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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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또다시 2박 3일 버스이동을 했습니다. 늘상 피곤과 다크서클로 생과 사를 오가며 ‘이제 이렇게 길게 이동하진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이러고 있는걸 보면 말 그대로 생각뿐입니다.

 
   

2시간 30분 동안 머문 뭄바이의 도비가트(빨래터)모습. 뒤쪽의 고층건물과 대비되는 허름한 장소에서 빳빳하게 주름 잡힌 세상에서 가장 깨끗할 거 같은 빨래가 나온다.

고아에서 뭄바이로, 다시 뭄바이에서 디우까지 버스로 총 30시간 이동한 후에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인도인들의 휴양지로, 도보로 한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어촌 마을입니다. 제게는 첫 번째 인도여행에서 마지막으로 여행한 도시이면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난 곳이기도 했고요. 개떼에게 쫓겼던 일, 그동안에 본 중 가장 큰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를 숙소에서 발견하고 밤새 벌벌 떨던 일, 숙소가는 길을 잃어버려 마을을 한 시간이나 헤맨 일(알고 보니 5분 거리였는데 계속 주위를 맴돌았던 것), 인도아저씨에게 2시간 동안 쫓겨 다닌 일, 버스가 연착되어 비행기 시간을 놓칠까봐 조마조마했던 일 등 며칠 동안 참 다채롭게 여행 마지막을 보낸 곳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과연 디우가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전(前)의 여행을 통털어 가장 깨끗하고 좋았었던 디우의 숙소를 다시 찾아 갔습니다. 대부분의 바닷가 저렴한 숙소들은 수돗물에 바닷물을 섞어 사용하기 때문에 샤워를 해도 끈적하고 찝찝한 기분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곳은 수돗물만을 사용하며, 방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나 좋았던 곳이었습니다. 저는 2박 3일 이동 내내 일행에게 그 숙소에 꼭 가야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버스에서 내릴 즈음엔 일행과 저는 그곳이 아닌 다른 대안은 절대 없는 것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오직 그곳만을 찾아갔습니다.
 
- 저기, 둘이 쓰려고 하는데 방 한 개 있나요?
- 너희 한국인이니?
전에도 그리 친절한 주인아줌마는 아니었지만 빈 방이 있는지 물어보는데 다짜고짜 한국인인지부터 확인하고, 그렇다고 하자 방이 없답니다. 2년전 이 곳에 묶었을 때 너무 좋아 다시 왔다고 말하고 묶겠다고 하는데도 안된 답니다. 방이 없는게 아니라 안 된다고 하더군요.
- 며칠전 한국인 여자애 두 명이 우리 숙소에 묶었는데, 물을 틀어 놓고 나가서 물탱크 2개가 모두 비었었어. 그래서 물이 귀한 이곳에서 한동안 물을 쓰지 못했다고. 그러니 한국인인 너희는 묵을 수 없어.
 
이곳에 온 이유의 반 이상이 숙소였는데, 어떤 소수의 개념 없는 한국인들 때문에 묵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만난 몇몇 한국인들도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결국엔 여기서 이렇게 크게 실망하게 되네요. 단호한 주인아줌마를 뒤로 하고 야채 시장 근처의 숙소에 짐을 풀었습니다. 우울한 마음에 화도 나서, 앞으로 이곳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에게는 절대 호의를 베풀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역시 전에 먹었던 구자라트 탈리(인도식 식사)를 먹기 위해 음식점에 갔습니다. 그런데 낯익은 인도 청년들이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는 인도인은 없을텐데’ 생각하면서도 계속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2년 전, 이 음식점에서 음식을 나르던 소년들이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던 수줍은 미소의 소년은 어른티가 팍팍 나는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고, 청소를 하던 꼬마는 이제 주방에서 짜파티를 굽고 있습니다. 그걸 보니 제가 키운 것도 아닌데 너무나 뿌듯하고, 잘 자라준 소년들이 참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갑자기 2년 전 이곳 놀이터에서 매일 만났던 10살 소녀 나브랑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외가댁에 잠시 와 있는 중이라고 하던데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요?
이 근처 제가 먹던 오물렛 아저씨도 그대로 있을까요? 제가 오물렛 가게로 가는 시간마다 계속 벌써 며칠째 문이 닫혀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걸 압니다. 과거의 여행이 아무리 좋았다고 해도, 또 그때 만난 사람들이 좋았거나 싫었다고 해도 그때의 상황에서 일어났던 일이고, 지금은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디우에 오면서 한편으론 좋은 기억보단 나쁜 기억들이 많아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거리와 풍경들, 사람들을 보니 이곳이 새삼 좋습니다.
 
변비약을 사기 위해 들린 약국에서는 변비를 고치기 위한 각종 조언들을 해줍니다. 포장마차 주인은 여전히 개에게 쫓겨 다니는 저를 구해줍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떠오르는 해와 하늘의 구름도 좋습니다. 하나가 좋아지자 다른 모든 것들이 좋아집니다. 다시 힘을 내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첫 번째 여행보다 좋습니다. 여행이 꼭 새로운 것만을 보거나 느끼는건 아닌거 같습니다. 이미 본 것들, 느낀 것들을 다시 보는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아마 디우에서의 즐거움도 이런것들이 아닐까 싶고요.
 
   

디우 성의 모습. 포르투갈에 의해 반파되어 지금은 성채만 남아있다. 너무 더운 마을이라 항상 우산을 양산대신 쓰고 다녔다.

성과 시장, 마을 곳곳이 아름답고 예쁘지만, 더 이상 오래 돌아다닐 수는 없었습니다.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인데도 왜 이렇게 더운지.. 가만히 서 있으면 녹아버릴 것만 같습니다. 이곳 사람들도 더운 건지 오전에 잠깐 열었던 상점은 점심 식사 시간 즈음부터 오후 3시 정도까지 문을 닫습니다. 걸어 다니는 것 보다는 나을 거 같아 스쿠터를 빌려 타는 것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일행도 오토바이를 타보지 않았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는 잘 타더군요. 한번 벽에 부딪치려 했던 걸 빼곤요. 그리고 우리는 해변으로 달렸습니다. 바닷바람과 탁 트인 도로를 달리다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물론 저는 스쿠터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역시 전 범버카나 운전해야 할 거 같습니다.
 
 
   

감자를 구워 먹기 위해 해변으로 가서 장작을 모아 불을 붙였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었다. 아무리 불을 붙여 보려 해도 연기만 날 때, 흑기사처럼 3명의 인도 청년들이 나타나 감자만 구워주고, 정말 쿨하게 사라졌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난 후, 너무 덥고 끈적한 날씨쯤 이제 여행의 장애물로 생각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아예 더 더운 사막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마 타 죽지는 않겠죠?

   

시장에서 모기장을 사와 설치하는 중. 압정을 사기 위해 철물점과 잡화점 모두를 뒤졌지만 사지 못해 결국 작은 못을 사서 박았다. 여행이라 해도 일상을 모두 털어버리는 건 아닌 것 같다.

떠나기 전날 아침 일행을 기다리면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오물렛 가게에 갔습니다. 아저씨는 절 기억하지 못하지만 환한 미소로 맞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전 방명록을 찾았습니다. 2년 전의 날짜를 찾아 넘기다 낯익은 글씨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방명록을 남겼습니다. 다음번 여행에서 다시 그곳에서 두 번째 방명록을 확인하고 세 번째 방명록을 쓸겁니다.

 

   
 
   

학교에 늦은 아이들이 성당 옆의 담을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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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옥의 두 번째 행복한 인도여행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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