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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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치선    사진/정대일

▲ 베니스 풍경...조원춘 서양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프리다 칼로, 케테 콜비츠, 파울라 모더존-베커, 나혜석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눈치 빠른 독자들은 첫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류화가라는 것. 태어난 때와 나라는 다르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색으로 세상을 풍자했고 작품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내는데 성공했다. 이 달에 소개하는 조원춘(56) 작가 역시 여류화가다. 조 화가는 여행을 통해 세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 조원춘 서양화가는 세계의 여행지에서 가져온 보물을 주방 한쪽 벽면에 가득 채워놓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 한국미술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동석 화가(동양화)에게 인터뷰를 위해 괜찮은 여류화가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사무국장은 며칠 후 조원춘 화가를 추천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조 화가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도회적인 느낌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가진 여성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처음에는 완곡하게 거절을 했다. 이유는 이름 있는 작가들이 많은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품을 본 후 결정하자고 설득을 했다. 잠시 후 그녀가 카톡으로 보내온 이국적인 풍경들은 유명 화가들을 잊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색이 마음에 와 닿았다. 강한 느낌의 원색이지만 들떠 보이지 않았다. 물론 손바닥보다 작은 화면으로 본 그림만 가지고 작품을 알아보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첫 느낌은 괜찮았다. 조 화가에게 전화를 해서 인터뷰 시간을 잡았다. 그녀의 작업실은 강동구에 있는 자택이었다.

여류화가의 작업실은 어떤 풍경일까?”

그녀를 만나기 전 가졌던 호기심이었다
. 그동안 취재했던 작가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그래서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약간의 긴장감도 생겼다.

벨을 누르고 인터폰을 통해 확인절차를 거쳐 조 화가의 작업실로 올라갔다
.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식탁에 앉았다. 화가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내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벽에 걸린 그녀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은 거실에서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식탁 뒤 한쪽 벽면에는 제법 큰 부조가 붙어 있었다. ‘저건 무엇일까?’ 궁금증을 풀기위해 다가갔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벽에 붙어 있던 것은 수십 아니 수백 개의 마그네틱 기념품이었다.

▲ 화가의 소중한 추억이 스며있는 마그네틱 기념품들이 벽화처럼 장식되어 있다.

여행을 좋아해서 시간이 될 때마다 해외를 나가요. 관광지보다 현지인들이 많이 다니는 골목노점상이나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저런 마그네틱 기념품을 구입했어요. 여행갈 때마다 하나 둘씩 모았는데 이젠 정말 소중한 보물들이 되었네요.”

기념품을 살펴보는 동안 그녀가 말했다
.

저 기념품 하나하나에 추억이 묻어 있어요. 다른 것들은 무겁고 부피가 있어서 가지고 다니기에도 불편한데 마그네틱 기념품은 작고 가볍고 무엇보다 독특해서 좋아요. 저에게 여행의 재미와 추억을 동시에 주는 귀한 선물같은 존재들이죠.”



계속해서 기념품 예찬이 이어졌다. 그녀의 말대로 벽에 붙어 있는 기념품들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기념품 하나하나가 그녀가 여행한 나라와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 같았다.

조 화가는 저 기념품을 통해 여행지에서의 추억과 풍경을 떠올리며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

그녀는 지금까지 약 40여개의 나라를 다녀왔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인 나혜석이 1927년부터 3년간 세계일주를 하며 얻은 영감을 작품에 반영했듯이 조원춘 화가도 이국적인 풍경들을 담아낸다.



저는 주로 여행지에서 본 풍경을 그려요.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는 뒷골목인데...그렇다고 작품의 배경이 모두 골목은 아니고요. 풍경을 그리지만 하늘은 가능한 노출을 안 시키고 차나 배 등 이동수단을 풍경에서 부각시키려고 해요.”

화가의 설명을 듣고 작품을 보니 단번에 이해가 됐다. 그녀말대로 그림 속에는 하늘이 차지하는 공간은 작았다. 대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중 하나가 주인공처럼 확 눈에 들어왔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배나 트램 등 움직이는 대중교통이 풍경 속에서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림 속에 있는 자동차나 배는 저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 제 마음을 달리는 자동차나 배에 은유적으로 담아봤어요.”

화가는 자신의 마음을 저렇게 이동수단에 투영시켜 여행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

화가의 그림그리기는 여행에서 시작된다
.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 올때까지 사진을 찍거나 정물을 감상하듯 오랫동안 주시하는 버릇이 있다. 항상 시간이 쫓기지만 그래도 맘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더 많이 집중하게 된다.

여행지에서 그녀가 빼놓지 않고 들리는 곳은 미술관이다
. 특히 유럽여행에서는 마음껏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녀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결혼 후였다
.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경북여중과 경북여고를 다니면서 재능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여동생 역시 그림을 그렸고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미대를 포기하고 가정교육학과를 다녔다. 그 때 참고 숨겼던 그림에 대한 미련은 고스란히 결혼 후 육아를 끝내자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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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되던 해 동네에서 가까이 지내던 화가지망생 친구들과 함께 미술과외를 받았다. 강사는 미대생이었다. 기초적인 데생부터 시작해 다양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워밍업을 거쳤다. 그릴수록 그림에 대한 갈증이 심해진 조 화가는 문화센터에 등록해 그림을 배우던 중 노재순 전 한국미협 회장을 만나게 된다.

노재순 회장으로부터 그림을 배우면서 제 실력이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그려야겠다는 확신 같은 게 생겼죠. 스승도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고 용기를 줬어요. 저는 문화센터를 다니면서 항상 공부잘하는 학생처럼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했어요. 미리 집에서 작업을 많이 했고 그 결과 실력이 늘었던 거죠. 노 회장은 그런 저를 칭찬했고 나중에는 개인사사까지 해 주셨어요.”


그녀는 당시 스승으로부터 배웠던 시간이 지금의 자신을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

정말 열심히 그림에 집중했어요. 대학 때 하지 못한 그림을 다시 하게 되니까 에너지도 많이생기고 자신감도 회복하게 되더군요. 이전보다 실력이 향상된 것 같았어요.”

그녀말대로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능은 스승을 만나면서 마중물이 되어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다
. 한국미술대전에서 2회 연속 입선하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에 한계를 느끼는 시간이 찾아왔다
. 슬럼프였다. 풍경화를 그리다가 있는 그대로를 담기보다 자신의 느낌을 클로즈업해서 부각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풍경에 있는 대상을 모두 담기보다 특화된 어느 하나를 담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단순화시켜야 했다. 그런데 그 작업이 쉽지 않았다. 단순화시켜서 반복하는 작업을 계속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 사이 완성된 작품을 놓고 질문을 던진다. ‘어디에서 실수한 것일까? 무엇을 빠뜨린 것일까?’ 

그녀는 이 의문점을 풀기위해 더 많이 여행하면서 유명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을 보았다. 아직까지는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으나 그녀의 의지는 곧 정답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여행담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갔다
. 서둘러 몇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나 전시회는 무엇이냐고 하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

“2011
년에 대구 대백프라자(2011:mother&daughters(대백프라자)4인전)에서 했던 4인전이에요. 어머니의 팔순을 기념해 세딸이 마련한 전시회였는데 지금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찌나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지 전시회 내내 저와 자매들이 감사했어요.”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그녀의 권유 때문이었다
. 그녀가 결혼 후 뒤늦게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어느날 어머니 정태연 여사에게도 그림을 그려보시라 권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어머니의 그림이 어느새 저보다 훨씬 좋은 작품으로 세상에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딸들이 다 모였을 때 팔순잔치말고 더 뜻깊은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어머니를 위한 전시회를 해드리자고 뜻을 모았어요. 결과는 대성공이었어요.”

그녀의 기획으로 탄생한
4인전은 대구와 경북에서 화제가 되었다. 어머니 정태연, 첫째딸 조원춘, 둘째 조원지, 셋째 조원정 등 세 딸과 어머니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전시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족이 모두 화가인데다 작품의 개성도 뚜렷해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던 전시회였다.

연세가 있으셔서 여행을 마음대로 다닐 수 없게 된 어머니께 제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드렸어요. 어머니는 제 사진을 보고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해 작품을 완성했던 것이죠. 저보다 훨씬 색이나 구도가 좋아요.”

조 화가는 어머니가 일찍 그림을 배우셨다면 지금쯤 꽤 유명한 여류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

그녀에게 자신처럼 결혼 후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는 후배들을 위해 한마디 조언을 부탁했다
.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무엇보다 자존감은 그림을 그리는데 꼭 필요한 에너지거든요. 그리고 자기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저처럼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거든요. 그때마다 그림은 나를 발전시킨다고 주문을 외우면 극복이 가능해요. 끝으로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래야 좋은 결과물도 나오고 희망이 생겨요.”

그녀는 앞으로
3년 후에 개인전을 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여행도 다니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있다.



그녀가 인터뷰를 끝내고 촬영을 하는 동안 작업실에 놓여 있는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했다
. 이탈리아의 곤돌라, 프랑스남부의 어느 골목길풍경, 에펠탑이 보이는 도로위 자동차들, 그리스의 항구 등 이국적인 풍경들을 보면서 한 시대를 풍미하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나혜석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순간 파리풍경, 스페인풍경, 스페인해수욕장, 만주봉천풍경 등 나혜석이 세계일주를 하면서 그렸던 작품들이 조 화가의 그림에 오버랩 되었다.

작업실을 나오면서 배웅을 하는 그녀에게 이번에 유럽을 가시면 독일이 낳은 서양최초의 여류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의 좋은 기운을 받아 오라고 주문했다.


서양화가 조원춘 개인전 및 초대전

2004:세종문화회관

2008:동이갤러리

2008:setec

2009:see&sea (부산)

2010:이윤수갤러리

2011:mother&daughters(대백프라자)4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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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양화가 조원춘 “여행 하면서 세상의 풍경을 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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