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같지 않은 몸
-이상호
암입니다.
다짜고짜 통보하는 의사 말에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다리는 떨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판인데
버스는 씩씩하게 매연을 내뿜으며 잘도 달리고
창밖 세상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듯이 승객들은
저마다 핸드폰 창을 열고 뭔가에 빠져들고 있다.
병원에서는 온통 환자 천지
아침부터 몇 시간을 기다려 의사에게 들은 말
암입니다. 암입니다. 암입니다.
쟁쟁쟁 자꾸 귓속을 파고드는데
땡땡땡 뱃속에선 요란한 종소리
이런, 속도 없이 배가 고프다니
몸은 맘 같지가 않은가 보구나!
매사 맘먹기 달렸다는 좋은 말로 달래 보려고
괜찮겠지. 괜찮겠지. 암 괜찮아지겠지.
맘을 먹고 또 먹고 자꾸 퍼먹어도
종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맘이 바닥났다는 경고인가?
이젠 더 먹을 맘도 없어
점점 암담해지는 하늘로 날아가는 새를
한참 따라가다 놓치고 눈을 돌리자
다시 귀가 열렸다
암입니다. 암입니다. 암입니다.
날아간 새에서 떨어진 깃털 같은 것이
부리가 되어서 맘을 콕콕콕 쪼아댔다.
‘저마다의 창’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주변의 일을 살피는 것도 외면하고 있는 타인들에게 동감이나 위로를 받을 수는 없지만 그만큼 자신도 자신보다는 ‘아내의 병’에 휘청거린다. 자꾸만 ‘쟁쟁쟁’ 파고드는 “암입니다.”라는 의사의 선고는 여전히 마음에 술렁인다.
이때, 마음과 다르게 움직이는 몸은 시인의 신체리듬에 맞추어 ‘땡땡땡’ 허기의 종소리를 울려준다. 일정한 리듬과 균일한 삶의 시간에 침투한 아내의 병이 시인의 몸까지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 “몸은 맘 같지가 않은” 살아가는 때와 이치를 따를 수 밖에!
“암 괜찮아지겠지”라는 말로 ‘밥 먹기’를 대신하는 ‘맘먹기’는 혼란스런 자신에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담대해 지기 위한 주문이다. 암담한 하늘로 날아가는 새가 날린 깃털 같은 작은 것도 ‘맘 같지 않은 몸’의 ‘바닥난 마음’으로만 쪼아댄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그 말도 ‘몸’의 이치와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준다. ‘몸’과 ‘마음’. ‘마음’과 ‘몸’이 따로인 것도 어쩌면 자연스런 순리이다. 내가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보다 훨씬 많은 우리의 삶에서 어쩌면 시인은 ‘맘 같지 않은 몸’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다시 쓰고 있다.
시인 이상호
경북 상주 출생. 아명 상하尙河, 호 상산尙山. 이 안초등학교, 함창중학교, 서라벌고등학교, 한 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및 동국대학 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2년 5월 월간 『심상』 신인상으로 시단에 등단. 시집 『금환식』 (1984), 『그림자도 버리고』(1988), 『시간의 자 궁 속』(1989), 『그리운 아버지』(1996), 『웅덩이 를 파다』(2001), 『아니에요 아버지』(2007), 『휘 발성』(2011), 『마른장마』(2016) 펴냄. 대한민국 문학상(1988), 편운문학상(2001), 한국시문학 상(2008), 문화관광부장관 표창(2001), 문화관 광체육부 장관 표창(2014) 받음.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기획위원장(부회장), 한국언어문화학회장,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학술정보관장·문화산업대학원장 및 국제문학 대학장 역임. 현재 한국시인협회 이사. 한양대 학교 ERICA 캠퍼스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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