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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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풍경(사진-봉화군)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삼복 더위에 이름만 들어도 시원해지는 산이 있다. 맑을 청(淸)과 서늘할 량(凉)자를 쓰고 있으니 바람 따라 마음은 이미 청량산으로 향한다. 경북 봉화에 터 잡고 있는 청량산(淸凉山)이 그 주인공이다. 청량산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에 있는 도립공원으로써 높이는 870m이고, 태백산맥의 줄기이다. 1982년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산세가 수려하여 작은 금강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청량산 계곡
▲ 청량산 하늘다리

이름만 들어도 시원해지는 산

퇴계 이황은 ‘청량산가(淸凉山歌)’에서 ‘청량산을 아는 이는 나와 기러기(白鷗)뿐이며 어주자(魚舟子:어부)가 알까 하노라’고 노래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을 통해 청량산을 ‘경북답사의 클라이맥스’하면서도 이곳이 세상에 알려 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답사를 포기했다고 할 만큼 청량산을 한 번 찾은 이들은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산이다.

퇴계 선생이 청량산을 세상에 알리기를 꺼려하면서 왜 혼자만 가슴속에 묻어 두려고 했을까. 이는 아마도 속세를 거부하는 12봉우리, 손 때 묻을까 두려워 깊이 숨은 산의 정취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신라고승 원효, 명필 김생, 고려 공민왕의 숨결이 서린 곳이었기에 번잡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여겼을 것이다.

동아일보 1938년 6월4일자 신문에 실린 ‘청량산탑승기행’이란 기사에 의하면 -“필름처럼 전개되는 협로(峽路)의 초하풍광(初夏風光)이 홍진만장(紅塵萬丈)의 점두(店頭)에서 충혈(充血)된 안정(眼睛)을 청정(淸淨)케 하며 삽구(颯口)한 대기(大氣)가 흉금(胸襟)을 씻어줄 때 고해염열(苦海炎熱)을 칠팔분(七八分) 잊어버린 듯 하야 벌써부터 청량행(淸凉行)의 쾌미(快味)를 깨달게 한다.”고 했다.

비록 어려운 낱말로 된 기사이긴 하지만 그 때 기자나 지금 기자나 청량산의 정취를 느끼기는 매 한 가지인 듯싶다. 산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으니까 말이다.

▲ 청량산

안동과 태백을 잇는 35번 국도상 청량산도립공원 입구에는 청량산박물관과 청량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가 이웃해 있다. 청량산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으면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한라산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산들도 이름을 내건 박물관이 없는데, 인지도나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청량산은 자기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박물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 만큼 이야기 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바로 청량산 정문인 청량지문(淸凉之門)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정문을 지나자마자 우측에 서 있는 비석이 퇴계선생의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글 읽기가 산을 유람함과 같다)’이란 시를 음각한 시비를 만난다. 

시를 음미하면서 가던 길을 재촉하면 선학정 주차장이 나온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고 관광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청량사 일주문을 통과하는 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청량사 절 밑까지 도로가 개설되었지만 급경사로 이루어 진 도로인데다가 주차장도 스님들 차 정도만 주차할 수 있는 면적이어서 차를 두고 가는 것이 좋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30~40분 정도 오르면 깎아지른 바위산 아래 아담한 청량사(淸凉寺)를 만난다. 절 초입에서 청량수로 목을 축인다. 물맛이 달다. 

청량사는 원효대사가 문무왕 3년(663년) 때 창건 된 고찰로 한 때는 20여개의 암자를 거느릴 만큼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었는데 조선시대에 억불정책에 의해 응진전을 빼고는 모두 철폐되었다가 후에 재 창건되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중심전각 유리보전(琉璃寶殿)과 탑이 있다.

청량산은 12봉(峰)과 12대(臺), 8굴(窟) 및 4우물(井)로도 유명한 산이다. 본래 수산(水山)으로 불리다가 조선조에 이르러 청량사 주변의 산세가 절승을 이뤄 청량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퇴계 선생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형을 따라 청량산에 들어가 학문에 정진했고, 이후에도 그는 자주 혼자 또는 제자들과 이 산을 유람하며 정취를 만끽 한 탓일까. 곳곳에 퇴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청량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퇴계 선생님이 계셨던 도산서원이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 ‘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묏부리 두어 송이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 안에 들어가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 있고, 모두 만 길이나 높아서 험하고 기이한 것이 형용할 수 없다’고 적고 있을 만큼 청량산은 청송 주왕산, 영암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악(寄嶽)으로 알려진 전형적인 바위산이다. 

▲ 청량사 경내
▲ 청량사 경내


김생굴 코스가 경치 좋고 용이

청량산3.jpg▲ 청량산 가을단풍 모습(봉화군청 제공)
 
청량사를 돌아보고 나서 김생굴로 발길을 돌려보자. 김생굴(金生窟)은 ‘산꾼의 집’ 앞을 지나 호젓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경일봉(擎日峯) 아래에 있는 굴이다. 굴속의 면적이 넓어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신라의 명필 김생(金生, 711-791)이 굴 앞에 김생암이라 부르는 암자를 짓고 10여 년간 글씨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붓을 씻었다는 우물의 흔적이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김생의 글씨와 봉녀(縫女)의 길쌈이 서로 기술을 겨루던 전설이 어린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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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르면 병풍처럼 펼쳐진 암봉들이 마치 한 송이 연꽃을 연상시킬 정도로 절경을 이루고 있는 청량사를 한 눈으로 조망할 수 있다. 

여기에서 더 오르면 하늘다리로 이어지는 등산 코스다. 장인봉(丈人峯)을 비롯, 연적봉(硯滴峯), 탁필봉(卓筆峯), 자소봉(紫霄峯), 자란봉(紫鸞峯), 경일봉(擎日峯), 축융봉(祝融峯) 등을 오를 수 있는데 과거에는 장인봉이 873m로 주봉이었지만 풍화작용으로 3m가 낮아져 현재는 자소봉이 873.7m로 주봉 역활을 하고 있다.

정상 부근에는 2008년 5월31일 개통한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해발 800m 지점에 90m 길이에 높이 70m를 자랑하는 ‘청량산 하늘다리’가 놓여 있다. 현수교량으로서 국내에서는 가장 길고 높은 곳에 위치한다.

관광길이라면 김생굴에서 산허리를 감돌아 응진전(應眞殿)으로 향한다. 수십길낭떨어지위로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청량산을 조망하며 걷는 길이 재미있다. 응진전은 돌병풍으로 감싸여 풍광이 뛰어나다.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공주의 상이 안치되어 있다. 입석(立石)으로 하산 길을 잡으면 이내 주차장에 닿는다.

Tip. [교통] 청량산 가는길

수도권에서 청량산으로 가는 길은 중앙고속도로 영주IC를 빠져나와 봉화방면 36번 국도를 탄다. 봉화읍을 지나서 우측으로 뻗은 918번 지방도로로 갈아탄다. 도로 주변에는 봉성리 ‘석조여래입상’과 봉화 향교도 들러볼 수 있다. 그 밖에 주변 볼거리는 석천계곡(石泉溪谷)과 다덕약수탕이 있다. 도로주변 과수원의 사과 꽃이 인상적이다. 민들레는 홀씨되어 비상을 꿈꾸고 있다. 귀가길은 도산서원을 거쳐 남안동IC를 이용해도 된다.

Tip. [먹거리와 축제]

은어축제.png▲ 은어축제
 
봉화지역은 한약우(韓藥牛), 사과, 고추, 메밀 등의 특산물이 나온다. 청량산으로 향하는 길목의 초가집식당(054-672-1318)에서 메밀묵밥을 맛보는 것도 새로운 추억거리다. 봉화지역은 은어가 자생할 만큼 청정지역이다. 봉화군은 오는 7월28일부터 8월4일까지 내성천 일원에서 ‘제20회 봉화 은어축제’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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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우리나라 명소 '봉화 청량산 여행'...퇴계가 보물처럼 여겼던 작은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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