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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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유! 죄와 벌!

자유를 구속하는 억압이 있는 곳에 탈출의 폭발력이 잠재한다. 이것은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스물다섯나이에 시작한 늦깎이 대학시절의 겨울방학! 나는 현실적인 여러 상황을 핑계로 들어 선배 형이 하는 도자기 가마에서 잔심부름과 장작 가마에 불 때는 일을 거드는 불목하니로 한철을 보냈다. 인사동에서 만나진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인 선배 형들과 어울려 늘 축제같이 즐겁게 지내긴 하였지만 그것은 추운 겨울날 작업실까지 모두11개나 되는 굴뚝에서 끊이지 않고 연기를 일정하게 피워 올려야 하는 고된 일을 수반하고 있었다.

나는 약 2달 동안을 세수고 양치도 하지 않았으며 조금은 종일 술에 취해 있기도 했다, 잠자리도 작업실의 불을 지피던 아궁이 우묵한 곳이라면 어디서나 웅크리고 잠간씩 눈을 붙이는 데 익숙해졌다. 이 시절 나는 알에서 깨어나 아브락사스로 향하는 데미안처럼 스스로 다시 태어나기위한 몸앓이를 하고 있었다.

이때 우리에겐 가마 옆에 울타리를 쳐둔 일명 동물농장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얻어오고 사온 관상용인 날아다니는 것들 외에도 병아리며 오리, 토끼 등, 꽤나 여러 종의 가축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산 것을 잘 잡지 못하는 선배 형이나 나로 인하여 대개는 자연사 하거나 주변 산에서 내려온 짐승에 의해 때로는 사고사를 당했다.

족제비가 장닭을 물어 죽이고 미처 먹지 못하고 버리고 도망가면 우리는 그 장닭이 살아 있던 때를 이야기하며 언 땅을 파고 묻었다. 작은 봉분들엔 중복을 피하기 위한 표식까지도 만들어졌다. 그렇게 주변엔 작은 무덤들이 꽤나 늘어갔다. 어쩌다 닭 잡을 줄 아는 인간이 놀러온 김에 잡아먹게 되는 닭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닭의 요리는 내가 해야만 했다. 그렇게 요리를 하면 나는 한동안은 닭고기는 보기도 싫어졌다. 우리는 그렇게라도 닭을 잡아먹은 날이면 며칠을 뒤숭숭해하곤 했다.

각설하고…….

그중 흰색토끼 한 쌍이 있었다. 이들은 곧잘 사람을 따른다고 우리는 믿었다. 내가 모이를 주거나 하면 제법 애교를 부리는 듯 배춧잎을 작은 입으로 우물거리며 귀를 쫑긋거리는 것이 눈앞에서 재롱을 떨고 있다고 보였기 때문이었다. 추위가 가장 매서웠던 1월 즈음 이었다. 한 동안 얌전하던 수컷 토끼가 연일 철망을 뚫고서 탈출을 감행하고 있었다. 멀리도 도망가지 못하고 고작 울로부터 20여m정도의 불을 지피기 직전 가마입구를 봉하기 위해 흙을 파낸 웅덩이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도망의 전부였다. 매일 근처의 구덩이를 뒤져 추위에 반쯤 얼어있는 토끼를 다시 울타리 안에 넣어주는 것이 며칠간 아침의 일과가 되다 시피 하였다. 우리의 걱정은 토끼가 그나마 보온이 되어있는 집이 있는 우리에서 나가 얼어 죽는 것 이었다.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토끼는 울 밖의 얕은 웅덩이 안에서 한밤의 매서운 추위에 그대로 꽁꽁 얼어 죽어 있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부터 얌전하던 암토끼에게서도 나타났다. 한 번도 울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암토끼마저도 수컷이 죽은 다음날부터는 울타리를 도망 나가고 있었다. 두 번째의 도망에서 암토끼는 서리가 하얗게 핀 추운 웅덩이의 한기에 앞발이 얼어붙어 걷지를 못했다. 반동태가 된 토끼를 울안에 넣어주며 살까 싶었다. 설마 싶었으나 다음날 아침 울타리로 가보니 꼼짝을 못하던 토끼는 나머지 반쪽 몸으로 기어서 철망을 뚫고서 어제의 그 구덩이 까지 기어가 하얀 서리를 뒤집어쓰고서 얼어 죽어 있었다.

선배 형과 나는 숙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를 벗어났다가 아침에 돌아오는 굳은 수컷의 온몸을 안타까이 핥아대던 암토끼였었다.

수컷의 웅덩이를 파내어 함께 합장을 시켜주며 한낮 미물이긴 하지만 잠시 이들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지금 이곳 가이아나의 깊은 정글을 지나며 기억 속으로 그 토끼 한 쌍이 떠오른다.

억압으로 부터의 탈출!, 울 밖의 자유!

영화 빠비용에서 야자수열매를 채운 포대를 안고 거친 바다로 절벽을 뛰어내린 빠삐의 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봐라! 나는 거기서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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