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칠곡군] 가산산성, 복수초 찾아 코로나19 스트레스 날려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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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가산산성, 복수초 찾아 코로나19 스트레스 날려버리자

기사입력 2020.04.0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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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반화 된 지금 여행은 사실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안에만 있으면 스트레스때문에 없던 병도 생길 수 있다. 자차를 이용해서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야외로 가서 기분전환이라도 해보자. 
시간이 된다면 꽃피는 봄을 그냥 보내지 말고 봄의 정령이 사는 칠곡군으로 가보자. 거기에서 복수초를 보면 틀림없이 힐링이 될 것이다. 

노란 복수초는 희망을 안겨준다. 경북 칠곡군에 자리한 가산산성(사적 216)에 가면 복수초 군락지가 있다
조선시대 외침에 대비해 쌓은 가산산성은 요즘 트레킹 명소로 사랑받는다. 산성 입구인 진남문에서 약 3.6km 오르면, 동문 아래 복수초 군락지가 보인다(2시간 소요). ‘영원한 행복이라는 꽃말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복수초가 옹기종기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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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험하지 않고 활엽수가 우거져 산책코스로 그만이다. 제주에서는 복수초가 2월에도 피지만, 가산산성 복수초는 3월이 되어야 모습을 드러낸다. 활짝 핀 복수초를 보고 싶다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에 찾아가자. 해가 있을 때 꽃잎을 펼치기 때문이다. 예스러움이 남은 동문과 마을 터, 풍광이 시원한 가산바위도 함께 돌아본다

가산산성은 호국의 고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국가지정 사적 제216(1971. 3.26)로 지정되었으며 포곡식 석성, 전략성구조이다. 가산의 해발 901.6m에서 산골짜기를 에워싸 해발 600m에 이르도록 내··외성을 축조했는데, 현재 사문지(四門址)와 암문(暗門수구문(水口門건물지 등의 시설이 남아있다

49951.jpg▲ 가산산성 (사진=칠곡군)
 
처음에는 인조1718(1640)에 관찰사 이명웅(李命雄)의 요청으로 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26(1648)중수되었고 성은 석성으로 둘레는 4,710()이고 여장(女墻)1,887()이 설치되었으며, ··북문의 삼문과 8개소의 암문, 연못9개소, 우물2개와 장대인 진남대(鎭南臺창고 7개소, 빙고(氷庫)하나, 사찰 4개 등이 설치되었다. 성이 완성되면서 칠곡도호부가 되고 군위, 의흥, 하양, 신녕의 고을이 이 산성에 예속되었다.

 

외성은 숙종2627(1701)에 석축으로 축조된 것으로 둘레는 3,754보이고 1,890첩의 여장을 두었으며 성문은 남쪽에 만들고 북··남쪽에 암문을 설치하였다. 중성은 영조17(1741)에 관찰사 정익하(鄭益河)의 요청으로 길이 602보이고 402첩의 여장과 중성문이 만들어졌다.


산성 별장이 거처하는 위려각(衛藜閣)을 비롯하여 성안에는 객사(客舍)인 인화관(人和館)을 비롯한 관아와 군관청, 군기고, 보루(堡樓), 포루(砲樓), 장대(將臺)가 설치되어 행정적이라기 보다는 방어를 위한 군사시설이 압도적인 군사용 진성(鎭城)의 면모를 갖추었다.


중요시설은 내성안에 있으며 중성에는 이 산성에 입보(立保)할 예정된 네 고을의 창고가 있어 비축미와 군기(軍器)를 보관하여 유사시에 사용하게 하였다. 성은 외성 남문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성의 주변에는 송림사를 비롯한 신라시대의 절터가 많이 있다.


1954년의 집중 폭우로 남문에 홍예(虹霓)는 반파되고 수구문과 성벽 일부가 유실되었다. 그밖의 성벽과 암문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세는 천주사지(天柱寺址)로부터 급경사를 이루어 가파른데 약간 평탄해진다. 성문은 외성의 남문이 홍예문이며, 다른 성문들은 앞쪽만 홍예이고 뒤쪽을 평거식(平据式)으로 만든 특수한 문의 구조로 되어있다.

 

남보루(南堡樓)는 성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데 여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따로 성벽을 현대의 교통호(交通壕)처럼 설비한 용도(甬道)가 있어서 조선후기의 축성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정엔 나직한 7개의 봉으로 둘러싸인 平頂을 이루어 사방으로 7개의 곡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서북쪽으로 임란시 곽재우 장군이 왜병을 물리친 천생산성(구미시 지방기념물제12)6.25전쟁당시 대구사수의 격전지였던 유학산에 연결되어 산성을 축조할만한 충분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하는 동래-밀양-대구-상주-충주-서울을 잇는 상경로의 요충지로서 임란때에는 명의 원군 5천여명이 진주하였으며 선조26(1593)에는 경상감영을 설치하여 선조29년 달성으로 감영을 옮기기까지 도정을 관장하였다. 그후 산성을 축조하여 산성안에 칠곡도호부를 설치하기도 했다.


보통 읍성은 나성이나 가산산성은 내외중성으로 된 전략적 성곽으로 축조되었으며 인조18(1640) 산성이 축조되면서 5월에는 경산부(星州)에 속했던 팔거현이 칠곡도호부로 승격되고 이곳 산성안에 칠곡도호부(府使:武三品)를 설치하여 진관으로 군위, 의흥, 신녕, 하양의 4현을 관장케 하여 이후 180년간 읍치(부의 治所)를 산성안에 두었으며 순조12(1812)에는 가산산성안에 별장(종구품, 전력부위, 지방의 산성·나루·보루·소도등을 수비하는 무관)을 두고 가산진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칠곡도호부는 관아가 험준한 산정에 있게 된 후 읍민들은 불편한 점이 많아 이읍을 바랐으며 순조19(1819) 왕명에 의하여 평지인 팔구지(현 칠곡초등학교)로 읍치를 옮기고 이후로 가산산성의 수성은 가산진의 별장이 담당하였다.

 

성내의 사방에 포루, 장대, 남창, 군창, 영창, 군기창, 장적고 등의 창고와 문루가 있었다고 하나 남아있는 곳은 없으며 다만, 남창마을과 북창마을의 명칭에서 남창지와 외북창지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 , 중성과 동문, 동암문은 보존되고 있다. 또한 산성내에는 보국사, 천주사등 많은 사찰이 건립되어 승장을 뽑고 승려들을 모아 궁술을 연습시켰다고 하나 현재 일부 사지의 주위에 당간지주만 남아있으며 장군정(將軍井)이라고 하여 장군들이 마셨다고 하는 우물이 남아 있어 산성내에 많은 병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tour_1323830362189.jpg▲ 구상문학관 (사진=칠곡군)
 

419403673611.jpg▲ 성베네딕토왜관수도원
 
72791327407.jpg▲ 가실성당
 

가산산성 근처에 유서 깊은 사찰 송림사가 있다. 금동으로 만든 상륜부가 남아 있는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189)을 눈여겨봐야 한다. 칠곡에는 가톨릭 성지도 많다. 120년 역사를 품은 가실성당(경북유형문화재 348)과 성베네딕토 왜관수도원이 대표적이다. 특히 가실성당은 신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 아름답다. 구상문학관도 들려보면 좋다. 구상 시인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전시자료와 함께 시인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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