 통해 시인을 만나다 그는 여행하는 것을 ‘소풍 떠나는 것’에 비유한다. 바로 고 천상병 시인의 작품 ‘귀천’에 나오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을 생각해서 한 말이다. “친구가 준 천상병 시인의 시집 한 권을 들고 무작정 인사동으로 찾아갔는데 시인은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대신 시인의 부인이신 목순옥 여사님을 만났어요. 그날 이후 틈만 나면 인사동 찻집을 찾아갔고, 온 종일 찻집에 앉아 벽에 꽂힌 시집을 읽었어요. 그러다가 시인이 퇴원을 한 후 나들이를 돕게 되었습니다.” 처음 본 시인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그는 이미 찻집에서 시인의 시를 모두 읽었고 여사를 통해 시인의 모습을 가슴 속에 품기 시작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시인으로부터 “나는 자식이 없는데....늬가 내 자식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시인의 자식이었는지 모른다. 시인과의 부자 인연은 그때부터 돌아가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마 소풍을 마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시인이 ‘소풍을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노래 한 것처럼 그 역시 수많은 소풍 길을 통해 푸른 별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먼 훗날 귀천에서 만나게 될 시인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길은 그에게 친구가 된다 배우 최일순의 가슴에는 시인의 노래가 그대로 들어있다. 그래서 그의 여행은 쇼핑이나 관광과는 거리가 멀다. 시끄럽고 떠들썩함 보다 조용하고 청아한 나홀로 길 떠나기를 즐겨한다. 길 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 떠남이 두렵지 않고 외롭지 않다. 그에게 세상의 모든 길은 언제나 친구가 된다. 올해 그는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바이칼호와 모스크바 궁,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톤 체호프, 알렉산드르 푸슈킨, 레프 톨스토이,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막심 고리키, 미하일 숄로호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떠오르게 만드는 나라, 러시아에서 최일순의 소풍 길은 계속될 것이다. [인터뷰 후일담] ‘최일순의 푸른별 이야기’를 시작하다 대화가 끝나고 원탁 위에 있던 막걸리와 두부도 떨어졌을 때 그에게 부탁을 했다. 푸른별이야기를 트래블아이에 싣고 싶으니 허락해 달라는... 형형한 눈빛의 그는 단박에 ‘그러시죠’한다. 이렇게해서 트래블아이의 첫 번째 트래블로거가 탄생되었다. 다시 한 번 그의 흔쾌한 답에 감사를 보내며 기분 좋게 ‘최일순의 푸른별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의 거친 여행기를 보고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선한 정보는 물론 감동까지 공유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는 선물로 ‘푸른별이야기’와 솟대를 그려주었다. 앞으로 푸른별 지구의 흥미롭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트래블아이의 ‘푸른별이야기’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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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 최일순의 세계일주...2077일간의 잊지 못할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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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윤병옥 합기무도 관장...화랑도-궁중무도-호신무도를 이어받은 대한민국 종주무술
- 60여년 동안 평생을 바쳐 우리의 종주무술인 ‘합기도’를 연마하고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무도인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캐나다의 영웅 윤병옥 관장이다. 그에게 ‘합기도’란 무엇이고 캐나다에서 43년 동안 합기도를 가르치며 무엇을 이루었는지 들어보았다. 윤병옥 관장의 합기무도는 어떤 운동인가요? 제가 수련해 온 '합기도'는 우리의 정통무술인 '태권도' 와 같은 우리 대한민국 종주무술의 한 종류입니다. 삼국시대 때 신라의 '화랑도'정신 속에서도 수련했음을 '도'를 행한 기록들 속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우리가 그 후예 임을 당당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왕을 모시는 '궁전'안의 호신무술로 일부 만이 배웠답니다. 그렇다 보니 평민들에겐 널리 알려지지를 못했습니다. '귀족'과 지금의 경호원들이라고 할 수 있는 특수층만이 궁전 안에서만 연마하고 수련을 허용했던 '궁중무술'로 정착했습니다. 그 후 왕을 섬기는 신하들만의 '소유물'인 족술, 권술, 유술, 관절꺽기술, 지압술, 활법, 그리고 단전호홉법 등으로 엮어진 '호신무도'로내려오던 중 오늘에 이르러서 '합기도'라는 이름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지금의 태권도도 그 옛날 공수도, 당수도 수박도 등으로 변천 역사가 있듯이 말입니다. 언제부터 합기무도와 인연이 되었나요? 저는 원래 이북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6.25전란을 통해 1.4 후퇴 때 이남으로 피난을 내려오게 되었지요. 그 당시 내 고향 황해도에서 국민학교( 인민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리의 전통 운동인 '씨름'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 이북의 단오(5월 운동회)때 벌어진 시합에서 연거푸 우승을 거둬 상품들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때 학교에서는 저를 당해낼 학생들이 전무후무 했지요. 이렇게 운동에 남달리 취미를 가진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로 피난을 하던 1950년대는 자유당시절 깡패들이 골목과 거리를 메우고 있던 폭력과 무질서 속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어요. 하루는 신문배달(동아일보) 을 하던 중 동네의 깡패들과 싸움이 붙었는데 처음으로 그들에게서 당수도, 공수도를 알게 되었고 그 때부터 합기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합기무도 도장을 하게 된 계기는요? 처음 합기도 도장은 한국에 있었어요. 서울 종로5가 (극동빌딩2층)에서 1965년 합기도장을 처음 개관하여 가르쳤고 1967년에 신촌 로터리로 "도장"을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그곳의 대학가(연세대, 홍대, 이대, 서강대) 학생들을 상대로 운영해 왔습니다. 그 후 1975년 3월에 이곳 캐나다 알버타 캘거리로 이민 정착과 동시에 합기도(윤무관)도장을 열고 현재까지의 43년의 역사를 이어지고 있답니다. 헤아려보면 모국의 서울(종로와 신촌)에서 도장을 운영한 순간부터 합기도 사범으로 캐나다에 이민(독립이민) 와 이곳에서도 합기도 도장의 인연들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는 대한민국에서 20년 간 했던 도장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이곳 캐나다까지 43년을 합해서 총 60여년의 합기도 무술도장 경험과 경력들이 있는 셈입니다. 합기무도를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위에 상술한대로 나에게는 (중학교, 고등학교 , 대학) 시절들을 통해서 집안의 가난한 형편때문에 거의 ‘고학생’ 신분으로 자수성가의 길을 걸었지요. 체육관의 부사범직과 사범의 길은 물론 개인지도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운동을 취미로 시작한 나는 졸업한 후에도 곧장 무술체육관을 개관했으니 다른 직장은 알아 볼 수조차 없는 오직 합기도 도장 운영만으로 오늘을 맞고 있답니다. 캐나다에는 몇 개의 도장이 있나요, 또 한국본부와 세계 합기무도 도장 등에 대하여 설명해 주세요? 현재 캐나다에는 3개의 도장이 있으며 나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미국 뉴욕과 텍사스(Elpaso) 그리고 불란서와 기타 유럽지역에도 산재하고 있습니다. 한국본부는 현재 서울에 있습니다. 또한 세계합기도 ‘윤무관’ 총본부를 이곳 캐나다 두고 미래의 우리 윤무관 합기도의 ‘Vision’을 향해서 매진하고 있습니다. 합기무도는 어떻게 국위를 선양 하고 있나요? 네. 우리 모국 ‘대한민국’을 떠나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교민들이야말로 진정한 모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들입니다. 저의 경우도 체육관 ‘Yoon's Martial Arts School’ 도장 안에는 벽에 대형 ‘태극기와 캐나다국기’ 만이 전체 벽을 차지하고 있지요. 그리고 체육관을 드나드는 수많은 관원들이 들어오고 나갈 때면 앞에 걸려있는 ‘국기’ 앞에 바른 자세로 ‘경례'하도록 예의를 가르친답니다. 만약 그 예의를 지키지 않는 관원은 결코 출입을 ’불허‘ 합니다. 이것은 불문률로 정하고 있으며 그리고 국기 앞에 한국말로 ’쉬엇‘ ’차렷‘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그 밖에 기본적인 동작과 후령도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숫자들을 셈(Count-Down) 할때도 한국말로 하나, 둘, 열까지 세도록 하고 있습니다. 관원들은 이렇게 슷자들을 모두 한국어로 외워야 합니다. 물론 앞에 있는 칠판에는 분명히 숫자들을 한국어와 영어로 표기해 놓습니다. 많은 유단자( Black- Belts)들 또는 관원들도 우리 종주국의 ‘합기도’를 배우면서 한국말이나 한글을 배우려는 관원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합기도 유단자의 실력으로 종주국인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그 날’이야말로 그들이 소망하는 것들 중에 가장 큰 기대와 목적임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사정으로 또는 역부족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감당치 못하고 오직 기초적인 우리운동의 기본자세이름들만 한국어로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합기무도의 전망은요? 저는 이곳에 정착한 이후에 매년 한 번씩 치르고 있는 ‘Hapki-Do Champion-Ship’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도 (2017년) 제33회 챰피온 토너멘트를 대 성황리에 마쳤음을 말씀드릴수가 있습니다. 매년 거듭하고 있는 우리 합기도의 본 대회는 많은 사람들의 성원을 받아 매년 참가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난 제33회 (11월18 토 2017) 에도 참가 선수들이 200명이 넘을 만큼 대성황을 이루는 대회였고 그들의 부모나 친지들, 친구들로 관중석은 만석을 이루기도 했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33회의 대회를 진행하면서 한해도 빠짐없이 어려움들을 감수하고 지켜온 인내와 경륜의 결실임을 말 할 수 있습니다. 올해(2018년)에도 제34회를 오는 11월에 이곳 실내체육관(The Genesis Center)에서 개최할 예정이랍니다. 제가 보는 우리 합기도를 통한 세계한글보급이야말로 희망적임을 말씀드릴 수가 있을 것 같군요. 왜냐하면 제가 전수하고 있는 합기도의 전통이야말로 어제와 오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강산이 4번이나 변했다는 43년의 시간에서 오늘의 현실을 말해주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간단히 우리의 매 대회 때의 ‘OPEN CELEMONY’ 를 표현한다면 우리의 "애국가"(1절~4절)를 부르는 동안 우리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체육관 내 스피커를 통해서 발맞추는 퍼레이드(Parade)가 시작됩니다. 어린 관원들에 의해 대형 ‘태극기’가 실내를 돌고 있는 동안 수 천명의 관중들은 자리에서 모두 일어납니다. 그리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관원들이 오른손을 합기도 도복 왼쪽 가슴에 얹고 조용한 침묵 속에 끝나면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옵니다. 이 나라 캐나다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소수민족’들로 이루어진Multi- Cutural Canada 이지요. 저 역시도 소수민족 대한의 아들로 태극기와 애국가를 목 놓아 부르는 이 모습은 나의 모국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애국’ 하는 증표입니다. 또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한 개인으로 ‘43년’이나 보내며 숱한 세월들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50여 년 전에 운동(합기도)을 계기로 ‘여운일 목사님’을 만났고 "상면의 해후"로 세계를 향한 ‘한글보급’에 역사적 사업을 위한 ‘사명’을 받고 함께 합력해 ‘세계문맹자들을 한글’로 퇴치하는데 뜻을 함께 합니다. 광화문 앞에 앉아계신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의 큰 뜻과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신 ‘이순신장군’의 얼을 반추하여봅니다. 이제 우리의 합기도무술을 통해서 세계를 향한 한글보급에 보탬이 될 수 있음을 전망해 봅니다. 지금은 스마트 폰 시대입니다. 지구촌 식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손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자기술정보시대에 한글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40년간 합기도를 보급하면서 한글보급은 어떻게 하시고 계십니까? 이곳 캐나다에서 저는 합기도 보급을 43년이나 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무술을 통해서 솔직히 한글보급은 못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겨우 외국인인 나의 제자들에게 ‘한글’을 대신한 한국 언어들을 영어Spelling으로 겨우 외우게 하고 표현시키는 것뿐입니다. 합기무도와 한글보급을 접목해서 보급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전문성이 전혀 없는 저로써는 적당한 방안이나 방법들을 말씀드리기엔 역부족입니다만 제 생각에는 저의 무술 ‘합기도’로 우리 대한민국 종주국의 무술 ‘합기도’를 나름대로 알리고 보급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저희 체육관 도복이나, T~Shirt, 합기도 체육관 모자들, 그리고 합기도 대련(겨루기)때 착용하는 용품들의 표기들을 ‘합기도’라는 한글로 프린트를 하여 그들이 입고 걸치고 쓰고 거리를 활보 한답니다. 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한문이 그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한글’로 표시한 옷들과 용품들이 많은 사람들과 합기도 관원들에게 상당히 주목을 받고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전문성으로 좀 더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착안 등을 해내고 만들어 낼 때 우리의 ‘세종대왕’께서 뜻하신 세계를 향한 문맹 퇴치도 분명 성공의 결실들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도장을 운영하면서 기뻤던 일과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이민자들의 생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우선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민자들의 서러움과 괴로움들은 비단 나만이 겪는 일들은 아닙니다. 나는 독립이민(합기도사범)으로 이곳에 정착 해 1975년 도장을 개관하면서 이곳 원주민들이 다니던 도장들과 기존 타 무술들과의 ‘암투와 질투, 도전’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신념인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이곳에서 43년을 버틴 것입니다. 그 고통의 시간이 결코 한두 마디로 표현될 수 없겠지요. 반면에 기쁘고 보람된 일이라면 그런 속에서도 우리 체육관에 들어온 관원들에게 ‘인성’을 가르치고 길러내는 합기도 사범의 위치에서 마약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어린 청소년들에게 합기도 무술을 통해서 치료받고 새 삶을 찾게 해 준 것입니다. 그들이 내 가르침과 훈련을 통해 White-Belt( 흰띠)에서부터 Black-Belt(유단자)가 되었을 때 검은 띠를 허리에 매주고 자격증들을 수여 할 때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가정은 물론 한 개인의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의 미완성한 인생을 ‘완성’의 길로 찾아가게 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비록 시작과 처음은 작고 미약할지라도 나중은 너로하여금 창대케 하리라’하신 말씀대로 오늘까지 매년 이곳에서 ‘합기도 챔피언대회’를 치르게 도우심으로 ‘33회’를 맞아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르며 우리의 국기 ‘태극기’를 흔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세계를 향한 합기도 대회를 일취월장으로 개최하게 됨은 나에게는 최상의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봉사활동은 하고 있나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곳 교민들의 개척교회를 상대로 운동을 통한 하나의 ‘봉사’ 할동을 정기적으로 해왔지요. 한국어로 합기도와 태권도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나이와 체력이 역부족이라 뒷전에 물러나 있고 후배나 제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이 사회의 봉사나 Charity를 이곳 Childen-Hospital에 또는 도움들이 필요한 각처의 Community에 우리의 합기도 챔피언 대회 수입금으로 들어온 기금들과 입장료들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또 아동병원이나 사회에 기증해오던 Charity기금들을 몇 년 전부터는 우리 체욱관의 ‘장학금(Scholarship)’ 제도를 설치하여 불쌍한 청소년들을 상대로 저희나름대로 행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합기도 운동을 연마해오면서 그 옛날부터 ‘침과 뜸’ 그리고 ‘지압’들로 이곳에서 부업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Yoon;s Acupuncture &Acupressure Clinic은 Ritire를 했으며 오직 나의 관원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침과 뜸으로 자연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글세계화 운동연합 서부 합기도 캐나다본부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함께 할 의양은 있는지요? 물론이지요. 부족한 저의 힘이지만 합기도를 통해서 일익을 담당케 하시고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나의 남은 여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새해계획은 무엇입니까? 컴퓨터세대, 전자기술정보시대를 맞아서 도외시 되어 가는 우리의 종주 무술인 ‘합기도와 태권도’의 위상이 차츰 도태되어 가고 있고 정통무술정신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에 청소년들을 향한 나의 운동인 합기도를 통해서 ‘SOUND BODY, SOUND MIND’로 세계를 향하고 싶습니다. 그 계획 중 하나인 금년(2018년)11월 제 ‘34th Annual HAP KI-DO Champion-Ship’을 변함없이 개최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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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민상기총장, 21세기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상 수상
- ▲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는 민상기 총장 [트래블아이 최치선 기자] 건국대학교 민상기총장은 지난 22일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상, 교육혁신 글로벌리더 공로대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창립 25주년을 맞이한 민주신문 한국인물대상위원회가, 교육부문에서 타의 귀감이 되며, 국가와 인류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높이 치하하여 수여한 영예로운 상이다. ▲ 강상숙민주신문 회장(왼쪽)에게 한국인상을 수여받은 민상기 총장 강상숙 민주신문 회장은, “한국인상은 언론매체를 통해서,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인 저명인사와 이웃과 사회에서 귀감이 되는 숨은 공로자를 찾아내어 공적을 치하해 주는 상입니다. 국정이 혼란스럽고 국가경제가 어렵지만, 교육은 백년대계입니다. 건국대학교의 민상기 총장님은 건국대학교를 세계 혁신기관으로 만들고 있는 교육혁신의 선구자이시며, 참교육자이십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인상 수상자인 민상기 총장님처럼 자기분야에서 묵묵히 길을 가는 어른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가 밝아지고 희망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하고, 민상기 총장이 교육혁신리더로 지나온 길을 높이 치하했다. 민상기(62) 총장은 “한국 대학이 사회변화에 능동적이지 못한 점을 인정합니다. 특히 인성교육의 부재로 사회 구석구석이 어둡습니다. 전인적인 인격의 지성인, 미래지향적인 전문인, 공동체발전의 선구자를 양성하는 교육발전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민주신문 창립 25주년을 축하드리며, 21세기를 빛낸 한국인 상을 수상하게 되어 기쁩니다. 한국인상은 제 개인의 상이 아니라 건국대학교와 건국 인들이 세계 혁신대학교로 거듭나라는 힘을 주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사회와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더욱 힘쓰겠습니다.”하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시상식장에서 만난 민상기 총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 건국대학교 전경 교육혁신, 프라임(PRIME) 건국 2020은? 총장 취임 전부터 프레임사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총장에 취임하고 난 뒤 ‘프라임(PRIME) 건국 2020’이라는 비전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세우고, 세계를 품는 대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어놓고, 교육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학부·학과의 칸막이를 걷어내면서 관련 단과대학을 통·폐합했고, 산업체 인턴 등 현장실습을 의무화한 플러스 학기제를 도입했습니다. 지능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는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크로스오버(융·복합)인재’를 양성하여, 2020년까지 ‘국내 5대 사학, 아시아 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산업의 변화와 학생 수요에 맞는 대대적인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국가정책사업으로 선정된 선도대학의 성과는? 국가정책사업인 프라임사업(PRIME)의 선도대학으로 선정되어 480억 원의 국고지원을 받았습니다. 산업계와 학생들의 수요를 고려한 산업수요 맞춤형 인재양성을 하는 바이오와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 특화한 ‘KU융합과학기술원’을 설립했습니다. 링크플러스(LINC+·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 5년 250억) 육성사업 선도대학으로 선정되었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을 선도할 힐링바이오 산업 전문 인력 양성’을 목표로 바이오 분야의 융합교육에 새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세계최대 뉴스제공 기업인 로이터가 발표한 아시아 최고 혁신대학으로, 2년 연속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축적된 연구역량과 학문적 강점을 살려 미래 융복합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첨단 토론식 강의장면 스마트팩토리와 첨단 토론식 강의실 오픈 프라임 사업의 지원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공유하고, 학생 창의 공간인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를 오픈했습니다. 첨단 장비들을 갖춘 토론식 강의실을 구축하는 등 교육 인프라와 교육환경을 대폭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스마트 팩토리는 타 대학의 지속적인 벤치마킹이 되고 있으며, 재학생 만족도가 크게 향상되어 학생창업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프라를 바탕으로 토론식 수업, 플립드 러닝, K-MOOC 과제 등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교육혁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건국대학교 혁신 키워드는 통합과 융합 건국대학교의 혁신 키워드는 통합과 융합입니다. 학생들이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창의력을 발휘하려면 철옹성 같은 학과 간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공과대 학부 10개를 4개 학부로 통합하고, 동물생명과학대학과 생명환경과학대학을 통합하여 ‘상허생명과학대학’이라는 바이오 중심 단과대를 만들었습니다. 신설 KU융합과학기술원을 융합형 인재 양성의 산실로 키워나갈 계획입니다. 인문사회계열의 정치대학·상경대학·글로벌융합 대학 등 3개 단과대도 하나로 통합할 예정입니다. 소통중심의 커뮤니케이션 행정 구현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간담회, 설명회 등을 적극 활용하여 구성원과의 활발한 소통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단과대에서는 ‘김밥’ 조찬 간담회, 부처별 행정직원은 ‘아이스크림’ 간담회, 글로컬 캠퍼스에서는 주별 방문 간담회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단과대학별 교학소통위원회를 설치하여 각종 현안에 대하여 사전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파티션 없애기‘ 소통 캠페인은 부서 간 협조와 소통강화를 목표로 시행하고 있으며, 의사소통 및 업무 처리 속도 향상의 성과 도출하고 있습니다. ▲ 민상기 총장(가운데)의 교육혁신 선도 모습 자기주도 창의활동으로 ‘드림학기제’ 시행 2017년 본격 도입한 ‘드림학기제’는 학생 스스로가 창의활동 과제를 설계해 제안하고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정규 과목입니다. 현장실무를 통해 학기를 이수하는 다양한 ‘플러스(PLUS) 학기제도’ 로, 학생 주도 커리큘럼 설계를 통한 수요자 중심의 교육 서비스 제공을 위한 ‘7+1 자기설계학기제’입니다. 건국대학교는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하고, 진로에 대한 방향설정과 자신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융합과학기술원, 학사-석사 연계한 교육혁신 선도 신입생 333명이 입학한 ‘KU융합과학기술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대학의 교육혁신 대표 사례입니다. U융합과학기술원에는 바이오·ICT·미래 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①미래에너지공학과 ②스마트운행체공학과 ③스마트ICT융합공학과 ④화장품공학과 ⑤줄기세포재생공학과 ⑥의생명공학과 ⑦시스템생명공학과 ⑧융합생명공학과에서 관련 분야 전문가를 육성하고 있습니다. 건국대학교는 KU융합과학기술원을 통해 전통적 강점 분야인 생명 과학 분야와 공학 분야를 중심으로 차별화된 융합기반 교육과정을 제공합니다. 국내외 타 대학에서 양성하지 못하는 미래형 고급인재를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 혁명시대에 창의성 교육의 중요성은? 건국대학교에서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교육으로 정답이 무엇(What)인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How)구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미래사회의 학생들은 단순한 지식을 암기하는 것보다 공감 능력과 도덕성, 의사소통능력, 문제해결 능력 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기업들의 인재상도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인문학적 소양(가치와 물질의 균형), 소프트웨어적 지식, 전문성, 상상력과 창의성, 더불어 사는 인성 등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건국대학교의 이념과 비전은? 건국대학교 설립자 상허(常虛) 유석창 박사는, 건국대의 핵심발전 분야로 농업과 과학 분야에 주력하여 대한민국의 교육발전에 중추적이고 헌신적인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 유지를 받들어 저는 취임사에서 전통과 혁신의 건국 100년이라는 주제와 함께 국민에게 존경받는 명문 사학, 폭넓은 장학제도로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대학, 가치연구와 실용연구가 조화된 연구중심대학, 기업과 산업계에서 인정받는 취업·창업 브랜드 대학이라는 비전을 내놓았습니다. 외국인 유학생 다양화와 해외캠퍼스 구축을 통한 '글로벌 원 캠퍼스', 대학이 보유한 자산과 역량을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감과 공유의 열린 대학 등 10가지 약속과 비전도 내놓았습니다. 교수, 교직원, 학생, 동문 등이 모두 힘을 모아, 품격 있고 내실 있는 명문사학으로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 민상기 총장 민상기 총장은 누구? 경기도 양평 출생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호헨하임(Stuttgart-Hohenheim)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건국대 교수로 재직하며 교수협의회 회장, 대학원장, 교학부총장, 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단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축산식품학회 편집위원장과 전국식품공학교수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한국식품냉동기술협의회 회장과 프라임사업 대학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와 중동 등 저개발국 농축산 기술 교육 원조를 위해 2014년 설립한 'KU국제개발협력원' 원장을 맡고 있다. 농축산 식품과 바이오 생명과학 산업 분야에서 활발한 학술 연구와 대내외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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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상 무형문화재...물과 불과 정성으로 빚은 삼해주
- ▲ 삼해주 제조 과정을 재현하는 김택상 무형문화재 ▲ 삼해주 무형문화재 김택상 서울을 대표하는 술 삼해주(三亥酒)는 가양주(家釀酒·집에서 담근 술)다. 세 번에 걸쳐, 최단 36일 최장 100일에 걸쳐 담그는 소주, 즉 증류주다. 12지신 중에서 피가 가장 붉고 맑다는 돼지가 들어간 새해 첫 돼지(亥)날 밑술을 담그기 시작해 다음 해일 또는 다음 달 첫 해일에 덧술을 담가 합치고, 또 그다음 달 해일에 2차 덧술을 담가 합친 후 숙성시켜 증류하여 만든다. 이렇게 삼해주는 정성도 많이 들어가고 맛이 좋아 조선시대 궁중과 양반가에서는 물론 조선 후기에는 일반 가정에서도 제사와 손님 접대용으로 쓰인 최고급 술이다. 시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명주지만 서울 북촌에 가면 삼해주를 직접 담그는 법을 배우고 맛볼 수 있는 삼해주 체험공방이 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8호 삼해주 소주장인 이동복 여사의 아들인 삼해주 기능보유자 김택상(63) 선생이 직접 가르치고 제조한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삼해주의 장인이 된 김택상 전수자를 만나기 위해 북촌 공방으로 갔다. 조선시대 외국사신들이 가져가는 명주“고려말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 전성기를 이룬 삼해주는 한양 사대부집안에서 마시던 술입니다. 사신들도 중국에 갈 때 가져가는 술로 삼해주를 꼽을 정도로 명주였습니다. 삼해주는 밑술 하나로 막걸리와 약주, 소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3가지 종류의 술을 맛보게 됩니다. 삼해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입니다. 1년 내내 상온을 유지하는 저장고가 있다면 지금도 삼해주의 완벽한 맛을 재현 할 수 있습니다.”김택상 씨는 술 내리는 것을 ‘도수’라 하는데 도수의 회수에 따라 막걸리(1회)->약주(2회)->소주(3회)로 만들어 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술을 3가지로 볼 때 막걸리는 밥, 소주는 술, 약주는 반찬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막걸리는 밥 대용으로도 먹었던 것입니다. 금주령이 내렸을 때도 환자에게 먹일 약주를 만들게 해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인터뷰 중간에 공방 직원이 삼해주를 가져왔다. 가까이서 본 삼해주의 빛깔은 투명한 노란색인데, 사선으로 비껴드는 여린 아침 햇살을 보는 것 같다. 술잔 위로 올라온 누룩내가 코 끝에서 부유하지만 그 향이 사람을 밀어낼 만큼 역하지 않고, 사람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살짝 맛을 보니 혀를 간질이는 톡 쏘는 느낌이 있고, 쓴맛이 돌며 약간 신맛도 스치는데, 대체로 술맛이 깔끔하고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가업 잇기 위해 직장 그만두고 삼해주 복원 삼해주의 역사는 깊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가 1168년 쓴 <동국이상국집>에도 등장한다. 조선시대 문헌인 <음식디미방> <산림경제> <동국세시기> 등에도 등장한다. 20세기 초까지 술도가가 밀집해 있던 한강가 마포나루 부근의 공덕동과 아현동에서 많이 빚어지던 술이 삼해주였다. “삼해주는 위에 뜨는 맑은 술을 약주라 하고 약주를 증류하면 삼해소주가 됩니다. 여기서 삼해 막걸리는 약주에 나머지를 물과 섞으면 얻을 수 있는데 장기보관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소주는 장기보관이 가능하죠. 삼해소주는 우물가의 버들가지에 새순이 돋을 무렵 마신다 하여, 버들가지 꽃을 뜻하는 유서주(柳絮酒)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일제 때도 이어져 오던 삼해소주의 맥이 끊길 뻔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습니다. 가정에서 술 빚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이동복 여사)가 맥이 끊기면 안 된다면서 조심스럽게 술을 빚어왔습니다. 그러다가 서울시에서 삼해주 전통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1993년 어머니를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했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을 다녔는데 가업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직서를 내고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삼해주 복원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대량생산 어려워, 주문판매 방식 소량생산어머니의 뒤를 이어 무형문화재가 된 김택상 씨는 그동안 익혀 온 솜씨로 삼해주를 재현했는데 만족도는 70%정도라고 밝혔다. “모든 조건이 맞춰질 때 저도 어머니가 만든 삼해주만큼 훌륭한 술을 빚어낼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 좀 더 연구하고 노력하면 목표한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삼해소주는 숙성기간이 길어야 맛있는 술이고 건강주가 된다. 삼해소주는 봄에 마시는 술이란 의미로 춘주, 백일주라고도 불렸다. 우리나라 5대 명주 중 하나인 삼해주는 온도변화에 민감해서 겨울철에 빚어 봄에 마시는 게 좋다. 온도만큼 중요한 게 물이다. 그렇다고 정수기물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수돗물이 낫다. 영양이 풍부한 물이야말로 삼해주의 맛을 결정하는데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물은 암반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삼해주의 대량생산은 어렵다. “도시에서는 사실 생산 자체가 어렵습니다. 밥 짓는 것도 가스불이 아닌 장작불이어 좋고 물도 수돗물보다 지하 암반수가 좋습니다. 그리고 보관도 김치냉장고가 아닌 자연동굴이 적합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갖춘 장소를 서울 같은 도시에서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주를 만들기 위해 시골로 내려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판매는 주문판매 방식으로 꼭 필요한 분들에게만 술을 드리고 싶어요.”적당량 장복시 소화불량 개선, 숙면 효과좋은 술은 우리 몸에 좋은 효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삼해주의 효능은 무엇일까? 적당량의 삼해 약주를 장복하면 소화불량이나 속병 같은 게 어느 정도 개선된다. 또 잠자기전에 한 두잔 하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좋은 술을 이웃과 나누고 싶어서 삼해주 빚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앞으로 계획은 삼해주를 전국 최고의 명주로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삼해주 아카데미도 열심히 해서 좋은 제자를 키우고 싶다. 현재 12기까지 배출된 아카데미 제자 중에는 미국와 일본의 교포들도 있다. 삼해소주는 어떤 안주와 잘 어울릴까? “흔히들 소주하면 고기안주라고 생각하는데 삼해소주는 칼로리가 높아서 견과류나 과일 그리고 치즈가 어울립니다. 삼해주를 입안에 머금으면 잘익은 사과향이 나는데 이렇게 맛좋은 삼해주를 만드는 비결은 좋은 물과 불 그리고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좋은 술을 빚기 위해 누룩을 잘 만들고, 날씨와 바람 등을 고려해 술을 안치되 온도와 술독관리에도 최선을 다 해야 하는데 100일 간의 정성을 들여야 하는 삼해주는 엄정한 가풍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일본의 지원제도 부러워, 지속적인 관심필요계속해서 삼해주에 대한 얘기가 진행됐다. 그는 삼해주에 올인 한 이유는 집안대대로 이어져 온 맥을 내가 이어받은 것일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정부의 지원이나 관심은 어느 정도냐고 물어 보았다. “일본에 갔을 때 부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장인들에 대한 지원제도가 아주 훌륭했어요. 작업환경부터 판매 거기다 홍보까지 모든 것이 지원되는 제도는 정말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큰 전시나 이벤트 때만 관심을 갖다가 끝나고나면 나 몰라라 합니다. 점점 더 우리문화를 지키려는 장인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있는데 그들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결과적으로 전통문화의 맥이 끊어지지 않겠습니까? 외국인들도 한국에 와서 보고 싶은 것은 우리의 전통문화라고 생각합니다.”삼해주 담그는 순서 1. 밑술 만들기 The Crude Liquor - 멥쌀을 불려 가루를 낸 후 된 죽을 만들어 식힌다- 식힌 된 죽에 누룩을 첨가, 항아리에 넣고 2- 3일 숙성시킨다. 2. 1차 첫술하기 The 1st Liquor- 멥쌀을 불려 고두밥을 찌고, 누룩과 물, 밑술을 넣어 반죽한다.- 반죽은 하루 2- 3차례 저어주며 30일정도 숙성한다.- 밥알이 뜨고 술이 노란색으로 변하면 1차 첫 술이 완성된다. 3. 2차 덧술하기 The 2nd Liquor- 1차 첫술을 체로 걸러낸다.- 찹쌀을 불려 고두밥을 찌고, 누룩과 물, 1차 덧술과 섞어 반죽한다.- 항아리에서 30일 정도 숙성되어 찌꺼기가 가라앉기 시작하면 2차 덧술이 완성된다 4. 3차 덧술하기 The 3rd Liquor- 2차 덧술 하기와 동일한 공정을 반복한다. - 완성된 3차 덧술을 체에 걸러 항아리에 담아 30일 정도 숙성한다. 5. 약주, 막걸리 Samhae Yakju, Makkoli- 3차 덧술이 완성되면 체에 걸러 위의 청주(淸酒)만 채취하여 약주(三亥藥酒)로 음용한다.- 찌꺼기는 물을 혼합하여 탁주(三亥濁酒 –막걸리)로 음용한다. 6.소주 내리기 Distilling the Soju- 3차 덧술에서 걸러진 청주를 전통 소줏고리를 이용하여 증류식 소주를 내려 음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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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 이사장..."생명을 살리는 음식은 자연이 준 밥상 입니다"
- ▲ 자연밥상 연구가 문성희 이사장 ▲ 문성희 이사장이 차려준 자연밥상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자연요리 전문가인 (사)평화가 깃든 밥상의 문성희(63) 이사장을 충북 괴산에서 만났다. 10년 만에 산에서 내려와 괴산 미루마을에 보금자리를 틀고 자연밥상 전도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만나기 전 ‘<평화가 깃든 밥상> (샨티 간)’을 읽어 보았다. 평화를 찾는 지치고 외로운 영혼들에게 드리는 밥상으로 시작하는 그녀의 책은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었다. 20여년 동안 부산에서 잘나가는 요리학원 원장으로서 누렸던 부와 명예 그리고 안락함을 포기하고 산 속으로 들어간 뒤 얻은 자기성찰 에세이집에 가까웠다. 그녀의 밥상에 차려진 소박하지만 생명기운이 가득한 자연 음식을 맛보는 순간 그 뜻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 모른다.‘평화가 깃든 밥상차리기’, ‘자연이 준 그대로의 삶 살기’ ‘생명을 살리는 음식이 무엇일까?’에 대한 그녀의 의문과 탐구는 먹는 음식이 곧 생명이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어느날 우연히 햇볕과 바람에 말린 생식을 먹게 되면서 몸 세포가 변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끼고 영혼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요리학원을 떠나 산으로 들어 간 문 이사장은 세상적인 모든 감투를 내려놓고 자연인 문성희로 살게 된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 2010년 그녀는 고요한 산자락 계곡물 소리처럼 낮고 생명력 강한 여자가 되어 세상에 돌아왔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그녀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생명이 있는 밥상을 화두로 살아온 그녀이기에 세상 사람에게 자신이 얻은 소중한 재산을 나눠주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곧 ‘지구를 위한 밥상’과 ‘평화가 깃든 밥상차리기’다. 지난 이십 년 동안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음식을 먹고 가르친 시간을 버리고 그녀는 현재 생명이 넘치는 자연이 준 그대로의 원형질을 존중하는 삶을 살고 있다. 보름 전 자신의 안식처이자 (사)평화가 깃든 밥상 사무실 겸 연구소에서 그녀를 만나 자연식 요리에 빠지게 된 동기와 근황을 들어 보았다. 내 음식의 핵심은 ‘먹는 것이 곧 치유’“ ‘자연요리 전문가’는 2009년 처음으로 쓴 <평화가 깃든 밥상>을 출간하면서 출판사에서 붙인 겁니다. 뭘 의도하거나 계획하고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자연스럽게 내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자연음식’과 ‘자연요리 전문가’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답하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겸손함과 수줍음이 교차했다. 그녀는 산 속에서 이미 자신의 운명을 알았는지 모른다. 꾸미지 않아도 세상은 자신을 꾸밀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이 정한 원칙을 지켰다. 그래서 불편하고 느리지만 자신의 몸과 마음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내 음식의 핵심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살리는 것입니다. 생명을 담는 것을 의미하죠. 여기에는 자연스럽게 평화로운 기운이 들어갑니다. 인공적인 요소가 하나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살기 급급해서 몸과 마음이 찌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정성껏 돌보면 마음도 달라집니다. 곧 치유의 과정입니다. 산속에서 배운 것도 먹는 것이 곧 치유라는 것입니다.”라다크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삶 배워그녀는 산 속에 들어가기 전 부산 금정구 두구동에서 1년, 입석마을에서 1년, 임기마을에서 1년을 보냈다. 그 후 산속에 들어갈 때는 냄비와 밥그릇 몇 개만 남겨놓고 그릇과 옷, 책도 다 나눠줬다. 학원이 잘되고 돈을 많이 벌고 언론에 관심을 받게 될수록 공허함이 밀려왔다. 마음속 깊은 곳에 평온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삶이 재미없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화려하게 보여주기만 하고 생명력이 없는 음식에 회의가 생겼다. 그 즈음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인도 라다크(인도 북동부지역에 있는 오지)로 떠났다. 그 곳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며 차츰 평온을 찾았다. 사막생활을 하는 라다크인들을 보며 평화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부부는 서로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사이그녀가 말하다 물을 마시는 사이 잠깐 집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벽과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며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벽에는 약 5호~10호쯤 되는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한 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딸 작품이에요. 학교를 다니지 않고 독학했는데 지금은 제법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정상적인 교육을 마쳤다면 지금의 결과는 없었을 테지요. 딸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영화와 음악 그리고 미술을 배웠어요.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찍부터 배우고 익혀서 스스로 얻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그런 딸을 인정한 사건이 있다. 어느 날 영화 리스트를 가져와 엄마와 아빠가 볼 것, 자신이 볼 것이라고 보여주는데 수백 편에 걸쳐 장르, 감독, 주연, 시놉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새로 이사한 이 집은 혼자 지낼 때가 많다. 남편은 낙동강 생태지킴이로 평생 강만 쫓아다녔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지지한다. 또한 각자의 공간에서 최선을 다한다. 결과적으로 안정감을 갖게 되었다. 생명력 강한 음식 먹으면 바로 세포 형성이사 온 이후에도 그녀의 생활은 산속에서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여름에는 해가 뜨기 전 3시쯤 일어나서 요가와 산책으로 몸을 풀어주고 찾아 온 학생들과 요리공부를 하고 한 살림 강연도 하면서 지낸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9시 30분쯤 잠든다. 오랫동안 이렇게 살다보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왜 그렇게 먹어야 하는지가 명료해졌다. 각각의 음식이 가진 성질과 향, 모양, 맛을 자연 상태 그대로 먹는 것이 우리 몸에 가장 좋다는 것을 알았다. 생명력이 강한 음식들은 내 몸에서 바로 세포가 되는 걸 느꼈다. 그 결과 몸이 가벼워지면서고 행복감이 충만하고 평화로웠다. 속과 마음이 더불어 편안해 진다. 오방색을 즐기고 항상 가까이 하면 힐링“음식의 오방색을 상에 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몸도 알고 보면 빛으로 되어 있습니다. 명상을 하다 빛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뼈 속이 뜨거워집니다. 바로 원적외선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햇볕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힐링이 됩니다.”그녀는 우리 인생이 힐링 하려면 오방색을 생활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즉, 식품도 5가지 색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고대미는 쌀의 오방색(흑미, 녹미, 현미, 적미, 백미)을 복원한 것으로 7대3의 비율로 섞어 먹으면 좋다. 자연밥상은 농부의 밥상그녀에게 자연밥상은 무엇일까? “농부의 밥상입니다. 앞으로 농부가 잘 사는 세상이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도 옛농법을 복원해서 유기농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으면 좋겠습니다.”현재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성폭행 그리고 자살 등은 어려서부터 화학첨가물이 잔뜩 들어간 식품을 부자연스럽게 먹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자녀들에게 자연식 밥상을 차려주면 폭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옛 농법을 복원하려면 작은 소모임들이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즉, 공동생산자 개념으로 유기농협동조합에서 구매한 식품으로 밥을 짓습니다. 재료가 좋은 것은 양념을 적게 합니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요리책에 나온 모범 레시피를 믿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음식은 저마다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공한 레시피는 음식 고유의 빛과 향, 맛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사용되는 게 맞습니다.” 건강해지기 위한 10계명건강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특별히 건강해지는 법 10가지를 알려주겠다고 한다. 첫째, 시간에 쫓기지 말자 둘째,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충실하자 셋째, 아주 피곤하면 무조건 쉬어야 한다 넷째, 해질 때 자고 해뜰 때 일어난다. 다섯째, 불안증과 염려를 떨쳐 버린다 여섯째, 슬로우 푸드를 먹어야 한다. 즉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음식을 먹어야 힐링이 된다. 일곱째, 외식하지 말고 가정의 엥겔지수가 올라가야 한다. 여덟째, 삶과 놀이와 일이 하나가 되면 무척 편해진다. 아홉째,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하다. 열 번째, 자신을 소중하게 돌보면서 살아야 한다. 최고의 자연밥상을 맛보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밥 익는 냄새가 안에서 흘러나왔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안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그녀가 웃는 얼굴로 나왔다. 다행히 밥은 타지 않았나 보다. “더 물어볼 게 없으면 이제 그만 식사하세요. 차린 것은 없지만 여기 먼 곳까지 왔는데 동영상 촬영을 하지 못하게 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차린 것이니 맛있게 드세요.”인터넷에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것이 싫다며 한사코 동영상을 거절했던 그녀가 밥상을 차려주자 놀랍고 고마웠다. 사실 아침 일찍 출발한 탓에 식사를 못해서 배가 무척 고팠다. 안으로 들어가자 회의 탁자 겸 식탁에 자연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오곡밥, 콩가루 무친 쑥, 산나물, 질박한 그릇에 담아 내 온 묵은 김치, 여러 가지 채소와 두부를 넣어 보글보글 끓여낸 된장찌개까지 거기에 텃밭에서 따 온 싱싱한 상추와 머위가 식욕을 부추겼다.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오방색이 다 들어간 고대미의 맛은 특별했다. 입 안 가득 단맛, 거친맛, 신맛, 짠맛, 고소한 맛 등 다섯 가지 맛이 모두 느껴졌다. 담백한 자연식이었다.마스터들과 평생 같이 공부할 계획식사를 하면서 앞으로 계획에 대해 들어 보았다. “2010년에 설립한 살림음식연구원에서 나와 함께 음식을 공부하는 마스터들이 34명 있습니다. 이들과는 평생 같이 공부할 계획입니다. 이분들 중심으로 작년 12월에 사단법인 ‘평화가 깃든 밥상’을 만들었어요. 청소년 급식지도, 도농협력네트워크 구성, 지구환경 음식으로 돌보기, 생태적인 삶을 위한 워크숍 등 좀 더 사회적이고 공적인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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