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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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권영빈] 가벼운 바람에도 제법 추위가 묻어나던 지난 11월 늦가을, 나는 트래블아이로부터 기자 팸투어에 참가해달라는 초청장을 받았다. 매번 젊음 하나만 믿고 무거운 배낭을 멘채 세상을 돌아다니던 내게 기자 팸투어는 맘 편히 여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대만1.jpg▲ 대만 용선
 
대만2.jpg▲ 대만의 전통 가옥
 
한치 망설임도 없이 초청을 수락하고 이제 옷장 속으로 넣어두려던 여름옷을 챙겨 대만으로 날아갔다. 대만의 첫인상은 매우 포근했고 남쪽 나라 특유의 열대나무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대만의 전통 용선. 대만의 전통 가옥. 이번 팸투어를 진행한 대만 관광청에서 나에게 소개한 곳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대만 남부에 있는 ‘동슬’이라는 시골 마을이었다. 

젊은이들이 다 도시로 나가버려 노인들만 남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인 ‘동슬마을’. 그러나 이 마을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바로 수다쟁이 할아버지들이였다. 우리나라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점잖으시고 무뚝뚝하신 것에 비해 대만의 할아버지들은 굉장히 쾌활하시고 할머니들보다 훨씬 말이 많았다. 
 
대만3.jpg▲ 대만의 자수.
 
대만4.jpg▲ 대만의 푸짐한 밥상
 
할아버지들의 수다소리는 언제나 마을을 떠들썩하게 했고 이러한 할아버지들의 활력은 젊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만담에 가까운 수다로 마을 이곳저곳을 가이드하고 다니는 어르신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분들의 수다 속에 녹아있는 정다움은 이국적인 자연환경과 낯선 언어 속에서도 고향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줬다.  4일간 쉴 틈없이 진행되던 기자 팸투어 이틀째 날 밤, 나는 타이중시 봉갑 야시장을 찾았다. 한 밤중임에도 야시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세상 모든 길거리 음식을 모아놓은 듯 수많은 길거리 음식점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대만5.jpg▲ 봉갑야시장 과일가게 전경.
 
봉갑 야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옷, 화장품, 악세사리 등 한국 물건이 엄청나게 많이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야시장 거리에서는 심심치 않게 한국 음악이 흘러나왔고 시장 홍보용 대형 스크린에 한국 아이돌 가수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이를 신기하게 여기자 나와 같이 야시장을 찾은 통역사는 내게 “대만에서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고 말하며 자신도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하였다. 그녀의 말로는 한국에서 한국 오락프로가 방영되면 1시간도 되지 않아 자막까지 들어간 영상이 대만으로 전송된단다.   

또한 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 패션은 인기 1순위이고 한국 화장품은 필수품이라고 하니 정말 한류 열풍이 대단하기는 한가보다. 그녀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한국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준 대만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 때문인지 그날 밤 나는 호텔로 돌아와 통역사에게 대만에 대하여 밤새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대만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여행을 하며 대만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갔다.   
 
대만6.jpg▲ 동슬마을 터줏대감인 황소.
 
대만7.jpg▲ 지진으로 생긴 경사로에 만든 자전거 도로.
 
사실 대만으로 기자 팸투어를 가기 전, 나는 대만과 중국과의 차이를 크게 알지 못했다. 다만 ‘중국보다 잘사는 작은 섬나라’ 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경험한 대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잘사는 나라였다. 

GNP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고 있을 정도이며 대만 국민들의 교육수준도 높다. 하지만 대만은 큰 슬픔을 가진 나라이다. 예전 일제시대 우리나라가 국제사회로부터 국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처럼 현재 대만은 중국의 입김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한 국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대만의 존재를 강하게 부정하고 있어, 강대국 중국과 수교를 맺고 싶은 나라는 대만과 수교를 맺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대만과 수교를 맺고 있는 나라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약소국들뿐이다. 우리나라도 1990년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관계가 좋았던 대만과의 수교를 끊어버려 대만에 상처를 준적이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중국의 눈치 때문에 국제스포츠 대회에 대만과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대만은 올림픽에서 ‘차이니스 타이페이’란 올림픽 전용 국기를 사용하고 있다.  한 때 '험한증'이 대만사회에서 퍼진 이유도 우리가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기때문이다. 대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도 많고 따뜻한 나라이다. 또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 있고 우리의 문화를 사랑해 주는 나라다. 왠지 모르게 서로를 닮은 두 나라.  좋은 친구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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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대만을 공부했던 4일간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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